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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75화 (175/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75화

“네가 거기서 직접 봤어야 했어. 거기 상황이 얼마나 웃겼는지 아니?”

제니는 와인을 한잔 쭉 들이켜며 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처음에 연욱이를 엄청 무시하는 거야. 아예 사람 취급을 안 하는 느낌까지 받더라고.”

“헐. 그 정도였어요? 내가 거기 있었으면 오늘 연습 못 했겠네.”

“그래. 나도 화가 나서 확 뒤집어 버리려는 걸 연욱이가 말려서 못했어. 내가 벌떡 일어나려고 했는데, 연욱이가 박력 넘치는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 있지? 그래서 그냥 가만히 있었어.”

“······그건 연욱이 얘기도 들어봐야 알 거 같은데.”

제니는 오늘 있었던 썰을 푸느라 남의 얘기는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근데 우리 연욱이가 어떤 사람이야? 바로 세계 최고의 피아니스트 아니겠어? 처음에 감히 우리 연욱이를 따돌리면서 연주도 마음대로 하던 단원들이 점점 연습을 하다보니까 알게 된 거지. 연욱이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 그래서요?”

혜나 누나는 흥미진진하게 그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서는. 혜나도 봤잖아. 연습 끝나고 단원들이 연욱이한테 몰려들어서 사진 찍고 사인받아 가는 거. 솔직히 난 단원들 마음을 여는 데에 시간이 꽤 걸릴 거라 생각했거든. 아니면 쭉 딱딱하고 냉랭한 분위기로 연습하거나. 근데 하루 만에 그렇게 다들 바뀔 줄은 몰랐어.”

그건 나도 동감이었다.

처음 연습 분위기는 숨이 막힐 정도였는데, 중간부터 숨 막히는 긴장감이 사라지고 순수한 음악만 남게 됐다. 그리고 연습이 끝났을 땐 다들 언제 그랬냐는 듯 다가와 사진을 찍고 사인도 가져갔다. 그것 때문에 1시간 동안 붙잡혀 퇴근도 하지 못했다.

“아무튼, 대단한 하루였어. 나 너무 기분 좋다.”

제니는 벌써 와인 한 병을 다 마시고는 또 술을 꺼내왔다.

“제니. 그만 마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흐흐. 괜찮아. 오늘은 취해야지. 근데 연욱이는 아직 술 못 마신다고 해도 혜나는 마실 수 있잖아? 같이 마시자.”

“원래 술을 잘 못 마시기는 하지만, 오늘은 나도 한 잔 할까요?”

“응! 딱 한 잔만 해.”

제니는 얼른 잔을 새로 꺼내 누나에게 따라 주었다.

술이 들어가서 그런지 두 사람은 무슨 얘기를 해도 재밌는지 웃음만 흘러넘쳤다.

“아참! 근데 아까 찰스 왕세자는 왜 왔던 거야? 너랑 연욱이한테 무슨 용무가 있어 보이던데.”

“맞아요. 저랑 연욱이를 패션쇼에 데려가고 싶다나 뭐라나.”

“오~ 나 뭔지 알 거 같아.”

제니는 마시던 잔을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클래식 덕후라면, 찰스 왕세자는 패션 덕후야.”

“패션 덕후요?”

“응. 패션에 관련된 걸 엄청 좋아해. 그래서 주기적으로 패션쇼를 열고 있는데, 꽤 큰 규모의 행사라서 거기 참석하는 슈퍼스타들도 많아. 그리고 찰스는 자기 눈에 든 사람들을 뽑아서 패션쇼에 내보내기도 한다고 들었어.”

“음. 그러니까 좋은 거라는 거죠?”

“당연히 좋지. 다 늙은 할아버지라고 해도 영국의 왕세자잖아. 물론, 자기 이름을 걸고 패션쇼를 여는 걸 보고 사치를 부린다면서 욕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퀄리티가 상당히 높은 패션쇼라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

“그렇게 안 봤는데, 미적 감각이 엄청난 할아버지인가 보네.”

연습이 끝나고 나서 찰스 왕세자는 눈빛을 반짝이며 나와 혜나 누나에게 다가왔었다. 그러고는 초대장을 줬는데, 그 초대장이 바로 패션쇼 초대장이었다.

