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7화
“누가 보면 오늘 대통령이라도 오는 줄 알겠어요.”
오늘이 쇼팽 콩쿠르 마지막 날이다.
수많은 인파가 그랜드홀에 모였고, 경계 병력이 평소보다 몇 배는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홀에 들어오려면 까다로운 소지품 검사도 받아야 했다.
심사위원이라고 다른 건 없었다.
“설마 모르고 하는 말입니까?”
“예?”
“오늘 영국의 여왕께서 결승전 무대를 관람하신다고 합니다.”
“여왕? 엘리자베스 여왕을 말하는 거예요?”
“예. 폴란드 대통령도 오늘 결승전 무대에 온다고 했고요. 프랑스 대통령과 이탈리아 대통령, 거기다 벨기에 국왕까지 갑작스레 결승 무대를 참관한다고 해서 이 난리가 난 겁니다.”
EU 상임 회의가 있는 날이 겹쳐서 그런 건가?
갑자기 여러 국가의 수장들이 콩쿠르 결선 무대를 보기 위해 모여들었다.
“쇼팽 콩쿠르가 이 정도로 인기가 많았나요?”
“전례가 없는 일이죠. 대통령들이 한자리에 모여 콩쿠르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믿기지 않네요. 살짝 감동이기도 하고요. 우리 쇼팽 콩쿠르의 위상이 몇 단계 더 올라간 것 같아서요.”
“해외에서 엄청난 관심을 끌고 있지 않습니까.”
이 정도로 엄청난 관심을 받는 콩쿠르 대회는 아마 세상에 없을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이 모든 게 다 장연욱 때문이라는 것 역시 알고 있다.
뉴스를 보면 절반 이상이 장연욱 얘기로 가득 차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가 보여 준 무대가 뉴튜브를 통해 재조명받고 있으며, 과연 우승 목표까지 도달할 수 있을지도 희대의 관심사였다.
“흠. 솔직히 좀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여론을 보면 장연욱 참가자에게 우승을 줘야 할 것 같아서 말이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장연욱 참가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반항아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쇼팽 콩쿠르의 전통을 모조리 무시하며 본인의 해석에 따라 연주를 하지 않습니까?”
“그걸 나쁘다고 평가할 순 없죠. 그 많은 참가자 중에 큰 감동을 준 건 결국 장연욱 참가자였으니까요.”
“예. 그가 우리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조금씩 갈리고 있긴 했으나, 그들은 이미 장연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여러분.”
줄곧 입을 다물며 심사위원들의 말을 경청하고 있던 이그니치가 입을 열었다.
“심사는 엄격하고 공정해야 합니다. 쇼팽 콩쿠르는 그 어떤 콩쿠르보다 신성하며 귀중하기 때문이죠. 또한 오늘은 많은 손님이 오지 않으셨습니까? 그분들을 위해서라도 편향적인 시야를 가져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그니치의 말이 맞았다.
편향된 시선으로 심사를 보게 될 경우, 그건 더 이상 공정한 심사라 할 수 없었다.
“당연합니다. 심사는 언제나 공정해야 하니까요.”
이윽고 결승 무대가 시작됐다.
참가자가 나와 인사를 올리자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환영해 주었다.
별들의 전쟁이라고 했던가.
오늘의 대결이 그렇다.
역대급 라인업이라고 불릴 만큼, 이번 쇼팽 콩쿠르는 굉장히 경쟁이 치열했다.
모두가 수준급 이상의 연주 실력을 가졌고, 장연욱이 가장 집중 조명을 받고는 있으나 그가 무조건 우승을 한다는 보장이 없다.
왜냐하면 결승전 무대까지 남은 참가자들의 실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 전 무대들에서 장연욱이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였어도 결국 중요한 건 결승이다.
결승 한 방에 모든 평가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음-”
“오-”
첫 번째 참가자의 연주를 듣고 있던 심사위원들이 저마다 감탄의 침음을 흘렸다.
