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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38화 (138/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38화

[내가 인기 없는 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는 꿈을 꿨다.]

나는 그 문장을 읽고 하마터면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떨어트릴 뻔했다.

[그리고 왠지 연욱이가 슬프게 울고 있었다. 잠에서 깨고 나서도 기분이 우울했다.]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나는 차분히 다음 글귀를 읽어 보았다.

[데자뷰라는 게 정말 있는 거 같다. 연욱이랑 있다 보면 가끔 꿈에서 본 것만 같은 일이 자주 일어난다. 그리고 연욱이한테 이상한 소리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요즘 몸이 피곤한 건가? 비타민이라도 왕창 챙겨 먹어야지!]

이상한 소리라.

대체 그게 뭘까?

“야! 장연욱!”

“어?”

누나의 목소리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내 다이어리는 왜 보고 있어?”

“아. 미, 미안. 펼쳐져 있길래. 개인적인 건데, 내가 호기심에 봐버렸어. 미안해.”

허락 없이 봤다고 화내려나.

하지만 누나는 별로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뭐, 괜찮아. 딱히 중요한 얘기도 없고. 그나저나 엄마가 쿠키 구울 건데, 너도 먹을 거냐고 물어보라고 해서.”

“어······ 난 괜찮아.”

“그래? 아싸. 그럼 네 거는 내가 다 먹어야지.”

“잠깐만 누나.”

재빨리 거실로 돌아가려는 누나를 붙잡았다.

“미안한데, 뭐 좀 물어볼게 있어서.”

“뭔데?”

“이거 다이어리에 적혀 있는 거 있잖아. 이상한 소리를 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거.”

“아~ 그거.”

누나는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올렸다.

뭔가 골몰히 생각해야 할 게 있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그냥 무의식적으로 말이 튀어나온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너도 몇 번이나 나한테 물어봤잖아. 네가 그랬던 적이 있었냐고.”

확실히 나도 누나 말을 듣고 이상해서 되물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마치 내게 뭐가 어울리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온 말들이야. 그런데 요즘 그런 빈도가 조금씩 높아지는 것 같아서 일기에 썼던 거고. 원래 사람이 말을 하려면 항상 필터를 거쳐야 한다고 하잖아. 그런데 가끔씩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냥 말이 나가더라고. 이상하지? 내가 원래 덤벙거리는 성격이라서 그런가 봐.”

누나는 가볍게 넘어가고 있지만, 난 전혀 그러지 못 하고 있었다.

특히 누나가 꿈에서 인기 없는 걸그룹으로 활동하고 있었다는 것도 그렇고, 내가 슬프게 울고 있는 것도 그렇고.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여기 걸그룹에 대한 내용은?”

“그냥 개꿈이지 뭐.”

“혹시 이번에 데뷔하려는 우리 소속사 멤버들이 꿈에 나왔던 거야?”

“응? 그건 아닌데. 막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아. 아무튼, 그냥 잡소리 써 놓은 거니까 신경 쓸 필요 없어. 지금 거의 기억도 안 나. 그러니까 난 쿠키 먹으러 간다?”

누나가 먼저 가고 나서도 나는 방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전생의 기억은 오직 나만 가지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왜 이런 꿈들을 꾸고 있는 거지?

거기다 누나가 하는 이상한 소리들.

마치 이런 일을 몇 번 겪어봤다는 듯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들도 신경이 쓰였다.

예전에 양복을 맞춰줬을 때도 내게 뭐가 어울리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었고, 내가 진로를 고민할 때도 내게 가장 맞는 길이 뭔지도 알려 주었다. 그 외에도 떠오르는 것이 많았다.

혜나 누나는 단순하다.

솔직히 가끔은 너무 심하게 단순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일까, 성격이 쾌활에서 붙임성이 좋고 뭔가 나쁜 일이 있어도 쉽게 잊는 편이다. 또한 잠도 아주 잘 자는 편이라 꿈도 거의 꾸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전생에서 있을 법한 일들을 꿈으로 꾸고 있다.