“좋은 기회일 거야. 한번 구경해봐. 거기 모이는 스타들도 많아서 인맥 쌓기도 엄청 좋을 거고.”

찰스 왕세자가 패션에 그 정도로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그리고 패션쇼라.

여러 행사장을 다녀보긴 했어도 찰스 왕세자가 열 정도의 규모가 큰 패션쇼를 참석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술이 들어갔으니까 하는 말인데······.”

찰스 왕세자로 한창 떠들던 제니가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혜나 너는 남자친구 없어?”

“나, 남자친구요?”

“응. 솔직히 너 정도 외모면 남자들이 엄청 다가올 거 같아서. 정말 없어?”

나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 귀를 쫑긋 세웠다.

“없어요. 이제까지 한 명도 없었어요.”

“헉. 정말? 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세상 남자들이 널 가만 놔두지 않았을 텐데.”

“음. 제가 그냥 사귀기 싫었어요.”

누나는 그리 대답하면서 잔을 와인으로 다시 채웠다.

난 누나의 팔을 붙잡았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니야?”

“야. 괜찮아. 이 정도로 먹고 취하는 사람이 어딨니? 너도 나중에 성인 돼서 먹어 봐. 하나도 안 취해.”

그렇다고 하기에는 이미 볼과 귀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누나는 술을 잘 마시는 타입이 아니다.

“그래! 혜나가 마시겠다는데 왜 그래. 놔둬. 오늘은 마셔도 되는 날이야.”

“맞아요. 언니가 내 마음을 제일 잘 안다니깐?”

제니는 누나와 잔을 부딪친 뒤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혹시 남자 소개 한번 받아볼래?”

그 말에 하마터면 누나는 마시던 와인을 뱉을 뻔했다.

“나, 남자 소개요?”

“응. 사실 내 지인들이 혜나한테 관심이 많아. 그래서 혹시 소개시켜 줄 수 없냐는 요청도 많았고. 그래서 한번 물어본 거야. 혜나도 남자친구 한 명쯤은 사귀어 볼 나이니까.”

하긴. 저 얼굴에 지금까지 연애 한번 하지 못했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긴 했다.

누나가 남자친구라니.

상상만 해도 왜 이렇게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거 같지?

누나의 대답이 기대됐다.

“싫어요.”

“응? 싫어?”

“네. 장거리 연애는 싫고, 전 외국인 만날 생각 없어요.”

“으음~ 백인 취향이 아니구나. 알겠어. 하긴. 같은 나라 사람 만나는 게 좋긴 하지. 문화적 차이도 없고. 그래도 혹시 마음 바뀌면 말해. 내가 언제든 소개시켜 줄 수 있으니까.”

나는 흘깃 제니를 노려보았다.

허튼짓은 그만하라는 무언의 경고였지만, 제니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왜? 너도 소개시켜 줘? 혹시······ 취향이 남자는 아니겠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호호. 미리 검증을 하는 거지. 혹시라도 네 취향이 다른 쪽일 수도 있으니까. 너도 지금까지 여자친구 한 번도 없었잖아.”

“공인이니까요. 연예계 활동하면서 애인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죠.”

“그럼 너도 여자 소개시켜 줄까?”

이번에는 혜나 누나가 당황하는 게 눈에 보였다.

하지만 이내 제니가 웃으며 내 어깨를 살짝 때렸다.

“농담이야. 내가 미쳤다고 너한테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어? 안 그래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사람이 많아서 미치겠는데. 넌 연애할 생각하지 마. 할 거면 차라리 나랑 해.”

“뭔가 엄청난 구속이네요.”

“호호. 어쩌겠어. 잘생긴 네 탓이지.”

제니는 그 이후에도 누나와 같이 와인잔을 기울이며 밤새도록 술판을 벌였다.

물론, 제니와 누나 둘 다 술이 강한 편이 아니라서 그런지 와인 3병이 바닥났을 때쯤, 둘 다 모두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에휴. 대학 MT 보는 거 같네.”

항상 그렇듯 정신 멀쩡한 사람이 뒤처리를 해야 한다.

대학 신입생 시절 때 갔었던 MT가 문득 떠오르는 하루였다.

* * *

성대한 패션쇼.

