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34화
“그동안 연습은 잘 하셨어요?”
“네!”
몇 주 뒤에 다시 만난 연습생들은 저번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다들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고 해야 할까.
갈팡질팡하던 눈빛이 살아난 건 마음에 들었다.
“그럼 한 명씩 들어가서 볼까요?”
여러 PD가 그동안 연습생들의 훈련을 맡았다. 그리고 매번 평가를 매겨서 파일로 만들어 두었는데, 지금 그 서류가 내 손에 있었다.
누구는 무엇이 부족하고, 또 누구는 무엇에 강점을 보이는지 자세히 기록이 되어 있어 참고하기가 편했다.
나는 연습생들이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들어 주었다.
열심히 추는 춤도 그냥 보기만 했다.
오늘은 저번처럼 마음에 들지 않는 게 있을 때마다 태클을 거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연습생들이 힐끔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한 사람당 노래와 춤을 다 보는 데에 10분을 넘기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 중 하나가 내게 물었다.
“저기 PD님.”
“네.”
“오늘은 저번처럼 피드백이 없는 건가요?”
“아뇨. 당연히 있죠.”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로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여러분이 어떤 실수를 했고, 또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는 방금 충분히 보았습니다. 그래서 한 분씩 몇 가지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일단 백수진 씨.”
“아, 네!”
“정말 노력을 많이 한 티가 나네요. 사실 예전에는 노래 실력이 너무 좋지 않아서 듣기가 어려울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훨씬 나아졌습니다.”
내가 처음에 놀랐던 부분은 백수진의 가창력이 몰라볼 정도로 올라갔다는 것이다.
성숙미와 남성의 마음을 자극하는 춤선이 강점이었던 그녀가 이제는 노래 실력도 갖추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은영 씨도 제가 재차 강조했던 대로 저음 부분에서 유독 심하게 흔들리던 바이브레이션이 꽤 많이 나아졌어요.”
“가, 감사합니다!”
연습생들의 안색이 환해졌다.
저번과는 다르게 오늘은 칭찬 파티가 열릴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정은영 다음으로 난 볼멘 목소리가 나왔다.
“박태민 씨.”
“네, PD 님.”
“태민 씨는······ 본인의 기량이 괜찮은 수준이라고 보시나요?”
박태민은 다른 PD들이 뽑아 놓은 연습생이다.
강 대표가 저번에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언급한 4명 중의 한 명이기도 했다.
연습 첫날부터 술집을 가고 그다음에도 PC방을 들락날락하며 게으른 모습을 보였다고 기록에 적혀 있다.
“저는 여러분이 정해진 연습 시간 외에 뭘 하셔도 솔직히 상관없습니다. 연습이 부족하면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고,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푹 쉬어도 된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거니까요.”
나는 얼어붙어 있는 박태민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놀고 싶을 때 놀 수 있죠. 그런데 여러분은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 최고의 연예인이 되려고 여기 온 거 아닙니까? 그럼 본인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지, 내가 추가 연습 없이도 괜찮은지 체크는 할 수 있어야죠. 그런 기본적인 것 하나 하지 못한다는 건 의지가 없다고밖에 해석이 안 됩니다.”
박태민은 저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다.
내가 피드백을 준 것을 기억조차 못 하는 것 같았다.
그것이 실력에서 고스란히 나온다.
이놈은 벌써 자기가 연예인이 된 것마냥 행동하고 있다.
“여러분 모두 소속사와 1년간 계약을 맺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간에 여러분이 원하면 언제든 파기할 수가 있죠. 그러니 태민 씨.”
“네······.”
“전 앞으로 태민 씨의 연습을 봐줄 생각이 없어요. 즉, 제가 태민 씨를 위해 시간을 할애할 일은 앞으로 없을 거라는 뜻입니다.”
“네?!”
“원한다면 언제든 계약을 파기해도 좋습니다. 이만 여기서 나가 주십시오.”
