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63화 (163/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3화

[쏟아지는 극찬. 쇼팽이 환생했다.]

영국 유명 신문사 1면을 장식한 기사였다.

폴란드에 있는 여러 언론사에서도 내 얼굴을 도배해 놓았던데, 내가 폴란드 언어를 몰라서 정확히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본선 2차 무대를 본 평론가들과 저명한 지휘자들이 나를 쇼팽의 환생이라고 칭송했다는 것이다.

“하하. 우리 아들이 나랑 엄마를 닮아서 음악 재능 하나는 기가 막히지.”

“여보. 연욱이가 우리를 닮았으면 여기 오지도 못했을 거야.”

“크흠. 그,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부모님도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이셨다.

본선 2차 무대를 떨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신 분들이다.

거기서 아들이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내려오는 모습을 뿌듯하게 지켜보셨을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금 난리네. 연욱이 네가 쇼팽의 환생이라고 극찬을 받는다면서. 유럽 언론사에 기사 난 걸 다 퍼가서 한국 언론사가 퍼뜨리고 있나 봐. 그게 또 커뮤니티에 퍼지고 있고.”

한국에서는 내가 뜬금없이 쇼팽 콩쿠르에 나간다고 해서 여론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커뮤니티에서 가장 추천을 많이 받은 글을 찾아보았다.

[장연욱 이 쉑 앨범도 안 내고 갑자기 콩쿠르로 튀더니······]

제목부터가 굉장한 어그로를 끌고 있었다.

난 홀린 듯이 그 글을 눌러 보았다.

-갑자기 유럽에서 쇼팽의 환생이라며 찬양하고 있음.

-시발ㅋㅋㅋㅋ이러다 한국 안 오는 거 아니냐.

-아니. 진짜 저건 뭘 해도 다 잘하네. 여지껏 수많은 쇼팽 콩쿠르가 있었지만 그 어떤 참가자도 쇼팽의 환생이란 소리는 못 들었는데. 대체 얼마나 잘한 거냐?

-곧 뉴튜브에서 영상 푼다고 함. 그래도 난 유럽에서 저렇게 날아다니는 것보다는 한국 와서 앨범 좀 내줬으면 좋겠어. 우리 혜나 목소리 듣고 싶다고.

-그래도 가기 전에 지혜라는 선물을 남기고 갔잖아.

-아. 지혜는 인정이지.

-지혜 노래 개좋음 ㄹㅇ

그 외에도 다양한 글이 있었다.

[아직 본선 2차다.]

-우승한 게 아님. 저렇게 광광 띄워줘도 결승에서 떨어지면 끝임

-이건 아무리 봐도 전형적인 대한민국식 국뽕 여론인 거 같은데. 막상 외국에서는 별로 관심도 없는 거 아니냐?

-그건 아님. 외국 커뮤니티만 봐도 장연욱에 대한 말이 많음. 실제로 bbc에서도 크게 다뤘고. 쇼팽 콩쿠르는 유럽의 축제이기 때문에 그쪽에서는 큰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음.

-이러다 우승 못 하면 욕 오지게 처먹겠네.

내가 국내에서 앨범도 내지 않고 다른 곳에서 쓸데없는 짓을 한다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왕 간 거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다는 글이 많았다.

그나마 여론이 악화되지 않은 건 김지혜의 영향이 컸다.

내가 콩쿠르에 오기 전 데뷔 준비를 시킨 김지혜는 매력적인 보이스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고, 그 결과 현재 각 음원 차트에 top 10을 기록하는 중이다.

“지혜 언니 덕분에 쌍욕은 안 먹고 있네.”

“그나마 다행이지.”

“근데 사람들 말이 맞긴 해. 너 너무 다른 사람들만 챙기고 이 누나를 등한시하는 거 아니야?”

영화, 걸그룹, 싱글 가수, 거기다 콩쿠르까지.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느라 나와 누나의 앨범은 2집에서 멈춰 있다.

사람들이 욕을 할 만도 했다.

누나도 말은 안 했지만 꽤 섭섭해하는 거 같아 보이고.

