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60화 (160/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60화

길고 길었던 본선 1차가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본선 무대에서부터는 일반인보다 세계 각국에 있는 음악가들과 음악 평론가들이 자리를 한다.

일반인들도 몇몇 티켓을 얻어 한 자리를 차지하곤 하지만, 워낙 티켓 값이 비싸고 경쟁도 심하기 때문에 음악 쪽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선뜻 올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관중들 대다수가 음악에 조예가 있어 상대의 노래를 맘 편하게 감상한다기보다는 진지하게 평가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내가 그동안 여러 콩쿠르를 돌아다녀봤지만, 오늘처럼 신선한 충격을 준 대회는 처음입니다.”

“아. 혹시 첫 번째 참가자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예. 첫 번째 참가자 이후 이상하게 음악이 귀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저도 그랬습니다. 왈츠가 자꾸 귀에 맴도는 것 같아서 미치는 줄 알았어요.”

본선이 끝난 뒤에 관중들은 옹기종기 모여 토론회를 벌이고 있었다.

누구의 음악이 좋았고, 또 누구의 음악이 최악이었다는 일종의 평가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모두 입을 모아 장연욱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는 중이었다.

“시건방지기 짝이 없는 시도였습니다. 문제는 그 건방진 도전이 제대로 먹혀들었다는 것이죠.”

“강아지 왈츠에서 첫 충격을, 화려한 대왈츠로 놀라움을, 마지막 왈츠로 감동을. 쇼팽 콩쿠르에서 이런 완벽한 서사를 보여 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거 다른 참가자들 얘기도 해야 하는데, 온통 신경이 첫 번째 참가자에게 쏠려 있군요.”

그들은 자연스레 장연욱의 정체를 궁금해했다.

“대체 그 참가자 정체가 뭡니까? 긴장하는 모습도 전혀 없던데요.”

“한국에서 유명한 음악가라고 하더군요. 오케스트라 지휘 경험도 있고 다크 스페이스라는 영화의 ost 제작해 빌보드 순위까지 올라갔답니다. 대단한 커리어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죠.”

“허. 나이가 그렇게 어린데 어떻게 벌써 그런 업적들을······.”

“원래 세상이 낳은 천재가 보통 그렇지 않습니까. 남들은 수십 년을 걸려서 해야 할 일을 단 몇 년 만에 해내고 마니까요.”

장연욱에 대한 이야기가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간간이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도 나왔다.

“이번 대회는 아무래도 동양인들의 잔치가 될 거 같군요. 첫 번째 참가자 이후에 딱히 마음에 드는 연주가 없었는데, 같은 한국 출신의 여성 참가자가 보여 주는 퍼포먼스는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 알고 있어요. 첫 번째 참가자랑 같은 나라 출신이죠? 오랜만에 감미로운 쇼팽의 녹턴이었죠.”

“그 외에도 마지막 참가자 역시 주목할 만했습니다.”

그들이 오늘 봤던 본선 무대에 대한 평가를 쏟아내고 있을 때, 참가자들 사이에서도 여러모로 화제가 되고 있었다.

“오늘 무대 봤어?”

“당연히 tv로 다 봤지. 그냥 미쳤던데? 그 첫 번째 참가자 저번에 우리가 인사했던 그 동양인 맞지? 다크 스페이스 ost 제작자.”

“맞아. 아니. 대체 무슨 생각으로 왈츠를 세 번이나 연주한 거지?”

“그러니까 말이야. 근데 그걸 또 환상적으로 보여줬잖아. 다음 본선 1차는 우리가 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한숨 나온다.”

본선 1차는 하루에 다 끝내는 것이 아닌, 며칠 동안 이어진다.

이렇게 첫 본선 무대에서부터 참가자가 좋은 모습을 보여 주면 그 뒤에 나올 참가자들의 부담이 더 커지는 것이다.

“경쟁자이기는 해도 존경스럽더라. 강아지 왈츠라니. 상상이 가? 난 죽었다 깨어나도 강아지 왈츠를 칠 생각은 못 할 거 같아.”

“이번 본선 무대는 미쳤어. 평론가들도 역대급 본선이었다고 난리잖아. 내일 있을 무대에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다음 날 있을 본선 무대에 참여할 참가자들은 죽을 맛이었다.

