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81화
세계적인 팝스타가 된다.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목표이지만, 이 꿈을 이루는 건 소수에 불과하다.
랜디가 말했던 것처럼, 나에게도 장기적인 목표가 필요했다.
세계적인 팝스타가 되어 사람들을 열광시키고, 내 음악이 세계 곳곳에 울려 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 꿈은 혼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팝스타?”
“네.”
“이미 넌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이 되지 않았니?”
“유명한 사람이 되었어도 세계적인 팝스타가 되진 않았죠. 마이클 잭슨처럼 말이에요.”
“뭐? 마이클 잭슨? 하하하!”
삼촌은 박수까지 치며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마이클 잭슨이 어디 동네 꼬마 이름인 줄 아냐? 아직도 마이클 잭슨을 뛰어넘는 사람이 없어.”
“앞으로도 그럴까요?”
“당연하지! 마이클 잭슨은 전설이잖아. 그뿐이냐? 죽는 순간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 설사 네가 마이클 잭슨보다 더 위대한 업적을 쌓는다고 해도 모두에게 최고의 팝스타로 남은 마이클 잭슨을 뛰어넘을 순 없을 거다.”
그런 말이 있다.
세상 가장 무서운 여인이 바로 추억 속의 여인이라고 말이다.
만약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면 머리채라도 잡고 싸워 보기라도 할 텐데, 추억 속에만 존재하는 여인은 털끝 하나 건드릴 수가 없다.
마이클 잭슨이 바로 추억 속의 여인이라 할 수 있었다.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추억 속 전설.
아마 그것을 완전히 뛰어 넘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나도 안다. 그래서 더욱 도전하고 싶었다.
“영국 다녀와서 공연도 성대하게 잘 끝낸 놈이 갑자기 세계적인 팝스타 타령이야? 너 한번도 그런 적 없었잖아. 그냥 흘러가면 흘러가는 대로 살아온 놈이. 네가 성공에 집착하는 걸 본적이 없는데?”
삼촌 말이 맞다.
누나에게 성공적인 커리어와 행복을 주겠다는 목표로 여기까지 달려왔을 뿐, 정말로 무언가가 되고 싶어 노력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평소에도 눈치가 빠른 삼촌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누구야?”
“뭐가요?”
“누가 네 마음에 불을 질렀냐고. 아무리 봐도 영국에서 누구한테 한 마디 들은 거 같은데?”
“그런 거 아니에요.”
“에이. 아닌 게 아닌 거 같은데? 얼른 말해 봐.”
결국 나는 조금 뜸을 들이다 그날 패션쇼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다.
“누, 누구라고? 랜디? 내가 알고 있는 그 랜디?”
“네. 영국 팝스타 랜디 맞아요.”
“랜디가 너랑 콜라보를 하자고 했다고?!”
“네. 아직 확실히 정해진 건 없지만,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했어요.”
그러자 삼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깜짝이야. 또 왜요?”
“제정신이냐? 랜디가 너랑 콜라보를 하겠다잖아. 그럼 넙죽 받아들였어야지! 당장 전화해서 스케쥴 잡아!”
삼촌은 얼른 스케쥴을 잡으라고 성화였지만, 나는 딱히 그럴 생각이 없었다.
“됐어요.”
“뭐?!”
“그쪽이 정말 하고 싶으면 연락을 주겠죠.”
“아니. 지금 랜디가 먼저 연락하기를 기다리는 거야? 그쪽에서는 네가 먼저 연락을 달라고 했다면서.”
“원래 급한 사람이 먼저 연락하는 게 아니겠어요?”
“허······ 대체 이놈은 어떻게 돼 먹은 놈인지.”
랜디와 같이 콜라보를 하면 좋겠지만, 만약 연이 닿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괜찮았다. 어차피 JJ는 누나와 내 그룹이 아니던가.
“하-. 랜디인데. 아무리 그래도 랜디인데. 이걸 그냥 뻥 차 버린다고?”
랜디라는 이름 값이 너무나도 아까웠나보다.
자기 일도 아닌데 나한테 애걸복걸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연욱아. 제발 한번만 연락해 보면 안 돼? 아니. 이 기회를 그냥 놓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응?”
