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51화
“너에게 이 목소리가 닿기를 바랄게~”
아침 8시.
이른 시간부터 나는 피아노 연습을 위해 강당을 찾았다.
보통 강당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시간은 10시였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피아노 소리는 물론, 누군가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같이 들려왔다.
참 아름다운 목소리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동시에 오싹한 생각도 같이 들었다.
가끔 피아노실이나 이런 강당에서 귀신이 나와 혼자 노래를 부른다는 괴담 같은 게 떠돌지 않던가.
나는 슬며시 강당 문을 열고 빼꼼 안을 들여다보았다.
“헐······.”
놀랍게도 강당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뭐 하세요?”
“헉!”
아니. 아무도 없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김지혜를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그녀는 날 매우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노려봤다.
“아, 안에서 노랫소리가 들려서요.”
“노랫소리요?”
“네. 그래서 혹시 귀신이 부르는 건가 싶어서 힐끔 살펴본 건데······.”
“귀, 귀신이요?”
김지혜는 곧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안 그렇게 생겼는데, 혹시 귀신 무서워해요?”
“귀신 안 무서워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호호. 그러셨구나. 저는 연욱 씨가 세상에 무서울 거 하나 없는 사람인 줄로 알았거든요.”
“저 공포영화도 못 보는 사람입니다. 무서운 얘기는 더더욱 못 듣고요.”
자연스레 분위기가 풀어졌다.
“그런데 아까 노래 불렀던 게 그쪽이세요?”
“네. 좀 부끄럽네요. 아무도 없는 줄 알고 불렀는데.”
“일부러 들으려고 한 건 아닙니다. 오늘 좀 일찍 나와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사람들 몰릴 때 나가려고 했거든요.”
“그러셨구나. 이해해요. 저라도 사람들이 부담스럽게 쳐다보기만 하면 연습에 집중이 안 될 것 같아요.”
딱히 그렇진 않다.
내가 관종끼가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사람들이 감탄하며 쳐다보는 걸 즐기는 중이었다. 하지만 이걸 말했다가는 내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이상한 놈으로 전락하겠지.
그리고 지금은 피아노 연습보다 다른 것에 관심이 생겼다.
“혹시 아까 부르던 거, 저한테 다시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예?”
“한 번 더 들어보고 싶어서요. 부탁드려요.”
오랜만에 듣는 매력적인 목소리였다.
강당 밖에서도 아름답게 들렸는데, 가까이에서 들으면 얼마나 더 감미로울까.
“어······.”
김지혜는 당황했는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보니, 내가 괜한 부탁을 했나 싶었다.
“저 진짜 잘 부르는 거 아닌데.”
“괜찮아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들려주세요. 만약 정말 부담이 되면 안 하셔도 돼요.”
잠시 고민하다 그녀는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짧게 심호흡을 한 뒤 건반을 천천히 눌렀다.
“너에게 난~ 항상 밝은 빛처럼~”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노래를 같이 부를 땐 버벅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김지혜는 오랜 연습을 했던 것인지 피아노와 노래, 전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피아노를 칠 때 자신만의 버릇이 이따금 눈에 띄었다.
그렇게 노래 한 곡이 끝난 뒤.
“와아~ 정말 잘 부르신다.”
“저, 정말요?”
“네. 요근래 들어본 목소리 중에 제일 좋았어요. 타고난 음색이네요. 그런데 제가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될까요?”
“아, 네.”
“이번에는 가요 말고 클래식 곡 하나만 연주해 주시겠어요?”
김지혜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클래식 곡 하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른 건 모차르트 곡으로, 통통 튀는 건반 터치와 리듬이 특징이었다.
나는 그녀의 클래식 곡을 들으며 왜 내가 그동안 연습을 하면서 김지혜의 연주가 귀에 안 들어왔는지 이해가 됐다.
목소리와 함께 들었을 땐 피아노 연주 소리가 매우 아름답게 들렸는데, 지금은 뭔가 빠진 듯한 기분이었다.
괴리감이라고 해야 할까.
“어, 어땠어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이번에도 내가 폭풍 칭찬을 해주길 바라는 얼굴이었다.
보통 이럴 땐 연주가 좋았다고 칭찬하는 게 옳으나, 이상하게 음악에서만큼은 내 본심이 툭 튀어나가고 말았다.
“음.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노래를 부르셨을 때랑 클래식을 연주했을 때랑 차이가 많이 나네요.”
“네······?”
“피아노 실력이 떨어진다는 게 아니에요. 쉽게 말해서 버릇이죠. 지혜 씨는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같이 부를 때의 버릇이 클래식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어요. 그래서 클래식 곡을 들으면 뭔가 파츠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을 준다고 해야 할까요?”
그 말에 김지혜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교수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제가 연주를 하면 뭔가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아마 목소리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는 방법을 많이 쓰면서 그런 부작용이 생긴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럼 어떻게 고쳐야 하죠?”
“음-. 그런 버릇은 정말 고치기 힘들어요. 막상 고친다고 해도 남들만큼 감정 전달이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리고 피아노 연주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잖아요? 그걸 각자 맞는 스타일이 있으니, 무작정 바꾸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피아노 연주에는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다.
클래식 곡을 연주하기 좋은 스타일이 있고, 재즈에 적합한 스타일이 있는 반면, 가요에 잘 녹아드는 연주 스타일이 있다.
김지혜는 누가 봐도 가요에 적합한, 그것도 본인의 목소리를 내며 연주하는 것에 특화가 되어 있다.
남들은 가지기 힘든 연주 스타일이고, 나조차도 김지혜처럼 맛깔 나게 연주를 하며 동시에 목소리를 아름답게 낼 자신이 없다.
