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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43화 (143/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3화

“흐흐. 누구 덕분에 우리가 호강을 다 하네.”

“그러게 말이야.”

고급 일식집에서 술잔을 돌리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언론사 기자들이었다.

평소에 받는 월급으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가격이었지만, 오늘은 지갑이 두툼해져 부담이 되지 않았다.

“장연욱 그놈도 참 불쌍해. 아직 성인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어른들한테 피 터지게 쳐맞고 있는 걸 보면.”

누군가는 여전히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올바르게 기사를 쓰고 있겠으나, 이미 많은 이들이 누군가에게 대가를 받으며 옳지 못한 기사를 남발하고 있다.

이곳 일식당에 모인 이들 역시 각 기획사로부터 대가를 받고 장연욱에 대한 부정적인 기사를 매일 같이 써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몇 번 기사를 쓰는 것으로 분에 넘치는 돈을 받았으니 말이다.

“그건 그놈이 잘못한 거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깝치다가 털린 거 아니겠어? 더군다나 우리가 뭐 틀린 말이라도 썼나? 구구절절 맞는 말만 썼잖아. 빌미를 준 건 그놈이야. 솔직히 말해서 기획사한테 돈을 안 받았어도 내가 알아서 기사를 썼을걸?”

합리화를 하는 건 위험한 일이지만, 이들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웠다.

“그런데 그놈도 나름 수를 썼더만. 우리가 한꺼번에 기사를 쏟아내니까 한 달 동안 잠수를 탔잖아. 잠잠해질 때까지.”

“그러면 뭐해? 이번에 결국 억지로 걸그룹 데뷔시키고 나서 오지게 욕먹고 있는데.”

“뭐, 그것도 우리랑 기획사에서 물밑 작업을 하니까 그렇게 된 거 아닌가? 근데 노래는 좋더라. 뮤직비디오도 잘 만들었고. 초반에 작업 치지 않았으면 나름 잘 나가는 걸그룹이 됐겠어.”

이들도 장연욱이 만들어낸 걸그룹을 인정하고 있었다.

귀에 착 달라붙는 좋은 노래를 만들었고, 걸그룹 멤버들도 매력이 있어 보였다.

“그러면 뭐해. 이미 다 갈려 버렸는데.”

“애니메이션한테 밀리는 걸그룹? 과연 한국 사람들이 이걸 좋게 볼까? 거부감 들어서 쳐다보지도 않을 거다.”

“그냥 그깟 애니메이션 말고 일반 걸그룹이랑 똑같이 데뷔했으면 좀 다르지 않았을까 싶네.”

‘레이스’ 걸그룹이 공개되고 나서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기획사가 물밑 작업을 하여 바람잡이를 한 게 가장 큰 영향이 되었지만, 게임 걸그룹이라는 것이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거기다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뮤직비디오가 더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어 사실상 ‘레이스’는 묻혔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에 대한 축배를 지금 기자들이 들고 있는 것이고.

“아무튼, 우리가 일 처리를 깔끔하게 한 덕분 아니겠어? 앞으로 이렇게만 쭉 하자고.”

“좋지.”

쭉 술잔을 들이켜고 나서 동료 기자 하나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아참. 오늘 저녁에 개막식이 있었지?”

“개막식? 무슨 개막식?”

“기자라는 사람이 그것도 몰라? 오늘 레전드 오브 챔피언 월드컵 개막식이 열리는 날이잖아. 그것도 서울에서!”

“아~ 그러고 보니 그렇네. 서울에서 개막한다고 난리였지?”

“이걸 말세라고 해야 하는 거냐? 어떻게 게임 대회 하나가 시청자 수 1억 명이 넘어? 진짜 월드컵인 줄 알겠네.”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도 레전드 오브 챔피언 월드컵을 시청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기서 우승한 팀은 영원히 팬들 머릿속에 기억될 것이며, 특출난 플레이를 보인 선수는 우상처럼 숭배받는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얼마나 기대를 하고 있는지 알아? 3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게 모두의 숙원이야. 나도 꼭 그러길 바라고 있고.”

“너도 이 게임하냐?”

“당연하지! 누구나 한번쯤 하는 게임인데.”

스트리밍을 통해 개막식을 보고 있던 기자는 게임사가 준비한 여러 퍼포먼스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다 대회 시작 전에 나오는 오프닝 무대에 눈을 크게 떴다.

“어··· 어어? 이게 뭐야?”