“됐어요. 스케쥴 맞추는 것도 지겹고, 또 외국에 나가야 되잖아요. 여러모로 귀찮은 게 많아서 싫어요. 설사 스케쥴을 잘 맞춰서 간다고 해도 랜디는 많이 바쁜 사람이잖아요. 작업도 제대로 못할 걸요?”
“으-. 그거야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안 봐도 비디오인 걸 굳이 가서 고생하라고요? 사양하겠습니다.”
나의 단호한 입장에 삼촌은 계속해서 입맛만 다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핸드폰을 보면서 잠깐 SNS 계정으로 로그인을 해보았다.
워낙 SNS를 하지 않아 정말 가끔 들어가 보는데, 이 계정은 사람들에게 공개된 계정이 아니라서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가끔 DM이 온다.
그래서 생각날 때 잠깐 들어가 DM만 확인하고 나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 한 사람에게서 DM이 와 있는 걸 확인했다.
-연욱! 한국에는 잘 도착했어? 갑자기 DM을 남겨서 놀랐지? 내가 몰래 혜나한테 네가 쓴다는 SNS 계정을 저번에 받아놨어. 혹시 일정이 어떻게 돼? 난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으로 갈 수 있는데. 우리 같이 앨범 작업하자는 거 잊지 않았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바로 연락해줘. 스케쥴을 전부 취소해서라도 한국으로 날아갈 테니.
“······.”
난 그가 남긴 DM을 보고 삼촌을 슬쩍 쳐다보았다.
“왜?”
아직도 혼자 씩씩 거리고 있는 삼촌에게 조심스레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응? 잠깐. 이거 설마 랜디야? 진짜 랜디야?”
난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이, 이게 무슨······.”
삼촌은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모양이다.
나와 랜디가 보낸 DM을 번갈아 쳐다보며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DM까지 보냈으면 답장을 해줘야겠죠?”
“뭐? 이 자식이 설마 이것도 씹을 생각이었어?! 당장 보내야지!”
“원래 밀당이라는 게 필요하다잖아요. 좀 더 기다려 볼까요?”
삼촌은 급기야 양손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야! 당장 핸드폰 내놔!”
* * *
“흐으음-.”
랜디의 깊은 한숨에 그의 작업실에 있는 연주자들과 프로듀서들이 힐끔 눈치를 봤다. 그중에서 그와 가장 오랫동안 음반 작업을 한 제임스가 대표로 다가가 말했다.
“랜디.”
“응?”
“혹시 요즘 연애해?”
“뭐?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우리 와이프가 들었으면 오해했겠네.”
“아니. 하루 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한숨을 쉬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야. 꼭 좋아하는 여자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달까?”
“하하. 그래? 내가 그렇게 꼴 사납게 보였나?”
랜디는 나지막히 웃으며 핸드폰을 상위에 올려 두었다.
“에혀. 아무래도 오늘도 연락이 없으려나 보네.”
“뭐? 진짜였어? 누군데? 어떤 어메이징한 여자이길래 랜디 네가 연락을 다 기다리는 거야?”
랜디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팝스타이다.
영국은 물론 세계 전역에 그의 팬들이 있다는 것이다.
거기다 나이에 맞지 않은 젊고 수려한 외모는 그 어떤 여성도 거부하기 힘든 것이었다.
“뭐, 사실 여자가 아니라 남자야.”
“뭐라고?! 혹시 랜디 너······.”
“아아. 이상한 생각은 그만해. 대체 세상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 건지, 꼭 그렇게 오해부터 하더라.”
“연예계에서 이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났어야지. 양성애자가 더 이상 이상한 일도 아니잖아.”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상상 하지 마, 제임스.”
어느덧 그 둘의 대화를 조용히 엿듣고 있던 작업실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궁금증은 랜디가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상대의 정체였다.
“그럼 대체 누구 연락을 기다리는 건데?”
“음. 그게 말이지. 사실은······.”
랜디가 뭐라 말을 꺼내려고 할 때 핸드폰 알람이 울렸다.
