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9화
“어흐. 떨려.”
연습생들이 연습실에 옹기종기 모여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지나가던 강 대표는 연습생들의 기이한 행동에 잠깐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왜들 그래? 꼭 화장실 가고 싶은 것마냥.”
“아, 대표님. 안녕하세요!”
10명의 남자 연습생들이 허리를 접었다.
“어어. 그래. 근데 왜들 이러고 있어?”
“아. 다름이 아니라 오늘 장연윽 PD님한테 레슨을 받는 날이라서요.”
“아~ 그래?”
강 대표는 재밌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연욱이한테 레슨 받아본 적 없냐?”
“여기 4명 빼고는 한 번도 없습니다.”
“흐흐. 그래? 말이 레슨이지, 사실은 오디션에 가깝긴 해.”
소속사 내에서 장연욱에게 거쳐 간 연습생들은 여자든 남자든 질질 짜면서 돌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런 소문이 점점 과장되게 부풀려져 장연욱이 공포의 대상으로 변모한 것도 있지만, 소문이 완전히 잘못되었다고 볼 수도 없었다.
이미 장연욱에게 잘려 나간 연습생들 숫자만 20명이 넘는다.
“대표님. 혹시 어떻게 하면 안 잘리고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요? 장연욱 PD님이 좋아하는 게 따로 있나요?”
“음. 글쎄. 나도 몰라.”
“아. 제발요.”
“진짜야. 나도 몰라.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성실하게 열심히 노력하면 인정을 해준다는 거지.”
물론 열심히 한다고 전부 다 되는 것은 아니다.
장연욱 그놈은 본인 스스로가 천재적인 재능을 가져서 그런지, 오직 노력만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노력과 재능이 동시에 따르는 사람을 눈여겨본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점에서는 대표인 자신보다 훨씬 더 나았다.
음악도 잘하는 놈이 보는 눈까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괜히 꼼수 부리지 마. 정직하게 해. 연욱이는 꼼수 부리는 놈을 귀신같이 잡아내. 그냥 못하면 못한다고 솔직히 말하고. 알겠지?”
“네!”
“뭐, 다들 살아남길 바란다. 연욱이가 한번 커트시키면 나도 어쩔 수 없이 잘라내야 하거든.”
“······.”
저게 진짜 응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연욱이 눈에 한 번 들면 데뷔는 보장해 줄 수 있어. 우리 ‘레이스’가 얼마나 잘 나가고 있는지 너희들도 보고 있잖아. 그러니까 최선을 다해 봐.”
강 대표는 조언을 남기고 연습실을 나섰다.
과연 저기서 몇 명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레이스’에 이은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
레이스가 빵 뜨면서 연습생들이 대거 몰렸다. 하지만 연욱이가 아직 어떤 멤버를 뽑아 남자 아이돌을 만들 것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번에도 연욱이가 거하게 사고 한번 쳐줬으면 좋으련만.
* * *
“5년 동안 연애 금지인 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
“내가 봐도 좀 아닌 거 같긴 해.”
오늘은 작업실에서 누나와 같이 햄버거를 먹으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연습생들이 들어올 테고, 보이 그룹 데뷔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얼른 밥을 먹어 둬야 했다.
“잠깐만.”
누나는 햄버거를 내려놓고 나를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너, 나 몰래 연애한 적 있어?”
“없는데.”
“흠-. 이 얼굴에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건 믿음이 안 가는데.”
“그럼 누나는?”
“응? 나도 안 해봤지.”
의심스러운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누나도 그 얼굴에 연애를 한 번도 안 해봤다고 하면 사람들이 과연 믿어 줄까?”
“나도 억울하거든! 괜히 안 했어. 주변에 좋은 남자가 없기도 했지. 특히 정성우 오빠가 그렇게 잡혀 들어가는 거 보고 남자들이 다 음흉해 보이는 걸 어떡해! 그러니까 너라도 해.”
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연애한다고 하면 하루 종일 방해할 거면서.”
“오~ 나를 아주 잘 알아. 그럼 너도 내가 연애하면 방해할 거 잖아. 옛날부터 남자들이 접근하는 걸 다 막았으면서.”
