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55화
[안녕하세요. SG 엔터테이먼트입니다.]
마침내 SG 엔터테이먼트의 공식 입장이 나왔다.
SG 엔터테이먼트가 이 모든 일의 배후라는 글이 심심찮게 커뮤니티에 나왔었는데, 김영호 대표가 직접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었다.
[최근 붉어진 의혹에 대해 귀사는 내부 조사를 실시했고, 마케팅팀에 있는 일부 직원들이 벌인 일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귀사는 결코 이번 일을 승인하지 않았으며, 해당 직원들이 회사와 상의 없이 벌인 일입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을 해고 처리했고, 회사에 막중한 피해를 입힌 만큼 피해보상도 함께 받을 예정입니다.]
SG 엔터테이먼트는 회사에서 일하는 직원들 몇몇이 독단적으로 행한 일이며, 결코 귀사와 관련이 없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이런 글을 과연 누가 믿어 주겠는가.
-누가 봐도 꼬리 자르기 같은데.
-이걸 입장문이라고 밝힌 거임? 그냥 자기들이 했다고 이실직고하는 거 같네.
-ㅋㅋㅋㅋㅋ몇몇 직원들이 독단적으로 이런 일을 벌였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회사에서 월급 받아 먹는 직원들이 자기 돈 들여서 일을 꾸민다? 거짓말 좀 작작해라.
-이제 SG 엔터테이먼트는 영원히 안녕이다. SG 엔터랑 연결된 연예인은 무조건 거른다.
SG 엔터테이먼트는 자기들이 내놓은 입장문이 오히려 더 큰 반감을 불러 일으키는 것을 보고 황급히 삭제를 했다. 하지만 이미 여러 커뮤니티에 퍼진 상태라 삭제해도 소용이 없었다.
회사에 전화가 빗발치는 것은 물론, SG 엔터테이먼트에서 활동 중인 연예인에 대한 광고를 끊겠다는 기업의 통보도 줄줄이 이어졌다.
“이진석 가수 콘서트 티켓도 갑자기 환불 요청이 쏟아지는 중이랍니다.”
“이번에 개최 예정 중이었던 사인회도 취소 요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습니다.”
김영호 대표는 직원들의 보고를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괜히 입장문을 내놓았나 싶었으나, 장연욱과 계약을 한 것이 있으니 무작정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일단 틀어막을 수 있는 것부터 다 틀어막아. 그런 거 하나 제대로 못 막으면 너희들이 여기서 일할 자격이 없는 거야. 알겠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다들 옷 벗을 각오해.”
이게 다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괜히 발등에 불이 떨어진 직원들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다들 돌아가서 일해. 최대한 손해 보지 않는 쪽으로 해결하고. 어차피 이거 길어봐야 한 달도 못 가. 우리나라 사람들 몰라? 금방 다 까먹어. 새로운 가수랑 아이돌 그룹 내놓으면 정신 못 차릴 거다.”
“네.”
직원들이 다 나가고 나서 김영호 대표는 담배를 하나 물었다.
그래. 이번에는 이렇게 당했지만, 다음에는 어림도 없다.
반드시 이 수모를 갚아 주리라.
잠깐 회사가 흔들릴 순 있어도 자신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SG 엔터테이먼트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던 것도 잠시.
“이, 이보세요!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니깐요!?”
밖에서 들리는 소란 소리.
이윽고 허락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면서 경찰들이 우르르 안으로 들어왔다.
“이, 이게 뭔······.”
“김영호 씨. 당신을 불법 도박 및 성매매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권리가 있습니다.”
“뭐, 뭐야? 당신들 뭐야!”
“뭐긴요. 딱 보면 모릅니까? 당신 잡으러 온 경찰이지.”
그제야 김영호는 상황 판단이 됐다.
“장연욱 이 개새끼가······!”
장연욱 그놈이 자신을 속인 것이었다.
* * *
카페에 있는 TV에 김영호 대표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끌려 나가는 것이 보도되고 있었다.
“계약상으로는 문제가 없습니다. 저번에 지시하신 대로 김 대표에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부 자료만 보여줬고 나머지는 전부 검찰에 미리 넘긴 상태였으니까요. 정말 좋은 계획이었던 것 같습니다.”
