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35화
“후-. 나참 누가 진짜 대표인지 모르겠네.”
흡연실에 혼자 앉아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고 있던 강 대표는 자꾸만 헛웃음이 나왔다. 소속사 연예인 20명이나 잡혀갔는데 여기서 낄낄 거릴만큼 미친놈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들진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희망을 보았다.
선택과 집중이라고 하던가.
지금이 딱 그때였다.
그리고 이 모든 설계에는 장연욱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 같지가 않다니깐?”
혼자 또 웃음을 터트리며 1시간 전에 있었던 일을 회상해 보았다.
“너랑 혜나한테 다 투자를 해?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에요. 저랑 혜나 누나한테만 투자를 하시라는 겁니다. 다른 연예인들한테 힘쓰지 마시고.”
강 대표는 지금 이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감을 못 잡았다.
“이제 곧 기사가 쫙 뿌려지겠죠. 그리고 우리 기획사 이미지가 나락으로 가는 것도 정해진 수순이고요.”
“다친 곳에 고춧가루 뿌리냐?”
“아니요. 저는 반전의 기회가 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반전의 기회? 그게 뭔데?”
“저랑 혜나 누나는 마약을 안 했잖아요. 이걸 부각시키는 거예요.”
여전히 아리송한 말이었다.
“일단 대표님이 섭외할 수 있는 언론사는 전부 끌어 모으세요. 그리고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는 겁니다. 우리 GN 엔터테이먼트는 마약 범죄를 일으킨 20명의 연예인들과 계약을 파기하겠다고요.”
“뭐, 뭐라고?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그 20명 중에는 톱스타급 애들도 섞여 있어!”
“네. 그런데 지금은 범죄자죠. 옛날이라면 모를까, 요즘처럼 인터넷이 잘 발달된 시대에는 그런 범죄 하나가 매우 치명적이에요. 6개월 동안 쉬었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방송 복귀를 하는 게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예전에는 사고를 한번 쳐도 몇 개월 자숙 기간을 가지면 복귀를 할 수가 있었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고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이 왕성해지면서 그런 꼼수를 쓰는 복귀는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이미 일이 이렇게 된 걸 어떡합니까. 불이 더 번지기 전에 확실하게 꼬리를 자르셔야죠.”
“야. 아무리 그래도 식구 같은 사람들을······.”
“그 식구라는 사람들이 먼저 대표님을 배신했잖아요. 왜 그걸 감싸 주시려는 거예요? 마약은 엄연한 죄입니다. 그것도 보통 죄가 아니죠.”
전원 계약 해지라니.
사실 생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같이 한 세월이 있어서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장연욱이 저런 조언을 준 것이었다.
“그렇게 언론사에 뜻을 전한 다음, 저랑 혜나 누나는 아주 결백하다는 걸 기사로 내세요.”
“사람들이 믿어 주려고 할까?”
“뭐, 저도 대표님이 기자회견 할 때 말 한 마디 흘리긴 할 거예요.”
“뭐라고 할 건데?”
“그건······ 그때 가서 말씀드릴게요.”
기자 회견을 열어 20명의 연예인들과 손절을 치고 장연욱과 혜나를 필두로 이미지 쇄신에 나선다라-.
썩 나쁜 의견은 아니었다.
문제는 20명의 연예인들이 소속사를 나가는 만큼, 수입이 함께 줄어든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가 그 20명만큼의 역할을 해볼게요. 돈 걱정은 하지 마세요. 지금 당장이야 조금 힘들 수 있겠지만, 제게 조금만 시간을 더 주시면 그보다 몇 배는 더 많게 수익이 생길 겁니다. 그리고 걸그룹이랑 보이 그룹도 데뷔시키기로 했잖아요.”
기가 막힌 자신감이었다.
가끔 저런 자신감이 부럽기까지 하다.
거기다 저놈은 한번 뱉은 말을 무조건 지켜왔다.
“쉽지 않을 텐데.”
“쉽지 않아도 열심히 해봐야죠. 그리고 저랑 혜나 누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회사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번 해 봐요. 더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 한번 해보자.”
“정말요?”
“내가 널 처음 만나고 나서 지금까지 네 말을 듣고 손해본 적이 한번도 없어. 이번에도 그러길 바라야지.”
강 대표는 거기서 큰 결정을 내렸다.
장연욱의 조언이 아니었다면 질질 끌다가 결국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초래했을 것이다.
언제 봐도 참 대단한 놈이다.
어린놈이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오는 것일까.
그리고 연욱이 말대로 인원수를 줄여 한 팀에게만 집중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팀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면 더더욱.
* * *
“우리 GN 엔터테이먼트는 항상 정직함을 팬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고자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큰 실망감을 안겨 드렸고, 어떻게든 그 책임을 지려고 합니다.”
행동이 빠른 강 대표는 바로 다음날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에서 그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마약 범죄에 연루된 20명의 소속사 연예인들과 전부 계약을 파기할 예정입니다. 법적 처리가 조금 늦어질 순 있겠지만, 다시는 그들이 연예계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할 겁니다.”
그런 뒤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소속사 대표면서 버젓이 마약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대처와 사과.
모든 게 완벽했다.
그리고 상처 입은 사냥감을 포위하고 있던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쏟아냈다.
“대표님은 정말 모르셨던 겁니까?”
“예. 만약 알았다면 절대 가만 놔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다는 건 대표님은 마약 파티에 참여도 안 하셨다는 거네요. 다른 기획사 대표들은 마약 파티에 함께 있었다는 증언들이 속속 나오고 있는데.”
“네. 단 한번도 마약을 건든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내게도 불똥이 튀었다.
“장연욱 씨도 강 대표님과 같은 입장이십니까?”