“내가 과민하게 반응을 하는 건 아니겠지?”

이건 우연이 아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보였다.

* * *

“흐응흐흥.”

어제부터 누나의 콧노래가 멈추질 않는다.

“그렇게 좋아?”

“응. 좋아. 해외여행은 정말 언제든 좋아. 그리고 비행기 타는 것도 너무 좋아. 거기다 너랑 내가 좋아하는 게임 회사로 가는 거잖아? 엄청 기대 돼.”

오늘은 멤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다.

게임사에 가서 멤버들을 인사시키고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누나는 포함이 안 되어 있었지만, 같이 가고 싶다고 졸라대는 바람에 껴주었다.

“혜나 언니도 같이 가는 거예요?”

“웅. 당연하지. 너희들만 보내면 내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그래.”

어느새 멤버들과 많이 친해진 혜나 누나였다.

저번에 나와 앨범 문제로 충돌한 이후로 그다지 커다란 이벤트는 없었다.

또한 전생에 대한 꿈을 꾸거나, 이상한 소리를 하지 않았다.

한 달 동안 별일 없이 나는 멤버들을 연습시켰고, 누나도 스케쥴을 소화하면서 방학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방학이 되고 나서 곧바로 미국행 티켓을 끊었다.

“내가 미국에 진짜 맛있는 레스토랑 몇 군데 알고 있거든. 거기 데려가 줄게.”

“오-. 정말? 근데 괜찮을까. 우리 데뷔 때문에 살찌면 안 되는데.”

“에이. 그날 하루만 먹고 빡세게 운동하면 돼.”

서로 재잘대며 떠드는 멤버들과 누나를 보며 나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내 옆에 백수진이 다가왔다.

“PD님은 꼭 그런 표정을 지으시더라.”

“네?”

“아빠 미소라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면서 이상하게 우릴 볼 때면 꼭 그런 미소를 짓고 계시더라고요.”

조금 얼굴이 붉어졌다.

백수진은 모르겠지만, 남몰래 눈물을 훔친 적도 있었다.

저 멤버들을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는 기쁨에 젖어 감정이 벅차 올랐던 것이다.

“그런데 수진 씨.”

“네?”

“비행기는 처음이시죠?”

“아, 네. 멤버들 전부 처음이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비행기가 처음이시라는 말을 듣고 주의 사항을 드리려고 합니다.”

“뭐, 뭔데요?”

“비행기에 타실 때에는 꼭 신발을 벗고 타셔야 합니다. 아시겠죠?”

“어! 저도 그거 봤어요.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한다는 거랑 드레스 코드도 맞춰야 한다는 거! 그리고 번호 외치면서 들어가야 한다던데?”

“어머. 그게 진짜였어?”

“응. 비행기 매너라고 들었어. 그치? 혜나 언니.”

“무, 물론이지!”

혜나 누나랑 나는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보면 볼수록 정말 순수하고 귀여운 사람들이다.

* * *

레전드 오브 챔피언.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게임.

특히 E스포츠 시장에서는 이걸 능가할 게임이 없을 정도다.

내가 아는 미래에서도 이 게임이 망할 일은 없다.

특히 이 게임은 일 년마다 대격변 패치를 하지 않으면 죽을병에 걸려서 꾸준히 게임 스타일을 바꿔 버린다. 그 덕에 유저들은 하지도 않은 공부를 여기서 한다고 하소연을 할 때가 많다.

한 가지 웃긴 건,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게임이 우리나라 돈 많은 아저씨들만 한다는 게임의 수익률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여기 회사가 진짜 잘 꾸며졌다. 이거 좀 봐. 챔피언들로 동상을 만들어 놨어.”

게임 화면에서만 접하던 챔피언들의 동상을 보고 있으니 뭔가 감회가 새로웠다.