난 계약대로 약속은 지켰다.
김영호에게 보여줬던 건 극히 일부의 자료들.
그 자료들만 넘기지 않고 나머지는 전부 다 검찰에 넘긴 상태였다.
“김영호 저 인간 몇 년 살고 나올까요?”
“어떤 로펌을 쓰느냐에 따라 다를 겁니다. SG 엔터테이먼트 정도면 정치 쪽에 발을 꽤 깊이 담갔을 거예요. 아마 제 발 저린 사람들이 조금은 도와주지 않을까요? 김영호가 혼자 죽으려 하진 않을 테니까요.”
“그 말은 집행 유예?”
“보통 이런 패턴은 첫 재판 때 5년을 받고 2심 때 3년. 마지막 대법원에서 집행 유예를 받습니다. 재벌이나 유명 기업인들이 항상 이런 식으로 빠져나갑니다. 김영호도 최대한 재판을 길게 끌어서 여론이 잠잠해질 때를 노려 대법원에서 집행 유예를 맞으려 할 겁니다. 그게 기본 로펌 전략이기도 하고요.”
같은 로펌 회사라서 그런지 아는 게 많다.
즉, 김영호는 길게 재판을 받는 대신, 결국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전 저 양반이 그래도 감방 구경은 한번 했으면 하는데요.”
“더 파고 들어볼까요? 다른 죄목을 붙여서 집행 유예로 빠져 나와도 결국 다시 들어가게 만드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대신······.”
“대신?”
“추가금이 좀 많이 들어 갑니다.”
이상하게 저런 말을 해주는 게 더 믿음이 갔다.
돈을 받은 만큼 일을 해주는 것만큼 신뢰가 높은 게 또 어디 있을까.
“제가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돈은 많아요. 김영호 저 양반이 밖으로 나오면 또 무슨 짓을 벌일지 뻔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오래 감옥에서 썩는 게 좋겠죠. 할 수 있는 만큼 다 해주세요.”
“예, 고객님.”
이효지 실장은 짐을 챙기고 일어나 밖을 나가기 전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아! 예선 잘 치르시길 바랍니다.”
“말씀드린 적도 없는데 저에 대해 아는 게 많으시네요.”
“고객님에 대해 알고 미리 옵션을 드리는 것이 저희의 업무니까요.”
이효지는 싱긋 웃으며 카페를 나섰다.
그 말에 나도 번뜩 정신이 들었다.
그래. 일단 하나가 잘 끝났으니, 다시 나도 할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예선 통과가 우선이다.
* * *
“와. 이거 실화야?”
“레너드 같은 거물이 대체 한국은 왜 오는 거지? 아직도 믿기지가 않네.”
공항에서 대기 중인 직원들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았다.
레너드 베이나르 지휘자.
독일 음악계의 거장이자, 이번 쇼팽 국제 콩쿨 심사위원 중 하나로 뽑힌 그는 유럽에서 심사를 보는 것이 아닌 특이하게도 한국에 와서 심사를 보게 됐다.
쇼팽 콩쿨 본선은 폴란드에서 하게 되는데, 예선은 워낙 참가자들이 많기 때문에 국가별로 심사위원들을 뽑아서 보낸다.
그런데 보통 아시아 국가에는 딱히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들이 와서 심사를 보기도 하고 한국인들을 심사위원으로 뽑아 놓는데, 이번에는 웬일로 세계적인 지휘자가 오게 되었다.
덕분에 직원들도 초긴장 상태였다.
“레너드 씨. 한국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기다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공항에 도착한 레너드는 대기 중인 직원들과 만나 호텔로 이동했다.
“예선은 이틀 뒤라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신가요?”
“예선 명단을 보고 싶습니다. 준비해 주실 수 있습니까?”
“아, 네. 물론입니다.”
예선에 참가하는 사람들만 1,500명.
그 많은 명단을 일일이 확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명단을 원한 것은 꼭 확인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었다.
“휴. 다행히 있군. 괜한 발걸음을 할 뻔했어.”
“예? 혹시 찾고 계시는 예선 참가자라도 있으신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만 쉬고 싶군요.”
“아, 네. 그럼 편안히 쉬십시오.”