“뭐······ 이제 안 그럴게.”
“응?”
내 답이 의외였는지 누나가 되물었다.
“뭘 안 그래?”
“누나 연애하는 거 이제 방해 안 한다고. 굳이 방해할 이유도 없고. 대신, 크게 사고나 치지 마.”
“······.”
누나는 괜히 나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왜?”
“됐어. 나 진짜 남친 만들어 올 거니까, 알아서 해.”
“그래. 기대할게.”
그러자 먹고 있던 햄버거를 던져 놓고 누나는 작업실을 나가 버렸다.
괜히 놀렸나.
진짜 만들어 오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도 잠시.
“안녕하십니까, PD님!”
연습생들이 약속 시간에 맞춰 우르르 들어왔다.
총 10명의 멤버들로, 다른 PD들이 훈련을 시키고 있던 연습생들이다.
그 많은 연습생 중에서 내가 선별해서 작업실로 불렀다.
물론, 이들을 전부 다 데뷔시킬 생각은 없다.
적으면 4명. 많으면 7명까지.
아니. 사실 정말 다 마음에 들면 이 10명 전체를 데뷔시킬 생각도 하고 있다.
“반가워요. 아마 몇몇 분들은 제 피드백을 받으신 적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을 거고요. 하지만 예전 피드백은 다 잊고 오늘은 새로운 마음으로 여러분의 실력을 볼 생각입니다. 일단 남자 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댄스부터 볼까요?”
나는 유명한 아이돌 그룹 노래를 하나 켰다.
강렬한 리듬을 가진 댄스곡.
연습생들이 쭈뼛쭈뼛 서 있자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뭐 하세요? 노래 나옵니다.”
그러자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댄스를 시작했다.
나는 그들의 동작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노래 안무를 정확히 알고 추는 사람.
안무는 몰라도 리듬에 따라 본인이 갖고 있는 스킬을 모두 보여 주는 사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남의 동작을 보고 따라 하는 사람 등.
장단점이 명확하게 보였다.
“음. 이 정도면 된 거 같네요.”
그래도 다들 열심히 연습한 티가 난다.
댄스는 모두 합격이었다.
모르는 안무임에도 옆에 있는 사람의 댄스를 잘 따라하는 것도 능력이었기에 감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노래로 넘어가야 한다.
“MR 반주를 하나 틀어드릴 겁니다. 각자 노래를 부르시면 됩니다.”
“어······ 여기서 다 같이요?”
“예.”
“혹시 단체 평가인 겁니까?”
“아뇨. 개인 평가입니다. 각자 목소리가 어떻고 딕션과 음역대가 어느 정도 되는지 제가 체크할 거고요.”
다들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한 사람씩 녹음실에 들어가서 부르는 게 아니라 이 넓은 공간에서 다 같이 부르면 서로 목소리가 섞여 구분이 어렵기 때문일 터.
하지만 내게는 통용되지 않는 일이었다.
“괜찮아요. 다 방법이 있으니까. 혹시라도 평가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면 말씀하세요. 확인해줄게요.”
이번에는 발라드곡 하나를 틀었다.
음역대가 꽤 높은 곡으로, 타고난 성대가 아니라면 연습만으로 올리기 힘든 곡이다.
나는 연습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조용히 들어보았다.
처음에는 당황해하던 연습생들도 각자 감정을 잡고 부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타고난 성대가 아니면 연습만으로 원활하게 부르기 어려운 곡이다.
춤은 노력으로 상당 부분 해결되지만, 노래 부르는 건 노력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
노래는 타고난 목소리가 아니면 음역대를 높이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고 설사 음을 잘 올린다고 해도 음색이 별로면 그냥 귀만 아프게 들릴 뿐이니까.
“음-.”
노래가 끝나고 나서 나는 손가락으로 상을 두드렸다.
연습생들은 전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중이었다.
“도현 씨.”
“아, 네!”
김도현.
원래대로라면 이 사람은 우리 소속사가 아니라 다른 소속사로 가서 BM7이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해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소속사로 넘어와 내 레슨을 받는 중이다.
