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7화
저번에 핸드폰을 보다가 한 영상을 본적이 있다.
저명한 심리학자가 강의를 하는 영상이었는데, 학력이 좋을수록 소시오패스, 혹은 사이코패스 비율이 높다고 한다.
오히려 좋은 대학 나온 사람이 심리적으로 정상이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거라고 일침까지 해 주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좋은 대학에 가려면 치열하게 경쟁하고 또 경쟁해야만 한다. 오직 공부에만 매달리고 성적을 높게 받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다.
거기서 간신히 살아 남았다고 해도 막상 대학에 들어 온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
유명한 대학일수록 수업 난이도가 굉장히 높아지기 때문에 남과 경쟁하기 위해서 또 치열한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애들 장난 아니야. 네가 유명인이라고 해서 봐주는 거 없어. 뭐, 조금 신기하기는 하겠지. 근데 그게 전부다. 피아노와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놈들이 많아. 오직 성공만이 뇌에 가득 차 있는 거지.”
예고도 없이 여길 데려와 연습을 시키는 이창호 교수의 말이었다.
“네가 국제 콩쿨 준비한다고 하면 다들 눈에 불을 켜고 널 경계할 거다. 하지만 자기보다 실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쳐다도 보지 않겠지.”
“참 응원이 되는 말씀이시네요.”
“흐흐. 네가 자초한 일이야. 그러게 누가 땡땡이 치라고 했어? 그냥 남들처럼 했으면 나도 여기 안 데려왔지.”
“속성으로 하라는 말씀이시죠?”
“그래. 여기 있는 애들 실력도 한번 체크해 보고 너한테 부족한 점이 뭐가 있나 잘 살펴봐. 일단 얼마나 실력이 녹슬었는지 한번 봐볼까? 아무거나 쳐봐라.”
알게 모르게 이 시끄러운 와중에도 나와 이창호 교수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는지 피아노 소리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갑자기 부담이 팍 느껴졌다.
괜히 비웃음만 당하다가 끝나는 것은 아닐까.
“오랜만에 그럼······.”
예전에 꽤 연습을 많이 했었던 곡이 있다.
쇼팽의 녹턴 13번 곡.
꽤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좋아하는 곡으로, 쇼팽이 지은 곡 중 가장 아름다운 곡이라며 추켜세울 때도 많다.
그래서 쇼팽 국제 콩쿨 때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곡이다.
부드럽고 절제된 터치로 이어나가다 중반부터는 점점 고조되면서 한꺼번에 폭발시켜 버린다.
듣는 이도, 그것을 연주하는 이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아름다운 곡이나,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치느냐에 따라 평가가 천차만별이다.
조금이라도 미스 터치가 나면 감정 흐름이 깨져 연주 전체가 망가질 정도로 어려운 곡이라는 것.
따라란-!
벌써 2년 가까이 쳐보지 않은 곡이지만, 오늘따라 이 곡을 치고 싶었다.
이미 곡은 내 머릿속에 다 있기 때문에 악보를 볼 필요도 없었다.
난 쉬지 않고 손을 움직이며 도입부와 중반부, 마지막 몰아치다 초반부와 마찬가지로 고요하게 끝을 내는 후반부까지 연주를 해나갔다.
내 연주가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들릴까-라는 걱정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저 음표와 내가 건반으로 하나가 되어 함께 숨을 쉬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지막 음을 치고 천천히 페달에서 발을 뗐을 때였다.
“······.”
주위가 매우 고요했다.
무서울 정도로.
나는 옆에 있던 이창호 교수에게 시선을 옮겼다.
“교수님?”
왠지 이창호 교수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 * *
이 고양된 기분.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본다.
언제였을까.
그래. 이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천재. 그 이름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재능.
이창호 교수는 그제서야 떠올렸다.
자신이 왜 이 아이를 제자로 받아들였는지 말이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저 천부적인 재능이 그의 혼을 쏙 빼앗아 가지 않았던가.
