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5화
본선 2차 무대가 완전히 마무리되고 나서 사람들은 가시지 않은 여운을 지닌 채 강당을 나섰다.
밖에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은 열심히 플래쉬를 터트리며 인터뷰를 하고자 몰려들었다.
저번 본선 2차 무대 영상이 뉴튜브에 공개되면서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된 쇼팽 콩쿠르다. 특히 장연욱이 연주하는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면서 기자들의 질문 역시 장연욱에 초점을 맞췄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은 보통 결승에서 연주하는 곡이 아니었습니까?”
“쇼팽 콩쿠르는 매 대회마다 협주곡 1번과 2번을 번갈아 가면서 결승곡으로 뽑습니다. 이번 해의 콩쿠르 결승곡은 피아노 협주곡 2번입니다.”
기본적인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본격적으로 공세가 이어졌다.
“보통 2차 본선 무대에서 협주곡은 1악장을 거의 넘기지 않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장연욱 참가자는 40분이 넘도록 연주를 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인터뷰를 하고 있던 평론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그 얼굴에는 자신이 본 무대에 대한 감동이 남아 있는 듯해 보였다.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보통 1악장에서 끝을 내는 본선 2차 무대였지만, 장연욱 참가자의 무대는 3악장까지 이어졌었죠. 누구 하나 막을 생각이 없었고, 이미 음악에 몰입한 지휘자 역시 같은 마음으로 3악장까지 쭉 이어 갔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중재하지 않던가요?”
“원래대로라면 중재하는 것이 옳으나······ 그때 분위기에서 만약 심사위원들이 중재했다면 폭동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제 기준으로는 장연욱이 보여 준 피아노 협주곡 1번은 제 인생 최고의 연주였습니다.”
엄청난 극찬이었다.
콩쿠르에 청중으로 있는 평론가들은 대개 참가자들을 비판하거나, 부족한 실력을 콕 꼬집어 얘기하는 것을 즐긴다.
그런데 장연욱이라는 신성이 나타나면서부터 그런 비판의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오히려 누군가가 장연욱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면 주변 분위기가 험악해지기까지 했다.
“마법이었습니다. 장연욱 참가자가 폭발물 이슈로 아무런 연습을 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무대를 보여줬습니다.”
“1악장을 듣고 나서 안타까운 탄식을 터트렸었죠. 더 듣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요. 하지만 지휘자는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았고, 연주자 역시 손을 멈출 생각이 없더군요. 덕분에 3악장까지 다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직도 의문입니다. 오케스트라와 제대로 합을 맞춰 본 적도 없다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3악장까지 그리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인지······. 이젠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장연욱, 그는 쇼팽의 환생이 분명합니다.”
어떤 평론가를 붙잡고 얘기해 봐도 장연욱에 대한 찬양밖에 없었다.
이러니 기자들은 더 궁금증에 빠졌다.
대체 어떤 연주를 보여줬기에 이토록 사람들이 열광한단 말인가.
이미 뉴튜브에 공개된 장연욱의 무대 영상은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 협주곡까지 영상으로 공개된다면······.
“아직 그는 어립니다. 그렇기에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죠. 벌써부터 쇼팽의 환생이라고 칭송 중이지 않습니까? 이 시대 최고의 음악가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창 장연욱의 인기가 상승하고 있을 때 그 명예에 흠집을 낼 수 있는 자극적인 기사를 쓰고 싶었던 기자들은 온통 극찬밖에 없으니 어깨에 힘이 빠지는 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들이 가장 기다렸던 사람이 밖으로 나왔다.
“마에스트로!”
오늘 협주곡 지휘를 맡은 레너드였다.
하지만 그는 지친 기색으로 손을 흔들었다.
“미안합니다. 오늘 너무 지휘를 오래 해서 인터뷰를 할 기운조차 없군요.”
수많은 인터뷰 요청으로 단칼에 거절한 레너드는 지친 몸을 이끌고 그만 호텔에 돌아가려 했다. 그런 그를 심사위원들이 붙잡았다.
“마에스트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 최고의 지휘를 보여 주셨습니다.”
“식사라도 같이하시죠. 호텔 레스토랑 예약을 잡아뒀습니다.”
음악의 조예가 깊은 심사위원들과 같이 식사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아 보였다.
레너드는 그들과 같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심사위원 중 하나가 은근한 말투로 물었다.
“폭발물 이슈 때문에 장연욱 참가자가 연습을 전혀 안 한 줄 알고 있었는데, 마에스트로께서 배려해 주신 모양이군요.”
그 말을 듣고 레너드는 잠깐 눈을 껌뻑였다.
지금 이게 무슨 소리지?
“잠깐. 그 말은 내가 장연욱 참가자의 연습을 도왔다는 거요?”
“아닙니까? 오늘 장연욱 참가자가 3악장까지 완벽하게 소화했습니다. 마에스트로와 제대로 합을 맞추지 않고서야 그렇게는······.”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왜 연습을 도와준단 말이오?”
레너드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크게 당황했다.
“연습을 정말 안 했다고요?”
“그렇소. 난 규칙을 지키는 사람이오. 폭발물 이슈가 무척 안타깝긴 했으나, 그걸로 배려를 해 줄만큼 아량이 넓진 않소.”
저들의 혼란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레너드는 재미가 들렸다.
“연습은 없었소. 우린 정말 연습 한번 하지 않고 합을 맞췄던 것이죠.”
“그, 그게 가능합니까? 1악장까지만 연주를 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나, 오늘 3악장까지 연주하지 않았습니까?”
심사위원들이 당황할 만도 했다.
쇼팽 콩쿠르 역사상 최초로 본선 2차 무대에서 3악장까지 연주한 것이 바로 장연욱이다.