“왜? 뭔데 그래?”

“이, 이거 ‘레이스’ 아니야?”

그들이 필사적으로 매장을 시켰던 ‘레이스’가 전 세계 사람들이 보고 있는 무대에서 무덤을 박차고 나왔다.

* * *

“다들 긴장하셨습니까?”

“······.”

얼굴이 창백하다.

똑바로 호흡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당장이라도 토를 하고 싶은 듯한 저 얼굴.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동안 여러분이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고난과 시련은 오늘을 위해 참아온 것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멤버들에게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데뷔 무대다.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을 때 사방에서 공격해대는 통에 멤버들은 무서워서 핸드폰을 켜지도 못했다.

그 정도로 고통을 받았으면 모든 걸 포기할 법도 한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연습에 매진하며 여기까지 따라와 주었다.

“저희가··· 잘할 수 있을까요?”

“네. 분명히 잘할 겁니다. 오늘을 위해 열심히 연습했으니까요. 그리고 전 실력 없는 사람을 뽑지 않았습니다. 여기 있는 멤버들 모두 잠재력이 뛰어나고 실력 역시 의심할 바가 없어요.”

내 말에 힘을 얻은 것인지 멤버들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다들 할 수 있죠?”

“네!”

“그럼 파이팅하고 무대로 나가요.”

멤버들은 손을 높이 위로 들며 파이팅을 외쳤다.

“다들 잘해야 돼. 진짜 너무 자랑스러워.”

“고마워. 언니.”

“혜나야. 잘하고 돌아올게.”

“응. 다 부숴버리고 와.”

옆에 있던 혜나 누나와 한번씩 포옹을 하며 멤버들은 스태프를 따라 준비된 무대로 올라갔다.

걸그룹 ‘레이스’의 첫 데뷔 무대.

전생에서는 트윙클이라는 이름을 썼지만, 이제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전 세계인 앞에 섰다.

나는 조용히, 그리고 긴장된 마음으로 붉은 불꽃과 함께 시작된 무대를 감상했다.

제발 실수하지 않게 해달라며 간절히 빌었다.

그때 손에 부드러운 촉감이 느껴졌다.

누나가 슬며시 내 손을 잡아 준 것이었다.

“괜찮아. 다들 잘할 거야.”

“응······.”

레이스에 대한 국내 분위기는 좋지가 않다.

무대 위에 올라오자마자 야유로 화답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예상 외의 반응이 벌어졌다.

“와아아-!!”

“레이스! 레이스!”

한국에서 열리는 개막식.

고조된 분위기와 화려한 연출, 이어지는 신나는 음악.

삼박자가 모두 어우러져 관객들은 야유 대신 환호성을 터트렸다.

나는 해외 방송 채널과 국내 방송 채널을 시시각각 확인하고 있었는데, 해설위원들도 덩달아 신이 나 보였다.

“정말 엄청난 노래이지 않습니까? 이 순간만큼은 경쟁이란 이름을 내려놓고 모든 게이머와 모든 시청자가 하나로 연결되는 것만 같습니다.”

실시간으로 개막식을 송출 중이던 해외 유명 스트리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멤버들이 노래에 맞춰 각자 정해진 포즈를 취하자 폭죽이 사방에서 터져 올라갔다.

그리고 관객들은 개막식장이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러댔다.

“레이스!!”

“앵콜!!”

무대가 끝났을 땐 모두 앵콜을 외치며 레이스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해설위원들은 마치 결승전 무대를 연상시키듯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역대급 무대입니다!! 지금껏 여러 개막식을 봤지만 이 정도로 뛰어난 무대는 처음 보는 것 같네요.”

“걸그룹 레이스! 앞으로의 행보가 굉장히 기대됩니다!”

멤버들은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며 여운을 남긴 채 퇴장했다.

그제서야 나도 다리에 힘이 탁 풀리면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연욱아! 괜찮아?”

“응. 괘, 괜찮아.”

누나는 그런 나를 보고 풉 웃음을 터트렸다.

“왜 웃어?”

“아니. 너도 걱정을 많이 하긴 했구나 싶어서.”

“당연히 걱정하지. 어떻게 걱정을 안 해.”

“그냥 평소 모습만 보면 아무것도 걱정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우리 동생은 뭐든 다 성공시키니까. 그래서 이번에도 아무 걱정 안 하고 당연히 성공시키는 걸로 생각했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난 정말 소심한 성격이다.

