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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45화 (145/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5화

“드디어 이걸 꺼낼 때가 되었군~!”

누나는 호기롭게 소리치더니, 창고에 있는 무언가를 혼자 끙끙대며 거실로 옮기고 있었다.

“도와줄까?”

“으으. 아니야. 이런 건 나도 혼자 할 수 있어.”

일주일 전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누나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하나 사가지고 왔다.

그냥 보통 사이즈의 트리라면 아무 말도 안 할 텐데, 보통의 2배는 되어 보이는 큰 트리를 사 오는 바람에 내가 뭘 저런 걸 사 오냐고 한 소릴 했었다.

그 때문인지 내가 도와주려고 해도 트리를 만지는 걸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호호. 우리 동생님은 신경 끄시고 저기 앉아서 이 누나가 어떻게 트리를 예쁘게 꾸미는지 쳐 구경이나 하세요.”

고집이 센 누나라서 나도 두 손 두 발 들고 포기했다.

그래서 소파에 앉아 누나 말대로 팝콘을 먹으며 구경했다.

“야. 내가 언제 팝콘까지 먹으라고 했어!”

“누님. 아우가 하는 일에는 신경 끄시고 트리나 옮기시져.”

두 볼이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채 누나는 혼자서 계속 트리를 옮기고 줄을 연결하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오~ 이 트리 드디어 꺼냈구나. 그런데 왜 혼자 하고 있어? 이 아빠가 도와줄게. 혜나야.”

“아빠도 스톱! 아무도 다가오지 마. 이건 내가 다 설치할 거야!”

그러고 보니 내가 뭐라 했을 때 아빠도 옆에서 거들었지.

그걸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나 보다.

“음. 아들. 그 팝콘 나도 좀 주겠니?”

결국 혜나 누나에게 쫓겨난 아빠는 내 옆에 앉아 같이 팝콘을 씹었다.

왠지 이거 꽤 볼 맛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아휴. 다들 뭐 하고 있어! 혜나 혼자 저걸 어떻게 혼자 다 하라고!”

그러다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이 연달아 아버지와 나를 때리고 지나갔다.

“아니. 누나가 도와주지 말고 저리 가라잖아요.”

“맞아. 나도 혜나한테 쫓겨난 거야.”

어머니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연욱이 넌 그래서 어떻게 여자 사귈래?”

“어머니. 이런 말씀 드리기 뭐 하지만 제가 마음만 먹으면 여자랑 사귀는 건 일도 아닌······ 악!”

“넌 어떻게 네 아버지랑 똑같이 여자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니. 당장 가서 도와줘!”

이번에는 어머니에게 쫓겨나 나는 혜나 누나 옆에 앉아 꼬여 있는 줄을 풀기 시작했다.

“야. 안 도와줘도 된다니깐?”

“후-. 됐어. 도와줄게. 저번에 뭐라 했던 건 미안해. 그냥 이 정도로 큰 게 필요한가 싶어서 그랬어.”

“흥.”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돌린 누나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조심스레 내게 별 모형을 하나 건넸다.

“그럼··· 이거 좀 저기 트리 위에 올려다 줘. 난 손이 안 닿아. 그리고 이것도!”

어느새 화가 다 풀린 모양인지 이제는 적극적으로 날 부려 먹고 있었다.

엄마 말이 맞았다.

난 여자 마음을 잘 모르겠다.

“아빠랑 엄마도 도와줄게.”

부모님도 합세해 이 큰 트리에 갖가지 모형들이 달리고 불빛이 번쩍이니 생각 이상으로 좋아 보였다.

사실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트리를 사놓고 집에 놓는 일은 없었는데, 이렇게 하고 나니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뭔가 기분이 새롭다고 해야 할까.

“우리 딸 덕분에 내일 크리스마스는 제대로 보내겠네.”

“호호. 그러게. 진작 설치할 걸 그랬나 봐. 트리도 크니까 분위기도 더 좋아 보인다.”

그래.

진짜 크리스마스구나.

트리를 보고 있으니 문득 떠올랐다.

저번 생에서 누나를 가장 가까이 실물로 접했을 때가 크리스마스라는 것을 말이다.

그때 누나와 트윙클 멤버들이 모금을 하는 구세군과 함께 밖으로 나와 이벤트를 진행했었다.

