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9화
[장연욱의 군면제를 축하드립니다.]
“뭐예요? 이게.”
“흐흐. 뭐긴 뭐야. 축하 현수막이지.”
강 대표는 회사 사무실에 현수막을 걸어 두었다.
모든 회사 직원들이 볼 수 있게 말이다.
“캬-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 네가 설마 그 대단한 콩쿠르에서 우승할 거라고? 진짜 장하다.”
강 대표는 내 어깨를 계속해서 두드리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이 해맑은 것을 보니, 광고가 엄청 들어오긴 한 모양이다.
“국내 언론 뿐만이 아니라 해외 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고 있어. 그뿐이냐?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도 널 모델로 삼고 싶다고 난리야.”
“그중에서 좋아 보이는 걸로 고르셨어요?”
“응. 일단 고급 브랜드 쪽은 구찌가 좋아 보였어. 거기가 여성 백이나 지갑 같은 걸 중점으로 만드는 곳이긴 한데, 남성 쪽 의류도 활발하게 유통시키고 있거든. 그쪽에서 내 건 계약 조건도 괜찮고 계약금도 다른 곳보다 높아.”
구찌라.
이제까지 누나랑 내가 여러 브랜드 모델을 맡아 보긴 했으나,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의 모델을 맡는 건 처음이다.
“네가 양복 쫙 빼입고 무대에 서는 걸 보니까 광고주들도 뻑이 간 거지. sns에서도 난리라며? 하긴. 우리 연욱이가 뭘 입어도 핏이 죽여 주지.”
아무래도 나와 누나가 어리다 보니 명품 브랜드 쪽에서 기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콩쿠르를 보고 생각이 달라진 모양이다.
“다른 거는요?”
“그 외에도 브랜드 10곳을 일단 가려놨어. 리스트 보고 네가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그리고 언론에서 네 인터뷰 한 번 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그건 어떻게 할래? 너 원래 인터뷰 잘 안 하니까 몇 개만 남겨 둘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 대답했다.
“이번에는 인터뷰 스케쥴을 많이 잡아 주세요.”
“응? 그래도 괜찮아?”
“네. 누나랑 이번에 3집 앨범 내야 하잖아요. 그거 홍보 좀 하려고요.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어야 하는 거 아시죠? 해외 쪽에도 홍보를 해 놓으면 좋지 않겠어요?”
“그래. 그거 괜찮겠네. 좋은 생각이야.”
강 대표는 이것 저것 노트에 필기를 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스케쥴 정해지면 내가 보내 줄게.”
“네.”
“아참. 그리고 연욱아. 네가 콩쿠르에서 엄청 활약해 준 덕분에 우리 주가가 엄청 폭등했다.”
“두 배 넘게 올랐다면서요?”
“그래. 곧 있으면 세 배도 뚫을 거 같더라. 이왕 이렇게 된 거 주식 좀 팔아서 자금 마련할까 봐.”
“그렇게 하세요.”
나도 사실 우리 회사 주식에 돈을 투자했었다.
그게 2배 넘게 뛰었다고 생각하니, 휘파람이 나올 정도로 기분이 좋아졌다.
주식을 다 팔아 버려서 부동산이나 사 놓을까.
원래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목돈을 벌고 싶으면 주식을 사고 큰돈을 벌고 싶으면 땅을 사라고 말이다.
내가 알기로 몇 년 뒤면 아파트와 땅값이 엄청나게 오르게 된다.
그전에 사 놓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근데 너 어디 가냐?”
“앨범 준비해야죠. 그전에 인사드릴 사람들도 있고요.”
한국에 돌아와도 쉴 시간이 없었다.
* * *
“야 인마! 대체 어떻게 된 놈이 그걸 덜컥 우승해 버리냐!”
이창호 교수는 나를 와락 끌어안으며 덩실덩실 춤까지 췄다.
내 체격이 작았으면 아예 번쩍 들어 올렸을 것이다.
“이게 다 좋은 스승님을 둔 덕분 아니겠습니까.”
“흠흠. 그런 마음가짐을 항상 몸에 새겨 둬라. 그리고 인터뷰 하게 되면 이 스승의 이름을 가끔 언급해 주고.”
“스승님 존함이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요 뭐.”
“짜식. 나이 들면서 아주 아첨만 늘었어.”
