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61화 (161/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1화

본선 1차는 곡을 3개 친다고 끝나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었다.

만약 결승까지 간다면 약 30~40곡 가까이 쳐야 하므로 본선 1차도 한번만 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심사위원들이 지정하는 곡 몇 개를 더 쳐야만 비로소 평가가 끝난다.

그렇게 마무리 된 본선 1차.

“77명이나 탈락을 시켰네.”

워낙 쟁쟁한 실력자가 많이 나와서 그런지, 본선 1차를 끝까지 지켜본 평론가들은 이번 콩쿠르가 역대급이라는 평가를 남기고 있었다. 그래서 다들 본선 1차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 예상했는데, 심사위원들은 절반 이상의 참가자들을 날려버렸다.

“1차에서 이렇게 많이 탈락시킨 건 사상 처음이라던데?”

“역대급 콩쿠르라고 칭송이 자자하지 않았나? 이렇게 분위기 좋으면 일부러 잘 안 떨어뜨리고 2차까지 끌고 가는 거 아니었어?”

외신에서도 1차 탈락자가 무려 77명이라는 것을 크게 보도하고 있었다.

쇼팽 콩쿠르가 이렇다.

정해져 있는 심사 기준이 없다 보니, 심사위원들 마음대로 탈락자 수를 결정할 수 있고 수상자도 결정할 수가 있다.

즉, 심사위원들은 본선 2차에서 참가자들 전원 탈락을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가끔 이런 심사위원들마다 다른 심사 기준과 변덕성 때문에 정확한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간의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여전히 들쑥날쑥한 심사가 이어지고 있었다.

“그래도 본선 2차가 기대되지 않아?”

“맞아. 특히 본선 1차에서 왈츠로 우리에게 놀라움을 줬던 참가자가 제일 기대 돼.”

“내가 볼 때 심사위원들이 쟁쟁한 실력자들만 남기고 나머지는 일부러 다 쳐낸 거 같아. 청중들에게 쉴새 없이 엄청난 수준의 음악을 들려주고 싶은 거지.”

본선 1차가 매우 뜨거웠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본선 2차 티켓팅은 더할 나위 없이 치열했다.

무려 10배의 가격에 암표가 돌아다니는 등, 본선 2차를 보겠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컸다.

심사위원들도 본선 2차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과연 이번에는 저 참가자들이 어떤 음악을 들려줄 것인가.

“여러분도 알다시피 쇼팽 콩쿠르에는 정해진 심사 기준이란 것이 없습니다. 심사위원들 각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죠. 하지만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뽑은 우승자가 곧 우리의 얼굴이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한 마디로 우승자를 엉망으로 뽑았다간 심사위원들만 욕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이그니치의 짧은 연설이 끝난 뒤, 심사위원들은 자리에 앉아 참가자 명단을 슬쩍 살펴보았다.

이들은 모두 같은 이름을 찾고 있었다. 바로 맨 마지막에 있는 장연욱을.

저번에는 첫 무대를 그렇게 장식을 하더니, 이번에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됐다.

벌써부터 그가 어떤 곡을 준비했을지 추측이 난무하고 있지 않던가.

관중들도 필시 장연욱의 무대를 가장 기대하고 있을 게 뻔했다.

본선 1차 때부터 그 정도로 화제성을 불러 모은 사람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드니 말이다.

“그럼 본선 2차 무대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말에 따라 2차 무대가 시작됐다.

2차 무대에서는 솔로곡 3개를 연주하게 되는데, 심사위원들이 여기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3곡을 전부 다 들을 것이냐, 아니면 1곡이나 2곡만 연주하게 해서 멈추게 할 것이냐.

여기서 무난하게 3곡을 끝내게 되면 다음 날에는 심사위원들이 지정하는 곡을 즉석에서 연주해야만 한다.

“저 참가자 이름이 르블랑이었나요?”

“예. 여성 프랑스 피아니스트인데, 11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답니다. 뭐, 참가자들 중에 어릴 적 신동이라고 불리지 않은 사람을 찾긴 힘들겠죠.”