“예. 저도 마약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소문에는 마약 파티가 벌어진 모임에 참석을 했다고 하던데.”
“그건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저랑 혜나 누나는 아직 미성년자라서 밤늦게까지 모임에 있지 못합니다. 학업도 있고 해서 보통 1~2시간 안에 자리를 빠져 나옵니다.”
그들은 쉽게 나를 놔주지 않았다.
딱 내가 원하는 바다.
“그런데 루머에는 두 분이 같이 마약을 했다고 하던데요?”
“말 그대로 루머입니다. 그리고 이런 루머가 계속 나돌아다니기를 원치 않아 특단의 조치를 취할 생각입니다.”
“특단의 조치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
“아니요. 네티즌 분들이야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하니 그걸 뭐라 할 순 없죠. 차라리 이 모든 의혹을 끝낼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나와 누나는 당당하다.
그렇게 당당하다면 증명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증명을 할 땐 최대한 의혹이 더 커지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더 큰 작용을 일으킬 테니 말이다.
“지금까지 저를 포함해 많은 연예인 분들이 여러 의혹에 침묵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건 아마도 건드리면 더 의혹이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전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직접 경찰, 혹은 검찰로 가서 조사를 받고 저와 혜나 누나가 마약을 한 적이 없다는 걸 명명백백 밝히겠습니다.”
기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경찰이 소환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발적인 조사를 받겠다는 겁니까?”
“네. 제가 알아보니 약물 검사는 혈액과 머리카락으로 하면 1년 내에 마약을 했는지까지 전부 다 알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여 그 어떤 마약을 써도 국과수의 레이더를 벗어날 순 없다.
1년 안에 어떤 약을 했는지 검사 한번이면 다 알 수 있다고 한다.
“그걸로 검사를 받는다면 저와 혜나 누나는 깨끗하다는 걸 밝힐 수 있지 않을까요?”
아직 경찰에 소환되지는 않았으나,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연예인들은 현재 이번 일에 관해 침묵하고 있다.
괜히 조사를 받고 약물 검사를 받았다가는 자신이 마약쟁이였다는 게 밝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당당하면 가서 조사를 받으라는 압박을 주고 있지만,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잠잠해질 거라 생각하며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행동을 하면 어떨까?
나는 정말 억울하고, 직접 가서 조사를 받아 내가 깨끗하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한다면?
사람들은 나와 혜나 누나를 다르게 보게 될 것이다.
거기다 우리 두 사람이 마약 범죄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까지 밝혀진다면 잠깐 바닥을 친 인기가 다시 하늘 높이 솟아오를 건 자명한 일이다.
그뿐인가?
착하고 정직한 이미지가 강하게 굳혀져 다른 일이 터져도 섣불리 우리를 욕하는 일은 없어지게 된다.
“그 어떤 의혹이든 전부 다 수용하고 직접 밝혀 내겠습니다. 단 한 점의 오점도 남지 않게 말입니다.”
이번 마약 파티 사건은 나와 혜나 누나의 인기를 더욱 끌어 올릴 것이며, 혼란에 빠진 소속사가 오직 우리 둘에게만 집중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 * *
강 대표가 열은 기자 회견은 크게 이슈가 되었다.
소속사가 커뮤니티에 작업을 친 것도 한 몫을 했지만, 이렇게 대표가 직접 나와서 20명이나 되는 연예인들을 전부 계약 파기 시킨 건 처음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톱스타급 배우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이목을 끌었다.
또한 내가 혜나 누나와 같이 가서 조사를 받겠다는 것 역시 장작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덕분에 모든 의혹에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연예인들만 가시방석 신세가 되었다.
나처럼 너희들도 직접 가서 조사를 받으라는 압박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기자회견이 있은 뒤, 나는 부모님을 설득해 혜나 누나를 데리고 직접 조사를 받으러 갔다.
당연히 경찰 쪽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애초에 고발이 들어온 것도 없었고 루머가 있긴 했으나 소환을 하기에는 정황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주변 시선 때문에 그들은 약물 검사를 신청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와 혜나 누나는 깨끗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흐흐. 하여튼 사람 심장 벌렁 거리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미리 언질도 없이 내가 경찰서로 가서 직접 조사를 받겠다는 얘기를 기자회견에서 듣고 강 대표는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마지막 희망인 나와 누나까지 걸리면 회사의 운명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참사는 없었다.
“제가 말했잖아요. 저랑 혜나 누나한테 다 투자하시라고.”
“안 그래도 그럴 참이다. 이제 너희 둘만 바라보고 갈 거야. 그러니까 네가 우리 좀 먹여 살려줘라.”
“서포트만 잘해 주시면 저도 최대한 노력할게요.”
마약 파티 사건으로 인해 150명이 넘는 가수와 배우들이 잡혀 들어갔다.
그중에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톱스타들도 있다.
“아 맞다. 정성우 있잖아.”
“네.”
“그놈도 잡혀 들어갔더라. 웃긴 건 이놈이 미성년자한테 마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했다는 거야. 믿어 지냐?”
음흉한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설마 그 정도로 쓰레기일 줄이야.
“정성우 별명이 천사잖아. 그런데 사실은 천사탈을 쓰고 있던 악마였던 거지. 혜나가 진작 손절쳐서 연락도 안 받았다던데, 천만 다행이다. 곧 있으면 기사 크게 날 거야. 정성우는 우리나라 최고 톱배우잖아. 그런데 그런 꼴을 냈으니. 쯧쯧.”
정성우가 이렇게 잡혀 들어가던가.
전생에서의 정성우는 그런 논란 없이 항상 톱배우를 유지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운명의 흐름이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알게 모르게 참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다.
즉, 내가 미래를 알고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진짜 똑같이 흘러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다른 건 몰라도 정성우가 정의구현을 당했다는 소식은 왠지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