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33화
최종 예선에서 5팀이 꾸려졌고, 그 5팀이 다시 3팀으로 갈라지면서 오디션이 끝났다.
살아남은 3팀 중 2팀이 내가 처음에 뽑은 팀들이었다.
“앞으로 여러분은 우리 소속사 PD들이 맡게 될 겁니다. 성공적인 데뷔를 할 때까지요. 그때까지 여러분의 모든 스케쥴 역시 회사에서 관리할 거고요. 저도 가끔 여러분의 연습을 맡아 주긴 할 겁니다.”
걸그룹, 그리고 보이 그룹이 되기 위해 앞으로 이들은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한다.
그러나 이들의 얼굴에는 두려움보다 희망이 가득해 보였다.
내가 일일이 연습에 참여하고 싶었지만, PD들에게 전반적인 것을 맡기고 나는 가끔 시험 보듯이 연습생들을 모아 훈련을 시킬 예정이었다.
“뽑아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진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저번 소속사에서는 절망뿐이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희망을 찾은 거 같아요. 어떤 것이든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총 14명의 연습생.
일단 뽑아 두긴 했으나, 이들 중 과연 누가 데뷔를 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일.
“그럼 모두 잘 알아들은 것으로 알고, 오늘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네? 오, 오늘부터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어, 없습니다.”
이들이 오디션 최종 합격자라는 것이 오늘 결정되었다.
당연히 서로 회포를 풀고 축하 자리를 마련하고 싶겠지만, 그건 정말로 데뷔를 했을 때 해도 늦지 않는다.
“자. 먼저 백수진 씨.”
“아, 네!”
“녹음실로 들어가세요. 무리한 걸 시키진 않을 겁니다. 딱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만 시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그냥 제가 하라는 대로 따라와 주시면 됩니다. 오늘 드리는 피드백을 나침반 삼아 연습을 쭉 해주시면 돼요.”
“네!”
그렇게 이들의 지옥 훈련······ 이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이 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다.
* * *
“그렇게 해서는 실력 향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합니다. 아시겠어요?”
“넵! 죄, 죄송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장정 8시간 동안 작업실에 붙잡혀 있던 연습생들은 드디어 해방 선고를 받았다.
그들은 참고 있던 숨을 내뱉으며 기진맥진한 모습을 보였다.
“하아- 진짜 힘들다.”
“악마가 따로 없네. 악마가.”
첫날부터 엄청난 강행군이었다.
8시간 동안 작업실에 갇혀 있는 건 답답할 순 있어도 크게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녹음실로 들어간 순간,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갇힌 것 같았다.
10초에 한번씩 이어지는 장연욱의 피드백에 멘탈이 깨지다 못 해 가루가 되었고, 그의 말에 따라 아무리 새로운 시도를 해봐도 계속해서 태클만 맞았다.
그것 때문에 몇몇 연습생들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저 냉혈한은 눈물을 보인다고 해서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소문으로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진짜? 그런 소문이 있었어?”
“응. 소속사에서는 장연욱이 악마로 불린대.”
“왜?”
“너희들도 봤잖아. 괴물 같은 재능에 실력. 거기다 사람을 갈구는 스킬까지. 그것뿐이야? 저 잘생긴 얼굴을 봐. 저거 보고 안 홀리는 게 이상한 거지.”
“오~ 그럴싸해.”
장연욱에 대한 여러 가지 별명이 있지만, 그중에서 악마라는 별명은 다른 소속사에게도 퍼져 있었다.
음악에 관한 것만큼은 한 치의 양보도 없고. 다른 프로듀서들과 작업을 할 때 엄청난 피드백이 쏟아져 나와 정신이 나가 버린다고 한다.
또한 그 별명에 걸맞은 무시무시한 재능도 겸비하고 있어 자연스레 그런 소문이 퍼진 것이었다.
“소문이 사실이었네.”
“그러게. 진짜 가차 없더라.”
“나 너무 무서워서 심장이 엄청 벌렁거렸던 거 있지.”
