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82화
땅을 보러 간다거나, 아니면 빌딩을 보러 다니는 건 정말 남의 얘기인 줄 알았다. 하지만 통장이 터질 것만 같은 돈이 생기고 나서부터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돈을 무작정 통장에 넣어 놓는 것만큼 멍청한 짓이 또 어디 있겠어.”
“응? 그러면?”
“재테크를 해야지. 주식을 산다든가 아니면 다른 걸 산다든가.”
누나는 그냥 통장에 쌓아 두면 다 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부모님도 이 정도로 많은 돈이 생긴 건 처음이기도 하고, 자식들이 벌은 돈이기 때문에 함부로 건드리지 않으셨다.
아니. 건드릴 필요도 없이 이미 쌓은 돈이 많으니 그냥 통장에 차곡차곡 모아 두기만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을 다녀오고 나서 쌓여 있기만 한 돈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누나와 부모님을 데리고 간 곳이 바로 부동산이었다.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청담동 같이 땅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싼 곳에 있는 부동산은 고객을 대우하는 방법부터 다르다.
내가 전생에서 원룸을 알아보고 다닐 땐 부동산 업자들이 덜덜 거리는 폐차에 태워서 방을 보고 다녔는데, 여긴 달랐다.
애초에 연예인, 사업가들도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그런지 전용 기사가 딸린 차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거기다 한 명이 고객 하나를 따라다니지 않고 세 명 이상이 따라 붙어, 그야 말로 VIP 대접을 해주었다.
“특별히 보고 싶은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서울 전역 어디든 저희가 모시고 가 드리겠습니다.”
“압구정으로요.”
“네.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압구정이라는 말에 누나가 고개를 갸웃 거렸다.
“압구정? 압구정에 볼 거 있어?”
“응. 거기 부지랑 건물 좀 하나 볼 게 있어서.”
“와~ 그런 건 또 언제 알아봤대?”
누나는 의외라는 듯 날 바라보았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호호. 우리 연욱이는 하루 종일 음악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언제 이런 걸 다 보고 있었니?”
“우리 연욱이가 경제 관념이 우리 집에서 가장 좋잖아. 당신 잊었어? 저번에 연욱이가 사라는 주식 샀다가 그게 5배나 오른 거?”
“맞아. 오르고 나서 우리가 팔고 나니까 엄청 폭락했었지?”
“우리 아들은 음악을 할 게 아니라 차라리 금융 쪽으로 진출을 했어야 한 거 아닐까?”
부동산 업자들이 귀를 쫑긋 세우며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 있는 게 훤히 보였다.
사실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다.
전생에서 주식 공부를 좀 했었던 경험이 있어서 도움이 됐다.
그당시 어떤 주식이 잘 나가는지 자세히 보지 못했던 게 한이 될 뿐.
그래도 조금 기억이 나는 걸 부모님에게 말씀드려 돈을 꽤 불려 놓았다.
“혹시 압구정 어느 쪽에 건물을 보고 싶으신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부동산 업자가 들고 있는 태블릿으로 지도를 찍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정말 여기를 보시는 겁니까?”
“네. 왜 그러시죠?”
“아뇨. 여기가 현재 비어 있는 부지라서요. 압구정이라는 특성 때문에 땅값은 비싸지만, 정작 활용도가 없어서 벌써 몇 년째 팔리지 않는 곳입니다.”
지금이야 그렇지.
내가 알기로 그 부지는 나중에 금싸라기 땅이 된다.
전생에서 봤던 연예계 소식 프로그램에서 어느 유명한 배우가 그 땅을 사들여 주차장을 지은 뒤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는 걸 난 기억하고 있다.
지금이야 그쪽 주변이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곧 백화점이 들어서고 여러 건물들도 함께 들어오게 된다.
“연욱아. 근데 정말 여기를 살 거야? 여기 주변은 압구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뭐가 없네.”
부모님도 조금 우려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봐도 주변에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난 길게 고민하지 않았다.
“일단 여기랑 계약 진행해 주세요.”
“아, 넵!”
“그리고 바로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다음 장소요?”
“네. 땅을 봤으니까 이번에는 건물을 봐야죠.”
