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4화
“SKG의 우승!! 우승입니다!!”
“무려 3년 만에 들어 올린 우승컵!! 이것이야 말로 왕의 귀환이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SKG 팀이 접전 끝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한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한국팀이 우승을, 그것도 3년 만에 하게 되었으니 직관을 하고 있던 관중들은 제자리에서 펄쩍 뛰며 난리가 났다.
그 열렬한 분위기에 맞춰 사방에서 폭죽이 터지고 해설위원들도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그동안 선수들이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해냈습니다. 마침내 해냈어요. 대한민국이 다시 세계 1위 리그로 올라왔습니다!”
“예. 이거야말로 겹경사가 아닐까요? 걸그룹 ‘레이스’가 국내 아이돌 그룹 사상 최초로 빌보드 30위권을 달성했다고 합니다.”
“아~ 그것도 엄청난 화제가 됐죠. 마침 결승전 전에 빌보드에 올라갔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이 기세로 SKG도 우승을 하자는 응원의 메시지가 많았으니까요.”
“네. 거기다 ‘레이스’ 그룹의 스킨이 엄청나게 팔려나가고 있답니다. 조만간 스킨 판매 순위 1위를 차지할 것 같다고 하는군요. 정말 같은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뿌듯합니다.”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 역사상 최초로 빌보드 30위권에 든 ‘레이스’는 뜨거운 화젯거리였다.
역대 최고의 스킨 판매량 기록을 갈아 치우려 하는 것은 물론,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레이스’ 그룹에 대한 밈이 만들어질 정도로 그 인기가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연욱아. 빌보드 30위야. 30위! 이, 이게 대체 꿈이야 생시야.”
시작된 강 대표의 호들갑에 나는 짧게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껐다.
우승 세레머니는 나중에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봐야 할 것만 같다.
“꿈 아니고 현실 맞습니다.”
“으하하-! 내가 말했지? 분명히 다 잘될 거라고. 내가 말했잖아!”
“······불면증 때문에 수면제까지 챙겨 드신 분이.”
“크흠. 그, 그건 너도 나이 먹으면 알게 돼.”
걸그룹 레이스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리고 준비가 끝난 뒤에도 강 대표는 불안감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정신과에서 약까지 받아왔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고 있지만, 회사의 명운이 달린 일이었으니 얼마나 가슴을 졸였겠는가.
이제 그 불면증도 말끔히 사라졌을 것이다.
“좋으세요?”
“좋냐고? 행복해 미치겠다. 저기 게임 대회에서 데뷔 무대를 딱 한 번 했을 뿐이잖아. 근데 봐라. 국내 음원차트 올킬에 빌보드 30위. 거기다 광고 문의도 150건이 넘게 들어왔다. 이걸 언제 다 검토해야 할지 모를 정도야.”
광고 문의가 150건이 넘게 들어온 건 의외였다.
조금 더 국내 상황을 지켜보고 광고가 들어올 줄 알았는데, 이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광고가 밀려올 줄은 몰랐다.
“광고도 잘 가려서 해야 돼요. 아시죠?”
“그럼. 우리 그룹 이미지가 실추되지 않게 잘해야지.”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에서도 문의를 넣었다고 하는데, 이럴 때일수록 최대한 잘 필터로 걸러서 광고를 찍어야 한다.
빌보드에 올라갔을 만큼 레이스는 이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대중에게 보일 필요가 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국내에서만 노는 타 아이돌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걸 어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광고도 그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할 수 있는 걸로 해야만 한다.
“너 이거 봤냐?”
강 대표는 신이 난 얼굴로 자기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우리 레이스 팬클럽이야. 여러 포털 사이트에 이런 클럽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어. 그리고 유명 커뮤니티 사이트에도 팬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고 있고. 아마 가입자 숫자만 따지자면 수십만은 그냥 넘을 거다.”
팬클럽 글들을 대충 살펴보았다.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죠?
-아~ 수진아~ 사랑해~!
-진짜 멤버들 너무 다 예쁘고 귀엽고 소듕하다
-우리나라 음방에는 언제 나오나요?