“오디션 때는 굉장히 부드러웠던 거 같은데. 왜 갑자기 저렇게 돌변한 거지?”
“그건 그냥 쇼였나? 원래 연기 잘하잖아. 오디션 때는 일부러 상냥한 척을 한 거지.”
“와, 소름.”
오디션 때는 싫은 소리를 거의 하지 않았던 연욱이다.
항상 웃는 얼굴만 보여줘서 사람이 참 착하구나, 그간의 소문은 다 잘못된 것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웃음기를 쫙 뺀 얼굴과 무미건조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지시를 내리며 피드백을 주었다. 또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사정 없이 꼬집었다.
녹음실을 당장 박차고 나가지 않은 게 용할 정도로 연욱은 그들을 구석까지 내몰았다.
“근데 다음에도 설마 똑같이 하진 않겠지? 오늘처럼 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린다던가······.”
“에이. 서, 설마. 학교도 다닌다며. 학교 끝나고 바로 오는 것도 힘들 텐데.”
“그렇겠지? 하하.”
오늘 다들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편하게 말을 나누고 있었다.
고난을 같이 할수록 더 우정이 깊어진다고 했던가.
“합격 기념으로 술이라도 한잔 먹어야 하는데, 오늘은 도저히 안 되겠다.”
“응. 나도······.”
“오늘은 빨리 가서 쉬자.”
피곤하다는 핑계로 다들 빠르게 해산을 했지만, 사실은 오늘 장연욱에게 받은 피드백을 되짚어보며 연습을 하려 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연습을 하고자 달려간 것은 아니었다.
일부는 지겨운 연습을 그만 두고 다른 것을 하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동선을 유심히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14명 중 10명은 연습실로 가서 내가 피드백을 준 대로 연습을 했고, 나머지 4명은 술을 먹으러 가거나, 혹은 pc방에 가서 게임을 했다라······.”
이번에 새로 뽑은 연습생들의 동선을 속속히 파악한 강 대표는 고개를 저었다.
“연욱이한테 8시간 동안 붙잡혀서 피드백을 받을 정도면 그만큼 고칠 만한 게 참 많았다는 뜻일 텐데.”
“네. 연욱이가 상대의 장단점을 기가 막히게 잘 파악하잖아요. 분명 도움 되는 조언들을 많이 해줬을 겁니다.”
“이 PD도 그렇게 생각하지?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라면 그 10명처럼 추가 연습을 하고 있어야 하는데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이 4명은 첫날부터 이럴 수가 있냐?”
강 대표는 연습생들에게 무한한 열정을 바라는 게 아니다.
사람이 힘들면 쉴 수도 있는 거고, 잠깐 다른 걸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오늘은 오디션에 합격하고 소속사 연습생 신분이 된 첫날이다.
그 누구보다도 연예인이 되려는 마음이 강렬해지는 그런 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4명은 마치 모든 걸 다 이루었다는 듯 연습이고 뭐고 노는 걸 택했다.
“내가 꼰대처럼 보일 순 있겠지만, 난 이렇게 열정 없는 놈들이 싫어.”
“그래서요?”
“지금이라도 확 내보낼까? 어차피 계약서도 아직 안 썼잖아. 솔직히 일주일 정도는 열심히 노력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일 줄 알았어. 난 별로 큰 거 안 바라. 그냥 성의만 보여 주면 된다는 거야. 그런데 이게 뭐야? 기본이 안 되어 있잖아.”
여기서 고개만 끄덕여 주면 강 대표는 정말 그 4명의 연습생을 그냥 내보낼 것만 같았다.
“대표님. 저번에 대표님이 그러셨잖아요. 아니. 약속하셨잖아요. 우리가 다 보는 앞에서요. 전권을 연욱이에게 맡긴다고.”
“그랬지.”
“그런데 대표님이 마음대로 갑자기 그 4명을 내보내면 연욱이가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뭐······ 연욱이도 나랑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그건 모르죠. 그 애 속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요. 아마 혜나밖에 없을걸요?”
그 말에 강 대표는 머리를 긁적였다.