그러자 그는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알림을 확인했다.
“왔어!”
“응? 왔다고?”
“그래. 내가 기다리는 연락이 왔어.”
제임스는 옆에서 랜디의 핸드폰 화면을 살펴보았다.
프로필 사진도 없는 계정이에서 온 DM이었는데, 그 계정의 이름이 어딘가 낯이 익었다.
“연욱?”
“그래. 장연욱. 알지? 내가 저번에 말하지 않았나. 한국에 엄청난 가수 하나가 있다고 말이야.”
“아~ 맞아. 기억나. 이번 패션쇼에서 이름 좀 날리지 않았어? 거기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주최하는 공연도 참가했다면서?”
“응. 그때 만나서 연락처를 공유했었지. 내가 이 친구랑 꼭 콜라보를 해보고 싶어서 말이야. 그런데 한국으로 넘어가서 통 연락이 없기에 얼마나 애가 탔는지 알아?”
제임스의 눈가가 잘게 흔들렸다.
“콜라보? 네가?”
제임스는 랜디의 성향을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는 절대 누구보고 같이 콜라보를 하자며 제안한 적이 없었다.
항상 제안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나 받은 제안들도 항상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런 그가 먼저 콜라보 제안을 했다라.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응. 너도 이 가수 노래 한번 들어 봐.”
“나도 뭐 몇 개 듣긴 했었지. 곡은 잘 뽑아내더라고. 그런데 진심이야? 정말 이 동양인 가수랑 콜라보를 하겠다고?”
“안 될 게 어디 있어.”
“넌 누구랑 콜라보를 할 사람이 아니잖아. 이제까지 수백 번도 넘게 제안이 들어왔는데, 항상 거부한 건 너였어.”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야?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왜 콜라보를 해야 돼?”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단지 지금까지 랜디는 솔로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해 콜라보를 거부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우리 혹시 스케쥴 있나?”
“아. 몇 개 있어.”
“그럼 다 취소해. 연욱이 보낸 DM을 보니까 가급적이면 빨리 오라잖아.”
“잠깐만. 스케쥴을 전부 다 취소하라고? 그 안에 광고도 있는 거 알지? 그거 취소하면 위약금을 꽤 많이 물어줘야 돼.”
“괜찮아. 그 정도 위약금 물어 준다고 해서 티도 안 나.”
사실이었다.
일반 가수도 아니고 랜디이지 않은가.
앨범을 내지 않은지 몇 년이 넘었어도 매년 들어오는 음원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팝스타란 그런 것이다.
앨범을 내지 않아도, 그냥 앉아서 숨만 쉬어도 수백 억을 한번에 벌어 들인다.
광고 위약금을 물어낸다고 해서 랜디에게는 얼마 되지 않는 액수였다.
“하지만 소속사에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텐데······.”
제임스는 끝말을 흐렸다.
한번 뭔가에 꽂히면 랜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기 때문이다.
즉, 여기서 말려봤자 절대 들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만큼은 꼭 해야 할 거 같았다.
“랜디. 네가 한국으로 가는 건 막지 않을게. 그런데 정말 확신할 수 있는 거야? 이 동양인 친구가 너와 급이 맞는다고 생각해?”
그러자 랜디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제임스. 혹시 인종 차별해?”
“아니. 절대 그런 건 아니야.”
“그럼 답은 하나네. 너 장연욱이 만든 음악을 못 들어봤구나.”
“뭐······ 찾아서 듣진 않았어.”
“그럼 오늘이라도 꼭 다 찾아서 들어 봐. 내가 왜 한국으로 얼른 날아가겠다고 하는지 단번에 이해를 하게 될 테니까.”
대체 무엇이 천하의 랜디를 사로잡았다는 말인가.
그동안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어 5년 가까이 앨범을 내지 않아 사실상 비공식 은퇴를 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한번 음악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장연욱이란 남자의 음악에 열광하는 중이었다.
제임스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비행기 표부터 알아볼게.”
“고마워, 제임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을지도 모른다.
영국 최고의 팝가수라 불리는 랜디가 그 동양인 덕분에 복귀를 하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