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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79화 (179/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79화

쇼팽 콩쿠르 우승자이자 지금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는 이그니치는 평소보다 들뜬 마음으로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오늘은 대망의 연주회가 있는 날이다.

무려 영국 여왕이 주최하는 연주회인 만큼,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준은 굉장히 높았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제니 웨이든.

세계 4대 피아니스트 중 하나인 쥴리아 레인.

저번 세계 소프라노 대회에서 엄청난 성적으로 우승한 마리아 레지나.

그리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건 장연욱의 오케스트라 협주곡이다.

1막과 2막으로 나뉘어 총 3시간 동안 여왕이 준비한 천상의 음악이 버킹엄 궁전에서 크게 울려 퍼질 예정이다.

제니 웨이든과 마리아 레지나까지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주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그리 길지가 않아서 연습도 금방 끝낼 수 있었다.

‘역시 문제라면······.’

가히 악마의 재능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는 어린 동양인 연주자, 장연욱.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젊은이지 않던가.

한 달 동안 연습을 같이 하면서 이그니치는 매번 보여 주는 장연욱의 놀라운 재능에 내심 감탄을 터트렸다.

연습을 같이 하기 전에는 젊은 혈기를 앞세워 교만하고 이기적인 놈인 줄로만 알았다. 감히 콩쿠르 때 쇼팽과 그의 콩쿠르를 모욕하는 짓을 벌이지 않았던가.

물론, 대중은 그를 사랑한다.

그가 보여 준 퍼포먼스에 여전히 열광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난 인정할 수 없다.”

장연욱은 본인 입으로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반항아가 아니라고.

작곡가가 의도했던 그대로 연주했을 뿐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이그니치 역시 인정할 수 없었다.

장연욱의 재능은 인정하지만, 그가 가진 음악에 대한 위험한 해석을 동의하진 못한다. 그렇기에 오늘 공연이 조금 걱정이 됐다.

“연습 때는 지시를 잘 따라오긴 했다만······.”

막상 공연에 들어가면 어떻게 돌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갑자기 본인 마음대로 박자를 바꾸고 독주를 이어 간다면 그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만일 그런 짓을 벌인다면 그땐 지휘봉을 내려놓겠다.”

단호하게 결심을 한 뒤 이그니치는 엘리자베스 홀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공연이 시작되기 아직 한참 남았는데도 홀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오~ 마에스트로. 오늘 공연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멀리서 실루엣만 봐도 다 알 만한 스타들이 총 집합해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나 많은 스타가 모였던 적이 있던가.

클래식은 진부하다면서 쳐다도 보지 않았던 사람들이 말이다.

이그니치는 안면도 없는 스타들의 어색한 인사를 받고 있다 아는 사람과 마주할 수 있었다.

“마에스트로 레너드.”

“하하. 마에스트로 이그니치. 쇼팽 콩쿠르 때 이후로 처음 보는군요.”

저명한 지휘자 레너드도 오늘 공연에 청중으로 와 있었다.

“많이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와 주셨군요.”

“그럼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가 연주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가만있을 순 없죠.”

“아- 혹시 그 연주자가······.”

레너드는 대답 대신 미소를 보였다.

그러고는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오늘 할리우드 스타들까지 죄다 등판을 했군요. 누가 보면 시상식이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예. 저도 이런 적은 처음이라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뭐, 이번 라인업이 대단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장연욱 연주자가 여러모로 큰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 젊은이가 음악뿐만이 아니라 패션에도 그런 재능을 보일 줄이야. 신이 공평하다는 말은 그 젊은이를 보게 되면 쏙 들어가게 된다니까요? 하하.”

레너드는 이미 소문난 장연욱의 골수팬이었다.

하지만 골수팬이라고 해서 과장되게 장연욱을 포장하는 법은 없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근데 그게 꼭 과장되게 부풀려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참 아이러니했다.

그만큼 장연욱이 보여 주는 행보는 현실 같지가 않은 부분이 많았다.

“저번에는 또 런던 공원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게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일반인이 찍은 영상임에도 불구하고 목소리가 아주 감미롭더군요.”

“그랬습니까.”

“다음에 시간 되면 마에스트로도 한번 찾아 보세요.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예.”

심드렁하게 답하기는 했으나, 이그니치도 이미 그 영상을 봤다.

아니. 런던에서 그 영상을 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힘들 것이다. 그만큼 엄청난 조회수와 화제성을 몰고 온 영상이었으니까.

그 영상으로 인해 장연욱과 장혜나의 1집 앨범이 영국 차트를 올킬하는 웃지 못할 상황까지 벌어졌다.

문득 이그니치는 궁금한 것이 생겼다.

“그런데 마에스트로.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얼마든지요.”

“장연욱 연주자와 연습했을 때 말입니다. 그때 어땠습니까? 그가 마에스트로의 말을 잘 듣던가요? 혹시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면서 마에스트로에게 자신의 의견을 강요하진 않았습니까?”

꽤 구체적인 물음이었다.

레너드는 너털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요. 내가 아무리 장연욱 연주자를 좋아한다고는 해도 음악에 있어서는 자존심이 있습니다. 특히 지휘자의 권한을 피아니스트가 침범하는 건 옳지 못 한 일이죠.”

아무리 골수팬이라도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사람이지 않은가.

“장연욱, 그 친구는 제 지휘를 아주 잘 따라 와줬습니다. 마치 몇 년 동안 합을 맞춰본 것처럼 말이죠. 그건 마에스트로도 느끼셨을 텐데요?”

“예. 적응력이 굉장히 빠르더군요. 특히 청음 실력이 굉장했습니다. 그렇게 미세한 음까지 잡아내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하하. 저도 그게 무슨 느낌인지 잘 압니다. 마치 나와는 다른 종족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가끔 장연욱은 외계인이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까지 하곤 합니다. 아무튼, 그가 내 권한에 도전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조용히 자신의 의견을 건의할 뿐이었죠.”

