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83화
[영국 최고의 팝스타 랜디, 기습 한국 방문?]
[팝스타 랜디의 한국 방문이 갖는 의미.]
[단순한 여행인가, 아니면 새로운 앨범 작업인가? PD들도 대동.]
공식적인 발표나 SNS를 통해 글을 남기지도 않고 한국을 방문한 랜디.
공항에서 그를 발견한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지면서 이슈가 되었다.
처음에는 랜디가 한국에 올 리가 없다며 잘못 본 거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인증샷이 게속해서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그제서야 랜디가 한국에 들어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대체 랜디가 왜 온 거임?
-한국 여행하러 왔나?
-앨범 작업하려고 왔다는 얘기가 있던데. PD들을 다 데리고 왔다면서?
-몇 년째 앨범 하나 안 내고 잠정 은퇴를 한 놈이 뜬금 없이 한국에 와서 앨범 작업을? 아무리 봐도 말이 안 되는데.
랜디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웃긴 일이지만, 그가 한국에 와서 앨범 작업을 하려 한다는 루머가 떠돌자 그건 더 웃긴 일이라고 치부했다.
몇 년 동안 싱글 앨범 하나 내지 않고 콘서트도 하지 않은 랜디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앨범 작업을 한다는 것인가?
괜한 희망 고문 하지 말라는 의견이 지배적일 때였다.
-랜디, 청담동에 떴다.
-장연욱 소속사로 들어가는 게 포착됨 ㄷㄷㄷ
-뭐야. 다른 곳도 아니고 장연욱 소속사로?
-저번에 랜디가 장연욱 엄청 칭찬하지 않았냐?
-헐. 진짜 장연욱이랑 작업하는 건가?
랜디가 장연욱 소속사 건물로 들어가는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오면서 사람들의 기대감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물론, 냉정하게 생각하는 네티즌들도 많았다.
-에이 설마. 아무리 그래도 랜디급이 있지. 장연욱이랑 작업을 하고 싶겠냐?
-국뽕이 아무리 좋아도 장연욱이 그 정도 급은 아님.
-빌보드 1위도 못 해 본 따리가 랜디랑 비비려고 하냐?
팬이 있으면 당연히 스타를 비난하고 무시하는 안티팬이 있는 법.
연욱이 랜디와 작업을 할 정도의 급은 아니라는 글들이 연달아 올라왔다. 하지만 이 모든 걸 잠식시킬 글이 올라오게 된다.
[오피셜. 영국 최고의 팝스타 랜디, 장연욱과 콜라보 앨범 제작 위해 한국 방문.]
-방금 랜디가 SNS에 글 올렸다. 자기가 한국 온 이유는 장연욱이랑 콜라보 하기 위함이라고 밝힘. 몇 년 만에 돌아오는 복귀 앨범을 장연욱과 만드는 거임.
-크 주모
-장연욱이 진짜 월드 클래스네. 실감이 안 난다.
-우리나라에서 저런 천재가 나오기도 하는구나.
-와 랜디 앨범을 장연욱이 제작하는 거야? 미쳤다.
-그런데 이게 랜디 앨범인지, 아니면 장연욱 앨범인지도 모르는 거잖아?
-당연히 랜디 앨범이지 ㅋㅋㅋ
랜디가 장연욱과의 콜라보를 공식 발표하면서 이제 사람들은 누구 앨범으로 나오느냐로 토론을 이어 갔다. 당연히 랜디 앨범이 아니겠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설마 랜디가 장연욱 앨범에 피쳐링만 하려고 한국까지 왔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마치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다는 듯, 랜디는 또 다시 SNS에 글을 올렸다.
-방금 랜디 SNS 떴다. 장연욱 앨범에 피쳐링으로 들어가신다고 한다. 레전드
-미친. 고작 피쳐링 하려고 한국까지 왔다고?
-장연욱이 랜디랑 그렇게 친한가? 랜디가 누구 앨범에 피쳐링한 적이 있던가?
-없음. 랜디 성격이 개썅마이웨이라서 피쳐링은 하지도 않고 허용해 주지도 않음.
랜디가 데뷔 이후 처음으로 다른 가수의 앨범에 피쳐링을 한다는 소식이 뜨면서 네티즌들은 흥분에 휩싸였다.