“콩쿠르 끝나면 달려 봐야지.”

그때 국제 전화로 강 대표가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거긴 새벽 아니에요?”

- 새벽 3시 30분이다. 아까 전화하려다가 그땐 너 자고 있을 거 같아서 지금 전화했지.

“무슨 일 있어요?”

- 당연히 있지 인마. 폴란드에서 그 난리를 쳤는데 일이 없겠어?

강 대표의 목소리 톤을 들어보니 좋은 일인 것 같았다.

- 야. 지금 유럽에서 너랑 계약하고 싶다는 기업들이 아주 줄을 서고 있어. 외국 SNS 봤냐? 네가 콩쿠르에서 입은 양복 착샷이 퍼져서 모델 계약도 엄청 많아. 넌 대체 뭘 하기에 어딜 가나 그렇게 화제가 되냐?

“그래서 계약은 하셨어요?”

- 아직 안 했지. 일단 오퍼 들어오는 거 보고 결정해 보려고. 어느 회사들이 요청을 해왔는지 따로 리스트 만들어서 보내 줄게.

“아뇨. 괜찮아요. 대표님이 알아서 정해 주세요. 전 여기 일 신경 쓰기도 바빠서.”

- 아! 그래. 최대한 대우 좋은 곳으로 알아봐서 결정할게.

강 대표는 소속사 연예인을 함부로 굴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나와 혜나 누나라면 더더욱 조심하며 심혈을 기울인다.

그렇기에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다.

“그럼 가볼게요.”

강 대표와 연락을 마치고 나서 나는 나갈 준비를 했다.

본선 2차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심사위원들이 지정하는 심사곡을 연주해야 하고, 오케스트라와 협주도 해야 한다.

콩쿠르 우승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 * *

쇼팽 피아노 협주곡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게 된 레너드는 예전과는 다른 오케스트라 분위기를 가만히 살펴보았다.

모두 조금씩 들떠 보인다고 해야 할까.

무언가를 기다리는 눈치인 거 같기도 하고.

참 분위기가 묘했다.

“콘서트 마스터.”

“예, 마에스트로.”

“오늘 오케스트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오케스트라의 대장 역할을 하며 지휘자를 보조하는 콘서트 마스터는 희미하게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마에스트로께서도 잘 아실 거라 생각했는데요.”

“내가?”

“예. 한국으로 직접 날아가서 심사까지 보시지 않았습니까.”

그제서야 레너드도 콘서트 마스터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참가자가 얼른 오기를 기다리는 오케스트라라······. 내가 몇 번 지휘를 맡아 보긴 했지만, 이런 경우는 또 처음이군.”

“여기 있는 단원 중 본선 2차 무대를 보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고 다들 충격이 컸나 봅니다. 평생 그런 무대는 본 적이 없다면서 호들갑을 떨더군요. 거기다 하루빨리 협주 연습을 하고 싶다고까지 하고요.”

“하하!”

레너드는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누군가의 심사를 받는 입장이 아니다.

그들은 본인의 일을 충실히 해나갈 뿐.

즉, 그들에게는 연주가 곧 직업이라는 것이다.

무엇이든 직업이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하기 싫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어떻게든 연습을 빨리 끝내고 퇴근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이들은 빨리 장연욱을 만나 오케스트라 연주를 하고 싶어 했다.

“이러면 다른 참가자들이 무안해지지 않겠어?”

“장연욱 참가자가 워낙 대단하기도 했지만, 다른 참가자들도 굉장했습니다. 이번 콩쿠르는 역대 대회 중 가장 참가자들 수준이 높더군요. 누구와 해도 좋은 연습이 될 거라 모두 생각하고 있습니다.”

레너드도 그건 인정했다.

장연욱의 무대가 굉장히 충격적이긴 했으나, 다른 참가자들도 수준 높은 연주를 보여 주었다.

그러나 역시 가장 기대가 되는 건 장연욱일 것이다.

“연주도 연주지만······ 크흠. 역시나 생김새가 큰 몫을 하는 것도 있습니다.”

“응?”

