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87화
“이렇게 굉장하신 분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스텔로 개발자이자 디렉터인 김선강과 그의 핵심 개발진이 모인 자리였다.
그들 모두 안절부절 거리며 갈피를 잡지 못 하고 있었다.
“저도 영광입니다. 항상 아스텔로 업데이트 간담회에서만 뵙던 분을 여기서 보니까 이상하게 내적 친밀감이 샘솟네요.”
“하하. 그 기분 저도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요즘 tv만 켜면 장연욱 씨의 얼굴만 보이니까요. 저도 꼭 가까운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군요. 오시는 데에 불편한 점은 없으셨고요?”
“네. 교통이 다행히 막히지 않아 편하게 왔습니다.”
우리는 가볍게 신변잡기를 하고 나서 자리에 앉았다.
아무래도 여긴 개발진이 모여 회의를 하는 곳 같다.
길쭉하고 둥근 테이블에 맨 앞쪽에는 스크린이 보였다.
“저희가 많이 급해서요.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로 오기 전 사무실 분위기를 대충 살펴만 봐도 굉장히 바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저희 아스텔로 게임은 MMORPG 게임입니다. 그리고 다음 달에 대규모 패치가 준비되어 있죠.”
“네. 알고 있습니다. 지옥 권좌 업데이트 맞죠?”
“아, 미리 숙지하고 오셨군요.”
“그렇다기 보다는, 제가 아스텔로를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어서요.”
“······네?”
김선강을 비롯해 다른 개발자들 역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들을 보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그렇게 보실 필요 없어요. 저도 게임 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제 누나도 아스텔로를 잘 즐기고 있고요.”
“저, 정말요? 두 분이 정말 우리 게임을 하고 계시다는 겁니까?”
“네. 아주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다음 달에 월드 투어가 예정되어 있는데도 이렇게 달려올 정도로요.”
김선강 디렉터와 개발자들은 연이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들은 내가 이 게임을 하고 있을 줄 꿈에도 몰랐던 모양이다.
“전 여러분이 알고 계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한테 제안을 넣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아뇨. 전혀 몰랐습니다. 저희 게임이 점점 인기가 올라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타 게임사에 비해 밀리고 있거든요.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분들께서 우리 게임을 하고 있으셨다니······.”
감동을 잔뜩 먹은 표정을 보고 있자니 괜히 내가 다 부끄러워진다.
“아무튼, 설명을 드리기 매우 쉬워지겠군요.”
“네. 하지만 디테일한 부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걸 들으려고 왔습니다.”
“그 말씀은 계약을 하시겠다는 거죠?”
“네, 지금 도장부터 찍고 할까요?”
내 마음이 바뀌기 전에 그들은 계약서부터 헐레벌떡 들고 왔다.
계약 내용은 간단했다.
이번 지옥 권좌 업데이트를 위해 총 다섯 곡의 OST를 만드는 것이었다.
“저······ 가격 부분은 저희가 최대한 맞춰 드리겠습니다. 원하시는 금액이 있으시다면 빈칸에 써주시면 됩니다.”
정말로 공란이 있었다.
가격을 내 마음대로 써보라는 건가?
물론, 덜컥 비싼 값을 부르면 분명히 협상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이미 나는 차고 넘칠 정도의 돈을 벌고 있다. 오늘 여기 온 것도 단순히 돈을 벌려고 온 게 아니다.
그렇다고 공짜로 해주겠다는 것 역시 아니었다.
액수는 곧 내 몸값을 나타내는 지표이니 말이다.
“이렇게 하죠.”
나는 공란에 0을 적었다.
“······?”
그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계약서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정말 대가 없이 하시겠다는 뜻은 아니겠죠?”
“네. 앨범 제작하는 데에 있어 따로 돈을 받진 않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돈을 받지 않으시고 앨범을 제작하시겠다고요?”
“예.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그럼 그렇지라는 얼굴로 다들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음원 저작권을 저한테 주세요.”
“저작권을요?”
