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90화
장연욱이 발표한 앨범을 딱 이렇게 정의할 수 있었다.
게임 OST로 국내 차트 올킬.
정식 앨범도 아닌, 게임 OST로 국내 차트를 올킬하는 기염을 토해낸 장연욱.
처음에는 우려로 가득했던 그의 OST가 발표되고 나서 부정적이었던 여론이 전부 사라졌다. 또한 그에 대해 안 좋은 기사를 쓰려고 대기 중이었던 기자들 역시 이번에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업데이트가 이렇게 기다려지기는 처음이다.
-노래도 다 나왔는데 빨리 패치 안 하고 뭐 하냐.
-진짜 기다리기 힘들다.
-이렇게 되면 이제 지옥 권좌 업데이트가 문제 아니냐? 노래는 완전 명곡인데, 게임 패치를 이상하게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우습게도 사람들은 더 이상 OST에 대한 걱정보다 곧 나올 게임 패치에 대한 우려가 많아졌다.
OST를 저렇게 명곡으로 뽑았는데 막상 업데이트된 게임이 엉망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타이틀 곡에서 혜나가 소프라노를 맡았다던데, 진심 그 얇은 목소리로 그렇게 굵직한 성량을 뽑아낼 줄은 꿈에도 몰랐음.
-뭐야. 혜나가 부른 거였어?
-와. 진짜네. 생각도 못 했다. 혜나한테 저런 재능이 있었나?
장연욱의 OST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건 역시 타이틀 곡이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더불어 이어지는 소프라노와 합창단의 조화.
그 핵심이 되는 건 소프라노 역할을 맡은 혜나였다.
감미로운 얇은 목소리가 특징이었던 혜나가 그 정도로 폭발적인 성량을 보일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장연욱은 진짜 실력으로 증명하는구나.
-너무 사기캐 아님? 노래 잘함, 작곡 잘함, 얼굴 잘생김, 몸 비율도 좋음, 키도 큼. 또 뭐 있냐?
-이게 어딜 봐서 12일 만에 만든 곡이냐고.
-진심 미친놈 같음.
역대급 OST라는 호평을 받으며 이제 유저들은 게임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빨리 업데이트해라!
-OST만 나오면 완성이라면서요. 그런데 왜 게임 업데이트를 안 해?
-업데이트 날짜 앞당겨 줘. 하고 싶어서 미칠 거 같아.
-OST 듣고 나서 아스텔로 시작했습니다.
-좀 덜 완성했어도 되니까 그냥 업뎃만 해주세요.
유저들이 게임 게시판을 아수라장으로 만들 정도로 요청이 쏟아지자 개발진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아스텔로가 내일 업데이트를 하게 됩니다.]
유저들 말대로 이미 게임은 거의 완성이 된 상태였다. 문제는 OST였는데, 그 문제를 장연욱이 말끔히 해결해 주면서 시기를 2주일 앞당겨 클로즈 베타 테스트를 먼저 진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옥 권좌 레이드가 출시하게 되고 고레벨 유저들이 선발대로 나서며 클리어에 나섰다.
-진짜 역대급 난이도다.
-OST 아니었으면 진작 껐을 거임.
-연욱이 형 고마워. 형 덕분에 재밌게 OST 들으면서 하고 있어.
다행히 이른 업데이트로 인한 서버 터짐 현상이나 큰 버그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지옥 권좌의 난이도였다.
-이걸 깨라고 만든 건가?
-40시간을 트라이 해도 안 깨지는 레이드가 있다?
-아니. 적당히 해야지. 뭔 난이도가 이렇게 높아?
-운영자 니들은 이거 깨보긴 했냐?
레이드가 재밌게 잘 만들어졌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하지만, 극악의 난이도로 인해 불만이 터져 나왔다.
과연 운영진이 이걸 클리어한 것이 맞냐는 의혹이 나올 정도로 크게 이슈가 되었다. 그러자 어썸 게이트는 공식 뉴튜브 계정으로 영상 하나를 올렸다.
그건 바로 장연욱이 OST 제작 전에 개발진과 함께 플레이한 영상이었다.