그의 새로운 앨범을 기대한 팬들은 실망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연욱과 콜라보를 한다는 것에 만족했다.
-장연욱 작업 속도 엄청 빠르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나라에서는 탑급이라던데.
-나도 음악 쪽에 일하는 친구한테 들은 적 있음. 작업 속도도 그렇고 곡 퀄리티도 굉장하다고 함. 특히 미공개한 곡들이 엄청 많다고 들음.
-장연욱 유명하지 않나? 음악 천재라서 같이 작업하면 엄청 피곤하대.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 한다고 함.
-돈 엄청 벌었겠다.
-이번에 장연욱이 건물 몇 개랑 부동산 싹쓸이 하지 않았나? 소문이 파다 하던데.
랜디와의 콜라보로 인해 한동안 인터넷은 장연욱의 이야기로 가득해졌다.
* * *
“팬들의 반응이 아주 대단하겠어.”
PD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는 제임스는 SNS 반응을 살펴보기가 두려웠다.
거의 5년 만에 돌아오는 영국 최고의 팝스타 랜디다.
그런데 그가 작업을 한국에서 하고, 거기다 새로운 앨범을 내는 것도 아닌 피쳐링을 하게 되었다.
그가 음악 작업을 위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내놓았을 때만 하더라도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런데 새로운 앨범 작업이 아닌, 그저 피쳐링을 하기 위해 왔다고 한다면 그 뜨거웠던 반응이 어떻게 변할까.
만약 랜디가 영국에 있었으면 폭동이 일어나 그의 집이 포위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의 새로운 앨범을 기다리는 팬들이 굉장히 많다.
“그냥 말렸어야 했나.”
잠시 후회를 해봤다.
그러나 부질 없는 짓이다.
한번 하겠다고 하면 절대 마음을 굽히지 않는 게 바로 랜디다.
그래서 생판 와본 적도 없는 나라를 순순히 따라왔다.
“제일 큰 문제는 음악성이야.”
그리고 문제는 이것 뿐만이 아니었다.
랜디와 연욱의 콜라보를 처음에 반대했던 이유는 두 사람의 음악 성향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었다.
랜디는 연욱의 노래가 좋다고는 하지만, 제임스는 알고 있다.
랜디의 음악성은 매우 확고하다는 것을 말이다.
한번 마음을 먹으면 굽히지 않는 것처럼, 음악에 있어서도 랜디는 절대 굽히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여러 번 콜라보가 성사될 뻔한 앨범들이 전부 엎어졌던 것이다.
그런데 연욱과 콜라보를 한다? 그것도 피쳐링을?
분명 랜디는 자기 색깔을 곡에 묻히려 들 테고, 연욱은 필사적으로 그걸 막으려 할 것이다.
“랜디도 그렇고 장연욱도 성격이 보통이 아닌 거 같던데.”
비행기에서 연욱이 작곡한 곡들을 전부 다 들어 보았다.
굉장히 훌륭한 음악가라는 건 인정해야 하는 부분이었으나, 랜디와 정반대의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곡에서도 느껴지는 자기 주장과 확고한 음악성.
랜디와 비슷하지 않은가?
그런 두 사람이 부딪힌다면······.
“보나마나 앨범 작업은 물 건너 가겠군.”
그래서 마음을 비웠다.
겉으로 보면 매우 신사적이고 화 한번 내지 않을 것처럼 생긴 랜디. 하지만 실상은 불도저의 그것과 닮은 랜디의 성격은 연예계 내에서도 유명하다.
오죽하면 미친개라는 별명을 얻었겠는가.
팬들 사이에서도 그런 얘기가 가끔 돌긴 했으나, 신사적인 랜디가 절대 그럴 일 없다며 전부 루머로 취급해 버렸다.
왜냐하면 콘서트나 팬사인회를 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 신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랜디이기 때문이다.
“연욱. 혹시 차기 앨범에 무슨 곡을 쓸지 생각해 봤어?”
“대충은요.”
“그 말은 만들어 놓은 게 없다는 거야?”
“네.”
작업실에 오자마자 충돌할 기미가 보인다.
랜디는 장연욱의 콜을 받고 영국에서 한국까지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런데 연욱은 정작 준비한 게 하나도 없었다.
랜디의 기분이 상할 법한 일이었다.
