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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71화 (171/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71화

“아. 사람들이 참 내 얼굴도 못 알아보고 말이야.”

찌푸린 안색으로 제니는 짜증을 부렸다.

“이분들도 제니를 다 알아봤을 거예요. 다만, 경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막은 거죠. 그런데 대체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겁니까?”

뜬금없이 공항에 나타난 제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연한 거 아니야?”

“네?”

“연욱이 네가 영국 여왕한테 초청받았다는 얘기는 벌써 사교계에 다 퍼졌어. 음악 좀 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한국에서는 언론을 통해 이제야 알려지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진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바로 달려왔지. 듣자 하니, 오케스트라랑 같이 연주한다면서?”

“예. 버킹엄 궁전에서만 연주하는 악단이 있다고 합니다.”

“응. 나도 예전에 그 사람들이랑 합주해 본적이 있어. 좀 깐깐한 사람들이야. 마침 내가 공연 때문에 여기 영국에 있었거든. 근데 네가 온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일부러 마중을 나왔다는 건가.

연락도 없이 무작정 공항부터 왔다는 발상이 참 웃기면서도 귀여웠다.

“와~ 근데 연욱이 너는 저번에 봤을 때보다 더 자란 거 같아.”

“갑자기 애 취급입니까?”

“호호. 성인 전에는 다 그렇지. 근데 농담이 아니라 정말이야. 어떻게 이 얼굴이 더 잘생겨질 수가 있지? 혹시 특별히 뭐 하는 거라도 있어?”

“없어요. 그 흔한 피부 관리도 귀찮아서 안 받아요.”

“으. 재수 없어. 난 하루도 빠짐 없이 받고 있는데. 안 그러면 얼굴에서 뭔가 자꾸 올라오거든.”

제니와 신변잡기를 하며 공항을 나온 뒤, 경호원들은 우리 둘을 리무진에 안내했다.

그녀는 길다란 리무진을 보고 감탄과 질투가 섞인 목소리를 냈다.

“오~ 이것 봐라.”

“왜요?”

“나 때는 이런 리무진이 아니었거든. 그냥 경호 차량? 그것만 왔었는데, 너는 무슨 대통령 모시듯 잔뜩 몰고 왔네.”

제니 말 대로 5대의 경호 차량과 리무진이 준비되어 있었다.

원래 이런 줄 알았는데, 사람마다 차별이 있는 것 같았다.

“이곳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안에 음료와 간단한 간식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나는 제니와 함께 리무진 안으로 들어갔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가 내 몸을 감싸듯 반겨주었다.

넓은 내부 안에는 경호원의 말대로 아이스 박스에 음료와 그 옆에 쿠키들이 있었다.

아마 내 나이를 고려해 술은 놓지 않은 것 같았다.

네온사인처럼 반짝이는 LED 조명은 고급스러운 천장과 바닥을 드러냈다.

사실 이렇게 고급진 리무진을 타는 건 처음이라서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저희는 앞 좌석에 항상 대기하고 있으니, 필요한 것이 있으면 여기 스위치를 누르시면 됩니다.”

경호원은 간단하게 설명해 준 뒤 앞 좌석으로 갔다.

제니는 이런 리무진이 익숙한 듯, 리모컨을 가져다가 버튼을 눌렀다.

쿵-! 쿵-!

강렬한 리듬의 음악이 리무진 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여왕님의 경호원들이라고 해서 딱딱하게 갈 필요 없잖아?”

제니라면 교양 있게 클래식 음악을 들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클럽 노래처럼 시끄러운 걸 좋아했다.

“아~ 샴페인이 없는 게 아쉽네.”

음료수 박스를 뒤적이다 제니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여왕을 만나러 가는데 술을 마실 순 없지 않나요?”

“만나러 가는 건 너잖아. 내가 아니라. 어? 여기 와인이 있네.”

놀랍게도 리무진 안에 내장 냉장고가 있었다.