즉, 이것이 김지혜의 재능이라는 것이다.
“전 서울대 학생이잖아요. 콩쿨에 나가려고 준비 중이고, 클래식 곡을 누구보다 잘 쳐야 해요. 그런데 바꾸면 안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처음에는 밝았던 목소리가 점점 절박하게 변해갔다.
어쩌면 본인도 스스로의 한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더욱 절박한 목소리를 내는 것만 같았다.
“지혜 씨. 제가 세상을 오래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길이 꼭 하나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에요. 이미 먼 길을 왔어도 충분히 우리는 다른 길로 나갈 수 있어요.”
나는 김지혜에게 명함을 하나 건넸다.
“저는 지혜 씨에게 굉장한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스스로의 재능을 찾고 싶다면 여기로 전화해 주세요.”
“······전화를 하면요?”
“저희 소속사에서 오디션을 볼 수 있으실 겁니다.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나는 명함을 남기고 나서 강당을 나섰다.
오늘은 아무래도 연습을 쉬어야 할 것 같았다.
* * *
김지혜는 빨대로 커피를 쭉쭉 마셔대며 앞에 놓인 명함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으으-.”
그런 그녀의 뒷모습이 안타깝게 보였는지 동기들이 다가왔다.
“김지혜. 여기서 혼자 뭐해? 피아노 연습 한창 할 시간 아니야?”
“응? 아. 그게······.”
그녀가 강당에서 있었던 일을 말하자 동기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뭐?! 장연욱이 명함을 주고 갔다고?”
“와. 대박. 너 지금 장연욱한테 찍힌 거니? 아니지. 이런 건 찜이라고 해야 하나?”
“좋겠다. 이거 진짜 잘 된 거 아니야?”
동기들은 전부 잘된 일이라며 말했지만, 김지혜한테는 그렇지 않았다.
“이게 잘된 일이라고? 내가 지금까지 해온 걸 전부 다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는데?”
“뭐······ 그렇다고 네가 피아노를 그만둘 건 아니잖아.”
“그래. 장연욱이 예전에 우리 선배 오케스트라 단원들 데려다가 구워삶는 거 못 봤어? 내가 교수님 말은 그러려니 하는데, 장연욱이 그렇다고 하면 왠지 믿음이 갈 거 같더라.”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피아노에는 재능이 없다 이거지?”
동기들이 머뭇 거렸다.
김지혜는 그런 동기들에게 부탁했다.
“솔직하게 말해줘. 너희들은 내 피아노 연주가 별로니?”
“음-. 별로라고 할 순 없지. 실력이 별로인데, 어떻게 이 학교를 들어왔을 수 있겠어. 하지만 나도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넌 진짜 목소리가 좋아. 특히 노래 부를 때!”
“맞아. 저번에 같이 노래방 갔을 때 기억나? 우리가 네 노래 한번 듣고 나서 예약도 안 하고 네가 노래 부르는 것만 구경했잖아.”
“응응. 그래서 우리가 너보고 차라리 피아노 때려치고 가수하라고 말했었고.”
농담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동기들의 진심이었다.
“네가 피아노도 잘 치긴 하지만, 연욱 씨 말대로 남들에 비해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전체적인 실력이 떨어진다면 차라리 지금이라도 이 좋은 기회를 잡아 보는 게 낫지 않겠어?”
매우 친한 사이들이라 그런지 조언을 하는 데에 있어 스스럼이 없었다.
모두 진심으로 지혜가 잘 되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만약 우리가 네 노래 실력을 몰랐으면 절대 포기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네 목소리고 무척 좋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나는 이 기회를 잡는 게 맞다고 생각해.”
“그래. 거기다 너한테 명함을 준 사람이 장연욱이잖아? 그 사람이 좀 대단한 사람이야? 그 어린 나이에 우리나라 최고의 아티스트라고 불려. 그런 사람이 네게 명함을 줬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야.”
“그리고 피아노를 바로 포기하라는 게 아니잖아. 한번 시도해 보고 결정해 보는 게 어때?”
친구들의 말을 듣고 나니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래. 어차피 지금 당장 피아노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디션을 보고 나서 결과에 따라 결정해도 되는 일이지 않은가.
괜히 여기서 혼자 고민하고 있던 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모두 고마워.”
지혜는 곧바로 명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윽고 스피커 너머로 강당에서 들었던 그 멋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네. 장연욱입니다.
“안녕하세요. 저 김지혜에요.”
- 아, 네. 혹시 결정하셨나요?
“네! 그······ 오디션을 한번 봐보도록 하겠습니다.”
장연욱은 잠시 말이 없었다.
혹시 ‘뭔가 잘못을 한 건가?’라는 생각을 할 때쯤.
- 장소와 시간은 제가 문자로 보내드리겠습니다. 큰 결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온 문자에는 스케쥴이 3일 뒤로 잡혀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 정도는 시간을 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3일이면 뭐 하나 제대로 준비할 수도 없는 시간이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김지혜는 강당이 아니라 개인 피아노실로 빠르게 달려갔다.
노래를 부르면서 피아노를 쳐야 하니, 강당에서는 할 수 없는 연습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묘한 일이 벌어졌다.
피아노실로 달려가는 내내 이상하게 가슴이 뛰고 행복한 감정이 고양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피아노를 연습할 때면 항상 무미건조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만이 가득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희망이 생겼다.
여기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무언가가 될 것 같다는 그 희망.
수많은 음악 천재들을 이곳에서 만나 좌절의 연속을 겪고 있었던 김지혜는 그 잊어버렸던 희망을 다시 찾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