그의 완벽한 연주를 보고 심사위원들은 그때 확신했었다.
레너드가 특별히 장연욱과 남몰래 연습했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고?
“나도 무대가 굉장히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만큼 연습을 하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3악장을 지휘하고 있더군.”
“······.”
“참 신기한 참가자이지 않소? 우리 모두를 동화시키는 피아니스트라. 이제까지 그런 연주자는 본 적이 없소.”
그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그니치가 미소를 지었다.
“마에스트로의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무대가 기다려지는군요. 결승 무대인 만큼 준비 시간도 이틀이나 되지 않습니까? 그땐 장연욱 참가자도 마에스트로와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나도 기대 중이요. 그런데 결승 무대에 누가 올라가는지 결정은 됐소?”
“아직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미 결정됐습니다. 마에스트로도 마음속으로는 이미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무대에서 지휘했던 지휘자가 연주자들의 수준을 더 빨리 파악하게 된다.
“5명의 결승 진출 참가자들을 뽑았고, 내일 공개해서 이틀 동안 연습 기간을 갖게 할 겁니다.”
“이거 얼른 먹고 들어가서 쉬어야겠구려. 하루 종일 참가자들과 연습을 해야 하니.”
음식을 향한 레너드의 손이 한층 더 빨라졌다.
이미 많이 지쳐 보였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장연욱과의 결승 무대 연습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찼다.
* * *
아침에 결승 진출자 명단이 나왔다.
물론, 난 그때 잠을 자고 있어서 누나를 통해 알게 됐다.
“연욱아! 연욱아 일어나!!”
“으- 뭐야. 어떻게 들어왔어.”
“어떻게 들어오긴. 여기 키 카드 하나는 내가 갖고 있잖아.”
“······.”
언제 들어온 건지 혜나 누나가 침대 위를 방방 뛰면서 날 깨웠다.
“너 지금 자고 있을 때야? 결승 진출자 명단 나오는 날이잖아.”
“음- 그거야 뭐 난 당연히 됐겠지.”
“······.”
누나는 정나미가 뚝 떨어진 얼굴로 날 노려보았다.
“재수 없어, 진짜.”
“아니야?”
“맞아. 짜증 나.”
그러더니 내 옆으로 핸드폰을 툭 던졌다.
하마터면 얼굴에 핸드폰이 떨어질 뻔했다.
뭐라 하고 싶었지만, 먼저 확인할 것이 있어 얼른 핸드폰을 들었다.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내가 최종 통과를 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쉰 것이 아니다.
사실 난 될 거라 생각했다.
그날 무대는 무려 3악장까지 이어졌고, 관객들 분위기도 굉장히 뜨거웠으니 말이다. 누구라도 거기서 난 통과가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히 지연이도 통과했네.”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건 지연이의 통과 유무였다.
그날 내 무대가 끝나고 나서 지연이의 무대를 챙겨 봤었다.
매우 좋은 연주였으나, 통과될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에 조금 걱정을 했었다.
“야. 당연히 지연이도 됐지. 하여튼 넌 지연이밖에 모르니.”
“누나가 어떻게 알아.”
“나도 너희들 무대는 다 챙겨 봤었거든. 그리고 다른 사람들 무대를 보니까 너희 둘 빼고는 특별할 게 없더라.”
최종 우승을 누가 할지는 아직 정해져 있지 않지만, 지연이와 막판까지 팽팽하게 경쟁한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좋을 것 같았다.
내가 잠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자 누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근데 너······.”
“응?”
“혹시 멍청한 생각하는 거 아니지?”
“멍청한 생각?”
“네 얼굴이 지금 딱 멍청하게 생겼거든. 설마 지연이를 위해 우승을 양보한다든가.”
“미쳤어?”
혜나 누나가 경쟁자라고 해도 이건 양보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정말 결승에 갈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본선 무대가 이어지고 이렇게 결승까지 다다르니, 이제 나도 우승 욕심이 생겼다.
무엇보다 콩쿠르에서 우승하면 엄청난 명예가 주어진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라는 타이틀은 물론, 그 어느 무대에서도 환영받을 수가 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건 그런 명예가 아니다.
“나 이거 우승 못 하면 군대 가야 돼······.”
“······.”
분위가가 잠깐 숙연해졌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우승하고 싶겠네.”
“그치.”
“그럼 내가 지연이한테 살살하라고 말해 볼까?”
“엥?”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지연이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연욱아! 나야! 지연이! 문 좀 열어줘.”
누나는 총총걸음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 주었다.
“연욱아! 방금 공지가 떴는······ 어? 혜나 언니.”
“호호. 지연아. 잠은 잘 잤니?”
“아······ 네. 연욱이는요?”
“저기 있어.”
지연이는 뭔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방 안에 들어왔다.
“지연아. 다음에 연욱이 만나고 싶으면 전화를 해. 사람들이 괜히 이상한 오해 할 수도 있어.”
“음- 그런 오해는 괜찮아요. 연욱인데요, 뭐.”
“······.”
누나는 한 방 맞은 듯한 얼굴이었다.
“연욱아. 공지 확인했어?”
“아, 응. 너랑 나랑 올라갔더라.”
“진짜 다행이다. 우리 둘 다 결승까지 왔네. 한 명이라도 중간에 떨어지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뒤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누나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지연아. 결승 때 열심히 할 거지?”
“당연하죠.”
“상대가 연욱이라고 해도 봐주는 건 일절 없고?”
“네! 이번엔 꼭 제가 우승할 거예요.”
지연이는 주먹까지 꽉 쥐어 보이며 내게 말했다.
“그리고 너도 우승할 각오로 열심히 해야 돼. 알겠지? 절대 봐주거나 그런 건 없어. 완전히 박살을 내줘. 나도 그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