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37화
“끼다니? 뭐를?”
“뭐긴 뭐겠어. 이번에 우리 소속사가 데뷔시킨다는 그 걸그룹.”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왜?”
“이번에 하는 프로젝트에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그러니까 작곡에 참여를 하고 싶다는······.”
“아니! 멤버가 되고 싶다는 거야!”
잠깐 뇌정지가 왔다.
작곡 작사 참여도 아니고 걸그룹의 멤버가 되겠다는 건가?
“누나. 지금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거야? 걸그룹을 하겠다니. JJ는 이대로 쫑내고?”
“그냥 이번 한 번만 참여하겠다는 거지. 내가 언제 JJ에 탈퇴하겠다고 했어? 딱 이번 프로젝트만 참여하고 싶어서 그래.”
난 단호하게 대답했다.
“안 돼.”
“응? 왜? 왜 안 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이번에 데뷔하는 걸그룹인데, 거기에 끼어들겠다고? 그것도 데뷔곡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걸그룹 노래를 피쳐링 하는 것 정도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단순히 피쳐링을 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냥 피쳐링하는 걸로 나와도 괜찮아.”
“그것도 안 돼. 데뷔곡에 피쳐링을 넣는 걸그룹이 어디 있어? 이번에 누나가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게 되면 사람들은 누나랑 우리 걸그룹이 한 세트인 줄로만 알 거야. 원래부터 같은 멤버라고 착각할걸?”
“그거야 우리가 잘 설명을 하면 되지 않아?”
“안 돼. 오롯이 우리 걸그룹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나야 하는 게 이번 프로젝트의 핵심이야. 누나가 거기 끼어 버리면 그림이 이상해져.”
내가 거듭 안 된다고 거절하자 누나는 필살기를 쓰기 시작했다.
“연욱아. 다시 한번 생각해 봐. 응? 엄청나게 잘될 수도 있잖아. 응응?”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은 눈망울.
가지런히 모은 두 손.
그리고 겸손하게 낮춘 허리까지.
이거에 참 여러 번 당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가 없었다.
“안 돼.”
“헉. 보통 이렇게까지 하면 오케이 해 주던데.”
“안 돼. 돌아가.”
“아니. 내가 멤버들이랑 잘 얘기해 볼게. 그쪽에서는 좋게 받아 줄지도 모르잖아. 응?”
“고집부리지 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왜 갑자기 이상한 고집을 피우고 있어?”
나는 그만 작업실을 나가려 했다.
“얼른 가자. 매니저 형 기다리겠다.”
하지만 누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먼저 작업실을 뛰쳐나갔다.
“몰라! 네 마음대로 해!”
저 멀리 뛰어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한편으로는 뭔가 이상하기도 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누나의 부탁은 들어줄 수 없는 거였다. 그런데도 왜 저런 고집을 부린단 말인가.
이제까지 누나가 누구를 곤란하게 만드는 부탁을 했던 적이 있었나?
아니. 없었다.
이런 터무니 없는 부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설마······.”
전생에서 누나는 JJ가 아니라 트윙클 멤버였다.
즉, 나와 있어야 하는 게 아닌 저 멤버들과 같이 있어야 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비루한 운명은 바뀌었고, 누나에게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져 있다.
“전생에 대한 영향인 걸까?”
전생의 기억은 나만 가지고 있다.
누나는 트윙클이라는 걸그룹에 존재했었다는 걸 알지 못한다.
그게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저번에도 이상한 일이 있었다.
누나가 멤버들을 처음 봤을 때 갑자기 눈물을 흘린 점.
거기다 이번에 갑자기 걸그룹 데뷔곡에 참여하고 싶다는 부탁까지 했다.
“우연이겠지······.”
우연치고는 뭔가 기분이 묘했다.
* * *
“너 혜나랑 싸웠니?”
어머니는 나와 누나 사이에 냉랭한 기운이 흐르고 있다는 걸 일찍 감지하셨다.
“그렇게 티나요?”
