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42화
[연욱이♥]
[장연욱♥♥♥]
[연욱이에게♥♥(딴 놈이 가져가면 죽인다)]
또 그날인가.
이제는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날이 왔다.
바로 11월 11일.
빼빼로 데이였다.
교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책상과 사물함에 수북히 쌓인 빼빼로와 편지를 보고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그리고 나를 적개심으로 쳐다보는 남학생들의 눈빛도 부담스러웠다.
-연욱아. 사랑해. 혹시 여자친구가 없다면······.
-연욱아. 항상 노래 잘 듣고 있어. 사실 하루도 빠짐 없이 네 목소리만 듣고 살아.
-연욱아. 난 네가 유명한 가수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해.
-난 너랑 사귈 수 없지만, 다른 사람도 너랑 사귀지 않았으면 해. 만약 여자친구가 있다면 평생 저주할 거야!
편지 내용도 전부 비슷했다.
사랑해는 기본이었고, 사귀어 달라는 요청도 수없이 받았다.
가끔 사랑이 광기로 바뀌어서 스토킹을 하거나 저주를 하는 편지를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여자친구라.
지금은 JJ의 멤버고 연예 활동을 하고 있는만큼 누군가와 쉽게 사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거기다 나는 얼굴도 잘 모르는 사람과 사귀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다.
“야. 너 이번에 게임 걸그룹 준비한다면서?”
“나도 봤어. 악플 엄청 많던데.”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그 기사를 한 달 전쯤에 본 거 같았는데.”
곡은 이미 방학 때 다 끝났다.
하지만 곡을 다 만들었다고 해서 당장 데뷔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게임사와 콜라보를 하여 만든 걸그룹이다.
당연히 멤버들을 모델링하여 새로운 스킨과 캐릭터를 만들고 춤동작도 넣어줘야 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시간이 걸렸다.
“음. 곧 나올 거야.”
“오~ 혹시 거기서 너한테 스킨 공짜로 안 준대? 혹시 주면 우리한테 뿌려 주면 안 돼?”
“와. 대박이겠다. 나도 스킨 줘.”
“나 엄청 기대하고 있잖아. 걸그룹 스킨이라니. 나오면 꼭 산다.”
적개심을 보이던 남학생들도 게임 이야기가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풀어진다.
몇몇은 스킨을 달라고 칭얼 거렸고, 또 몇몇은 스킨은 이렇게 만드는 게 좋다고 훈수까지 뒀다.
저런 말들을 들을 때면 아직 어려서 그런 건지 그냥 얘들이 다 귀엽게 보였다.
“음음. 연욱아. 혹시 혜나한테 사인 한 장 받을 수 있을까? 아! 물론 내가 가지려는 건 아니고 우리 조카가······.”
“연욱아. 너 혹시 과외 안 하니? 이번에 서울대 들어간 우리 막내 동생이 있는데, 너한테는 공짜로 과외해 줄 수 있다더라.”
학생들은 그러려니 하는데, 문제는 선생님들도 종종 저런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저번에는 수줍게 내게 사탕을 선물해 주는 선생님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우리 팬클럽 회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학교 생활을 끝마친 뒤 나는 항상 그렇듯 야자를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선물 받은 빼빼로를 구휼미마냥 풀어 남학생들한테 나눠 줘도 가방에 다 들어가지도 않는 양의 빼빼로가 남았다.
나는 낑낑 거리며 그것들을 가지고 가다 혜나 누나와 마주쳤다.
누나도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양손에 빼빼로를 가득 들고 있었다.
“······너도?”
“누나도?”
“이젠 뭐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워.”
우리 두 사람은 풉 웃으며 같이 집으로 올라갔다.
그러다 누나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근데 걸그룹 데뷔를 네가 늦췄다면서?”
“응. 저번 달에 악플이 엄청 심했잖아. 언론 플레이도 장난 아니었고.”
“맞아. 그랬지. 너무 의도가 다분했어. 못된 놈들.”
“그냥 밀어 붙여도 상관은 없는데, 생각해 보니까 조금 뒤로 미뤄도 괜찮겠더라고. 멤버들 멘탈을 고려해서라도 뒤로 미루는 게 낫다고 판단했어.”
여러 기획사가 의도적으로 나와 혜나 누나를 공격하며 이번 걸그룹 프로젝트는 실패작이라고 비난했다.