“하지만 전부 머릿속에 들어가 있죠. 지금 하나 뽑아 볼까요?”
“응? 여기서 즉석으로?”
“네.”
연욱은 옆에 놓여 있는 기타를 들고 연주를 시작했다.
핑거 스타일로 기타를 치며 도입부부터 리듬이 생생하게 뛰는 것 같았다.
아직 가사가 정해진 것은 없는지, 중간중간 목소리를 냈다.
랜디는 눈을 감은 채 노래를 감상하며 발로 땅을 두드렸다.
‘역시 자기주장이 강한 노래군.’
도입부는 마음에 들었으나, 노래 스타일은 랜디와 어울리지 않는다.
랜디는 전형적인 락 가수다.
도입부만 들으면 신나는 리듬을 가진 락 음악으로 착각할 수도 있으나, 지금껏 만든 장연욱의 노래를 들어보면 락 음악과 거리가 멀다.
R&B에 가까운 노래라고 해야 할까.
물론 걸그룹 ‘레이스’를 위해 댄스곡을 하나 작곡하긴 했었는데, 그것 역시 랜디의 음악 취향이 아니었다.
“어때요?”
“오~ 괜찮은데?”
연주가 끝나고 나서 랜디는 박수를 쳐주었다.
하지만 제임스는 알고 있었다.
저 박수는 진심을 담은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 기타, 잠깐 빌려도 될까?”
“아, 네.”
이번에는 랜디가 기타를 이어 받아 연주를 시작했다.
제임스도 일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미공개 곡들 중 하나였다.
전형적인 락 스타일의 음악.
랜디의 큰 매력이라 할 수 있는 끓는 듯한 목소리가 적절히 가미된 곡이었다.
연욱도 눈을 감고 랜디의 음악을 조용히 감상했다.
이윽고 마지막 고음 부분까지 깨끗하게 올린 랜디의 노래가 끝이 났다.
“어땠어?”
랜디의 얼굴은 마치 칭찬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꼬마 아이를 닮았다.
그러나 그런 랜디를 바라보는 연욱의 표정이 묘했다.
“과연 세계 최고의 락가수답네요.”
언뜻 칭찬처럼 들릴 수 있으나, 잘 들어보면 락 음악에 완전히 고착 되어 있다는 비판처럼 들리기도 했다.
분명 제임스가 들은 뉘앙스는 그러했다.
‘벌써 충돌하는 건가?’
서로 상극을 달리는 두 가수다.
자존심도 강하고 자기 주장 역시 강하다.
또한 전혀 섞일 수 없는 음악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니, 충돌을 하는 건 불을 보듯 뻔했다.
그래서 서로 심하게 충돌을 하기 전에 중재를 하고자 제임스는 앞으로 나갈 타이밍만 살피고 있었다.
“음. 뭔가 표정이 미묘한데? 혹시 방금 노래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있어?”
랜디가 던진 말에 연욱은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들이 받았다.
“네.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죠.”
아찔했다.
그래도 조금은 피해 갈 줄 알았는데, 저렇게 대놓고 말할 줄이야.
랜디는 재밌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래? 어느 부분에서?”
점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제임스는 잠깐 쿨다운을 하기 위해 랜디에게 다가가려 할 때였다.
“랜디의 음악은 정말 좋아요.”
“······?”
“다만 제 음악 스타일과 정반대라서 만약 랜디가 피쳐링을 한다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요. 아마 그건 랜디도 같은 마음일 거예요. 아까 제가 연주한 노래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죠?”
“응? 뭐······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랜디가 잠시 우물쭈물 거릴 때 연욱이 다시 기타를 들었다.
“이건 어떨까요? 방금 떠오른 악상인데, 랜디도 만족을 할 수 있고 저도 만족을 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 내는 거예요.”
“오~ 방금 떠올렸다고? 기대 되는데. 한번 연주해 봐.”
제임스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방금 노래가 떠올라?
서로 정반대의 성향을 하나로 묶어 줄 수 있는 곡을 그 짧은 시간에?
아마 멜로디만 대충 짜낸 것 같은데, 미완성이다 보니 곡이 매우 조잡할 것 같았다.
“The music in my mind~”
하지만 이어지는 연욱의 연주와 이번에는 가사까지 첨부된 영어 노래에 가만히 듣고 있던 제임스의 눈동자가 차츰 커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