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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50화 (150/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50화

서울대 학생은 아니지만, 나는 거의 매일 서울대 강당으로 와 피아노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날이 강당에 모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다.

유독 내가 연주를 할 때면 갑자기 시끄러웠던 피아노 소리가 전부 작아지고 따가운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다.

“절반은 거기서 연습하고, 나머지 절반은 개인 피아노 방 하나 줄 테니까, 거기서 연습해라.”

“그냥 개인 방에서 연습하면 안 될까요?”

“안 돼.”

“왜요?”

“교수들이 널 좀 붙잡아 달랜다.”

교수들이 날 붙잡아?

저번에는 이창호 교수가 날 강당에 데려왔다고 아주 난리를 쳤다고 들었다.

그거 때문에 이 교수가 나를 얼마나 괴롭혔던가.

그런데 이제 와서 날 붙잡는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너 때문에 포기하고 때려친 놈들도 있는 반면, 널 일종의 교사처럼 여기고 있는 학생들도 있다더라.”

“교사요?”

“그래. 네 연주를 감상하면서 자신에게 뭐가 부족한지 깨달아 가는 거지. 쉽게 말해서 너한테 배우고 있다는 얘기야. 서울대 나올 정도의 실력이면 굳이 개인 레슨을 해가며 문제점을 말해 주기보다는, 그냥 연주로 보여 주는 게 더 나을 때도 있어.”

그러니까 나더러 서울대 학생들의 교육 대상이 되라는 거다.

“음-.”

“왜?”

“그럼 레슨비 20만 원씩만 받는다고 전달해 주세요.”

“야! 돈도 많은 게.”

“흐흐. 갑자기 억울하잖아요. 처음에는 그렇게 시비 걸던 양반들이 그 자세로 나오니까.”

“이게 다 내 잘난 제자의 능력이지.”

“아이고. 아닙니다. 이게 다 스승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서로 주고받으며 덕담을 이어 가던 중이었다.

똑똑-.

“교수님. 2학년 김지혜라고 합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아, 지혜구나. 들어와.”

“넵!”

김지혜라는 학생이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저번에 말씀하신 리포트를 제출하려고 왔습니다.”

“아참. 그랬지.”

이창호 교수는 김지혜가 건네주는 리포트를 받고 한 장씩 넘겨 가며 확인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 김지혜는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잘 쓴 거 같네. 일단 다시 확인해 보고 연락 줄게.”

“네, 교수님.”

김지혜가 나가고 나서 내가 말이 없자 이창호 교수가 내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왜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됐어? 혹시 지혜 때문이냐?”

“예? 아,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라서요.”

“강당에서 봤겠지. 지혜도 콩쿨 준비하거든. 아니면 지혜가 너무 예뻐서 눈이라도 돌아갔냐?”

확실히 예쁜 얼굴인 건 맞았다.

그래. 누군가 했더니 강당에서 항상 매의 눈으로 날 쳐다보던 그 학생이었구나.

그 정도로 빤히 쳐다봤으면 말 한번 걸어 볼 만도 한데, 한 번도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치열한 경쟁의식 때문에 서로를 견제만 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내가 강당에 있으면 30분에 한번씩 사람들이 말을 걸어온다.

음악에 대한 해석을 묻기도 하고, 세세한 연주법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때마다 나는 친절하게 답을 해주며 이런저런 교류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 그것 때문에 교수들이 날 붙잡는 것이리라.

하지만 저 김지혜라는 학생은 매번 날 지켜만 볼 뿐, 말을 거는 일은 없었다.

“한 달 뒤에 예선인 거 알지? 지금부터 착실하게 연습해. 만약에 예선에서 떨어지면······.”

이창호 교수는 순간 얼굴이 빨개졌다.

“으.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학교에서 얼마나 조리돌림을 할지.”

“걱정하지 마세요. 예선은 꼭 통과할 테니까요. 문제는 본선이죠.”

예선까지는 자신이 있었다.

서울대 교수들이 인정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예선 이후가 문제였다.