보통 본선 1차에서는 평론가들이 잠잠하다.

처음부터 평을 내놓기에는 참가자들의 기량을 다 엿볼 수가 없기 때문.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본선 무대가 끝나기 무섭게 평론가들이 열심히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대다수가 본선 첫 무대를 빛내 준 장연욱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미 본선 1차에서부터 우승자가 나온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올 정도였다.

멘탈 유지를 위해 그런 글을 보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참가자들은 자꾸만 평론가들의 글을 찾아보게 됐다.

본선 1차부터 경쟁 구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 * *

“난 상상도 못 했어. 대체 왜 왈츠를 세 곡이나 연주한 거야?”

본선 무대가 끝나고 나서 지연이와 나는 배고픈 배를 부여잡고 호텔 레스토랑으로 달려가 음식을 이것저것 시켰다.

아직 본선 무대에 대한 열기가 식지 않았는지, 지연이의 입이 멈추지 않았다.

“혹시 다른 곡들을 연습 못 해서 왈츠만 세 곡을 연주한 건 아니지?”

“응, 맞아.”

“뭐어? 앞으로 기본 30곡은 연주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역시 우리 지연이 순진하구나?”

“······?”

“당연히 농담이지.”

지연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깜짝이야. 난 또 진짜 연습 부족인 줄 알았잖아.”

“뭐, 너보다는 연습 부족이지.”

“그래서, 왜 왈츠를 세 곡이나 연주한 건데?”

“음, 각자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고 해야 하나?”

지연이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었다.

“나는 새로운 곡을 배울 때, 연주하기 전에 먼저 그 곡을 머리로 재생을 시켜봐. 이 곡이 어떤 구조로 되어 있고 무슨 의도로 이런 음표를 넣었는지 최대한 이해를 하려고 하지.”

“그래? 연욱이 네가 작곡가라서 그런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법이랑 많이 다르네.”

“너도 나중에 해봐. 곡을 먼저 이해하고 나서 연주를 하는 거랑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연주하는 것과는 느낌이 많이 달라. 곡을 좀 더 빨리 익힐 수도 있고. 아무튼, 왈츠도 그렇게 머리로 이해를 먼저 하면서 연주를 했는데······.”

“했는데?”

지연이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몸도 내 쪽으로 기울었다.

“왈츠마다 특징이 강하더라고. 거기다 구조적으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가장 특징이 잘 어우러진 왈츠들을 한곳에 모아 놓다 보니 그 세 곡이 나오게 된 거야.”

쇼팽의 곡들을 연습하면서 그가 만든 왈츠에 대해 자세히 파고 들어봤다.

총 19곡의 왈츠.

하나씩 들어 보면 각기 다른 음악 같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쇼팽이 왈츠마다 특징을 부여하며 서로 비슷한 점이 생기도록 작곡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번이 3번과 어울리고, 5번이 8번과 어울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인데, 쇼팽이 이걸 정말 의도해서 만든 것인지 아니면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건 각 왈츠에 서로 어울리는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난 거기서 가장 듣기 좋은 세 곡을 뽑아 놓은 것이었다.

물론 그걸 본선 1차 무대에서 연주할 거라고 말했을 때의 이창호 교수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날 미친놈이라고 욕하긴 했으나, 이창호 교수도 왈츠 세 곡을 연달아 듣고 나서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난 이창호 교수한테 먹힐 정도면 본선 1차에서도 먹히지 않을까 싶어 과감히 도전해본 것이었다.

“도박이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먹힌 거 같아.”

무슨 일이 있어도 본선 1차는 통과를 해보자는 마음에 도박 수를 둔 것도 있다.

쟁쟁한 실력자들 사이에서 나만의 색깔을 심사위원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대가 끝난 뒤에도 절대 내 이름을 까먹지 못하도록 말이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었어. 노래 조합은 좋았지만, 네 연주가 별로였으면 분위기가 엄청 험악했을 거야.”

“그래서 도박이라는 거지. 결과적으로는 잘 먹혔잖아.”

내 연주가 어땠는지는 관중들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지막 왈츠 곡이 끝났을 때 그들은 브라보를 외쳐댔다. 본선 무대에서 브라보가 나오기 쉽지 않은데 말이다.