“이번에 SNS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장연욱이 양복을 입고 시내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사진에 여러 번 찍혔는데, 워낙 비율도 좋고 인물도 잘생겼다 보니 인기가 훨씬 더 많아졌답니다. 그리고 여기 오케스트라 단원 중 여성 비율이 절반이라서요.”

“아~ 하긴. 나도 가까이에서 보니 말도 못 할 정도로 미남이긴 하더군.”

모든 것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했던가.

레너드도 장연욱처럼 눈에 띌 정도로 잘생긴 동양인은 평생 본 적이 없었다.

이윽고 연습 시간에 맞춰 장연욱이 강당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조잘조잘 서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여성 단원들이 갑자기 자세를 고쳐 잡으며 얼굴에 미소를 담았다.

그런데 웃긴 건 남성 연주자 중에서 여성 단원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자세를 고쳐 잡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었다.

“마에스트로.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닙니다. 나야 말로 이렇게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쁩니다. 한국에서는 내가 심사위원이라 말도 제대로 걸 수가 없었어요. 하하.”

연욱은 레너드와 악수를 나눈 뒤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한 명씩 인사를 나눴다.

“너, 너무 팬이에요. 앨범도 잘 듣고 있어요. 혹시 이따 연습 끝나고 사인 한 장만······.”

“저도 부탁드려요.”

“전 사진 한번 같이 찍었으면 좋겠는데.”

이게 연습을 하러 온 것인지, 아니면 팬 사인회를 하러 온 것인지 모를 만큼 단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자자, 인사는 거기까지. 시간이 별로 없어요. 빠르게 연습을 끝내야 다음 사람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네!”

정해진 연습 시간은 2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안에 여기서 합을 맞춰야 이틀 뒤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연습 시간은 단 2시간. 그 이상으로는 연습 시간이 허락되지 않고 곧바로 무대에 올라가야 합니다. 이점을 잘 유념해서 연습하셔야 할 겁니다.”

레너드의 주의에 연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쇼팽 콩쿠르의 꽃은 바로 협주곡이다.

본선 2차에서 딱 한 번 협주곡을 연주하게 되고 본선 3차부터는 쭉 협주곡만 연주하게 되는데, 둘 다 모두 연습 시간이 제한적이었다.

특히 본선 2차는 일정상의 이유로 단 2시간밖에 연습 시간을 주지 않는데, 그 안에 오케스트라와 어떻게 합을 맞출 것인지 결정하고 연습을 해야 한다.

사실상 거의 연습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서 본선 2차 때 참가자들이 잘못 박자를 맞춰 실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건 곧바로 감점 요소가 되고 누가 더 적은 실수를 하느냐에 따라 탈락자가 결정된다.

너무 억지스러운 심사가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이것 역시 심사의 한 부분이었다.

물론, 40분 가까이나 하는 협주곡을 전부 다 연주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1악장에서 2악장까지만 연주를 하게 하여 10분 안에 마무리를 짓게 한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연습곡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 1악장이었다.

고전적인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 나오고 있고 소나타의 형식을 따라 간결하고 부드러운 음색이 특징이다.

먼저 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되면서 약 40초 간은 그대로 오케스트라의 연주만 흘러가게 된다.

그 이후에 시작되는 피아노의 터치가 전체적인 밸런스를 잡으며 본격적인 연주를 시작하게 된다.

레너드는 연주를 시작한 후부터 눈을 감고 있는 연욱을 바라보며 신호를 주었다.

이제 너가 들어가야 하는 때라고 말이다.

“······?”

그런데 연욱이 피아노 건반을 치지 않고 가만히 눈만 감고 있었다.

혹시 신호를 못 본 것인가.

아니면 연습 부족?

한번 더 신호를 줘봤지만, 여전히 연욱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 연주를 중단시켜야 하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연욱이 슬며시 눈을 떴다.

그리고 레너드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그의 손짓과 함께 움직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감상했다.

그 알 수 없는 행동에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당황했지만, 레너드는 왠지 지휘를 멈추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자신을 바라보는 장연욱의 저 눈빛이 연주를 멈추지 말라고 말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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