“넵!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5분도 안 보고 덜컥 계약을 해 버리니 업자의 입이 찢어질 듯 그어졌다.
그에 반해 부모님은 걱정 가득이었다.
“연욱아. 진짜 여기 살 거야? 수십억이 넘는데?”
“괜찮아요. 제가 투자 감각이 있잖아요. 아무리 좀 비어 보여도 결국 여긴 압구정이잖아요? 좀만 기다리면 건물들 엄청 들어설 거예요. 거기다 수십억 정도는 충분히 낼 수 있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래. 난 우리 아들 말 믿는다. 연욱이가 언제 틀린 말 한 적 있어? 당신도 그만 걱정해. 어차피 연욱이랑 혜나가 번 돈이잖아? 자기들이 알아서 쓰게 놔둬야지.”
부모님은 엄청 걱정을 하셨지만, 혜나 누나는 딱히 그런 눈치가 아니었다.
부모님보다 더 호들갑을 떨 줄 알았는데 말이다.
“여기 금성 빌딩은 현재 매매가가 150억 정도 됩니다.”
종로에 자리 잡고 있는 금성 빌딩.
매매가는 150억으로 7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이었다.
“하지만 고객님. 제가 확신할 수 있습니다. 2년 뒤에는 2배로 뛸 겁니다.”
2년 뒤에 2배?
그냥 해 보는 말일까, 아니면 정말 확실한 데이터가 있는 것일까.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 네. 저는 김일한 팀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내게 명함을 건네 주었다.
김일한이라.
이름을 기억해둬야겠다.
왜냐하면 이 사람 말대로 이 빌딩은 2배가 넘는 가격으로 뛰기 때문이다.
내가 이 빌딩을 기억하는 건 전생에서 친했던 친구 부모님이 여기 빌딩 사무실에서 사업을 하셨던 까닭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주변 빌딩값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고, 월세도 함께 올라 힘들다는 탄식 아닌 탄식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아마 여기 빌딩을 산 사람도 연예인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 어때요?”
150억이라는 말에 안색이 하얗게 질려 버리신 부모님이었다.
“여, 연욱아. 여기도 사려고?”
“네. 원래 부동산만큼 확실한 재테크가 없죠.”
“그래?”
“네. 부동산은 솔직히 실패하기가 힘들거든요. 놔두면 언젠가는 반드시 오르는 곳이라서요.”
그러자 업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땅만큼 확실한 투자가 없죠. 이건 불변의 진리입니다. 주식도 좋긴 하지만, 결국 땅이 최고입니다.”
“역시 월드 스타답게 보는 눈이 뛰어나시네요.”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되실 겁니다.”
아마 업자들은 오늘 계약 2건으로 받게 될 수수료 때문에 함박 웃음을 짓는 것일 터. 하지만 기뻐하긴 이르다.
“여기도 계약 진행해 주세요. 이제 다음 장소로 이동하죠.”
“여, 여기 말고도 또 계약을 하시는 겁니까?”
“네.”
“헉. 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그들은 전화를 돌려 여기 계약을 진행시킬 직원을 부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탔고, 150억 건물 이외에도 또 다른 부지를 보러 간다는 말에 부모님은 완전히 혼이 나간 듯보였다.
지금이야 저러시겠지만, 1년 후에 오늘 우리가 산 것들이 어떤 황금알로 변하는지 보신다면 웃는 얼굴로 바뀌게 될 것이다.
* * *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 딱히 바쁜 일은 없었다.
부동산 쇼핑 이후, 집에 들어와 쉬는 게 전부.
조금 쉬고 싶다는 내 말에 강 대표가 일부러 스케쥴을 빼준 덕분도 있다.
그동안 벌어 놓은 것이 많으니, 몇 달은 푹 쉬어도 괜찮다는 말도 함께 곁들이면서 말이다. 물론, 내가 정말 몇 달 푹 쉰다고 선언하면 제일 곤란해질 사람은 강 대표다.
그리고 딱히 오래 쉴 생각도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날 가만히 쉬도록 놔두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이렇게 보니 감회가 새롭네?”