“네. 보통 게임 음악은 별도로 저작권료를 받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홍보 목적으로 OST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저작권을 전부 풀어 버리는 것이 관례다.
“저작권을 가지고 가시게 되면 스트리머들이 방송을 할 때 많이 불편해 할 텐데요?”
게임을 홍보하는 가장 좋은 수단은 바로 유명한 스트리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TV에 나오는 광고보다 핸드폰으로 이용하는 어플에서 나오는 광고가 더 큰 파급 효과를 가지고 있다.
“그건 저도 당연히 이해를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스트리머들을 위한 저작권 등록이 있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 하는 동안 OST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그런 것까지 챙길 생각은 없어요. 그저 음원 사이트나 뉴튜브를 통해 곡이 첫 공개되었을 때의 저작권을 말하는 겁니다.”
게임 회사에서 만든 OST가 무조건 저작권 프리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스트리머 방송용으로 저작권 프리가 될 순 있지만, 그 외의 것들은 전부 저작권료를 챙겨 가는 경우가 꽤 있다.
나는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을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러자 김선강 디렉터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게임 OST 특성상 돈을 벌기가 쉽진 않을 겁니다. 어디까지나 게임을 위한 OST이니까요. ‘레이스’ 걸그룹으로 만드셨던 게임 OST와는 많이 다르다는 겁니다.”
레이스의 곡은 게임을 위해 제작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레이스를 슈퍼 스타로 만들기 위한 곡이었다.
하지만 이번 곡은 오로지 게임에 맞춰진 것이어야만 한다.
“어차피 수익은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드리는 것이고요. 이제 덜 부담스러우시죠?”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 제일 걱정했던 것이 바로 계약 금액이었거든요. 솔직히 수십억을 부르셔도 저희로서는 황송한 일이니까요.”
빌보드 1위라는 타이틀이 생기면서부터 부르면 값이 되는 몸이 되었다.
“그럼 계약은 이렇게 마무리를 짓도록 하죠. 오케스트라는 제가 알아서 구하도록 할게요.”
“아. 그럼 그에 대한 비용은 저희가······.”
“아뇨. 그건 제가 알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참. 계약을 마무리 짓기 전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뭐든지 말씀하십시오.”
김선강은 정말 뭐든 다 해 줄 것만 같은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지옥 권좌 레이드를 오늘 제가 플레이 할 수 있을까요?”
“······네?”
다시 한번 김선강과 개발진의 멍한 표정을 보게 되었다.
* * *
“뭐야? 무슨 일이야? 왜 다 모여 있어?”
아스텔로 개발팀 직원들부터 시작해 타 부서 사람들까지 전부 사무실로 모여들었다.
“못 들었어요? 오늘 장연욱이 우리 회사 왔다잖아요.”
“그건 나도 들었지. 근데 여긴 왜 모여 있는 거야?”
“아니. 글쎄. 장연욱이 이번에 업데이트 될 지옥 권좌 레이드를 직접 플레이 한데요.”
“뭐? 그거 엄청 어렵지 않아?”
“맞죠. 개발진에서도 클리어하는 데에 최소 40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참으로 괴랄한 난이도가 아닐 수 없다.
심지어 게임을 직접 개발하고 그 패턴을 전부 다 꿰뚫고 있을 개발진조차 지옥 권좌를 처음 클리어 하는 데에 40시간이 걸렸다.
개발진이 저 정도면 게임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은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걸릴까?
이번 업데이트는 가히 통곡의 패치가 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게임 OST 제작자로 오게 된 장연욱이 게임을 직접 플레이한다?
“저러다 분명 1시간 하고 나서 때려 치겠지.”
“맞아. 보통 사람은 저거 절대 못 해.”
“으. 나도 10시간 정도 하니까 정신 나갈 것 같아서 포기했잖아.”
개발진은 물론, 게임 개발과 전혀 상관없는 직원들까지 한번씩 시도를 해본 지옥 권좌 레이드.
그들은 이 레이드가 얼마나 끔찍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얼마 못 가 장연욱이 포기할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장연욱이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역시 엄청 어렵네요.”
