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6화
“결승전 룰은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이제 마지막 무대입니다. 여러분은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습하셔야 합니다. 기간은 2일.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지만, 그것마저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진정한 피아니스트입니다.”
마침내 결승전까지 왔다.
쇼팽 콩쿠르 협회장이 직접 대기실로 찾아와 우리를 격려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알려 주었다.
“이틀 동안 연습이 끝나면 그다음 날 곧바로 결승 무대가 시작됩니다. 만일 개인적인 사정, 혹은 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연습하지 못한다고 해도 협회에서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저번처럼 폭발물 이슈가 있어도 연습 시간을 따로 빼 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조금 무책임한 거 같기도 하고, 심사에 매우 엄격한 거 같기도 하고.
“이번 콩쿠르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협회장은 내 쪽을 슬쩍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뭔가 기특해 죽겠다는 눈빛이었다.
“전 세계 외신이 신성한 쇼팽 콩쿠르에 열광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번 콩쿠르는 특별히 결승 무대를 라이브로 송출할 예정입니다.”
“······?”
참가자들이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어차피 청중들 앞에서 하는 공연이니 뭐가 힘들겠냐만은, 전세계에 라이브로 송출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원래 녹화를 해서 며칠 간격을 두고 녹화본을 푸는 것이 관례다. 그리고 라이브 방송은 여러 방송 장비가 동원되기 때문에 참가자들의 신경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또한 여기 청중들뿐만이 아닌, 전 세계 사람들이 내 피아노 연주를 보고 있다는 부담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원래 콩쿠르는 녹화이지 않습니까? 갑자기 라이브를 한다는 건······.”
“많은 사람이 보고 싶어 하니, 응당 그 요청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참가자 중 하나가 항의를 해봤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난 협회장의 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신성한 콩쿠르니 뭐니 하고 있지마, 결국 저 양반은 라이브로 세계 곳곳에 방송을 송출하면서 돈을 벌고 싶은 것이다.
중계권을 비싼 값에 팔게 되면 자기 주머니가 두둑해질 테니 말이다.
“그럼 모두 좋은 무대를 보여 주시기 바랍니다. 기대하겠습니다.”
협회장이 나가기 무섭게 참가자 한 명이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하여튼 자기들 마음대로네.”
윌리엄은 영국 런던 출신으로, 이미 나와도 말을 편하게 하는 상대였다.
“이게 말이 돼? 상의도 없이 라이브라니. 신경이 엄청 쓰일 거 아니야. 연주에 집중도 제대로 못 할 테고.”
“돈이 고픈 거겠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콩쿠르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은 건 처음이잖아.”
참가자들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다 네 책임이잖아.”
“맞아. 누가 그렇게 연주하라고 했어?”
얼굴은 험악하게 짓고 있지만 입은 다들 웃고 있었다.
나도 따라 웃으며 말했다.
“꼬우면 나처럼 인기가 많든가.”
“하하하. 진짜 너답다.”
“난 저런 얄미운 성격이 좋더라.”
최종 결승 무대.
거기에 남은 5명.
분위기가 매우 험악할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남은 참가자들 모두 성격이 유쾌했고, 결승 무대 전부터 친해져서 지금은 서로 편하게 말을 나누는 사이가 됐다.
“다들 무대에서 실수하지 말고 열심히 해. 그리고 결승전 끝나고 다 같이 런던이나 갈까? 우리 집에 초대해 줄 수 있는데.”
“런던? 좋지. 요리만 괜찮다면야.”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집 쉐프는 다양한 요리를 할 줄 아니까.”
“······대체 어떤 집에 살기에 쉐프가 있어?”
그리고 이놈들 집안은 다 귀족이라도 되는 건지 돈이 엄청 많은 것 같았다.
결승 무대가 끝나면 진짜 런던으로 한번 놀러나 가 볼까?
* * *
일주일 동안 각 참가자는 이틀씩 스케쥴을 배정받아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하게 된다. 오케스트라 입장에서는 하루에 두 참가자와 기본 3시간 이상을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기다가 이번 피아노 협주곡 2번 연주는 피아니스트의 연주 성향에 따라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달라져서 중간에 헷갈릴 수도 있다.
다행인 건 쇼팽 콩쿠르의 결승 무대를 책임질 오케스트라는 아마추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연주자이든 이들은 충분히 다 맞춰 줄 수 있고, 시시각각 변화된 연주를 보여 줄 능력이 있었다. 또한 이들의 지휘를 맡고 있는 건 바로 레너드였다.
지휘의 거장이라 불리는 레너드가 리드하고 있으니, 남은 건 피아니스트의 연주 실력뿐이었다.
“오늘 첫 번째 순번이 장연욱 참가자인가요?”
“예. 그렇다고 합니다.”
“아~ 벌써부터 기대되네.”
“오늘은 폭발물 이슈 같은 건 없겠죠?”
고된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단원들은 오늘 연습을 무척이나 기다린 듯해 보였다. 무엇보다 첫 연습이 장연욱이라는 것을 듣고 흥분감이 2배는 상승했다.
이윽고 장연욱이 연습실에 들어와 인사를 나누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레너드는 간단한 조율을 끝낸 뒤 지휘봉을 들었다.
“연습인 만큼 부담 갖지 말고 하세요. 틀려도 괜찮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니까.”
“예.”
“혹시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을 하세요. 그 부분을 본인이 원하는 대로 바꿔 줄 수 있어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연욱의 대답을 듣고 나서 레너드가 지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밝은 바이올린 소리가 노래의 시작을 알렸다.