과연 예사롭지 않은 실력이다.
저번 대회였으면 우승은 떼 놓은 당상이었을 터.
하지만 이번 결승전은 만만치가 않다.
첫 번째 연주자가 끝나고 나서 그에 이어 두 번째 연주자가 나와 오케스트라와 협주를 시작했다.
“이런.”
“여기도 보통이 아니네.”
심사위원들이 앓는 소리를 냈다.
예상은 했지만,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참가자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고 있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해도 어려울 판에 아직 세 명의 참가자가 더 남아 있다.
“와아-”
관중들 역시 연주가 끝날 때마다 크게 박수를 치며 브라보를 외쳤다.
두 번째 참가자가 나가고 세 번째 참가자에 이르렀을 때도 분위기가 뜨거웠다.
분명 같은 곡을 세 번이나 연속으로 듣고 있는데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중들은 우위를 점칠 수 없는 참가자들의 연주 실력에 탄성을 내지를 뿐이었다.
그리고 이번 결승 무대에서 장연욱 다음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네 번째 참가자가 나왔다.
‘올해 콩쿠르는 한국인이 주인공인가?’
예전에 한국인 한 명이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동양인에서 우승자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번 대회에서 가장 실력이 좋다고 평가받는 것이 바로 장연욱과 손지연이었다.
“허-”
손지연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 심사위원들은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첫 번째부터 세 번째 참가자까지 모두 굉장한 기량을 선보이며 청중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건······.
“이게 정말 완벽한 협주곡이 아닐까요?”
심사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그들이 머리로만 알고 있던 완벽한 협주곡 2번이 지금 손지연의 손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굉장하다’라는 말로는 부족한 무언가였다.
사실 심사위원들은 이번 대회의 우승자는 당연히 장연욱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손지연이 들려주는 연주를 듣고 나서부터 그 생각이 흔들렸다.
“우와아-!”
“브라보!!”
손지연의 연주도 끝이 났다.
그녀의 보여 준 무대가 어땠는지는 청중들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 박수를 치고 있지 않은가.
“여기까지만 들으면 두말할 것 없이 우승자는 손지연 참가자가 될 것 같군요.”
“예. 정말 감동적인 무대였어요.”
“이제까지 들었던 협주곡 2번 무대 중 최고였습니다.”
심사위원들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손지연이 내려가고 나서 흥분된 분위기는 곧 내려앉았다.
아니. 오히려 잔뜩 응축되어 당장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고요해진 청중석.
이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고대했던 마지막 참가자가 드디어 무대에 올라온다는 것을.
“······.”
장연욱이 무대 위로 올라와 가볍게 인사를 올렸다.
무대에 서 있는 모습이 마치 본인의 왕좌를 되찾으러 온 왕을 보는 듯했다.
숨이 막힐 듯한 긴장감.
정작 당사자는 긴장을 전혀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데, 청중들은 무거운 적막함 속에 연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따라란-!
이윽고 연주가 시작됐다.
오묘한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그에 이어지는 피아노.
이제까지 들었던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아니었다.
“······?”
“뭐, 뭐지?”
심사위원들의 표정이 제각각 바뀌고 있었다.
청중들 역시 조용히 웅성거리며 이상함을 느꼈다.
피아노 협주곡 2번.
분명 협주곡 2번이 맞기는 한데, 뭔가 많이 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다.
각 파트에 있어야 할 악기들이 빠진 부분이 있고, 어떤 부분에는 악기가 추가됐다.
이 곡을 지휘하고 있는 지휘자도 분명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 연주를 멈추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설마 곡을 변형시킨 건가?”
“곡을 완전히 변형시켰다고는 볼 수 없지만······ 추가되거나 잘려간 부분이 있군요.”
“대체 이게 무슨······! 각자 플레이 스타일이 있다고는 하지만, 악보를 만지다니.”