-음방 나오면 바로 투표부터 해줌
-우리 레이스 멤버들 짤 공유합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이 짤공유 게시판에 들어갔다.
“······.”
강 대표와 나는 5분간 말없이 사람들이 올린 멤버들 사진만 구경했다.
“크흠! 뭐 자, 잘 되어 있네.”
그러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강 대표였다.
본인도 무안했는지 괜히 헛기침을 터트리고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국내 팬덤이 빨리 형성됐네요?”
초반 국내 분위기가 매우 안 좋았던 만큼 팬덤이 형성되려면 시간이 걸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빌보드에 올라갔다고 해도 이 정도로 빠르게 팬덤이 형성될 줄은 몰랐다.
“우리도 그게 이상해서 자체적으로 조사를 해봤지.”
“조사 결과는요?”
“팬덤 대부분이 게이머들로 구성되어 있더라.”
“게이머요?”
“그래. 우리나라는 여전히 게임에 대한 인식이 별로잖아. 그런데 레이스가 빌보드 차트에 올라가면서 그 인식을 많이 바꿨다고 생각하는 거지. 거기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의 걸그룹이 우리나라 사람이다? 당연히 기분 좋게 보는 거지.”
강 대표 말대로 전국에 있는 게이머들의 마음을 레이스가 자극한 듯해 보였다.
거기다 이번에 우리나라 팀이 대회 우승까지 하고 레이스는 빌보드에 올라가 해외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알렸다.
“이런 게 국위 선양이라고 칭찬하더라. 맨날 K팝이라고 떠들어 대도 사실 해외에서는 우리나라 음악이 별로 인기가 없거든. 빌보드에 제대로 들어간 사람도 없고. 근데 이번 기회로 레이스는 물론, 후배 아이돌 그룹에게도 해외 진출 길이 활짝 열린 거지. 그 사람들 우리한테 엄청 고마워 해야 돼.”
처음 뚫는 게 가장 어렵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점점 쉬워진다.
그래서 선구자가 대단하다는 것이다. 우린 선구자들에게 늘 감사해야 하는 것이고.
“근데 과연 그 사람들이 고마워할까요?”
“그거야 당연히······!”
강 대표는 곧 목소리가 작아졌다.
“요만큼도 안 고마워할걸?”
처음부터 날 매장시키려 했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해외 진출의 길을 열어 주었다고 절대 고마워할 자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상관없다.
그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나 받으려고 시작한 일이 아니니까.
아마 지금도 어디선가 내 뒤통수를 치려고 작당 모의를 하고 있지 않을까?
* * *
“당신들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SG 기획사 대표 김영호는 걸그룹 레이스가 빌보드 차트에 올라갔다는 기사를 보고 목청이 올라갔다.
그에게 뒷돈을 받고 기사를 남발했던 기자는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김영호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당신들이 똑바로 글을 쓰라고 아주 예쁘게 포장해서 돈도 쥐여주고 어디 여행 가서 머리 좀 식히고 오라고 항공권도 주지 않았나? 나뿐만이 아니야. 여러 기획사 사장들이 다 당신들을 위해 배려를 해줬어. 그에 대한 대가가 이건가?”
사실 기자들도 할 말은 많았다.
장연욱과 그 걸그룹을 초반에 매장시킨 건 기자들의 공이 매우 컸으니까.
하지만 그 어린 놈이 기절초풍할 만한 반전의 기회를 만들어와 상황을 역전시킨 것이었다.
대체 저걸 무슨 수로 이긴단 말인가?
김영호 대표도 그걸 모르진 않을 터. 그럼에도 성질을 부리고 있는 건 화풀이할 대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돈은 충분히 줬잖아. 그럼 그놈이 아예 저 밑바닥으로 추락할 때까지 쉬지 않고 글을 써야지. 이게 대체 뭐냐고!”
- 죄, 죄송합니다. 대표님.
“이런 쓸모없는 것들. 끊어!
전화를 끊은 뒤에도 김 대표의 화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눈에 들어오는 뉴스 기사에 더 화가 폭발할 지경이었다.