“왜 티가 안 나겠어? 너희 둘이 집에 있을 때, 매일 혜나가 네 방 찾아가서 조잘거리잖아. 거의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수준이지. 그런데 오늘 아침 식사 때부터 아주 고요해. 집이 무슨 절간인 줄 알겠어.”
확실히 혜나 누나가 입을 열지 않으면 우리 가족은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아버지도 어머니의 말을 거들었다.
“어휴. 나도 아침에 너네들 눈치 보느라고 소화가 안 된다.”
“죄송해요.”
“너희들 싸우는 건 오랜만에······. 아니지. 거의 처음 보는 거 같다.”
“그거야 연욱이가 항상 자기 누나한테 져주니까 그렇지.”
혜나 누나와 투닥일 때가 많지만, 이렇게까지 서로 말을 안 하고 있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일까. 이상하게 나도 속이 허전하고 아까 먹은 아침밥이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만 같았다.
그냥 답답하고 또 답답할 뿐이다.
“대체 무슨 일로 싸운 거야?”
“일 관련해서요. 누나가 이번에 진행하는 프로젝트에서 뭔가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제가 안 된다고 거절했어요.”
“음······ 그래?”
“네. 이번만큼은 저도 양보할 수가 없어서요.”
부모님은 까짓것 그냥 들어주고 말라는 말씀을 하실 줄 알았다.
“뭐, 연욱이 생각이 그렇다면야.”
“그래. 냉전 시대가 좀 오래 가겠네.”
내 예상과는 반대의 그림이 나왔다.
“안 말리세요? 제가 져주면 끝날 일이긴 한데.”
“호호. 이제까지 네가 누나한테 양보하지 않은 적이 있었니? 누나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게 도와줬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절대 양보할 수 없다며.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래. 그동안 네가 져주기만 했잖아. 한번은 안 된다고 말할 수도 있지. 그리고 네가 안 된다고 하는 거면 안 되는 거 아니겠어?”
그동안 내가 헛살지 않았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누구보다도 부모님에게 인정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며칠간은 누나가 저럴 거 같은데, 이해해 주세요.”
“그려. 우리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마.”
부모님과의 티타임을 끝내고 난 뒤 나는 내 방으로 돌아가려 하다 문득 누나 방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휴-”
그래도 내가 먼저 말을 붙이는 게 낫겠지?
똑똑-
난 가볍게 노크를 하고 말했다.
“누나. 자?”
그러자 심통이 난 목소리가 돌아왔다.
“응. 니 누나 지금 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이건 누구 목소리인데?”
“내 핸드폰 인공지능 목소리.”
“그렇구나. 그럼 들어갈게.”
“아니. 누가 들어오래!”
내가 들어오기 무섭게 누나는 빽 소리를 지르며 이불을 뒤집어썼다.
“자고 있다면서?”
“네가 와서 깬 거야.”
나는 침대에 앉아 이불을 살짝 걷었다.
그러자 누나의 얼굴이 빼꼼 보이다 안으로 사라졌다.
“안 씻었어?”
“흥, 남이사.”
“누나 이래 봬도 우리나라에서 톱스타급인 거 알지? 이번에 마약 사건 터지면서 우리 위에 있던 사람들 다 날아가서 지금 우리가 원탑이야. 관리 좀 해야지?”
“됐어. 너는 가서 걸그룹이나 신경 써.”
누나가 이렇게 삐져 있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근데 싫게 보이기 보다는 뭔가 귀엽게 느껴졌다.
8살짜리 꼬마가 사탕 안 줬다고 삐쳐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누나. 내가 생각을 곰곰이 해봤어.”
그 말에 누나가 벌떡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생각을 해봤다고?”
“응.”
“그래서? 어, 어떤 결론이 나왔는데?”
“당연히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왔지.”
“아이씨! 진짜!”
누나가 다시 이불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내가 붙잡았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뭐. 안 된다면서.”
“그래. 당연히 안 되는 건 누나도 알고 있잖아. 대신, 차기 앨범에는 넣어 줄게.”
“응?”