그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표정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끔 나도 우리 동생이 사실은 로봇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니까 아니네.”

누나는 내 볼을 쓰다듬다 이내 길게 꼬집었다.

“아!”

“이제 그만 일어나. 멤버들 내려온다. 네가 제일 먼저 나가서 반겨줘야지.”

그 말을 듣고 나니 풀렸던 다리에 다시 힘이 돌아왔다.

그래. 아직 내 일은 끝나지 않았다.

난 늦기 전에 얼른 대기실을 나가 스테이지에서 내려오는 멤버들을 맞이했다.

“PD님.”

무대에서 내려오는 멤버들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애써 참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에게 다가가 손을 잡고 말했다.

“모두 정말 고생했어요. 정말로.”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멤버들이 크게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어쩌다 보니 그 가운데 껴서 나 혼자 멤버들을 다 안아주고 있었다.

왠지 나도 눈물이 핑 돌아 흘러내리려 했다.

* * *

언론사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걸그룹 레이스의 성공적인 데뷔 무대.]

[동시 시청자수 1억 명. 전 세계를 무대로 데뷔한 레이스.]

[걸그룹 시장의 새로운 바람? ‘레이스’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개막전이 끝나고 나서 ‘레이스’라는 이름이 검색어를 장악했고 각종 언론사에서도 크게 보도를 냈다.

온통 레이스에 대한 얘기밖에 없을 정도로 국내와 해외 전부 큰 화제를 몰게 된 무대였다. 또한 개막식 경기에 출전한 한국 측 팀들이 전부 다 승리를 하면서 더욱 사람들이 열광했다.

그 당시 분위기가 너무 뜨거워 한번 무대를 마쳤던 레이스는 경기가 전부 끝난 뒤 한 번 더 무대 위로 올라가 공연을 했는데, 그것이 큰 화제가 되어 게임 팬들 사이에서 계속 언급이 되고 있었다.

언론사에 이어 당연히 커뮤니티도 뜨겁게 불타올랐다.

레이스와 장연욱을 욕하던 커뮤니티 회원들은 전부 사과글을 올렸고, 비난글이 죄다 찬양글로 바뀌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장연욱을 의심한 내가 바보였다. 진짜 천재가 맞는 듯하다.

-게임이랑 걸그룹은 진짜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개막식 때 갑자기 불꽃 펑펑 터트리면서 등장하니까 갑자기 국뽕 치사량으로 올라오더라.

-야이 새끼들아. 내가 레이스 쩐다고 했지? 처음 나왔을 땐 다 욕만 박던 놈들이 갑자기 태세 전환하네.

-노래도 너무 좋고 멤버들도 다 예뻐서 좋음. 전부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됨.

-아 레이스 팬클럽은 언제 만드냐고

전세 역전이라는 말은 이때 쓰는 것이 아닐까.

부정적이었던 레이스의 이미지가 이번 개막식 무대로 인해 완전히 바뀌었다.

레이스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쏟아졌고, 해외에서도 극찬을 할만큼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다 좋은 말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상 최악의 무대. ‘레이스’ 이대로 괜찮은가?]

[게임에서 탄생한 걸그룹. 청소년들에게 악영향 미칠 가능성 높아.]

[레이스 걸그룹은 대한민국 가요 시장에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

그러나 이미 여론이 크게 바뀐 상황이라 반응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기레기. 누구한테 돈 받고 쓰냐?

-기자님. 노래는 들어 보셨습니까? 솔직히 걸그룹 노래 퀄리티가 아니던데요. 이런 좋은 그룹을 두고 이유 없이 까는 건 아닌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청소년들에게 악영향을 미쳐?

-미친놈들이네

-노래 너무 좋더라. 다음 무대 기대된다~!!!!!

-벌써 해외에서 난리났던데. 월드 투어는 언제 도는 거냐는 말도 나오는 중임.

개막식을 보고 있던 해외 팬들의 숫자가 많은 만큼, 당연히 레이스에 대한 인지도는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높아지고 있었다.

애니메이션만 보던 해외 팬들이 실사 뮤직비디오를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고, 초반에 밀렸던 조회수가 점점 올라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를 뛰어 넘어버렸다.

그리고 호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개막식이 끝난 뒤 국내 앨범 시장을 점령한 레이스의 노래가 빌보드 TOP 100위에 들어간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30위권.

대한민국 걸그룹 사상 첫 쾌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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