[레이스는 대한민국 희대의 걸그룹이 되었다. 그들은 선구자이며 월드스타다. 지금까지 많은 가수들이 해외로 진출하고자 수많은 시도를 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천재 작곡가로 불리는 장연욱이 직접 기획했다는 레이스 걸그룹은 그야말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숨은 가빠지고 꽉 쥔 주먹에서 피가 나려고 한다.
[게임 걸그룹이라는 인식 때문에 초반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어느 걸그룹보다 뛰어난 잠재력과 실력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게 겨우 시작이라는 것이 주목할 만한 점이다. 과연 이들은 다음 앨범에 어떤 모습을 보여 주게 될까?]
김 대표는 손을 부르르 떨며 모니터를 꺼버렸다.
“하-. 이 새끼 때문에 우리가 돈을 쳐 발라서 데뷔시킨 걸그룹은 이름 한번 언급되지 않고 있고. 장연욱 저 새끼가 아니라 내 피 같은 돈으로 만든 걸그룹이 바닥에 묻혔다니.”
그거야 네가 걸그룹을 잘못 만들어서 그런 거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김 대표의 비서실장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러다가는 장연욱 그놈이 국내 시장을 다 먹어치우게 될 거야.”
그렇지 않아도 이번 마약 사건으로 대형 기획사들의 타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에 반해 JJ는 등에 날개를 단 듯 훨훨 날아다니고 있으니, 김 대표 입장에서는 총이 있으면 쏴서 떨어뜨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봐. 황 실장. 뭐 없어?”
“네?”
“그놈 나락으로 떨어뜨릴 건덕지가 없냐고. 학교 폭력이라든지, 아니면 여자 문제가 복잡하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몰래 프로포폴을 맞고 있다거나.”
“그건······.”
찾아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왕 장연욱과 레이스를 동시에 매장을 시키려면 자극적인 이슈가 필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없습니다.”
“뭐야?”
“제가 기자들 데리고 발품 팔아가면서 여기저기 다 찔러 봤는데, 장연욱은 엄청난 모범생이더군요. 국내, 해외 스케쥴이 있어도 최대한 학교 수업에 빠지지 않고 교육 과정을 전부 이수했답니다. 그리고 친구 관계도 좋아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뭐야. 그놈이 존나게 잘난 놈이라고 칭찬이라도 하는 거야?”
“그, 그건 아니지만······.”
“여자 문제는? 여자 문제는 없어?”
약도 문제가 없고 학교 폭력도 문제가 없다면 항상 복잡한 여자 관계가 문제를 일으키기 마련.
잘생긴 놈들의 특징이다.
세상 여자들이 그렇게 빛나는 꽃미남을 가만 놔두겠는가.
“그게······ 여자 관계도 깨끗합니다. 워낙 인기가 많아서 학교 내에 팬클럽이 따로 존재한답니다. 사실상 그 학교 여학생들은 전부 장연욱을 좋아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아니. 거의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직접 고백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직접적으로 친분을 쌓는 경우도 없고요.”
“그놈이 그토록 조심을 한다고?”
“네. 여자 관계에 있어서는 극도로 조심을 한답니다. 거기다 장연욱 친누나인 장혜나가 중간에서 조절을 해준다고 합니다.”
“잠깐. 장혜나?”
김 대표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저 악질적인 기자들이 인정할 만큼 장연욱은 먼지 하나 묻은 게 없는 놈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일수록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악취가 나기 마련.
“장혜나에 대해서는 조사를 했나?”
“아뇨. 장연욱에 대해서만 집중 조사를 했고, 장혜나에 대해서는 아직······.”
“그렇단 말이지?”
김 대표가 음흉한 입꼬리를 씰룩였다.
이건 처음부터 사냥 목표가 잘못 설정되어 있었다.
“황 실장도 밥값 해야지? 그리고 기자 놈들도 말이야. 장혜나에 대한 건 다 털어와. 기자들한테 썩 전화 돌려.”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장연욱을 쓰러뜨릴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주변 사람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