“나도 좋았지만, 지연이 네 연주가 더 좋았어. 사람들이 네가 연주하는 녹턴을 들을 때 다 넋이 나가 보이더라.”

“아, 아니야. 난 그냥 평범하게 친 거지. 딱히 잘 치지도 않았어.”

갑자기 지연이의 얼굴이 붉게 올라왔다.

이런 모습은 또 오랜만이라 귀엽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런지 더 놀려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사람들이 그러던데? 네 연주가 최고로 좋았다고. 이미 우승자는 너로 결정된 게 아니냐면서.”

“으으. 아, 아니라니깐?”

“진짜야. 다른 참가자들도 네 연주를 듣고 엄청 감동받은 거 같더라.”

“······너는?”

“응?”

“넌 어땠는데?”

부끄러워하던 지연이의 눈빛이 일순 진지해졌다.

“난······ 좋았어.”

“그게 다야?”

“뭐랄까. 이런 사람이랑 내가 경쟁하고 있다는 게 뿌듯하고 절망스러울 만큼 좋았어.”

지연이의 얼굴이 다시 한번 빨갛게 물들었다.

“그게 뭐야.”

“그만큼 대단한 연주였다는 거지.”

“네가 그렇게 들어주니까 기분이 좋네.”

지연이는 빙긋 웃으며 내 옆으로 조금씩 가까워졌다.

나도 굳이 쳐내지 않고 오히려 지연이 쪽으로 몸을 기울이던 중.

“장연욱!!”

좁은 간격 사이로 당찬 목소리와 함께 두 손이 파고들면서 나와 지연이를 갈라놓았다.

“뭐, 뭐야.”

“뭐긴 뭐야. 여기서 뭐 해?”

고개를 들어 보니 화가 잔뜩 나 보이는 누나가 서 있었다.

“아니. 배고파서 밥 좀 먹고 가려고 했지.”

“흐응. 그럼 서로 마주 보면서 앉아야지. 왜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어. 누가 보면 테이블이 일자형인 줄 알겠다. 그치, 지연아?”

그러자 지연이가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아···그···러게요······.”

“하여튼 장연욱. 네가 제일 문제야. 매너를 지켜야지. 이렇게 찰싹 붙어서 먹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 아니야.”

“그런가······.”

“그리고 지연아. 고생 많았어. 연주 진짜 좋더라.”

“고마워요. 언니.”

나는 웃는 얼굴로 덕담을 나누는 혜나 누나와 지연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사이가 좋은 거 같아 보이면서도 저 둘 사이에 스파크가 팍팍 튀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된 거 나도 여기서 밥이나 먹을까?”

“누나. 아직도 밥 안 먹고 있었어? 부모님은?”

“엄마 아빠는 다 드셨지. 너 본선 무대 끝나는 거 보고. 방에서 지금 너 기다리고 계실 거야. 얼른 먹고 가자.”

“그래. 누나도 배고프겠다. 얼른 앉아.”

지연이는 뭔가 아쉬운 눈빛으로 혜나 누나를 쳐다보았다.

“언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중요할 때마다 나타나시네요.”

“그러게. 이 언니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자꾸 타이밍이 겹치네. 지연이 너도 참 기회를 잘 노리는구나.”

“언니만 할까요. 이제 중요한 순간마다 언니가 보이지 않으면 괜히 아쉽다니까요?”

“걱정 마. 앞으로도 이 언니가 열심히 뛰어다닐 테니까. 알겠지?”

이윽고 음식이 나오고 혜나 누나는 나와 지연이에게 음식을 떠다 주면서 말했다.

“둘이 오늘 너무 고생 많았어. 무엇보다 중요한 대회잖아. 그러니까 다른 거에는 일절 관심 두지 말고 피아노 연주에만 집중하자. 알겠지, 지연아?”

“호호. 당연하죠. 언니. 근데 너무 연주에만 몰두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가끔은 나한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연습에 큰 도움이 돼요.”

“어머~. 그렇구나. 이 언니가 더 바쁘게 움직여야겠네?”

“저도 그래야 할 거 같네요.”

분명 목소리도 부드럽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도 좋은데, 이상하게 고래 싸움에 낀 것만 같아 음식이 소화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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