그 안에 와인잔 2개와 와인이 들어 있었는데, 칸막이로 나뉜 앞 좌석 창문이 열렸다.

“미스 웨이든.”

와인을 꺼내던 제니의 손이 멈췄다.

“당신은 원래 우리의 경호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리무진에 태운 이유는 여왕께서 당신이 공항에 왔다는 보고를 들으시고 같이 초청하셨기 때문입니다.”

“아······.”

“가급적이면 술은 자제해 주십시오.”

제니는 조용히 와인을 냉장고에 다시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본인의 옷차림을 신경 쓰기 시작했다.

“연욱. 나 어때? 괜찮아? 오늘 너 온다고 해서 최대한 예쁘게 입고 오긴 했는데. 이런 옷으로 어떻게 여왕을 만나지?”

가슴이 푹 파인 상의에 하의는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확실히 공적인 자리에서 입고 나갈 옷은 아니었다.

거기다 상대가 여왕이라면······.

“이럴 줄 알았으면 드레스를 입고 오는 건데.”

“괜찮아요.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시겠죠.”

“너 모르는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얼마나 옷차림을 신경 쓰는지 알아? 매번 파티를 열 때마다 그녀가 정하는 드레스 코드 대로 입고 와야 돼. 만약 상대의 옷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구.”

그 말을 듣고 나니 나도 조금 옷차림이 신경이 쓰이긴 했다.

나름 턱시도까지 입으면서 준비를 한 건데, 여왕의 눈 밖에 나는 건 아니겠지?

* * *

엘리자베스 여왕이 산다는 버킹엄 궁전은 관광 명소로도 쓰인다.

하지만 관광 장소와 여왕이 활용하는 공간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어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

오직 나랏일을 하는 관료나 여왕에게 직접 초대받은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가 있는 곳이다.

“그 어린 동양인이 어지간히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알현실에 몇몇 인사들과 같이 모인 찰스 왕세자의 말이었다.

오늘 알현실에 올 필요는 없었지만, 웬일로 여왕이 동양인 음악가를 초청했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온 것이었다.

“찰스 너는 음악에 관심이 없지 않니?”

“예. 딱딱하고 진부한 클래식은 저와 맞지가 않아서요.”

그래서일까.

평소 정치 성향도 보수적이지가 않다.

그러다 보니 보수적인 여왕과는 자주 충돌을 일으키곤 한다.

사실 찰스도 억울한 부분이 있다.

원래대로라면 진작에 왕이 되었어야 했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천수를 누리고 있어 70이 넘도록 왕세자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왕이 이제는 왕위를 물려줘도 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그러한 여러 불만이 정치 성향으로 나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사람이다. 내가 직접 가서 들어보니 굉장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있더구나.”

“저도 얘기는 들었습니다. 동양인이 우승을 한 건 이번이 두 번째라면서요? 콩쿠르에서 이제껏 본 적 없는 퍼포먼스를 선보여서 인기를 얻었다고 하더군요.”

“단순히 퍼포먼스가 좋아서 우승을 한 것은 아니지.”

“뭐, 절반 이상은 그 덕분이죠. 심사위원들도 여론에 떠밀려 우승을 시켜 준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왕세자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으나, 단 한 마디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여왕의 말을 받아쳤다.

팽팽한 신경전이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걸 모를 리 없는 관료들은 괜히 눈치가 보였고, 초청받은 몇몇 음악가들도 못 본 척을 했다.

그러자 심술이 난 찰스가 음악가 중 유일하게 아는 사람을 콕 집어 물어봤다.

“마에스트로 이그니치께서는 그 젊은 친구를 잘 알겠군요. 그때 심사를 하시지 않았습니까?”

“예. 맞습니다.”

여왕이 주최하는 클래식 공연에서 지휘를 맡게 된 이그니치는 두 사람이 어떤 신경전을 나누든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그날의 경험담을 조금 공유해 주시죠. 그 동양인 친구가 그렇게 실력이 좋습니까? 들어보니 마에스트로는 그 친구의 우승을 반대했다면서요?”