이창호 교수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견해 죽겠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참. 지혜 걔도 요즘 잘나가더라. 난 갑자기 걔가 피아노 때려 친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내가 담당이었기에 망정이지, 다른 교수였으면 몽둥이 들고 너 쫓아갔을 거다.”
“교수님은 그래도 덤덤히 보내 주셨네요.”
“네가 다른 쪽에 재능이 있으니 피아노는 때려치라고 했다면서. 너 원래 다른 사람한테 그런 소리 잘 안 하잖아. 근데 네가 그럴 정도면 정말 그 얘한테서 뭔가를 봤다고 생각했던 거지.”
확실히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그 매력적인 목소리를 놔두고 지금까지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였다.
또한 연예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외모도 출중해, 단숨에 대한민국 스타가 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다.
나는 그냥 숨겨진 보석을 가져다 놓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이제 뭐 할 거냐? 네놈 성격에 콩쿠르를 또 할 생각은 아닐 테고.”
“네. 두 번 다시 안 하렵니다. 엄청 긴장되고 생각할 것도 많고 참······ 여러모로 힘든 경험이었습니다.”
“영상 보니까 너 혼자 아주 여유만만이던데.”
“저 드라마 연기했던 거 아시죠? 그거 다 겁 안 먹은 척한 겁니다. 사실 속으로는 엄청 떨렸어요.”
조금 엄살을 부리긴 했다만, 내가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해도 그런 큰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리고 애초에 콩쿠르 한 것도 군대 면제를 생각했다기보다는, 누구랑 약속을 한 게 있어서요. 그걸 지키려 한 거죠.”
“누군지 모르겠다만, 그 약속한 사람한테 평생 절하면서 살아라.”
“안 그래도 그럴 생각입니다.”
이창호 교수와 간단한 티타임을 끝낸 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벌써 가려고?”
“네, 약속이 있어서요.”
“에잉. 저녁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했더니.”
“제가 또 찾아뵐게요.”
내가 인사를 드리고 나가려는 걸 이창호 교수가 붙잡았다.
“잠깐만. 너 혹시 부탁 하나 들어줄 수 있냐?”
“스승님 말씀인데 제자가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근데 혹시 자금적인 도움이 필요하신 건 아니죠?”
“인마. 내가 이제까지 벌어 놓은 돈이······ 됐다. 금전적인 걸 바라는 게 아니고, 너 우리 대학에서 강의 한번 할 생각 없냐?”
“예?”
“우리 총장님이랑 교수들이 난리야. 학생들도 그렇고. 너 한번 섭외해서 특별 강연해 줄 수 없냐고.”
“고등학생한테 그 대단하신 분들이 배울 게 뭐가 있다고요.”
“야. 누구도 널 고등학생으로 안 봐. 쇼팽 콩쿠르도 우승한 놈인데, 천하에 누가 감히 널 무시하겠냐. 고개라도 똑바로 들 수 있으면 다행이지.”
대학 특별 강연이라.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한번 생각해 볼게요.”
“내 체면 생각해서 한번 해주라.”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스케쥴을 소속사랑 상의해야 해서요.”
“그래. 그럼 좋은 연락 기다린다.”
“네~ 가 볼게요.”
나는 이창호 교수의 사무실에서 나와 지하 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매니저형의 차에 올라탔다.
“형. 미안해요. 오래 걸렸죠.”
“아냐. 괜찮아. 너 기다렸다가 데려다주는 게 내가 할 일인데. 요즘 세상에 이거보다 꿀인 직업이 또 어디 있겠어. 청담동으로 갈 거지?”
“네.”
매니저 형이 데려다준 곳은 청담동에 있는 이재용 삼촌의 작업실이었다.
내가 초인종을 누르자 삼촌은 쌍수 들고 나를 환영해 주었다.
“우리 연욱이 왔어?”
“삼촌. 잘 지내셨어요?”
“크하하하-! 당연히 잘 지냈지. 네가 콩쿠르에서 아주 날아다니는 거 보면서 십 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더라. 얼른 들어와.”
여기 작업실에 오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예전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왔는데 말이다.
“여긴 바뀐 게 없네요.”
“네가 오다가 갑자기 안 오니까 엄청 썰렁하더라. 옛날에 나 혼자 썼을 땐 그런 거 못 느꼈는데. 그래서, 이제 앞으로 여기 출근하는 거냐?”
“그렇지 않아도 세 번째 앨범 때문에 종종 올 거 같아요.”