화려함의 극치.

세계 각종 유명 브랜드가 한 자리에 모여서 여는 패션의 날이었다.

찰스 왕세자는 자국 브랜드라고 해서 무조건 좋아해 주는 게 아니라고 한다.

유독 패션에는 까다로운 사람이라, 어떤 신상이 나왔는지 전부 다 파악하고 그중 마음에 드는 걸 특별히 전시해 주는 등, 패션 업계에서는 매우 귀중한 손님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초대해 준 패션쇼에는 유명 인사들이 모여들었는데,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여기 초대장을 꼭 받아보고 싶어 한다.

“이쪽 자리에 앉으시면 됩니다. 곧 왕세자께서 오실 겁니다.”

나와 누나가 배정받은 자리는 찰스 왕세자가 앉는 테이블이었다.

우리 두 사람이 왕세자 옆쪽에 배정을 받는 것을 보고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그리고 여기 테이블에 우리 둘만 앉는 건 아니었다.

그때 우릴 멀리서부터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남성이 손을 내밀며 말했다.

“혹시 JJ의 장연욱?”

“아-.”

나는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턱까지 내려온 금발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으니까.

“제임스 랜디?”

“하하. 맞아. 알아봐 줘서 고마워.”

“아뇨.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요?”

제임스 랜디.

10대 때부터 활동을 하며 빌보드 1위를 밥 먹듯이 해낸 사람이다.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싱글 가수라고 불릴 만큼, 그의 인기는 대단했다.

물론, 지금은 40대에 가까워지면서 앨범을 내놓지 않아 사실상 은퇴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많다.

지금도 여전히 그의 앨범을 기다리는 팬이 많고, 나 역시 그 팬들 중 하나다.

그런데 그가 날 알아봐 주었다.

“앨범은 잘 들었어. 어떻게 그런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지금도 들을 때마다 신기해. 그리고 옆은 혜나 맞지?”

혜나 누나도 제임스 랜디 노래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터라 자기도 모르게 짧은 비명을 질렀다.

“어머. 죄, 죄송해요. 너무 놀라서.”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항상 좋은 목소리를 들려줘서 고마워.”

랜디는 나와 누나에게 악수를 건넨 뒤 물었다.

“근데 두 사람 앨범은 언제 나오는 거야? 2집 이후로 도통 나오질 않네. 엄청 기다리고 있는데.”

“그게 일정이 많이 겹치다 보니······.”

“하하. 너무 다른 일에만 매달리고 자기 그룹은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여러 영상을 통해 봤던 것처럼 랜디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굉장히 유머러스한 사람이라 내가 억지로 말을 붙일 필요도 없었다.

잘생긴 외모에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켜 버리는 저 말솜씨까지.

저건 꽤 부러운 능력이었다.

아직 패션쇼 시작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서인지 랜디는 우리와 계속 수다를 떨었다.

끊임없이 주제를 만들어내는 이야기보따리라고 해야 할까.

“연욱 너는 목표가 뭐야?”

“네?”

그러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질문을 던졌다.

“원래 사람마다 목표라는 게 있잖아. 네가 지금까지 보여 준 행보를 보면 엄청난 목표가 있을 거 같아서. 아니야?”

목표?

그 말에 잠깐 정신이 멍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내 목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누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단순한 목표가 있긴 했었지만······.

이제 그 목표는 성취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누나는 전생과 비교할 수 없을 큼 대단한 인기를 누리고 있던 까닭이다.

“뭐야? 설마 없는 거야? 말도 안 돼.”

“어······ 그러게요. 저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지 않아서요.”

“하하. 그게 더 대단한데? 어떻게 목표도 없이 여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야?”

앨범을 만들거나 누군가를 데뷔시킬 땐 반드시 성공을 시킨다는 목표가 있긴 했지만, 랜디는 지금 단기적인 목표가 아닌 장기적인 목표를 말하는 것이었다.

“목표를 갖는 건 매우 중요해. 그래야 뼈를 깎는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일을 이루려고 하니까. 그런데 목표가 하나도 없다라······. 조금 심각한데? 아니. 그건 아주 위험한 거야. 특히 예술가로서.”

랜디는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내게 경고했다.

“그러다 죽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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