“아마 연욱이가 엄청 화내겠지?”
“뭐, 소속사를 나가 버릴 수도 있죠.”
“그건 안 돼. 연욱이가 나가면 우린 끝이야.”
“아니. 연욱이 없었을 때도 회사는 잘만 굴러갔어요.”
“지금이랑 그때랑 똑같아? 아무튼 절대 안 돼.”
“그러면 개인플레이 하지 마세요. 연욱이한테 먼저 허락을 받고······. 아니. 이건 어감이 좀 이상하니까, 먼저 상의를 하고 결정을 하세요.”
강 대표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건 당연히 연욱이랑 상의를 해야지. 그래야······.”
그러다 문득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이 PD. 내가 이 회사 대표 맞지?”
“호호. 그럼요. 또 이상한 말씀 하시네. 대표님이 대표지, 그럼 누가 대표겠어요?”
“하하. 그치? 내가 아니면 누가 대표겠어.”
“맞아요.”
그 말에 강 대표는 괜시리 크게 웃으며 찝찝했던 마음을 지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사의 결정권이 전혀 다른 쪽에 넘어간 것만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 * *
“누구를요?”
“이 네 명. 너랑 연습하고 나서 그대로 술집도 가고 피시방도 가고, 아주 제대로 놀았더라.”
“뭐, 그럴 수도 있죠.”
나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자 강 대표가 조금 놀란 표정으로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너랑 연습이 끝나고 바로 놀러 갔다니깐? 여기 10명은 끝까지 연습실에 남아서 연습하고.”
“대표님. 연습생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건 사생활 침해 아니에요?”
“허허- 이거 내가 꼭 악덕 기업 사장이 되어 버린 거 같네.”
“지금까지는 그렇게 보여요. 혹시 저랑 혜나 누나 뒤도 막 쫓아다니고 그런 건 아니죠?”
“야! 지금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나도 강 대표가 뭘 걱정하는지 안다.
혹시 오디션에서 이상한 놈들을 뽑은 건 아닌지, 열정도 없는 놈들을 뽑아 괜히 아이돌을 만들어 보겠다고 하는 건 아닌지 말이다.
“대표님. 저는 과정보다 결과를 중요시하게 여겨요.”
“응?”
“원래 사람마다 역치라는 게 있잖아요. 누구는 10을 연습해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만, 다른 누구는 1만 연습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와요. 그걸 바로 재능의 차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연습생들이 실컷 놀든 말든 신경 쓰지 않겠다?”
“네. 저는 이미 그 사람들에게 어떤 걸 연습하고 고쳐야 하는지 말해줬어요. 그리고 다음 연습 때 어떻게 하는지 볼 겁니다. 거기서 만약 제대로 된 걸 못 보여 주면 그때 가서 문책하면 됩니다.”
“하지만 아무리 재능이 있다고 해도 노력을 해야······.”
“아뇨. 그런 건 상관없어요.”
난 재능과 노력의 차이를 분명히 알고 있다.
게으른 천재는 결국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이 있다고 했나.
학교를 다녀봤으면 그것만큼 개소리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사회 어느 곳을 가서도 노력은 결코 재능의 차이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뼈 빠지게 노력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실컷 놀다가 잠깐 연습하는 걸로 다 씹어 먹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죠.”
“너처럼?”
“뭐, 저도 엄청 노력하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나참. 너도 노력 엄청 하잖아. 뭐 하나 꽂히면 밤새 거기에만 매달리고.”
“그건 노력이 아니죠. 그냥 제가 하고 싶은 거니까 하는 거예요. 아무튼, 그 사람들은 저한테 맡기세요. 그리고 다음부터는 남의 뒤를 따라다니는 건 하지 마세요. 그러다 잘못 걸리면······.”
“알아, 인마.”
쿨하게 포기하는 강 대표에게 나는 웃으며 핸드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응? 이게 뭐야?”
“이번에 우리가 걸그룹을 만들면 처음으로 해야 할 일?”
그러자 그는 나와 핸드폰 화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거 진심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