추운 광장에, 그것도 눈이 내리는 날.

광장 가운데에는 큰 트리가 하나 있었다.

난 좋다고 거길 뛰어가 지갑에 있는 돈을 털어 모금하고 누나와 웃으며 악수를 했었지.

그게 내가 기억하는 최고의 크리스마스였다.

“근데 갑자기 웬 트리야?”

“응? 어······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옛날?”

“응. 옛날에 눈 오는 날 광장에 있는 엄청 큰 트리를 본 적이 있거든. 그 생각이 갑자기 났달까?”

광장에 있던 큰 트리라.

내가 그때 봤던 트리도 저거랑 비슷하게 생겼던 거 같긴 한데.

기분 탓인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다들 뭐할 거냐?”

“응? 그거야 당연히 가족끼리 모여서 교회도 가고 식사도 같이 하고 뭐 영화도 보고 해야지. 항상 했던 대로.”

“쯧. 다른 아이들은 연인이랑 크리스마스를 재밌게 보낸다고 하던데. 너희는 애인 없어?”

“우리 고등학생이야, 엄마.”

“연인을 사귀는 게 나이랑 무슨 상관이니.”

맞다.

우리 어머니가 좀 진보적이셨지.

“연애는 할 수 있으면 젊었을 때 많이 해보는 것도 좋아. 그게 다 경험이 되거든. 너희는 사지 멀쩡하고 얼굴도 참 예쁘고 잘생겼으면서 왜 연애를 안 하는 거야? 엄마는 반대 안 할 테니까 사람도 좀 사귀고 해.”

“흠흠. 이번 크리스마스는 엄마랑 아빠 단둘이 보낼 거니까 너희는 이번에 너희들끼리 알아서 보내라.”

“예?”

“아니. 왜? 다 같이 보내면 좋잖아.”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미 호텔이랑 레스토랑 예약까지 다 해놨어. 너희들도 다른 친구들이랑 만나서 보내도록 해.”

나랑 누나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어떻게든 누나가 협상을 해보려고 했으나, 부모님은 요지부동이셨다.

결국 우리 둘은 멍한 얼굴로 방에 돌아왔다.

“너······ 크리스마스에 만날 사람 있냐?”

누나의 목소리가 불안해 보였다.

“없지. 당연히.”

그토록 많은 구애를 받았으나, 막상 크리스마스에 만날 사람이 없었다.

“누나는?”

“나도 없어. 하-. 엄마 아빠 치사해. 우리도 데려가지.”

“두 분이서만 시간을 보내고 싶으신가 보지.”

그렇다고 해도 아주 조금, 정말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들긴 했다.

“우린 어쩌지? 그냥 집에 있어야 되나? 아니지. 우리도 엄마 아빠처럼 호텔 하나 잡을까? 스위트룸으로.”

“거기서 둘이 뭐하게?”

“으-. 티비 보고 룸서비스 시켜서 맛있는 거 먹고······ 그 정도?”

“그건 집에서도 할 수 있어. 배달 음식 시키면 오잖아.”

연인들이 가장 기다린다는 크리스마스.

하지만 내게는 그냥 집에서 가족들이랑 쉬는 날이었다.

그래서 뭔가를 특별히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아냐. 이대로 크리스마스를 날려 버릴 순 없어.”

그런데 누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누나가 갑자기 손뼉을 치며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응~ 나야. 혹시 크리스마스에 뭐해?”

누구지? 누구한테 전화를 거는 거지?

귀를 쫑긋 세웠지만 상대방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설마 날 쏙 빼고 혼자 누굴 만나러 가는 건가?

“오~ 그래? 잘 됐다. 그럼 같이 놀자. 내가 약속 장소랑 시간은 문자로 보낼게.”

나는 짜게 식은 눈으로 전화를 끊은 누나를 바라보았다.

“누구야? 남자야?”

“허-. 남자면 어쩌려고?”

“뭐야. 설마 진짜 남자랑 만나기로 했어?”

갑자기 손발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아니거든. 내 주변에 남자가 어딨다고.”

“너무 많아서 문제지.”

“그건 너도 마찬가지거든? 됐고. 아까 내가 말한 스위트룸 있잖아. 파티룸으로 하나 잡아 보자.”

“응?”

“크리스마스를 집에서 보낼 수 없지. 안 그래?”