내 DM을 받자마자 바로 비행기 티켓을 끊고 날아온 랜디는 피곤한 기색이 하나도 없었다.
“바로 오라는 말은 아니었는데, 행동력이 대단하시네요. 랜디.”
“하하. 우리 슈퍼스타께서 오라는데 얼른 와야지. 그래서, 오늘부터 바로 작업에 들어가는 건가?”
랜디는 벌써부터 자리를 잡고 음반 작업을 할 기세였다.
“비행기 타고 오느라 힘들었을 텐데, 좀 쉬는 게 낫지 않겠어요?”
“전혀. 어차피 퍼스트 클래스 타고 왔고, 시차야 알아서 적응하면 돼. 음악하는 사람들은 낮과 밤이 항상 바뀌어 있다는 거 잘 알잖아. 그리고 내가 원래 잠이 별로 없어.”
나는 랜디와 대화를 나누다 주변을 슬쩍 살펴보았다.
회사 사람들이 전부 사무실 안과 밖으로 모여 있는 게 보였다.
특히 강 대표는 아까부터 부담스러울 정도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아. 저번에 얼핏 들은 적이 있다.
강 대표가 랜디의 광팬이라고 했었나?
“아! 인사해. 여긴 내 PD들이야. 원래 연주자들도 같이 데려오려고 했는데, 그건 연욱 네가 싫어할 거 같아서.”
랜디가 데려온 PD들은 전부 그와 오랫동안 작업 활동을 해 온 사람들일 것이다.
“제임스라고 합니다. 혹시 작업실을 보여 주실 수 있을까요?”
다른 PD들과는 다르게 제임스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말투도 그렇고, 나를 바라보는 표정도 그러했다.
거기다 근육으로 키워진 큰 몸집은 위압감을 분출하기 충분했다.
“그러실까요? 제가 주로 이용하는 작업실은 여기에 없어서요.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아~ 물론이지.”
“그럼 그쪽으로 가시죠.”
나는 랜디와 PD들을 데리고 차에 올랐다.
차량을 하나로 갈 수가 없어서 2대를 나누어 탔는데, 나는 옆자리에 앉은 랜디에게 말했다.
“제임스는 혹시 개인 트레이너인가요?”
“응? 하하! 다들 그렇게 오해를 하곤 하지. 근데 전혀 아니야. 운동을 좋아하는 친구이긴 하지. 그리고 지금 있는 PD들 중에서 나랑 일한지 가장 오래됐어. 내가 데뷔했을 때부터 함께 했으니까.”
그러면서 랜디가 귓속말 하듯 작게 속삭였다.
“이건 TMI지만, 제임스는 너랑 내가 같이 작업하는 걸 탐탁지 않게 여겨.”
“왜요?”
“그건 나도 몰라. 안 물어봤어. 그리고 중요한 건 제임스의 의견이 아니라 내 의견이잖아.”
내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아니면 동양인이라서?
어딜 가든 꼭 나를 견제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작업실이 어디야? 보통 소속사에 두지 않나?”
“원래는 그게 맞는데, 거기보다 더 좋은 곳이 있어서요.”
“오~ 그래? 혹시 본인이 직접 건물을 사서 개조한 곳인가?”
“음. 비슷해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개조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한 곳이지.
이윽고 우린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갔다.
“응? 오늘은 안 온다더니. 웬일······.”
자다 일어났는지 삼촌은 붕 뜬 머리에 배를 벅벅 긁으며 나오다 우리와 눈을 마주쳤다.
“어?”
그리고 나와 랜디를 번갈아 쳐다보며 입이 벌려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서, 설마 랜디?”
“네. 삼촌. 그렇게 보고 싶어하셨잖아요. 그래서 모셔왔어요.”
“야! 지, 진작에 연락부터 하던가! 이 꼬라지로 어떻게 만나라는 거야.”
삼촌의 행색이 어떻든 랜디는 별로 상관하지 않았다.
음악 작업을 하다 보면 저렇게 변하는 경우가 많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반가워요. 랜디입니다.”
“여, 영광입니다.”
삼촌은 세상을 다 가진 얼굴로 랜디와 악수를 했다.
저렇게 해맑은 미소를 짓는 삼촌 얼굴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