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8화
“이봐요. 이 교수!”
이창호 교수는 아침 댓바람부터 날벼락을 맞고 있었다.
“김 교수님. 무슨 일이십니까?”
“무슨 일? 제가 정말 무슨 일 때문에 왔는지 몰라서 그러는 겁니까?”
뜬금없는 김 교수의 말에 이창호 교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혼자 라이벌 의식을 느끼며 자기와는 말도 안 하던 사람이 왜 갑자기 저런단 말인가.
“어제 이창호 교수의 제자가 연습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은 아주 잘 들었습니다.”
“예? 아. 어제는······.”
“자랑을 하고 싶으면 아예 전교생을 다 모아 놓고 자랑을 하세요! 내 대단한 제자 놈을 한번 보라고 말입니다!”
“아니요. 어제 연욱이를 거기 데려간 건 자랑을 하려는 게 아니라······.”
“내가 애지중지해서 키우던 제자 놈이 이 교수 덕분에 국제 콩쿨을 포기한다고 하더이다.”
“예?”
이건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국제 콩쿨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꽤 오래전부터 차근차근 단계별로 계획을 잡았다는 건데, 이제 와서 포기를 한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포기라뇨?”
“이러니 내가 미쳐요, 안 미쳐요. 중학생 때부터 내가 키워온 아이입니다. 국제 콩쿨에 나가려고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는지 알아요?”
“저기 김 교수님. 일단 진정을 좀 하시고 말씀을 해주십시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전 도통 모르겠습니다.”
“허-. 아주 뻔뻔하시네.”
김 교수는 숨을 한번 들이켠 뒤 말을 이었다.
“어제 장연욱을 데리고 강당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연주를 시켰다죠?”
“네. 그랬습니다.”
“그걸 듣고 제자 하나가 자기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포기 선언을 했습디다. 자기는 절대 저렇게는 피아노를 못 칠 것 같다면서.”
상황의 전말을 대충 알 것 같았다.
어제 장연욱이 연주하는 것을 듣고 이창호 교수도 큰 충격을 받았었다.
피아노 연습은 아예 하지도 않은 놈이 그런 연주를 보이다니.
더 기괴한 건 장연욱은 여전히 성장 중이라는 것이다.
놈이 한번 제대로 연습하고 나면 연주에 날카로움이 한껏 더해질 건 자명한 일.
서울대에 들어와 흔히 재능러라고 불리는 연주자라면 장연욱의 연주를 듣고 참 많은 걸 느꼈을 것이다.
자신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과 몇 배 더 노력을 해도 절대 저 재능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게 된 일이었군요······.”
이창호 교수는 자기도 모르게 수긍을 해버리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당장 말려야 한다면서 김 교수에게 공감을 해줬겠지만, 그 연주를 듣고 스스로의 한계를 깨달은 사람에게 다시 피아노를 치라고 강요를 할 수 없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뭘 어떻게 합니까?”
“우리 제자 녀석을 어떻게 할 거냐고요! 이대로 음악을 다 포기하려고 하는데!”
“그거야 교수님이 잘 말씀을 해주시죠. 꼭 피아노만 길이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서울대 올 정도의 실력이라면 어떤 음악을 해도 다 잘할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작곡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거 같은······.”
“이 교수! 지금 그걸 말이라고!”
김 교수의 언성이 한층 더 높아졌다.
이대로 가면 손찌검이 날아갈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때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교수님. 계십니까?”
“들어와요.”
교수실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후배인 안 교수였다.
“안 교수. 자네는 또 무슨 일이야? 설마, 아침 인사나 드리자고 온 건 아닐 테고.”
“아······ 그게 사실 어제 일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요.”
“응? 자네도 설마 어제 일 때문에 왔어?”
이창호 교수는 안 교수와 김 교수를 번갈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일단 얘기해 봐.”
“아, 네. 다름이 아니라 어제 교수님이 장연욱을 데리고 강당에 오셨잖아요. 혹시 그 아이도 국제 콩쿨에 나가는 겁니까?”
“응. 나가기로 했어.”
“하아. 그랬군요. 요즘 장연욱이 워낙 바쁘게 돌아다니느라 교수님과 레슨은 아예 안 하는 줄 알았습니다.”