그러자 박태민이 애원하듯 소리쳤다.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다음에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내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일이다.
“나가세요. 전 그리 관대한 사람이 아닙니다. 한번 아니라고 생각하면 절대 번복하지도 않고요. 여러분은 연습생이면서 엄연히 우리 소속사와 계약이 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데뷔를 못했다고 해도 프로의식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거죠. 태민 씨는 그런 게 부족해요. 그러니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조용히 나가세요.”
“······.”
박태민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나가자 작업실 안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몇몇 사람은 벌벌 떨고 있는 게 보일 정도였다.
자기도 박태민 꼴이 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표정 짓지 않으셔도 됩니다. 태민 씨 말고는 내보낼 분이 없으니까요.”
그제서야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안도하긴 이르다.
“그러나 언제든 태민 씨처럼 기대에 못 미치면 소속사를 나가야 한다는 점, 알아 두세요. 지금 당장은 넘어갈 수 있어도 똑같은 기량으로 계속 여기 남을 순 없습니다. 아시겠죠?”
“네-!”
군대마냥 모두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괜히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이렇게라도 고삐를 가끔씩 잡아 주는 게 내 역할이 아닐까?
* * *
“우리는 깨끗한 거 맞지?”
“네. 확실합니다. 여러 차례 확인했고, 모두 깨끗하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회사가 평소보다 많이 분주해 보였다.
뭔가에 쫓기는 듯 움직이고 있었고, 강 대표 표정도 썩 좋진 못했다.
“무슨 일 있어요?”
“응? 아. 왔구나. 너 소식 못 들었어?”
“무슨 소식이요?”
“연예인들이 모여서 마약 파티를 했다더라. 그걸 누가 경찰에 찌른 거고.”
잊을만 하면 있는 일이었다.
연예인이 마약을 하는 게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라서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항상 있던 일 아닌가요?”
“맞아. 항상 있던 일이지. 그런데 이번에는 규모가 꽤 커. 네임드 배우들이랑 가수들은 물론, 소속사 대표도 끼어 있다는 소문이 돌아. 적어도 50명은 넘는 명단이 있다던데?”
그 정도로 많이?
잠깐만.
생각해 보니 전생에서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마약 파티에 참석한 연예인들이 대거 붙잡히면서 한동안 국민들 사이에서 연예인 불신론이 퍼지지 않았던가.
“그래서 내가 우리 소속사에서는 마약 파티에 참석한 놈들이 없나 조사를 하던 중이었지. 괜히 모르고 있다가 불똥 튀면 안 되잖아.”
대형 마약 사건이 터진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곳에 누가 연루되어 있는지는 나도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설사 안다고 해도 지금 당장 바꿀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고.
“대표님!”
그때 직원 하나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어. 그래. 무슨 일이야?”
“우리 쪽에도 걸렸어요. 김하영 씨랑 최현호 씨요!”
“뭐, 뭐야?!”
아. 그 누나랑 형도 참지 못하고 결국 손대지 말아야 할 걸 손댔구나.
“그리고 문제는 딱 그 두 사람만 걸린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날 모임에 참석했던 연예인 중에 우리 소속사 사람들이 꽤 있어요.”
여직원은 뒤에 말끝을 흐리다 나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혜나랑 연욱이도 참석을 했던 모임이라······.”
“뭐? 혜나랑 연욱이까지?”
뜬금없는 날벼락이었다.
“저랑 누나가 참석한 모임이요?”
“네. 신광 호텔에서 했던 모임 기억해요?”
“아, 네. 그 명품 브랜드 회사에서 주최하던 모임이었잖아요.”
내 기억으로 한 달 전에 있던 모임이다.
“그때 호텔 스위트룸을 여러 개 잡아 놓고 파티를 벌였던 모양이에요.”
강 대표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 채로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연욱아. 너 혹시······.”
“대표님. 저 아직 학생이에요.”
“어휴. 알지. 그런데 학생일수록 원래 호기심이 왕성하고 그러잖냐.”