쇼팽의 녹턴.
많은 피아니스트가 다양한 해석으로 치는 곡이라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다양한 해석이라는 것도 결국 고착화가 된 지 오래다.
대학생들도 담당 교수에 의해 해석이 정해지고 본인 스스로 해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 학생들이 나중에 교수가 되면 같은 해석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대물림을 욕할 생각은 없다.
그 해석이 보통 맞으니까.
그러나 오늘 곡을 듣고 나서 이창호 교수는 생각을 달리했다.
이미 해석이 끝난 곡이라 생각했는데, 음악의 가능성은 과연 무궁무진하구나.
고작 고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아이가 이런 해석을 보여 주다니.
“교수님? 왜 말씀이 없으세요.”
“흠흠. 다, 다른 건 쳐 볼 생각 없냐?”
“다른 거요? 음-. 월광 한번 쳐볼까요?”
“월광 좋지.”
딱 한 곡만 듣고 판단을 내리는 건 어설픈 짓이다.
이창호 교수는 한 곡 더 들어보기로 했다.
따라~ 따라란~.
월광 소나타는 클래식을 잘 모르는 사람도 한번쯤은 들어 본 매우 유명한 곡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자주 쓰이고, 만약 달빛이 노래를 할 수 있다면 저런 음색을 내지 않을까-하는 착각마저 든다.
이 곡은 방금 전 연욱이가 친 녹턴보다 난이도가 낮지만, 세밀한 터치가 주를 이뤄야 하고 간드러지는 달빛의 음악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빨라선 안 되고, 조금이라도 느려서도 안 된다.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만 완벽한 월광 소나타라고 할 수 있다.
‘허-. 이걸 어떻게 피아노를 등한시한 놈의 연주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연욱이 연주하는 월광 소나타는······ 완벽했다.
그동안 피아노를 멀리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음?”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강당에서 들리는 피아노 소리는 연욱이의 것밖에 없었다.
모두 연주하던 걸 멈추고 연욱이의 연주를 감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시기와 질투, 경계심이 보였고 어떤 이는 연주에 푹 빠져 꼭 사랑에 빠진 듯한 표정이었다.
서울대 학생, 그것도 국제 콩쿨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다.
이들의 마음속 장벽은 생각 이상으로 두껍고 높다.
주변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있고 설사 잘 어울린다 해도 연습에 매진하느라 거의 친구를 만나지 않는다.
그런 이들의 마음에 장연욱의 달빛이 천천히 스며들면서 침투를 하고 있었다.
“후-.”
연욱이 손을 떼자 이창호 교수가 놀란 듯 물었다.
“응? 다 쳤어?”
“네. 안 들으셨어요?”
“아니. 들었지. 근데 벌써 다 친 거냐?”
“네.”
녹턴이 6분.
월광도 5분이 넘는다.
하지만 이창호 교수는 단 몇 초 만에 연주가 끝난 것만 같았다.
“뭐, 이번에 다른 건 없냐?”
“교수님.”
“응?”
“연습하라고 하셨잖아요. 계속 옆에서 연주시키고 지켜만 보실 거예요?”
왠지 자기 마음이 들킨 것 같아 이창호 교수는 뜨끔했다.
그래서 괜히 버럭 화를 냈다.
“이놈아! 이게 다 연습이야. 내가 꼭 옆에서 일일이 지도를 해줘야 하는 거냐? 그냥 네 수준이 얼마나 바닥을 기는지 한번 보려고 했던 거지.”
“아하.. 그러셨구나.”
“그래. 그러니까 빨리 하나 더 쳐봐.”
“넵.”
연욱은 군말 없이 다음 곡을 연주했다.
이창호 교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 상황이 조금 웃기기까지 했다.
자신의 형편 없는 실력을 깨닫고 피 터지게 연습을 시키려 했더니, 오히려 이 강당이 장연욱을 위한 콘서트장이 되어 버렸다.