* * *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진 모르겠다만, 크리스마스 당일 나와 혜나 누나는 서울에서 제일 좋은 호텔 스위트룸을 잡았다. 그것도 여러 명이 모여 파티를 열 수 있을 정도로 큰 평수의 방이었다.

“저희가 괜히 방해한 건 아니에요?”

“맞아. 각자 남친이랑 여친 있을 텐데.”

누나는 웰컴 서비스로 나온 과일을 먹으며 고개를 저었다.

“으음. 절대 아니야. 나 남친 없어.”

“진짜?”

“응. 한 번도 남친 사귀어 본 적도 없어.”

“말도 안 돼. 언니 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헤헤. 진짜라니깐?”

그러자 그녀들이 내게 눈길을 돌리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PD님은요?”

“네?”

“PD님도 여친 없어요?”

“뭐, 저도 없어요.”

그러자 그녀들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었다.

“빌보드에 차트인 하고 나서 빵 뜬 후에 제대로 축하한 적이 없었잖아. 마침 크리스마스이기도 하니까 다 같이 축하하려고 모였지.”

오늘 크리스마스는 혜나 누나와 레이스 멤버들과 같이 보내게 됐다.

빌보드에 올라가고 나서 인지도를 순식간에 높여 버린 멤버들은 매일 스케쥴을 뛰느라 정신이 없었다.

축하 파티라도 제대로 열었어야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혹시 저희 때문에 괜히 나오신 건 아니죠. 요즘 스케쥴 때문에 많이 피곤하실 텐데.”

“아니요. 괜찮아요. 사실 피곤하지도 않아요. 그냥 매일매일 꿈꾸는 거 같고 하늘 위를 날아다니는 것만 같아요.”

“맞아요. 우리가 이렇게 뜰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냥 하루하루 너무 감사해서 잠을 안 자고 스케쥴 뛰어도 전혀 힘이 안 들어요.”

레이스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며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살인적인 스케쥴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처음에는 나도 조정을 해주려고 했는데, 끝까지 할 수 있다면서 고집을 부리는 통에 하고 싶은 대로 놔뒀다.

그럼에도 그녀들은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열심히 스케쥴을 소화하고 있었다.

미소를 전혀 잃지 않은 채 말이다.

“쉬엄쉬엄하세요. 지금이야 당장 몸에 힘이 넘치겠지만, 점점 하다 보면 힘이 들 겁니다. 그때 번 아웃이라도 오면 사람이 엄청 무기력해져서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져요. 연예인이라는 직업도 혐오스럽게 느껴질 테고요.”

“왠지 경험담 같네요.”

“비슷하죠. 전 여러분처럼 그렇게 많은 스케쥴을 소화한 적은 없지만, 워낙 게을러서 조금이라도 스케쥴이 많아지면 때려친다고 대표님을 협박하곤 해요.”

강 대표가 그것 때문에 고생을 좀 하긴 했지.

그래도 스케쥴을 뛰는 것보다 곡 하나를 더 만들어 파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강 대표는 한번도 내게 강요를 하지 않았다.

“자자. 일 이야기는 여기까지. 크리스마스에는 다 잊고 신나게 놀기만 하면 돼. 맛있는 거 왕창 먹고! 오늘 룸서비스 다 시켜 먹자.”

“으. 몸매 관리 해야 되는데.”

“하지만 오늘 하루쯤은 괜찮지 않을까?”

“응응. 딱 오늘 하루만.”

먹을 거라면 환장을 하는 혜나 누나다.

그리고 몸매 관리 때문에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있는 멤버들의 눈동자에 빛이 났다.

“연욱아.”

“응?”

“오늘 우리 먹는 거 대표님한테는 비밀.”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어. 오늘 배 터져 죽을 때까지 먹어요. 난 입 다물고 있을 테니까.”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체중계에 올라가면 지금 말리지 않는 날 원망하게 되지 않을까?

그래도 오늘은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마스다.

누나와 멤버들이 원 없이 먹는 걸 눈 감아 주고 싶었다.

“이것도 시키고, 이것도 시키자.”

“응. 여기 스파게티도 시키고 스테이크도 꼭 시켜줘.”

“스테이크 인당 하나씩 할까?”

“오~ 굿 아이디어.”

그렇게 웃고 떠들며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어?”

1년간 연락이 끊겨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지연이의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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