이제 겨우 1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벌써 포기?
“저 직업 좀 바꾸고 와도 될까요?”
“네? 아, 네.”
서폿으로 플레이를 하고 있던 장연욱은 같이 파티를 맺은 개발진의 허락을 받은 뒤 딜러로 캐릭터를 바꾸고 왔다.
뒤에서 짤짤이 힐을 넣기 보다는 자신이 직접 앞으로 들어가 딜을 넣어 캐리를 해보겠다는 의지였다.
“대충 패턴은 익힌 거 같으니 한번 해보죠.”
이윽고 10분 뒤.
“오~!”
구경을 하고 있던 직원들의 감탄 어린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연욱이 딜러로 직업을 바꾸고 나서 1페이즈 레이드를 성공한 것이었다.
“이야. 1페이즈를 벌써 깼네.”
하지만 이제 1페이즈다.
지옥 권좌 레이드는 총 다섯 페이즈로 나뉘어 있고 하나하나마다 신박한 패턴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거기다 페이즈가 올라갈수록 가뜩이나 어려운 난이도가 더 상승해 버린다.
“분명 2페이즈는 10시간 정도 걸리겠지?”
“어······ 뭐야. 저거 설마 깨는 거 아니야?”
“헉. 보스 피가 왜 저래.”
“이걸 3트 만에 깬다고? 거짓말이지?”
문제는 장연욱의 플레이였다.
2페이즈에 오고 나서 두 번을 연달아 죽은 뒤 세 번째 시도부터 갑자기 달라졌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 개발진을 통해 대충 패턴을 외워 둔 것인지, 처음 보는 패턴에도 당황하지 않고 재빨리 대처했다.
“와~ 뭐야. 2페이즈를 저렇게 빨리 깨?”
“운 좋게 깼어도 3페이즈는 안 될 걸?”
“맞아. 3페이즈가 진짜 어려워.”
곧 이어지는 3페이즈.
마치 2페이즈는 애들 장난이었다는 걸 보여 주는 듯한 괴랄한 난이도를 자랑했다.
하지만 불꽃이 치솟는 전장 한복판에서 장연욱 혼자 빛을 발하는 플레이가 이어졌다.
“뭐, 뭐야. 이것도 이렇게 쉽게 깬다고?”
“이제 겨우 다섯 번 트라이잖아.”
“말도 안 돼. 진짜 깨는 거 아니야?”
최소 6시간에서 10시간은 족히 걸리는 세 번째 페이즈가 1시간 만에 클리어 됐다.
당황스러운 건 장연욱과 같이 플레이 하는 개발진의 실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장연욱이 혼자 딜을 다 욱여넣으면서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네 번째 페이즈에서는······.”
이어지는 4페이즈.
역시 다섯 번째 트라이만에 클리어 됐다.
“마, 마지막 페이즈는 절대로 쉽게 클리어 못 해!”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페이즈.
콰콰쾅-!
번뜩이는 효과음과 함께 지옥 권좌에 앉아 있던 최종 보스가 무릎을 꿇었다.
동시에 스크린으로 장연욱의 화면을 관전하고 있던 직원들의 다리에 힘이 풀려 버렸다.
“진짜 미쳤어.”
“아니. 마지막 페이즈를 저렇게 쉽게?”
“그것도 3 트라이 만에!”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믿었던 마지막 페이즈마저 장연욱 손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연욱은 기지개를 쭉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재밌었다. 이번 레이드는 확실히 엄청 어렵네요. 진짜 겨우 깼네.”
“······.”
“그럼 전 이만 작업하러 가 볼게요. 모두 수고하셨어요.”
연욱은 그렇게 말하며 사무실을 나가 버렸고, 덩그러니 남게 된 김선강과 개발진은 잠시 넋을 잃고 있다 곧 비상이 떨어졌다.
“뭐야. 이게 대체 뭐야!?”
“우리가 게임을 너무 쉽게 만들었나? 이게 말이 돼?”
“어떡하죠? 지금이라도 난이도를 더 올려야 하나?”
개발팀은 대혼란에 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