“예. 그랬습니다.”

“그건 그 친구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 아닙니까?”

“아닙니다.”

단호한 이그니치의 대답에 오히려 찰스가 당황했다.

“아니라고요? 그럼 그때 왜 반대를 하신 거죠?”

“제 개인적인 심사 기준에 어울리지 않았을 뿐. 결코 실력이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100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실력을 가진 젊은이인 것은 틀림없습니다. 결코 쇼팽 콩쿠르는 여론에 따라 우승자를 뽑지 않습니다.”

찰스가 무슨 의도로 저런 질문을 던졌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그러나 쇼팽 콩쿠르는 이그니치의 아킬레스건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찰스는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다.

그는 뭐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더는 여왕과 신경전을 펼치지 않았다.

그저 어떤 놈인지 한번 보기나 하자는 생각인 듯했다.

여왕은 유별나게 외형에 집착하는 사람이지 않은가.

그 동양인이 생각보다 외모가 별로라면 금방 흥미가 식어 버릴 게 뻔했다.

“여왕 폐하. 장연욱 피아니스트가 폐하를 알현하기 위해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오늘의 주인공이 나타났다.

여왕의 허락에 따라 드넓은 알현실 안으로 들어왔다.

알현실이라고 해서 용무를 보는 방처럼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여왕이 앉는 왕좌와 더불어 그 앞에 무도회를 열어도 될 정도로 넓은 홀이 펼쳐져 있다. 그 가운데에 있는 레드 카펫을 장연욱이 천천히 밟고 있었다.

“음.”

찰스는 눈썹을 치켜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우아한 자태로 걸어 들어오는 장연욱은 귀족스러움이 절로 묻어 나오는 걸음걸이와 멋스러움이 한껏 풍겨 나오는 아우라가 있었다.

여왕은 아주 만족스러운지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아니. 알현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잠시나마 멍하니 연욱을 바라보기만 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질 정도로 겉모습에서 나오는 무언가가 연욱에게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왕은 연욱을 바라보다 옆에 있는 제니를 슬쩍 쳐다보았다.

공항에서 갑작스레 초청을 받아 오게 되었으니, 복장이 굉장히 자유로웠다.

피치 못할 상황이라는 것도 알고 있고, 워낙 제니도 미인이기 때문에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였다.

“두 분 모두 환영합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한국에서도 스케쥴이 많아 바쁘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시간을 내줘서 고마워요. 앞으로 있을 공연에 큰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유명세로 따지자면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장연욱과 바이올린 천재이자 1인자라 불리는 제니도 이곳에 있다.

여왕은 이 기회를 놓칠 이유가 없었다.

“미스 웨이든에게도 부탁을 하고 싶네요. 우리 궁전에서 개최하는 공연에 참여해 주시겠어요?”

“연욱이와 합주를 할 수 있다면요. 기꺼이 참여하겠습니다.”

“오~ 혹시 두 분 사이가 어떻게 되죠? 미스 웨이든이 직접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다고 들었어요.”

내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제니가 웃으며 말했다.

“호호. 생각하시는 그 사이가 맞을 거예요.”

“그렇군요. 두 천재 음악가들의 만남이라. 앞으로의 소식을 기대할게요.”

“네. 꼭 좋은 소식 알려드릴게요.”

나는 팔꿈치로 살짝 제니를 쳤다.

그러자 그녀는 새침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이틀 후에는 궁전에서 파티가 열릴 예정이에요. 그때도 참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아,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가도 좋아요. 오랜 비행 때문에 많이 피곤할 텐데. 어서 호텔에 가서 짐도 풀고 정리를 하세요. 연습 일정이 엄청 빡빡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연습 일정이 정확히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저기 서 있는 이그니치의 굳은 눈빛을 보니 날 얼마나 굴려 먹을지 대충 상상이 갔다. 그런데 여왕 옆에 서 있는 저 할아버지는 아까부터 나를 왜 저렇게 노려보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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