“그래. 언제든지 와. 여긴 네 작업실이다 생각하고.”
나도 슬슬 건물 하나를 세워서 내 전용 작업실을 하나 만들까 생각하다가도 삼촌이 이미 만들어 놓은 여기를 쓰다 보면 다른 곳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 정도 들었고, 삼촌이 항상 최신 장비들로 가득 채워 놓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아참. 너한테 줄 거 있다.”
“저한테요?”
“네가 우승한 기념으로 선물 하나 샀지. 그리고 엄청 뿌듯하더라. 네가 내 조카 같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런 게 국위선양 아니겠냐? 정부에서 아무리 돈을 쳐 발라도 대한민국 이름 알리는 게 엄청 힘든데, 넌 콩쿠르 한번으로 전 세계 사람들한테 한국을 알렸잖아.”
그 정도로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한 일은 아니지만, 확실히 나와 대한민국의 이름이 요즘 많이 퍼져나가긴 했다.
삼촌은 나를 지하 주차장으로 데리고 갔다.
선물이 차에 있는 건가 싶었는데······.
“이 차 어떠냐? 이번에 새로 나온 포르쉐인데.”
“오~ 진짜 예쁘다. 핑크색 포르쉐는 처음 보는데요?”
“완전히 핑크는 아니고 라벤더지. 어때? 이 정도면 네 첫 차가 될 수 있을 거 같지 않냐?”
“그럼 완전 땡큐죠.”
“흐흐. 자. 받아라.”
삼촌은 갑자기 내 손에 차 키를 올려줬다.
“예?”
“이 차, 너 주려고 산 거야.”
“예에!?”
포르쉐, 그것도 신형 자동차라면 기본 2억은 넘어갈 텐데, 이걸 나 주려고 샀다고?
“내가 그동안 변변찮은 선물도 안 준 것 같아서 힘 좀 써 봤다.”
“아니. 진심이세요? 저 면허도 없는데?”
“내년에 따면 되잖아. 법 바뀌어서 만 18세부터 면허 딸 수 있다며.”
전생에서는 면허를 따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생은 첫 차가 무려 포르쉐라니.
“이건 내가 잘 관리해서 가지고 있을 테니까 면허나 따와. 그럼 바로 출고해 줄게. 일단 내부 구경부터 해 봐라.”
이 차가 뭔지 알고 있다
포르쉐 파나메라.
기본 2억이 넘어가는 고가의 차량이다.
“옵션도 아주 빵빵하게 넣어 놨어. 시트도 질감 죽이지? 이게 제일 대단한 건 사운드야. 차량 내부 사운드에도 돈 좀 썼다.”
삼촌은 핸드폰을 연결해 노래 하나를 틀었다.
베이스까지 쿵쿵거리며 울리는 것을 보니, 진짜 돈을 많이 쓴 게 느껴졌다.
“삼촌. 제가 이걸 받아도 될지 모르겠네요.”
“짜식이 좋으면서 튕기기는.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챙기면 돼. 어차피 너 당장 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얼른 면허나 따.”
“넵! 내년 되면 바로 딸게요.”
벌써부터 19살이 기다려졌다.
나는 완전히 차에 빠져서 세세하게 하나씩 확인해 보았다.
아. 내가 운전만 할 줄 알면 여기 주차장에서라도 한번 타 보는건데.
너무 아쉬웠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차 구경을 하고 있을 때였다.
“응? 무슨 일이지.”
강 대표에게서 온 전화.
아까 만나고 왔는데, 뭐 상의할 게 있는 건가?
“예, 대표님.”
- 연욱아! 너 지금 어디야?
“아. 삼촌 작업실이요. 왜요?”
- 삼촌? 아. 이 작곡가님 작업실이구나. 너 지금 사무실로 올 수 있냐? 아니지. 올 필요는 없겠구나.
횡설수설하는 걸 보니 뭔가 큰일이 생긴 듯보였다.
“대표님. 진정하시고 말씀을 하세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는데요?”
- 놀라지 마라. 방금 내가 어디서 전화를 받은 줄 아냐?
“어디요?”
- 영국 대사관.
“영국 대사관?”
- 그래. 영국에서 공문이 왔는데, 엘리자베스 여왕이 널 국빈으로 초대하고 싶단다.
“예?”
멀리서나마 콩쿠르에서 봤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의 초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