“도현 씨는 확실히 굵은 목소리가 멋있네요. 하지만 음역대가 높진 않아요.”
“죄, 죄송합니다.”
“아니요. 음역대 같은 건 어차피 연습으로 올릴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도현 씨는 만약 아이돌 그룹으로 데뷔를 하게 되면 높은 음역대는 최대한 피하도록 하세요.”
“아, 네!”
“그리고 댄스 역시 마음에 들었습니다. 평소에 다양한 안무 연습을 많이 하는 게 눈에 보이네요.”
“가, 감사합니다!”
나는 연습생 이름을 하나씩 불러 피드백을 주었다.
“그리고 정재호 씨.”
“네!”
“목소리가 얇아서 저음도, 고음도 애매하네요. 그런데 가성으로 고음을 처리할 때 매우 부드럽고 좋았어요. 앞으로도 쭉 이 방향으로 연습하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상남자같이 생긴 도현과는 달리 재호는 왕자님 외모를 타고났다.
원래 정재호도 BM7로 데뷔해 왕자님 소리를 들으며 최고의 인기를 누려야 하는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연습생 시절을 보내고 있다.
“자, 그 다음은······.”
이후에도 나는 한 사람씩 불러 필요한 피드백을 주면서 중간중간 격려를 잊지 않았다.
안 그래도 소속사 내부에서 나를 악마처럼 보는 연습생들이 많다는데, 조금 억울했다. 내가 얼마나 연습생들한테 잘해 주고 피드백도 잘 주는데 사람을 악마 취급한단 말인가.
그래서 오늘은 좀 더 부드럽게 연습을 끝마쳤다.
* * *
“헉- 헉-.”
“진짜 심장 떨려서 뒤지는 줄 알았네.”
“아까 그 눈빛 봤어? 좀만 더 못했으면 들고 있던 펜으로 머리 찍을 것 같더라.”
작업실에 들어갔을 때부터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분명 난방을 켜고 있는데도 사시나무처럼 몸이 바들바들 떨려 그대로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피드백 줄 때 진짜 말로 사람을 죽인다는 게 뭔지 알겠더라.”
“응. 뭔가 말을 들어보면 격려를 해주는 거 같긴 한데, 분위기랑 얼굴을 보면 그냥 욕 박는 거 같았어.”
“저 잘생긴 얼굴에 카리스마까지 있으니 오죽하겠냐.”
“눈빛이 제일 무서워.”
아직도 장연욱의 차가운 눈빛이 생각나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근데 실력 하나는 최고 아니냐?”
“그건 맞지.”
“우리 단체로 노래했을 때,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우리 목소리를 정말 하나씩 다 꿰고 있더라.”
갑작스러운 단체 댄스 타임에 이어 노래까지.
처음에는 이들도 의문이었다.
댄스는 그렇다 쳐도, 한 명씩 오디션을 보는 게 아니라 이렇게 단체로 노래를 부르면 어떻게 구별을 하겠다는 것인가?
그러나 피드백을 들어보니 정말 장연욱은 연습생들의 목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정말 귀신같은 솜씨가 아닐 수 없다.
“근데 오늘 우리 중에 잘린 사람이 한 명도 없네?”
이따금 장연욱이 예고도 없이 연습생들을 불러 모아 피드백을 줄 때가 있다.
그때마다 꼭 한두 명씩 목이 날아간다고 하던데, 오늘은 다행히 그런 일이 없었다.
하지만 이걸 좋아해야 하는 것일까.
상대가 나가떨어지지 않으면 내가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곳의 경쟁 구조다.
“흠흠. 맞다, 난 뭘 좀 두고 온 게 있어서.”
“아, 나도.”
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연습실로 뛰어갔다.
뒤처지면 안 된다.
조금이라도 뒤처지면 저 염라대왕 같은 장연욱이 금방 알아차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오늘은 안 잘리고 잘 버텼지만, 다음에 만났을 때 어떻게 돌변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오늘도 쉬지 않고 연습에 매달렸다.
이미 성공적인 데뷔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레이스’처럼 그들도 뛰어난 스타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