아직 데뷔도 하지 않은 걸그룹에게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모욕을 하는 네티즌들도 참 많았다.
그래서 일부러 데뷔를 뒤로 미룬 것이었다.
다행히 게임사에서도 배려를 해줬다.
어차피 모델링과 기획에 시간이 걸리고 있던 터라 마침 잘 됐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굳이 그런 이유 때문에 뒤로 미룬 건 아니야.”
“그럼?”
“곧 있으면 큰 대회가 열리거든.”
레전드 오브 챔피언 월드컵.
짧게 레오컵이라고 불리는 이 대회는 무려 수천만 명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다.
결승전 때 1억 명이 봤을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레오컵은 이제 한 달도 남지 않았다.
“아~ 레오컵. 나도 알아. 우리 저번에 같이 봤잖아. 우리나라가 저번부터 자꾸 우승 못해서 솔직히 이번 레오컵은 보기 싫어.”
게임 강국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동안 레오컵을 쭉 우승해오던 한국이었다. 하지만 3년 전부터 우승을 못했고, 이번 년도도 힘들지 않겠냐는 의견이 우세하다.
하지만 나는 이번 레오컵의 결승컵이 누구 손에 들어가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누나. 그래도 기대해. 혹시 알아? 이번 레오컵이 역대급 경기가 될지.”
* * *
기획사 사무실에 모여 있는 멤버들.
이제는 더 이상 연습생이 아닌, ‘레이스’라는 걸그룹 네임을 가지고 있다.
“다들 기분이 어때요? 많이 떨려요?”
표정을 보니 딱히 그런 것 같진 않다.
뭐랄까.
초연한 얼굴이라고 해야 하나.
“이상하게 별로 긴장이 안 돼요.”
“데뷔 무대를 하는 게 아니라서 그런가?”
오늘 데뷔를 하게 되는 ‘레이스’는 뉴튜브에 영상이 첫 공개된다.
물론 레전드 오브 챔피언 채널에 먼저 공개가 되는데, 거기서는 30초 정도 멤버들의 진짜 실물이 나오고 나머지는 전부 애니메이션 처리가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실물이 나오는 뮤직 비디오는 우리 기획사 채널에서 올라갈 예정이다.
“긴장은 안 되는데, 걱정은 돼요. 혹시 잘 안 될까봐.”
“그리고 사람들이 게임만 기억하고 우리는 아예 뒷전으로 삼을 거 같아서 그것도 걱정이 돼요.”
멤버들의 근심은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았다.
“걱정말아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게임 속 캐릭터만 기억하겠지만, 얼마 안 있어 ‘레이스’ 멤버들을 더 기억하게 될 겁니다. 열심히 찾아보기도 할 테고요.”
멤버들을 다독이는 동안 강 대표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야. 방금 영상 공개됐다.”
뮤비 완성본을 이미 수백 번이나 더 검토하며 봤는데도 첫 공개를 하게 된다고 하니 왠지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실시간 스트리밍에 참여하는 시청자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걸 보는 것도 색다른 재미였다.
“오~ 이제 시작한지 30초 밖에 안 됐는데 벌써 30만 명 돌파? 진짜 이 게임이 인기가 많긴 해.”
강 대표도 게임을 좋아하는만큼, 걸그룹 데뷔를 손꼽아 기다렸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킨이 나오기를 기다린 듯하다.
“크-. 누가 만들었는지 노래 하나는 기똥차.”
“저도 노래는 진짜 잘 만든 것 같아요.”
“안무랑도 정말 잘 맞기도 하고요.”
확실히 노래는 잘 뽑혔다.
이 이상 잘 뽑을 수 없을만큼 말이다.
저번 생과 비교해 봤을 때 지금 노래가 수백 배는 더 좋았다.
“으. 제일 걱정되는 시간이 왔다.”
“나 떨려서 못 보겠어.”
“흐흐. 어차피 너희들 영어 못 해서 여기 사람들이 뭐라고 적었는지 알아보지도 못할 걸?”
“대표님!”
영상이 끝나고 나서 나는 반응들을 살펴봤다.
-기다린 보람이 있다. 노래가 진짜 끝내줘.
-작곡가가 그 다크 스페이스 OST 작곡가 맞지? 진짜 기대 이상이었다.
-레이스~ 사랑해~!