“맞아. 안 했어. 1년 넘게.”
순간 김 교수와 안 교수는 제 귀를 의심했다.
“예? 피아노 레슨을 안 했다고요?”
“그래. 안 했어. 왜? 자네 제자도 그만 두겠다고 하던가?”
“그······ 예. 어제 대체 뭘 듣고 왔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려서는 할 자신이 없다고 하더군요. 눈물도 흘리지 않던 녀석인데 그때 얼마나 많이 울던지······.”
왠지 이창호 교수는 죄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후-. 그건 내가 미안해. 근데 난 정말 그럴 의도로 강당에 간 게 아니야. 그놈이 1년 넘게 피아노를 등한시하다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국제 콩쿨에 나가겠다고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서 네 주제를 알라고 데려갔던 거야.”
“아니. 이 교수. 그 말은 장연욱이 정말로 피아노 레슨을 한번도 안 받았다는 겁니까?”
“예. 적어도 최근 1년 동안 저한테 레슨 받은 적 없습니다.”
“그럼 개인 연습을 열심히 한 건가? 아니면 다른 선생을 만났다거나.”
“그놈 우리나라에서 엄청 인기 많은 거 아시죠? 그럴 시간이 있겠습니까? 이번에 걸그룹 데뷔시킨다고 난리를 치던데, 피아노 연습을 언제 하겠어요.”
김 교수와 안 교수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저걸 보니 슬슬 재밌어졌다.
“아무튼, 그래서 한번 호되게 당해 보라고 데려간 건데 오히려 당한 건 거기 있던 학생들이었던 거지. 솔직히 나도 이럴 줄 몰랐습니다. 데려가기 전에 연주하는 걸 한번 들어봤어야 했는데.”
“······.”
이창호 교수가 저렇게까지 말을 하니, 뭐라고 반박할 말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제 불찰이었습니다. 연욱이가 대단한 재능을 가진 건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끄응······.”
김 교수는 먼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여기서 더 말하면 나만 병신 소리 듣겠네.”
“교수님. 그래도 음악 그만두는 건 막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오.”
김 교수가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이번에는 다른 교수가 이창호 교수를 찾아왔다.
“이창호 교수님!!”
하나 둘 몰려드는 교수들을 보고 이창호 교수는 한숨만 내쉬었다.
“내가 잘난 제자를 둬서 이 뭔 고생이냐.”
아까 했던 해명을 오늘 몇 번이나 반복해서 해야만 할 것 같았다.
* * *
가끔 빵과 커피가 먹고 싶으면 오후에 소속사로 출근을 한다.
소속사 근처 카페에서 파는 초코 크루와상과 카페 모카 한잔이면 그야 말로 하늘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
“그거 슈가 러쉬 아니냐.”
“슈가 러쉬요?”
“단 거 먹고 살짝 흥분하는 거. 너 그러다 당뇨 온다.”
“아직 어려서 괜찮아요.”
“요즘 10대 20대 당뇨가 얼마나 많은데. 조심해라.”
강 대표는 짧게 잔소리를 하다 뭔가 떠올랐는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참. 근데 너 나한테 조용히 말이라도 해주지 그랬냐?”
이 아저씨가 또 무슨 말을 하는 걸까.
“뭐가요?”
“너 콩쿨 나간다며.”
“예?”
강 대표한테는 말하지도 않았던 건데.
혹시 누나가 말했나?
“인터넷에 다 소문 퍼졌어. 네가 서울대생들이랑 피아노로 맞짱 떠서 다 발라 버렸다며?”
“예에? 그건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나도 과장된 거라 생각은 했다. 근데 진짜 서울대 학생이 인증하고 글 쓴 것도 있더라. 너 때문에 좆 같아서 못 해 먹겠다고.”
이래서 사람이 항상 핸드폰을 끼고 살아야 하는 건가 싶다.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가 온 세상에 퍼지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강 대표가 보내 준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보았다.
[장연욱 때문에 음악 접고 서울대도 나올 생각이다.]
제목부터 어그로가 신명나게 끌렸다.