“약 같은 거 할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에요.”
“야! 그럼 다른 놈들은 강심장이라서 마약을 하냐?”
“아뇨. 그냥 머리에 나사가 하나씩 빠진 거죠. 전 멀쩡해서요.”
나와 혜나 누나는 당연히 그와 관련된 것이 없다.
문제는 주변의 인식이었다.
“큰일이네. 하영이랑 현호 그 새끼가 마약에 손을 댔다는 건 우리 쪽 애들이 꽤 많이 섞여 있을 거라는 뜻인데. 아까 박 실장 너는 다 깨끗하고 괜찮다고 했잖아.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애꿎은 박 실장만 욕을 먹게 되었다.
“제가 확인했을 땐 다들 절대 아니라고 해서······.”
“그 말을 믿냐? 다 집합시켜서 제대로 물어봐. 끝까지 추궁해서라도 어디까지 관련되어 있는지 밝혀내. 알았어? 삐끗 잘못하다가는 회사 날아간다.”
“넵!”
박 실장이 후다닥 나가고 나서 강 대표는 한번 더 내 쪽을 바라보았다.
“연욱아. 넌 내가 믿는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근데 이거 불똥이 저랑 혜나 누나한테도 튀겠네요.”
“으- 최대한 별일 없게 내가 잘 막아 보마.”
별로 믿음이 가진 않았다.
당장 우리 소속사에 주축이 되는 여배우와 남배우가 쌍으로 마약 사범이 되었으니, 그 주변 사람들도 싸잡아 욕을 먹게 될 것이다.
거기다 나랑 혜나 누나도 같은 소속사라는 이유로 의심을 받게 될 것이고 하필이면 그 모임에 참석을 했었다.
충분히 합리적인 의심을 받을 만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단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연예계 마약 파티! 경찰 대대적 수사 나서.]
[톱스타들 전부 마약에 빠져 있나? 팬들은 충격!]
그런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이름만 들으면 다 알만한 톱스타들이 죄다 마약 범죄에 연루된 것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전혀 그러지 않을 것 같았던 연예인까지 경찰에 붙잡혀 가면서 국민들의 분노가 엄청났다.
그리고 나와 혜나 누나에게도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다.
-저 남매도 분명 마약에 빠져 살고 있을 것이다.
-장연욱은 미국에서부터 마약 파티를 해왔다더라.
-장혜나는 매일 프로포폴을 맞는다.
갖가지 루머가 퍼져나갔고 모두 사실인 양 받아들이기까지 했다.
혜나 누나는 여러 악플과 루머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고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은 듯해 보였다. 그래서 당분간 인터넷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버렸다.
그렇다면 나는?
난 딱히 이런 상황이 억울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오히려 이게 기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충격이다. 내가 다 믿었던 놈들인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냐?”
강 대표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제도 하루 종일 술만 퍼마셨는지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그럴 만도 하다.
GN 엔터테이먼트에 속해 있는 20명의 연예인들이 전부 마약 범죄로 잡혀 들어갔으니 말이다.
지금 GN 엔터테이먼트는 초비상이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는 것이다.
“엔터테이먼트는 결국 이미지로 먹고사는 건데, 이 정도면 그냥 문 닫아야지.”
“왜 그렇게 비관적이세요. 다른 대형 기획사들은 매일 이런 일 터져도 멀쩡하잖아요.”
“그건 대형 기획사니까 그런 거고.”
어지간히 실망이 컸는지 난 다 큰 어른의 어깨를 토닥여줘야 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대표님.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요?”
“응?”
“걸러낼 건 다 걸러냈다고 생각하세요. 그리고 이 기회를 잘 이용하면 더 좋은 일이 있을 거 같기도 한데.”
죽어 있던 강 대표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너 뭐 좋은 아이디어가 있구나?”
“대표님.”
“그래. 뭐든 말해 봐.”
“차라리 저랑 혜나 누나한테 다 걸어 보시는 게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