레너드는 직원이 나가고 나서 룸서비스로 시킨 와인을 한 잔 마신 뒤 이어폰을 끼고 침대에 누웠다.
그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곡은 다름 아닌 장연욱이 작곡한 검은 우주의 OST였다.
* * *
“진짜야? 정말 레너드 베이나르가 왔어?”
“진짜라니깐? 원래 심사위원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레너드가 한국에 가보고 싶다면서 바꿨대.”
쇼팽 국제 콩쿨 예선장.
다들 긴장감에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대기실 분위기다. 그런데 오늘은 다들 호들갑을 떠느라 정신이 없었다.
“내 연주를 레너드가 듣고 평가를 한다고? 이거 나중에 내 스펙에 적어 놔도 되는 거 아니냐?”
“내 평생 레너드를 실물로 보는 날이 오네.”
“아. 실수하면 어떡하지? 갑자기 엄청 떨린다.”
레너드 베이나르.
독일 출신 지휘자로, 항상 TOP10 지휘자들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오늘 예선 심사위원이 되었다.
이거, 예선이 생각보다 빡세겠는데?
세계적인 지휘자들일수록 특이한 점이 많다.
그만큼 완벽주의자들도 많고 각자 다른 음악 스타일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훌륭한 연주자라고 해도 본인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배제해 버리기도 한다.
그것이 지휘자의 권위이고 파워였다.
즉, 오늘 심사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현재 심사위원으로 차출된 한국인 음악가들도 꽤 있는 것으로 아는데, 분명 레너드의 입김이 가장 강하게 작용할 공산이 크다.
다른 심사위원들이 다 좋게 평가를 해줘도 레너드가 낮은 점수를 주면 그 사람은 그냥 탈락이라는 것이다.
“으으- 떨려. 너무 긴장되는데 동시에 너무 기대 돼.”
그런데 여기 대기실 사람들은 딱히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이들은 그저 세계적인 지휘자 앞에서 자신의 연주를 들려줄 수 있다는 기대감에 가득 차 있었다.
나만 너무 계산적으로 생각했나.
“10분 뒤에 예선이 시작될 예정입니다. 각자 순번은 알고 계시죠?”
“네~”
하필이면 난 거의 마지막 차례였다.
그냥 빨리 끝내고 쉬웠으면 하는데 말이다.
거기다 레너드에 대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식으면서 차츰 내게 찌릿한 눈동자가 몰리기 시작했다.
“진짜 욕심도 많지.”
“그러니깐. 작작 좀 하지.”
“연예인이 무슨 콩쿨이야.”
“그만큼 자신 있다 이거지. 서울대 학생들을 혼자 다 발랐다며.”
일부러 들으라고 그러는 건지 수군 거리는 소리가 전부 내 귀에 들어왔다.
그래. 이게 공인의 삶이지.
이런 일일수록 적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어차피 순번도 거의 마지막이라 대기실에 가만히 앉아 있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난 숨을 돌리기 위해 잠깐 대기실을 나왔다.
그런데 대기실 밖에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선글라스에 마스크, 거기다 모자까지.
최대한 스스로의 정체를 숨기려 노력했지만, 쭉 늘어난 기럭지와 굴곡진 몸매는 아무리 큰 옷을 입어도 잘 가려지지 않았다.
난 몰래 그 뒤로 다가가 모자를 툭 때렸다.
“누나. 내가 여기 오지 말랬지.”
“헉! 어, 어떻게 알았어?”
“이런 적이 한두 번이어야지. 오늘은 예선이라서 누나 참관도 못 해.”
그러자 누나가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그래도 내가 안 왔으면 섭섭해했을 거면서. 누나가 응원하러 여기까지 와 주니까 좋지? 응?”
“집이나 가. 오늘 오래 걸릴 거야.”
“괜찮아. 카페 가 있으면 돼.”
애써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누나를 보니 무거웠던 마음이 한꺼번에 풀린 기분이 들었다.
“음?”
누나랑 잠시 실랑이를 벌이고 있던 때였다.
극진한 호위를 받으며 예선장으로 들어가려는 백발의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도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갑자기 제자리에 멈추더니 나와 눈을 마주쳤다. 그런 뒤 희미한 미소를 보이면서 예선장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
방금 전 그 사람이 설마 레너드 베이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