약 1분 동안 이어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레너드는 이제 곧 피아노가 들어갈 타이밍이라 연욱과 눈을 마주쳤다.
그런데 연욱은 아직도 건반 위에 손을 올리지 않고 있었다.
혹시 들어갈 타이밍을 모르는 건가?
그럴 리가.
아무리 오케스트라와의 첫 연습이라고 해도 본인이 언제 들어가야 하는지는 기본으로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직접 이렇게 합동 연습을 하기 전, 참가자들은 각자 음반을 틀고 따로 연습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욱은 들어가는 타이밍이 지났는데도 끝까지 연주를 하지 않았다.
혹시 저번처럼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가만히 들어보다가 들어오겠다는 건가?
그런 혼란도 잠시.
“저, 마에스트로.”
연욱이 손을 들자 레너드는 연주를 중단시켰다.
“외람된 말이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말씀을 드려도 괜찮다고 하셨죠?”
“예. 물론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도 될까요?”
“그럽시다.”
레너드가 듣기에는 연주는 아주 부드럽고 순조로웠다.
그런데 연욱은 어디 마음에 들지 않는 곳이 있었나?
그는 조용히 지휘봉을 들고 다시 연주를 시작했다.
“잠시만요.”
그런데 연주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갑자기 연욱이 손을 들었다.
“예? 어떤 것 때문에 그러시죠?”
“바이올린 첫 파트가 들어가고 나서 두 번째 파트가 난입을 하게 되는데, 난입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매끄럽지 않게 들립니다. 조금 조정을 해주셨으면 해서요.”
“아.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습니다.”
시작부터 이렇게 태클을 걸면 지휘자로서는 기분이 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게 한 번도 아니고 몇 번이나 이어진다면 어떨까?
“이번에는 피아노가 들어가는 타이밍에서 바이올린이 소리를 너무 느리게 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에스트로. 이 부분은 박자를 조금 늦춰 주셨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연주를 시작한 지 15분.
그동안 무려 열 번이나 연욱이 연주를 중단시키고 피드백을 줬다.
단원들의 얼굴은 서서히 굳어갔고, 슬슬 레너드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리 참가자를 위한 오케스트라라고 하지만, 이 정도로 압박을 주면 어떤 지휘자라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레너드는 기분이 조금도 나쁘지 않았다.
‘엄청난 귀를 가졌군.’
오히려 내심 놀라는 중이었다.
‘나도 놓쳤던 부분을 정확하게 잡고 있어. 저게 가능한 일인가?’
마에스트로가 힘든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고 어디가 부족한지 정확하게 캐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연주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을 시킬 것인지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휘자가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레너드도 연습 중간중간에 피드백을 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연욱은 자신이 듣고 있던 그 이상으로 많은 문제점을 파악하고 빠르게 개선을 하는 것이었다.
“보통 그런 실수는 몇 번 연주를 반복하면서 알게 되는 건데, 장연욱 참가자는 딱 한 번 듣고 알아내는군요. 대단합니다.”
레너드의 말을 듣고 단원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른 지휘관이었으면 이게 뭐 하는 짓이냐며 지휘봉을 집어 던졌겠지만, 레너드는 겸허히 연욱의 말을 수용하고 있었다.
그 말은 지휘계의 거장이 연욱의 실력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수백 번이고 연주를 멈춰도 좋으니 계속 피드백을 주세요. 오늘 오케스트라는 전부 장연욱 참가자를 위해 모인 거니까요.”
레너드는 시시콜콜한 자존심을 드러내기보다는 연욱과 합을 맞추고자 노력했다.
단순히 오늘 연습이 연욱을 위해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연습은 둘째치고, 레너드는 연욱이 어떻게 오케스트라를 조율하는지 끝까지 지켜보고 싶었다. 그리고 연욱의 손에 조율된 오케스트라가 어떤 소리를 낼지도 매우 궁금했다.
“마에스트로. 이 부분에서 바순은 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바순을요? 하지만 전통적인 연주법에서는 여기에 바순이 반드시 들어가야 합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 변화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전체적으로 바순을 빼자는 뜻이 아니라, 여기 다섯 개의 마디에서만 빼자는 뜻입니다.”
“음-. 바순을 빼면 소리가 많이 달라질까요?”
“예. 소리의 균형을 자꾸만 바순이 빼앗는 느낌입니다. 여길 조금만 다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제껏 그 어떤 연주자도 악보를 수정하는 일이 없었다.
연주 스타일에 따라 박자가 달라지긴 해도, 이렇게 대놓고 일정 파트를 빼버리는 일은 없다.
“규정에 어긋나는 겁니까?”
“아니요. 아마 아닐 겁니다. 20년 전쯤에도 지휘자가 본인의 역량으로 특정 악기 파트를 제외시킨 적이 있습니다. 그때 잠깐 논란이 있기는 했으나, 어디까지나 지휘자의 역량이기 때문에 그에 대해 누구도 뭐라 할 수가 없죠.”
하지만 그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던 레너드라 조금은 고민이 됐다.
만약 여기서 특정 파트를 빼버리면 쇼팽의 악보를 신성시하는 청중들 일부가 반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레너드는 이상하게 연욱의 말이 끌렸다.
“여기서 파트 하나를 빼버리면 청중들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심사위원들도 결코 좋게 보진 않을 거고요.”
“그렇군요.”
“본인에게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아요. 이래도 끝까지 하시겠습니까?”
“그 말씀은 마에스트로께서는 반대하지 않는다는 거군요.”
“예. 전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하지만 평가는 제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고를 드리는 겁니다.”
그러자 연욱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걸 어쩌죠?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여기뿐만이 아니라 더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