영상에서 레이드가 중후반에 다다랐을 때 장연욱과 파티를 맺은 개발진들은 전멸을 하고 장연욱 혼자 살아남게 됐다.
혼자 보스를 잡아야 하는 장연욱은 끝까지 살아남아 마침내 레이드를 성공시키면서 지옥 권좌를 무려 5시간 만에 클리어하고 영상은 끝이 났다.
영상이 나가고 나서 또 한번 각 커뮤니티가 불타올랐다.
-저걸 5시간 만에 깼다고?
-아무리 개발진이 붙어 있었다고 해도 5시간 만에 깰 수 있는 난이도가 아니던데? 심지어 장연욱 혼자 살아남아서 보스 때려 잡더만.
-현타 온다. 내가 장연욱 계정보다 아이템 좋던데, 왜 난 못 잡는 거지?
-레알 천재 아니냐? 대체 못 하는 게 뭐야? 게임까지 잘하면 우린 어떡하라고.
-결국 부족한 건 우리 실력이었네.
장연욱이 플레이한 레이드가 사실은 하향된 난이도가 아니냐는 의혹이 있었지만, 어썸 게이트에서 아예 풀영상을 공개하면서 그런 의혹도 쏙 들어갔다.
그러면서 장연욱에게 새로운 별명이 붙었다.
-지옥 패왕 장연욱!
-장연욱이야 말로 최종 보스다.
-진짜 사람이 아니네 ㅋㅋㅋ
장연욱이 미국으로 가서 월드 투어를 준비할 동안, 한국 커뮤니티에서는 장연욱 신격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 * *
뉴욕의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JJ와 랜디의 콜라보 월드 투어가 결정되면서 그 첫 무대를 뉴욕에서 맞이하게 된다. 그에 대한 환영의 뜻으로 뉴욕에 있는 수많은 빌딩이 JJ를 상징하는 핑크색 조명을 환하게 켜 놓았다.
그로 인해 도시 전체가 핑크빛으로 물들게 된 것이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한때 빌보드 시장을 점령했던 팝가수, 오스틴 커즈.
앨범을 냈다 하면 1위를 밥 먹듯이 하던 그였지만, 하필 장연욱의 앨범과 맞물리면서 1위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다.
더군다나 장연욱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 3개가 1위부터 3위까지를 차지하게 되면서 커즈의 노래는 4위도 아닌, 5위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뿐인가?
지금 온 나라가 장연욱이란 남자한테 미쳐 있다.
미국의 시장이라고 불리는 빌보드에서조차 장연욱 노래로 가득해지고 월드 투어 전에 나온 게임 OST가 빌보드 순위에 오르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거기다 뉴욕 시티가 특정 가수를 위해 조명까지 바꿔 줄 정도로 관대한 곳이었던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세상이 미쳐 버린 게 틀림없다.
“오스틴. 정말 갈 거야?”
“가야지. 그 티켓도 어렵게 구한 거라며.”
“으응. 내가 뒷돈 찔러줘서 겨우 얻은 거야. 무려 10배나 넘는 티켓값으로!”
잠깐 뉴욕의 핑크빛 야경을 감상하던 오스틴은 매니저가 주는 티켓을 받았다.
오늘 열리게 되는 JJ와 랜디의 콜라보 월드 투어 무대.
랜디는 그 첫 무대를 보고자 티켓까지 얻어 놓았다.
장연욱이 보고 싶어서? 아니면 랜디가?
둘 다 아니다.
첫 월드 투어를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 지켜보자는 심보였다.
그리고 사실 보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었다.
“오스틴. 솔직하게 말해 봐. 너 장혜나라는 그 가수가 보고 싶은 거지?”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게 누군지도 몰라.”
“흐흐. 그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핸드폰 배경화면을 장혜나로 해놨어?”
“아······.”
바꾼다는 걸 깜빡했다.
오스틴은 얼른 배경화면부터 바꾸고 시치미를 뗐다.
“이게 왜 이렇게 되어있는지 모르겠네. 내가 해 놓은 거 아니야.”