“훌륭한 연주로군요. 매우 아름다운 녹턴이었습니다.”

“예. 세 번째에 연주한 스케르초도 듣기 좋았고요.”

실력자 중에서 진짜 실력자들만 남았다는 본선 2차.

첫 무대에서부터 참가자가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자 사람들은 열렬한 박수로 화답해 주었다.

심사위원들도 기분 좋은 스타트에 밝은 미소를 지으며 다음 참가자를 안으로 들였다. 그러면서 간간이 참가자 명단을 체크하며 언제쯤 장연욱이 나오는지 들여다보았다.

“역시 1차에서 실력 미달의 참가자들을 빠르게 쳐낸 것이 좋은 결과를 낳은 것 같습니다.”

“예.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라갔네요. 귀가 쉴 틈 없이 즐거운 것을 보면 말입니다.”

“관중들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이 고조된 분위기. 다들 마지막 무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연욱 참가자를 말씀하시는 거죠? 하긴. 첫 무대가 너무 충격적이긴 했죠. 하지만 과연 본선 2차에서는 무엇을 보여줄지······.”

“확실한 건 1차보다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화려하게 무대가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점점 마지막 무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무대가 이어졌기 때문에 관중들도, 그리고 심사위원들도 슬슬 지치기 마련인데 오히려 더 활기가 돌고 있었다.

그만큼 마지막 무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사위원 중 마지막 무대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처음 보여 준 임팩트가 크면 클수록 기대감이 높아지고, 그에 충족하지 못하는 무대를 보여준다면 큰 반작용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예. 1차에서 화려하게 피어올랐지만, 2차에서는 속절없이 사그라들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심사위원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그니치가 말했다.

“그거야 무대를 보면 알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렇죠. 뭐든 까봐야 확실히 알 수 있는 거죠.”

심사위원들도 말을 아꼈다.

왜냐하면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마지막 무대가 마침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와아-!”

장연욱이 무대 위로 올라오기 무섭게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특히 여성 청중들에게 인기가 많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했다.

모든 참가자 중에서 단연 장연욱이 최고의 비주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면 얼굴, 몸이면 몸. 거기다 환상적인 연주까지.

스스로의 완벽한 비율을 연주에서도 고스란히 보여주니, 관중들은 자연스레 그의 연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연주도 연주지만, 참 외모라는 게 엄청난 플러스 요인을 주는 거 같지 않습니까?”

“뭐······ 인정하긴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네요. 파가니니도 악마 같은 연주와 굉장한 외모로 많은 귀족에게 사랑을 받았으니까요.”

“예술과 외모가 합쳐지면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고 하더니,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군요.”

“그래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역시 연주죠.”

청중과 심사위원 모두 자세를 고쳐 잡고 장연욱이 이번에는 무슨 음악을 보여줄지 기대했다.

“첫 번째 곡은 쇼팽 즉흥곡 1번입니다.”

“······?”

“즉흥곡 1번? 4번이 아니라?”

“사회자가 뭘 잘못 말한 거 아닐까요?”

쇼팽 즉흥곡 1번.

쇼팽은 총 4개의 즉흥곡이 있다.

하지만 콩쿠르에서는 딱 한 곡을 제외하고는 나머지 즉흥곡은 연주를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즉흥곡 4번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즉흥곡이 콩쿠르에서 연주된 적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이건 마치 장연욱의 첫 본선 무대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때도 강아지 왈츠로 사람들을 당황시키더니, 이번에는 즉흥곡 1번으로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강아지 왈츠와 비슷하게 통통 튀는 리듬의 곡이라고는 하나, 즉흥곡 1번은······.”

“콩쿠르에서 연주하기에는 너무 무난하죠.”

심사위원들이 찌푸린 미간과 별개로 연주가 시작됐다.

맑고 경쾌한 멜로디의 즉흥곡 1번.