* * *
“미친······. 하도 사람들이 장연욱, 장연욱 거리기에 얼마나 대단한지 보려고 했더니.”
“씨발. 나 오늘 종쳤다. 피아노가 손에 안 잡혀.”
장연욱과 이창호 교수가 갑작스럽게 찾아오면서 피아노 연습을 하고 있던 학생들, 그냥 남의 피아노 소리를 들어 보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던 학생들 모두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저 정도 실력은 돼야 이창호 교수 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냐?”
“그렇겠지?”
“아니. 대체 연습을 얼마나 많이 시켰기에 같은 피아노에서 저렇게 다른 소리가 나오는 거지?”
“연예인 활동 하면서 어떻게 연습은 꾸역꾸역 다 했다냐?”
그 말에 한 학생이 말했다.
“아니야. 내가 아까 들었는데, 1년 동안 피아노를 거의 안 쳤다고 했어.”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지랄도 풍년이네.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진짜라니깐? 교수님이 강당 나가면서 1년 넘게 쉰 놈이 어떻게 저렇게 치는 거냐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더라고.”
사실 이들도 이창호 교수의 얼굴을 보고 딱 알았다.
그가 얼마나 연욱을 아끼는지, 그리고 연욱의 음악에 얼마나 심취해 있는지 말이다.
“나 오늘부로 연습 접는다.”
“응?”
“장연욱 그놈이 연주하는 거 들으니까 벽이 느껴지더라. 만약 내가 운 좋게 본선에 올라간다고 해도 그 연주를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기는 그림이 안 그려져.”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포기를 해?”
“벽을 느끼고도 악을 쓰는 건 멍청한 짓이지. 사람이 포기할 땐 포기할 줄 알아야 돼.”
학생 하나가 피던 담배를 던지고 먼저 흡연장을 나가 버렸다.
축 처진 어깨를 보니, 정말 이번 콩쿨을 포기하려는 모양이다.
“병신 새끼. 몇 년이나 준비한 걸······.”
“사실 나도 아까 연주 들었을 땐 다 때려치우고 싶더라. 이걸 재능 차이라고 하는 거겠지? 난 내가 제일 천재인 줄 알았는데, 진짜 천재는 따로 있었어. 그리고 세계 무대는 저것보다 더한 괴물들이 있을 거 아니야.”
곧이어 다른 학생도 담배를 끄고 일어났다.
“저 말이 맞는 거 같다. 벽을 느꼈으면 접는 게 맞지. 쇼팽 국제 콩쿨 말고 다른 콩쿨로 바꿔야겠다. 난 그냥 콩쿨에 참여했다는 커리어가 필요한 게 아니라 우승을 했다는 커리어가 필요하거든.”
학생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하자 김지혜는 경쟁자들이 사라졌다는 것에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고민이 됐다.
오늘 처음 장연욱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김지혜는 큰 충격을 받았다.
마치 건반 위에서 발레리노가 춤을 춘다고 해야 할까.
이제까지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는데, 오늘은 음표들이 전부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걸 조율하는 장연욱의 표정은 그저 평화로웠다.
숨 쉬듯 자연스럽게 그 어려운 것들을 전부 해내는 것을 보고 만약 쇼팽이라면 저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으으. 그렇다고 지금 와서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대라는 대한민국 최고 대학교에 들어왔지만, 여기서는 1등을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다.
수많은 재능러들이 판을 치는 곳이지 않은가.
그런데 저 괴물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더 큰 괴물이 지금 저 강당에 있다.
저놈은 이창호 교수가 간 뒤로도 계속해서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한번 앉은 자리에서 5시간 동안 일어나지도 않고 피아노를 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더 대단해 보였다.
“진짜 불공평하다. 천재면서 노력까지 하면 난 어쩌라는 거야?”
세상은 불공평하다고 했던가.
오늘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