“그래. 아무튼, 얼른 출발하자. 이러다 늦겠다.”
JJ와 랜디의 앨범이 빌보드를 장악한 것을 보고 오스틴은 조작이 분명하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직접 노래를 들어보고 뮤비도 봤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노래는 좋았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명확하게 조화를 이루어냈다.
문제는 뮤직 비디오였다.
무심코 본 뮤직 비디오에 등장하는 장혜나를 보고 오스틴은 처음으로 동양인에게 호감을 느꼈다.
그때부터였을까.
장혜나에 대한 사진을 찾아보고 라이브 영상을 챙겨보는 등, 남몰래 덕질을 하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때마침 월드 투어가 뉴욕으로 정해지자 곧바로 매니저를 시켜 그 구하기 힘든 티켓을 얻은 것이었다.
처음으로 장혜나의 실물을 보는 날이다.
오스틴은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은 뒤, 마스크를 써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워~ 사람 모인 것 좀 봐.”
공연이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굉장히 많았다.
티켓 예매를 시작한 지 5분도 안 돼서 전부 매진이 됐다고 하더니, 수만 명의 사람이 오늘 월드 투어를 보기 위해 잔뜩 모여들었다.
보통 때라면 경호원들과 같이 다녔겠지만, 오늘은 공연을 보러 왔기 때문에 매니저와 단둘이 움직여야만 했다.
“우리 자리는 여기야.”
거의 맨 앞에서 무대를 볼 수 있는 스탠딩석이었다.
여기서라면 장혜나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을 것이었다.
‘아니지. 정신 차리자.’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들 떠 있다는 걸 깨달은 오스틴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오늘은 혜나를 보고자 온 것이 아니다.
이놈들이 얼마나 좋은 무대를 보여주는지 직접 지켜보고자 온 것이다.
만약 그에 합당한 무대를 보여 주지 못한다면 온갖 조롱을 다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매니저의 호들갑 떠는 모습을 지켜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3! 2! 1!”
전광판에 숫자가 나오자 사람들이 다 함께 카운터를 세고 있었다.
그리고 1의 숫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무대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오프닝이다.
어떻게 자극적이고 관객들의 마음을 흔들 만한 오프닝을 보여 줄 것인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따란-!!
치솟는 불꽃.
그 가운데에 들려오는 피아노 건반 소리.
화려한 기교가 섞인 피아노가 락밴드를 연상시키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랜디가 연주를 하는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다.
“꺄아아아-!!”
“와아아-!!”
장연욱이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전광판을 통해 나왔다.
오스틴은 그 굴곡진 완벽한 비율의 남자를 가까이에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영상으로 봤던 장연욱의 얼굴과 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직접 눈으로 보게 되니,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헬로 뉴욕!!”
“와아아-!!”
장연욱은 피아노 건반을 강하게 때리며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혼자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을 뿐인데, 강한 음률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한번 이어지는 불꽃과 함께 무대 아래에서부터 등장하는 드럼이 강렬한 비트를 만들어냈다.
“랜디!!”
“꺄아아-!”
드럼을 연주하고 있는 건 바로 랜디였다.
그의 마법 같은 스틱의 움직임이 피아노와 조화를 이루어내며 음의 소리를 완벽하게 해주었다.
‘근데 혜나는 어디에 있지?’
피아노와 드럼을 이용해 본인들을 등장시킨 장연욱과 랜디.
하지만 혜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오스틴이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찾고 있는 사이, 피아노와 드럼의 격정적인 음을 깨는 일렉 기타의 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두 번의 불꽃보다 더 강하게 타오르는 불꽃. 아니. 불길.
세 방향으로 뻗어 있는 무대가 전부 불에 휩싸였고, 그 불길을 일렉 기타가 혼자 조종하는 것처럼 보였다.
“헉!”
오스틴은 불길 가운데에서 화려한 연주를 선보이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목격한 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혜나다!”
뮤직 비디오에서도, 그 어떤 공연에서도 악기를 단 한번도 연주하지 않았던 혜나가 이 무대의 주인공처럼 등장해 일렉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