무난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즉흥곡 1번은 그 전 참가자들의 음악과는 다르게 기교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콩쿠르에서는 치지 않았던 곡인데, 1분 정도 지났을 무렵 장연욱의 탈락을 직감하고 있던 관중들의 표정이 서서히 달라졌다.

따라란-!

음표가 가볍게 비상하며 떠들썩하게 주위를 휩쓸기 시작했다.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음표가 쉼 없이 파고들며 맑고 경쾌하기만 했던 멜로디가 갑작스레 격정으로 바뀌었다.

‘이게 원래 이런 곡이었나?’

음악을 감상하고 있던 심사위원들도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즉흥곡 1번은 보통 귀족들이 여는 파티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런데 지금 장연욱이 연주하고 있는 이 곡은 마치······.

‘사랑을 노래하는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

그리고 그 사람과 이어 나가는 인연.

그 말로 표현 못 할 기쁨이 즉흥곡에 고스란히 담긴 것처럼 보였다.

또한 마지막에 몰아친 음표는 격정의 사랑을 표현했다.

“아······.”

“뭐야. 벌써 끝났나?”

순식간에 즉흥곡이 끝났다.

강아지 왈츠처럼 결코 짧은 곡이 아닌데도 말이다.

“이거 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이런 식으로 즉흥곡 1번을 표현할 수도 있군요.”

“의도적으로 리듬을 조금씩 비튼 것 같았죠?”

“예. 즉흥곡 1번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해석한 것 같았어요. 전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감정이 느껴졌는데, 다른 분들은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즉흥곡 1번을 듣고 여운이 남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른 다음 곡을 들어볼까요?”

“그럽시다.”

그들은 심사를 잠시 뒤로 미뤄두고 얼른 다음 곡으로 넘어가게 했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은 즉흥곡 2번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심사위원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역사상 전례 없는 참가자라는 건 확실하군요.”

“하- 이런데도 첫 번째 곡을 듣고 나니 뭔가 묘하게 기대가 되는 거 같기도 하고.”

이미 첫 본선 무대에서 받은 충격으로 조금은 학습이 된 터라 심사위원들은 섣부른 판단을 하지 않고 가만히 곡을 감상했다.

쇼팽의 즉흥곡 2번.

첫 번째 즉흥곡은 마치 파티에 쓰일 것만 같았다면, 두 번째 곡은 명상할 때 쓰기 좋을 것 같은 잔잔한 곡이었다.

가장 상상력이 풍부한 곡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첫 번째 곡보다 더 무난한 곡인 건 사실이었다.

절제된 리듬.

듣고 있으면 잠이 올 것만 같은 자장가 멜로디.

즉흥곡 2번은 그런 이미지가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다.

장연욱이 연주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건······.”

“허-.”

장연욱은 첫 번째 즉흥곡을 전혀 다른 해석으로 연주했다.

그런데 두 번째 즉흥곡 역시 본인만의 해석이 명확하게 들어가 있었다.

첫 번째 곡이 사랑이라면 두 번째 곡은 흔들리는 마음이었다.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흔들리는 마음과 슬픔.

그냥 눈을 감고 명상하기에 딱 좋은 음악이 어느새 안타까운 연인의 슬픔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저 건반 터치와 리듬을 조금씩 바꿨을 뿐인데, 그 잔잔한 곡이 순식간에 혼란의 폭풍으로 탈바꿈됐다.

“······.”

심사위원들은 마른침을 삼키며 연욱의 연주를 지켜보았고, 관중들 역시 밀려오는 감정을 애써 다스렸다.

이 고요한 흔들림.

대체 무엇이 이토록 사람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의문이 곡에 담긴 것만 같았다.

그에 대한 해답은 필시 다음 곡에 있을 터.

두 번째 곡이 끝나고 나서 심사위원들은 지체할 것 없이 곧바로 세 번째 곡을 연주하게 했다.

그리고 세 번째 곡은 역시-

“세 번째 곡은 쇼팽의 즉흥곡 3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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