본선부터는 세계 각국에서 모이는 쟁쟁한 피아니스트들이 진을 치고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가자. 오랜만에 소고기나 먹으러 가게.”

“아. 죄송해요. 제가 오늘 선약이 있어서.”

“허-. 스승을 만나러 오는데 선약을 잡았어?”

“정기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것 때문에 그래요.”

“나참. 혹시 여자냐?”

“네.”

그러자 이창호 교수가 미간을 좁혔다.

“젠장. 남자라고 했으면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여자라고 하니까 할 말이 없네. 얼른 가. 이 녀석아.”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30분.

좀 빠듯하다.

늦으면 한 소리 들을 거 같은데.

* * *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공인인 만큼 평소 개인적인 만남 가질 땐 마스크와 모자는 필수였다.

연예인병에 걸렸냐고 뭐라 할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잠깐 방심하고 마스크를 벗고 나가게 될 경우, 금방 사람들이 알아봐 앞으로 갈 수가 없을 만큼 포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가방에 담고 다니는 마스크와 모자를 꺼내 장비하고 카페에 들어섰다.

난 도도하게 커피를 홀짝이고 있는 여성 앞에 앉았다.

“제가 좀 늦었나요?”

“네. 3분이나 늦으셨네요.”

칼 같은 답이다.

“미안합니다. 제가 일이 좀 있어서.”

“서울대에서 콩쿨 준비를 하고 계시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린다고 해도 불만은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저희 회사 고객이시니까요.”

내가 1시간을 늦어도 이 사람은 끝까지 여기서 기다려야만 한다.

지금은 내가 갑이고 상대가 을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매달 수천만 원씩 돈을 주는 갑이라면 하루종일 기다려도 불만 하나 내놓지 못할 것이다.

“항상 저희 회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효지 실장은 H&A 법률 회사의 직원이다.

법률 회사라고 하면 보통 로펌을 떠올리는데, 여기도 표면적으로는 로펌이 맞다. 다만, 이들이 하는 일은 일반 로펌과 다르다.

바로 누군가를 뒷조사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누구에게 뒷조사를 당하고 있는지도 귀신같이 알아내는 회사다.

“그럼 보고부터 해주시죠.”

이효지 실장은 내게 서류와 사진들을 내놓으며 보고를 시작했다.

“최근 2주일 동안 파파라치 숫자가 부쩍 늘었습니다. 보통 5~6명이 전부였는데, 지금은 15명. 많으면 20명까지 늘어난 상태입니다.”

“저한테요?”

“아니요. 장혜나 씨한테요. 오히려 고객님에게는 달라붙는 파파라치 숫자가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아니라 혜나 누나한테?

“예. 노골적으로 많은 사람이 붙었고 기자들도 혜나 씨의 취재를 갑자기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특히 그 기자들의 신상에 유사성이 있었습니다.”

“어떤 유사성이요?”

“저번에 ‘레이스’가 걸그룹으로 데뷔를 했을 때 고객님을 계속해서 공격했던 기자들이었습니다. 거기다 그들은 여러 기획사에 뒷돈을 받은 정황이 있고요.”

나를 공격했던 기자들.

내가 H&A 회사와 계약을 하고 그들을 고용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무차별적인 언론의 공격.

여러 기획사가 작정하고 언론과 함께 물밑 작업을 들어갈 동안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앉아 있다가 그냥 처맞기만 했다.

그 상황이 너무 무기력하고 억울했고, 나뿐만이 아니라 누나에게도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해 미리 방어를 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수단이 없던 와중에 H&A가 내게 먼저 접근해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 주었다.

말 그대로 이들은 로펌이면서 동시에 흥신소였다.

“그래서 저희가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지 자세히 조사해봤습니다. 그리고 파다 보니 SG 기획사 대표 김영호의 이름이 나오더군요.”

김영호 대표라.

몇 번 모임을 통해 만나본 사람이다.