“데뷔곡이 크게 흥행하게 되면 차기 앨범이 나오겠지? 그때 누나를 포함시켜 주겠다는 거야.”
긴가민가한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은 안 된다는 거지?”
“응. 누나가 정말 그 멤버들을 위한다면 내 말대로 해야 돼. 잘 생각해 봐. 만약 그 멤버들이 데뷔를 했어. 그런데 사람들은 분명 누나가 그 멤버들 안에 섞여 있다는 것만 볼 거란 말이지. 결국 화제가 되도 사람들은 누나만 보게 될 거야. 그게 멤버들에게는 큰 피해가 되지 않을까?”
“음······ 그렇겠지?”
“그런데 만약에 그 멤버들 만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뒤에 차기 앨범을 내놓는 과정에서 누나가 합류를 하는 거야. 피쳐링으로 말이지. 그럼 그땐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져 있겠지? 내가 왜 멤버들을 위해서라고 하는지 알겠어?”
누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 말이 맞아. 내가 생각이 짧았어.”
다행히 누나는 잘못을 인정하는 게 참 빠르다.
그래서 한번도 누나가 답답하다고 여겨진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고마워. 이해해 줘서.”
“아니야.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하지. 그냥 내가 좀 감정적이었어.”
문득 궁금해졌다.
누나가 왜 감정적으로 그랬는지.
왜 유독 그 멤버들을 신경 쓰는지 말이다.
“누나. 그 연습생들은 처음 보는 거 맞지?”
“응? 당연하지. 알았으면 진작 아는 척했겠지.”
“그런데 이상하게 누나는 그 멤버들한테 마음을 많이 쓰는 거 같단 말이지.”
“어······ 그건 나도 몰라.”
모른다는 건 과연 무슨 뜻일까
“그냥 같은 여자라서 그런가? 그냥 자꾸 챙겨 주고 싶고 신경이 쓰여.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이상하게 그 사람들만 보면 마음이 짠하고 그러네.”
“······.”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모르겠지만, 누나는 지금 전생에 영향을 받고 있다.
좋은 일일까, 아니면 나쁜 일일까.
“그리고 우리 회사의 명운이 걸린 사업이잖아. 그래서 더 그런 걸 수도 있지. 만약에 이번 걸그룹이 잘못되면 회사도 망할 수 있다며.”
“안 망해. 나랑 누나가 있잖아. 우리가 벌어들이는 수입이 얼마나 많은데.”
“야. 그래도 GN 엔터가 예전보다는 많이 커졌는데, 우리 둘만으로 어떻게 그 많은 직원을 먹여 살리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으나, 앞으로 누나와 내가 더욱 비상한다면 웬만한 기획사 부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얘기는 거기서 끝. 나도 완전 이해했어. 앞으로는 무리한 부탁 안 할게. 미안해, 우리 동생. 나 때문에 괜히 신경만 쓰고.”
누나는 내 머리를 한번 쓰다듬은 뒤 침대에서 일어났다.
“으- 배고파. 아까 괜히 분위기 잡는다고 밥도 제대로 못 먹었네.”
“응?”
“엄마~ 나 밥 줘!”
그러고는 거실로 쏜살같이 뛰어가 버렸다.
어지간히 배가 고프긴 했던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 뒤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책상 위에 있는 무언가가 내 시선을 끌었다.
누나의 핑크색 다이어리.
어릴 때 몇 번 쓰고 지금도 가끔씩 쓴다는 다이어리다.
프라이버시니까 당연히 혼자 볼 거라 생각하겠지만, 누나는 자랑하듯이 다이어리를 보여 주며 그 안에 있는 내용도 전부 다 오픈했던 적이 있었다.
딱히 개인적인 얘기를 나한테 감추고 싶지 않은 듯보였다.
그게 벌써 몇 년 전 일이고, 요즘은 다이어리를 쓰지 않는다고 했었는데 웬일로 책상에 다이어리가 펼쳐져 있는 것일까.
나는 홀린 듯이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이어리 첫 줄에 쓰여 있는 글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요즘 따라 자꾸 이상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