-게임으로 나오는 걸그룹이라서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이건 엄청나네요! 앞으로 쭉 팬이 될 거 같아요.
다행히 반응은 좋았다.
“음. 다 좋은데 말이야. 게임 쪽에만 조회수가 너무 쏠려 있어. 우린 거기에 1/10 밖에 안 돼.”
그러나 역시 조회수는 게임 쪽에 쏠려 있었고, 우리가 실물로 공개한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낮았다.
거기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영상이 공개되고 나서 악플들이 여럿 달리기 시작했다.
-차라리 게임 모델링이 나은 듯. 실물은 별로다 ㅋㅋ
-게임 걸그룹은 대체 어떤 씹덕 새끼 머리에서 나온 거냐?
-장연욱 실망임
-얼굴은 좀 예쁘네. 근데 노래도 별로고 춤도 별로라서 아마 안 뜰 듯~
노래를 칭찬하는 사람들도 많았는데, 의도적으로 악플을 올리는 사람도 많았다.
거기다 세력이 끼어든 것인지, 악플만 추천을 줘서 메인에 뜨게 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죄송해요.”
애니메이션에는 좋은 댓글만 달리는데, 실물 공개 뮤직비디오는 악플이 늘어나고 있으니 멤버들만 축 쳐져 있었다.
“아니에요. 이제 시작인데요 뭐. 그리고 이 정도는 다 예상한 거 아닙니까? 경쟁 기획사에서 어떻게든 우리를 견제하려고 댓글 부대를 뿌리고 있는 겁니다.”
“그래도······ 전부 다 댓글 부대는 아닐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들 기 죽을 필요 없어요. 이제부터가 시작이니까요.”
멤버들은 좀처럼 힘을 내지 못했다.
“다들 들어가서 좀 쉬세요. 그리고 당분간 뉴튜브 쪽은 보지 마시고요. 괜히 쓸데 없는 악플을 보고 있다가는 정신만 상해요.”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마. 초반만 이러고 나중 가면 나아져.”
“네······.”
멤버들이 숙소로 돌아가고 나자 이번에는 강 대표가 호들갑을 떨었다.
“야. 어떡하지? 이거 큰일난 거 아니냐?”
방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하던 사람이 지금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대표님까지 이러면 어떡해요?”
“걱정이 되는 걸 어떡하냐? 솔직히 기획사들이 이렇게 거세게 공격할 줄은 몰랐어. 이러다 날개 한번 못 펴보고 사장 되는 거 아니야?”
사실 국내 여론이 어떻든 별로 상관 없었다.
“대표님. 생각을 달리 하세요. 한국에서 개판 나면 세계로 진출해 놀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아니. 그게 쉽냐?”
“제가 저번에 그랬잖아요. 다 생각이 있다고.”
“그건 걸그룹 데뷔 늦추는 거 아니었어?”
“아뇨. 그건 일시적인 방편에 불과하고요. 진짜른 다른 거였죠.”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
“그건······.”
때마침 기다렸던 전화가 왔다.
“장 PD님!”
언제 들어도 흥겨운 목소리의 제드였다.
“영상 보셨습니까? 반응들이 아주 좋아요. 그리고 방금 막 스킨 판매를 시작했는데, 어마어마하게 팔려 나가고 있습니다. 이거 잘하면 최고 판매 기록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예. 저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제드. 제가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닙니다. 당신이라면 제가 원하는 소식을 가져왔을 거라 믿어요.”
제드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흐흐. 제가 누굽니까? 장 PD님을 위해서라면 그 정도 일은 당연히 해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요? 승인된 겁니까?”
“예. 좀 회의가 길긴 했습니다만, 결국 이사회에서 최종 결론이 나왔습니다. 장 PD님의 계획을 전적으로 따르기로요.”
난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사실 안 된다고 거절을 하면 어떡하나 조금 걱정을 하긴 했는데, 이들은 흔쾌히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행이네요.”
“예. 엄청 좋은 아이디어이지 않았습니까? 이사회에서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입니다.”
“네. 고마워요.”
나는 제드와 통화를 끊고 나서 강 대표를 바라보았다.
그런 나를 보고 강 대표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그렇게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건 항상 일이 잘 풀렸다는 뜻이었지. 뭔지는 모르겠다만, 잘 된거냐?”
“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말 그대로였다.
이제부터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