그때마다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덕담을 하던 양반이 뒤에서는 내 뒤통수를 후려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마 고객님에 대한 뒷조사를 하다가 도저히 나오는 게 없으니 혜나 씨로 타깃을 바꾼 것처럼 보입니다.”

“제 뒷조사를 했다고요? 거기서?”

“네.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고객님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파헤쳐 봤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종합해 조사를 해봤지만, 트집을 잡을 만한 건 없었습니다.”

다른 회사도 아니고 여기서 내 뒷조사를 했다는 게 뭔가 섬뜩했다.

“저희 누나는요?”

“혜나 씨 쪽은 방비가 필요할 듯해 보입니다. 저쪽에서 단단히 작정한 것처럼 보여서요. 그렇지 않아도 요즘 연예계가 마약 사건 이후로 논란인 게 미투이지 않습니까?”

“허위 미투로 누나를 몰아갈 수도 있다는 거네요?”

“네. 이미 저희가 그쪽 직원 하나를 붙잡아서 얘기를 나눠 봤습니다.”

“그쪽 직원을 붙잡아서···얘기를 나눴다는 건 분명히 합법적인 거겠죠?”

“······예. 물론입니다.”

대답이 살짝 늦는 게 전혀 합법적인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그쪽에서는 혜나 씨를 타겟으로 고객님까지 함께 끌어 내리려는 것 같습니다. 이미 여러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벌써 그림이 그려진다.

기획사에서 많이들 쓰는 방법이지 않은가.

“종종 쓰던 방법입니다. 그럴싸한 구설수를 만들어 여론을 안 좋게 만들면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해당 연예인의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게 되니까요.”

“후-. 좀 잠잠한가 싶더니.”

레이스가 크게 성공을 하고 나서 잠잠하기에 이제 그냥 포기한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사실은 뒤에서 칼을 갈며 나와 누나를 찌르려고 했던 것이다.

“이럴 땐 보통 어떻게 합니까?”

“이런 건 자주 있는 일이라서 저희도 고객님에게 영향이 가지 않도록 최대한 방어 준비를 해놓습니다. 이미 여러 고객님이 저희 회사 덕분에 위기를 벗어났고요.”

“대충 언론이나 SNS 통해서 방어를 한다는 거네요?”

“맞습니다. 언론과 SNS를 통해 허위 미투로 만들어 내고 정식으로 고소를 진행한다면 대부분 잘 무마가 됩니다. 더군다나 두 분은 애초에 잘못하신 게 없기 때문에 더 빨리 끝날 겁니다.”

“잘못한 게 있어도 잘못이 없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리네요.”

“예. 그게 저희 일이니까요. 그래서 비싼 돈을 주고 저희와 계약을 하신 거 아니세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일방적으로 맞기만 하는 건 너무 억울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잘 넘긴다고 해도 또 다시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

“전 그냥 방어만 하는 서비스는 별로네요. 그렇게 당하기만 하면 억울해서 어떻게 삽니까?”

“······그럼 원하는 게 따로 있으신가요?”

“추가금은 원하는 대로 드리죠. 대신, SG 기획사 대표 김영호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주세요. 그리고 그쪽 돈을 받고 움직이는 기자들 전부요.”

그러자 이효지 실장이 잠깐 멈칫하다 대답했다.

“김영호 대표 정도면 그쪽에서도 스스로 흔적을 지우려고 사람을 따로 쓸 겁니다.”

“오. 그런 것도 있나 보네요.”

“세상이 워낙 발달하다 보니 흔적을 지우는 것도 기술이라서요. 그만큼 비싼 돈이 들고요.”

“그 말씀은 못 하겠다는 건가요?”

“아뇨.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비싼 돈이 듭니다.”

돈은 이미 차고 넘치도록 많았다.

그리고 나와 혜나 누나를 지키는 일이라면 얼마든 쓸 각오가 되어 있었다.

“돈은 얼마든지 쓰셔도 됩니다. 저한테 다 청구하세요. 결과로 보여 주시면 전부 다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이효지 실장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대한 빨리 알아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고객님.”

고객님에 힘을 주는 목소리가 왠지 믿음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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