무대에서 보여줬던 모습만 보자면 장연욱은 지휘자의 권한이고 뭐고 전부 다 무시한 채 본인의 실력만 믿고 밀어붙일 것 같았다.

하지만 레너드의 말을 들어보면 정반대였다.

아니. 레너드의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이미 이그니치도 한 달 동안의 연습으로 장연욱의 성향을 파악했으니 말이다.

“조용히 의견을 피력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깔끔하게 포기를 합니다. 문제는 내가 한번도 그의 의견을 거절한 적이 없다는 것이죠.”

“그는 쇼팽의 음악을 모욕했어요. 마에스트로는 그걸 그냥 놔뒀다는 겁니까?”

“하하. 아직도 그 소리입니까? 대체 누가 누구를 모욕했다는 거죠? 그날 현장에서 음악을 직접 듣지 않으셨습니까? 그건 모욕이 아니었어요.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새로운 발견이었죠.”

“음악의 진화라는 겁니까?”

“진화라는 말은 틀립니다. 그저 바로 잡았다고 하는 것이 옳겠죠.”

“마에스트로께서는 그동안 우리가 해석한 쇼팽의 연주가 전부 잘못되었다는 겁니까? 장연욱의 해석이 다 맞았다는 건가요?”

“예.”

너무 단호한 대답에 이그니치는 경악과 당황이 동시에 물들었다.

레너드는 그런 이그니치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게 될 겁니다. 쇼팽은 단지 시작에 불과해요. 난 그가 또 어떤 음악을 보여 줄지 기대되는데, 마에스트로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군요. 아쉽네요.”

레너드는 그 말을 끝으로 이그니치에게서 몸을 돌렸다.

그런 그를 붙잡으며 이그니치가 물었다.

“장연욱이 공연에 올라가고 나서도 마에스트로의 뜻대로 연주를 끝까지 합니까?”

“음- 대체적으로?”

“묘한 대답이군요.”

“곧 겪어 볼 일이 아닙니까? 답을 미리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지요.”

괜히 얘기를 나누었나.

왠지 더 머리가 복잡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똥 씹은 표정으로 대기실에 들어갔다.

거기 있는 연주자들과 하나씩 인사를 나누다 장연욱 앞에서는 이상하게 눈빛부터가 매서워졌다.

“오늘 연주를 망친다면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거기다 격려가 아니라 협박에 가까운 말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갔다.

하지만 사람이 좋은 건지, 아니면 무감각한 건지 연욱은 웃으며 대답했다.

“예. 마에스트로를 실망시키는 일은 없을 겁니다. 기대해 주세요.”

그렇게 공연이 시작되었다.

아마 지금껏 있었던 엘리자베스의 공연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청중들일 것이다.

거기다 라인업도 굉장했기에 역대 최고의 공연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 순서까지 잘 마무리를 한다면 말이다.

“와아~!”

“브라보!”

제니 웨이든의 괴물 같은 바이올린 연주. 그에 이어지는 쥴리아의 기품 있는 피아노.

그리고 이 두 음악에 공백을 채워주는 듯, 천장을 뚫을 것만 같은 소프라노의 목소리까지.

삼 박자가 정확하게 균형을 이루면서 공연은 더할 나위 없이 좋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장연욱의 공연이었다.

잠깐의 쉬는 시간이 끝나고 나서 연욱이 무대로 나와 피아노 앞에 앉았다.

뜨거운 박수로 그를 환영했던 청중들은 곧 숨을 작게 쉴 정도로 고요해졌다.

빠라밤-!

웅장한 황제의 음악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한 군대와 그들을 지휘하는 황제를 연상하는 듯한 교향곡.

이그니치는 박력 넘치게 지휘봉을 휘두르며 속으로 외쳤다.

‘제발 실수하지 마라.’

첫 번째 걱정은 단원들의 실수였다.

연욱은 사실 걱정도 하지 않는다.

저 괴물은 연습 때도 그렇고 쇼팽 콩쿠르에서도 자잘한 미스 터치 한번 보여 주지 않았다. 당연히 오늘 공연에서도 미스 터치는 없을 거라 확신했다.

‘제발 엇나가지 말아라.’

그렇다고 해서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레너드의 마지막 말이 자꾸 맴돌아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웅장했던 1악장이 끝나고 잠시 선율이 주춤거리는 2악장과 피날레를 다시 웅장하게 장식하는 3악장까지도 연욱은 연습했던 그대로를 보여 주었다.

저게 사실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 만큼, 연습 때와 티끌 하나 변한 것 없이 정확한 연주가 나왔다.

“휴-.”

3악장까지 성대하게 마무리가 되자 청중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연욱은 엇나가지 않고 이그니치의 지휘에 정확히 따라와 주었다.

“앵콜!!”

“앙코르!!”

사람들의 환호에 연욱은 잠깐 무대를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원래 피아니스트가 으레 보여 주는 행동이다.

청중들의 환호성을 더욱 유도하기 위한 일종의 쇼맨쉽이라고 해야 할까.

“사실 앵콜 곡을 따로 준비하진 않았습니다.”

저건 사실이다.

협주곡을 연습하느라 별도로 앵콜 곡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니 솔로곡으로 대신해 드리겠습니다.”

이번에는 협주가 없는 장연욱만의 솔로곡이다.

청중들의 열렬한 환호성을 받으며 연욱은 건반에 손을 올려 두었다.

그리고 그것을 누르기 전 이그니치와 슬쩍 눈을 마주쳤다.

“······?”

그런 뒤 보이는 의미심장한 미소가 왠지 이그니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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