누나는 여기저기 꾸며진 곳을 구경하다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내게 쪼르르 다가와 속삭였다.

“연욱아. 방금 생각이 난 건데.”

“응?”

“혹시 대표님이 아직도 우리 티어가 다이아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

“뭐······ 정정을 하지 않았으니까 계속 그렇게 믿고 계시지 않을까?”

“헉. 그러다 같이 게임하자고 하면 어떡해?”

“그럼 그땐 접었다고 하면 되지.”

나와 누나의 티어가 다이아와 마스터라는 걸 듣고 나서부터 강 대표는 요즘 들어 칼퇴근을 자주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집에 가서 폐관 수련을 하고 있다나 뭐라나.

만약 정말로 강 대표가 같이 게임을 하자고 하면 그땐 그냥 티어 높은 친구 아이디 하나 빌려서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말 없이 걷고 있는 백수진 옆에 붙었다.

“수진 씨. 아직도 삐져 있어요?”

백수진은 아직도 얼굴이 빨갛게 익어 있었다.

“으으. PD님이랑 혜나 말만 듣고 정말 신발 벗고 들어갈 뻔했잖아요.”

“하하. 미안해요. 그 말을 정말 믿을 줄 몰랐어요. 그래도 다행히 들어가기 전에 제가 말렸잖아요.”

“너무해.”

“다시는 그런 장난 안 치겠습니다.”

그렇게 회사 입구에 들어가자 몇몇 사람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어서 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OST팀의 팀장, 제드 디나이라고 합니다. 항상 메일만 주고받다가 이렇게 실물로 뵙는 건 처음이네요.”

제드 디나이 팀장과는 몇 달 전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다.

멤버들의 프로필을 받고 오케이 사인을 한 것도 이 사람이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 이렇게 유명한 프로듀서분과 함께 일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그리고 영화 다크 스페이스에서 장 PD님이 얼마나 대단한 활약을 했는지도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OST 상은 전부 다 장 PD님이 휩쓸게 될 거라는 말이 돌더군요. 그래서 이번 곡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큽니다.”

회사 사람들은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 주었다.

사실 동양인이라서 무시하진 않을까 조금 걱정을 하긴 했는데, 전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백인, 흑인, 동양인 가릴 것 없이 정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인 만큼 각기 다른 나라의 직원들을 뽑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더 많은 의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이 게임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인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왜 게임 밸런스는 그렇게······.”

“네?”

“앗. 죄송해요.”

혜나 누나가 황급히 사과를 했지만 제드는 기분 좋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희들도 밸런스팀을 매번 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거긴 개판이에요.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여러분도 포기하세요. 하하!”

진심이 아니라 농담이겠지······?

“자, 오늘부터 여기서 작업을 하게 될 겁니다.”

제드가 우리를 데려간 곳은 이 빌딩의 거의 꼭대기 층에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넓은 층 하나를 전부 다 쓸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를 불러서 연주 및 녹음을 할 수도 있고, 원하는 악기가 있으면 언제든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없는 악기가 없거든요.”

다크 스페이스 음반 작업을 할 때도 거기보다 더 좋은 작업실을 찾는 건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긴 그 스케일을 한참 초월했다.

이 수백 평이 넘는 작업실은 그야말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장소가 아닐까?

게임 유저들이 밸런스 팀은 욕해도 애니메이션 팀과 OST팀은 거의 욕하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누나.”

나와 마찬가지로 조금 넋이 나가 있는 누나가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으응?”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소속사를 옮기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

여기라면 정말 평생 음악만 만들다 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어···?”

뇌리에 어느 한 장면이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여기서는 평생 음악만 만들다 죽어도 괜찮을 거 같아.’

마치 내가 여기에 와본 것만 같은 데자뷰.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지, 아니면 혼자 중얼거리는 듯한 내 모습도 함께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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