심사위원 중 화를 내는 사람도 있었고, 차분하게 듣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화를 내는 사람들도 결국 중반 부분부터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왜 좋게 들리는 거지?’
‘분명 곡이 이상하게 들려야 하는데, 이건 마치 미완성된 곡이 완성 단계에 이른 것 같잖아.’
쇼팽의 협주곡 2번은 이미 완성된 곡이다.
그러나 지금 장연욱이 선보이는 연주는 마치 미완성된 협주곡 2번이 완성되어 가는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웅성거리며 당혹감을 드러내던 청중들은 조용히 새로운 협주곡 2번에 스며 들어갔다.
심사위원들 역시 말을 멈추고 충격을 받은 얼굴로 장연욱의 연주를 감상했다.
이럴 리가 없다고 부정하고 싶었으나, 이건 이제까지 들어본 피아노 협주곡 2번 중 가장 훌륭했다.
협주곡 2번을 자신이 직접 건드려 바꾸는 건 금단에 속한다. 그런데 그 금단을 깨버리고 장연욱은 다시 한번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기고 있었다.
더군다나 적절히 오케스트라와 합을 맞추며 이어 나가는 피아노 연주는 청중들의 눈과 귀를 빼앗았다.
따란-!
강렬한 음을 내며 숨 막혔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마침내 끝이 났다.
청중들은 여태껏 본 적 없는 최고의 환호성을 질렀다.
심사위원들도 멍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이제까지 그들이 듣고 왔던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철저히 부정당하는 무대였다. 그런데도 전혀 거북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것이 진정한 피아노 협주곡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여서 당황스러웠다.
본선 1차에서부터 충격을 안겨주더니, 이번 결승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니다.
쾅-!
줄곧 굳은 표정을 짓고 있던 이그니치가 상을 주먹으로 때리며 벌떡 일어났다.
“이건 모독이야!”
“예?”
“신성한 콩쿠르와 쇼팽의 협주곡을 감히 저따위로 모독하다니······!”
굉장히 화가 난 얼굴이었다.
평소에도 잘 흥분하지 않는 이그니치가 저렇게 버럭 소리를 지를 정도라니.
“당장 저 건방진 놈을 무대에서 끌어 내려!”
“지, 진정하십시오.”
“진정?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저놈이 신성 모독을 했는데도!”
쇼팽 콩쿠르를 신성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그니치도 그중에 속한다.
“이미 완성된 협주곡 2번을 자기 마음대로 바꿔?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이야?”
“하지만 연주는 훌륭하지 않았습니까?”
“예. 제가 듣기에도 좋았는데······.”
심사위원들은 좀처럼 화를 식히지 못하는 이그니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이 신성하게 여기는 악보를 장연욱이 마음대로 건드렸으니 화가 날만 하다.
“근데 이게 규정상 문제가 되는 겁니까?”
“그······ 곡 전체를 편곡한 게 아니고 여러 디테일한 부분을 바꾼 거라서 말입니다.”
“예전에도 지휘자가 마음대로 곡을 건드린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처럼 많은 부분을 손본 건 아닐 테지만요.”
“지금 다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악보를 건드는 것 자체가 이미 신성한 콩쿠르를 무시하는 거요. 저런 놈에게 1위 자리를 주려는 것이오?”
심사위원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청중들도 논란이 일었다.
그렇게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뒤 심사위원들은 방에 들어가 계속해서 토론을 이어갔고, 관중들도 비슷한 주제로 열변이 이어졌다.
한쪽은 쇼팽의 곡을 자기 마음대로 건드린 장연욱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아무리 그래도 수상도 하지 못하게 떨어뜨리는 것은 너무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결국 중요한 건 곡이 아니라 그것을 연주하는 연주자의 실력이니까.
“우승자를 발표하겠습니다.”
약 2시간 동안 걸쳐 이어진 토론이 끝이 나고 심사위원들의 결정이 내려졌다.
사회자는 종이를 들고 발표를 이어 나갔다.
“이번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는 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