-서울대 학생인데, 이번에 국제 콩쿨 있어서 연습 중이었거든? 근데 장연욱이 갑자기 우리 연습하는 강당에 찾아와서 피아노를 치더라?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하고 저놈이 쳐봤자 얼마나 잘 치겠나 싶어서 들어봤는데, 내가 살면서 그런 충격은 처음이었음. 이게 재능의 차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오늘 다 때려치고 나오는 길임.
하지만 난 썩 믿음이 가지 않았다.
“서울대 학생이 커뮤니티 할 시간이 있겠어요? 주작이겠죠.”
“거기 학생증 인증한 거 안 보이냐? 그리고 강당에서 피아노 친 거 맞잖아. 아니야?”
“맞긴 한데······.”
나는 다른 글들도 살펴 보았다.
-남친 기다리려고 강당에서 나도 구경 중이었는데, 진짜 뜬금없이 장연욱이 와서 피아노를 치는 거임. 음알못인 내가 들어도 연주가 엄청 좋았음. 그런데 거기 있던 학생들은 현타 왔는지 표정이 많이 안 좋았다. 남친도 굉장히 우울해하고 ㅠㅠ
-장연욱이 미친 재능러라고 하더니 사실인가 보네.
-와. 서울대 학생을 바를 정도라고?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작곡가잖아.
-작곡은 인정하는데, 설마 피아노까지 넘사벽일 줄은 몰랐네
이에 한 술 더 떠서 기사까지 실렸다.
[장연욱 서울대 학생들을 무릎 꿇리다.]
[장연욱, 서울대 학생들과 피아노 배틀?]
[장연욱의 도장 깨기가 시작되나?]
별 근거도 없는 소문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신문 기사도 출처가 확실하지 않은 곳에서 가져와 쓰는 바람에 인터넷상에서는 나를 무슨 피아노 신으로 만들어 버리는 중이었다.
“어이가 없네.”
“어이가 없어도 사실은 사실이잖아? 너 때문에 벌써 몇 명이나 음악 그만둔다고 했다더라.”
“에이. 다 헛소문이죠. 평생 서울대 들어가려고 엄청 노력했을 텐데, 그걸 어떻게 그만둬요. 아무튼, 미리 말씀드리려 했는데 타이밍이 안 맞았어요.”
“타이밍이 안 맞긴. 그냥 까먹은 거지. 근데 진짜 하는 거 맞아? 우승 노리는 거야?”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이지, 우승을 목표로 하는 건 아니었다.
“뭐, 해보는 거죠, 그냥. 거긴 진짜 피아노 괴물들만 오는 곳이거든요. 제가 지금부터 24시간 쉬지 않고 연습한다고 해도 그 사람들을 과연 이길 수 있을지······.”
“그럼 너보고 음악 때려친 서울대 학생들은 뭐야?”
“그거 다 헛소문이라니깐요? 그리고 서울대 나왔다고 해서 국제 콩쿨 본선에 올라갈 수도 없어요.”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대학이지, 외국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음악에 관한 대학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 너무나도 많아 서울대는 변방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 난 또 군대 면제 노리고 하는 줄 알았네.”
“얼마나 우승이 어려우면 군대 면제를 걸었겠어요.”
“그럼 굳이 할 필요 없지 않아?”
그때 내 뒤로 혜나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걔 지가 좋아하는 여자애 때문에 하는 거예요.”
“뭐, 뭣? 좋아하는 여자?”
강 대표는 뒤로 넘어갈 듯이 기겁했다.
“연욱아. 네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어?”
“아니. 내가 언제 좋아했다고 그래.”
“아닌 척하기는. 지연이랑 연락 안 됐을 때 전전긍긍 하면서 사방팔방 다 알아보고 난리쳤잖아.”
뭐가 마음에 안 들었던 건지 누나의 목소리가 매우 앙칼졌다.
그리고 강 대표는 조심스럽게 내 손을 붙잡으며 말했다.
“연욱아.”
“예?”
많이 부담스러운 목소리에, 얼굴이었다.
“난 네 사랑을 방해할 생각이 없다. 근데 딱 5년만 참아주면 안 되겠니?”
나와 누나가 동시에 소리쳤다.
“5년?!”
“5년이요?!”
순간 이 회사를 나가고 다른 소속사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