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30화
“야. 진짜야? 대표님이 정말 잡혀 갔어?”
“어. 아까 경찰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잡아가더라.”
“갑자기 왜? 사람 죽였대?”
“나도 몰라.”
Grand 엔터테이먼트에서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던 백수진은 대표가 경찰에 잡혀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초조해졌다.
“서, 설마 이러다 회사가 문 닫는 건 아니겠지?”
“에이. 아니겠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가 사기 계약 및 폭행으로 구속되었으며 기획사도 곧 폐쇄된다는 소문이 돌았다.
“어떡해. 우리 그럼 여길 나가야 하는 거야?”
“그래야지. 너도 들었잖아. 기획사가 문을 닫는다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들어온 건데······.”
연예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들어온 기획사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회사가 이런 식으로 문을 닫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수진은 평소 친하게 지내는 3명의 친구들과 모여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논의했다.
“여기 와서 벌어 놓은 돈도 없고, 그냥 숙소에서 숨만 쉬고 살았잖아. 난 이제 그만 지방으로 다시 내려가야 할 거 같아.”
“다영아. 우리 포기하지 말자. 그동안의 시간이 너무 아깝잖아.”
“꿈을 위해서 학교도 자퇴하고 여길 온 건데, 내가 너무 멍청했어. 솔직히 너희도 알고 있었잖아. 기획사가 준 계약서가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는 거.”
“차라리 대형 기획사에 붙을 때까지 오디션을 봐 볼걸. 이런 곳에는 들어오는 게 아니었는데.”
이미 다들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숙소가 아니면 당장 몸을 누일 곳이 없기 때문에 모두 고향으로 내려갈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의아한 소식이 전해졌다.
“누, 누가 온다고요?”
“장연욱? JJ의 그 장연욱이요?”
장연욱이 연습생들을 보기 위해 회사로 직접 온다고 한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장연욱이 여길 왜 와요?”
“맞아. 지금 거짓말하는 거죠?”
“다른 장연욱 아니에요? 그 음악 천재 장연욱이 맞아요?”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속아보자는 생각에 수진과 친구들은 회사로 돌아가 보았다. 그리고 정말 그곳에는 장연욱이 있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들었는데, 큰 키와 건장한 몸.
보통 사람보다 더 넓어 보이는 어깨, 날렵한 턱선과 이기적으로 오뚝하게 서 있는 콧대. 거기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만 같은 눈동자.
그야말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모든 여성의 이상형이 로비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나 방금 장연욱이랑 눈 마주쳤어.”
“그건 나도야. 기지배야.”
“아니. 진짜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니깐?”
연욱은 연습생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GN 엔터테이먼트 오디션에 참여해 새롭게 시작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수진은 자꾸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장연욱이 왠지 자기가 있는 쪽만 집중해서 바라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갔을 때도 유독 그녀와 그녀의 친구들이 있는 쪽에 강한 시선을 보냈다.
“너도 느꼈지? 우리한테 아련한 눈빛을 보내는 거.”
“착각이야. 수진이 너 완전 빠졌구나? 뭐, 얼굴이 진짜 말도 안 되게 잘생기긴 했더라. TV에서 보던 건 절반도 못 따라가.”
“아닌데······. 진짜 우리 쪽을 계속 보고 있었는데.”
“됐고. 이제 어떡할래?”
수진과 친구들은 고민에 빠졌다.
회사가 문을 닫았다고 했을 땐 이제 다 끝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길이 열렸다.
“너희들도 알지? 원래 타 소속사 연습생이었다고 하면 다른 소속사에서 거의 안 받아줘. 그런 애들 받아들이면 재수가 없다나 뭐라나······. 그러니까 이게 우리 마지막 기회라는 거지.”
마지막 기회.
이 기회를 잡을 것인지, 아니면 쿨하게 보내 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 한다.
“난··· 할 거야.”
먼저 의견을 밝힌 건 백수진이었다.
“처음에는 나도 그냥 포기하려고 했는데, 아까 연욱 씨가 하는 말 들으니까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연욱 씨?”
“호호. 얘 진짜 푹 빠졌나 보다.”
“나 장난치는 거 아니고 진심이야.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야?”
사실 그녀들도 연욱의 말을 듣고 생각을 바꾼 참이었다.
거기다 어려울 때 함께 견딘 친구들과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좋아. 까짓것 한번 해보자. 어차피 마지막이잖아. 후회 없이 하고 안 되면 그냥 털고 나가면 돼.”
“응. 우리 4명이서 열심히 준비해보자. 만약 여기서 한 명이라도 된다면 난 그걸로 만족해.”
마침 장연욱은 오디션 조건을 솔로가 아니라 그룹으로 정했다.
즉, 혼자서는 오디션을 볼 수 없고 무조건 팀 단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근데 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 4명이 다 붙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그럼 진짜 대박이지.”
“근데 과연 그런 일이 일어날까?”
“아~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그녀들은 이렇게라도 웃으며 힘을 냈다.
막연한 희망을 가진 채 말이다.
* * *
단 한순간도 잊은 적 없는 이름과 얼굴.
그녀들을 그곳에서 보는 순간 몸이 떨려오고 목이 턱 막혀 하마터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할뻔했다.
“여기 이번에 오디션 참가하는 리스트다.”
강 대표는 명단을 내게 넘겼다.
다행히 그녀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근데 이거 괜찮은 거냐? 아무래도 찝찝해. 원래 남의 소속사 애들은 받는 거 아니라고 했는데.”
“뭐, 남의 소속사 연예인들은 잘만 데려오잖아요.”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 사람들은 엄연히 검증이 된······.”
내가 살짝 미간을 좁히자 강 대표는 하던 말을 멈췄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제 우리가 새로운 선례를 만들면 되겠다~ 라는 거지.”
“대표님이 뭘 걱정하시는지 저도 잘 알아요.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고요. 제가 꼭 걸그룹을 성공적으로 데뷔시켜서 백배로 갚아 드릴게요.”
“아니. 얘가 갑자기 왜 이렇게 오글거리는 말을······. 아니야. 됐어. 이미 네가 우리 회사에 벌어다 준 돈이 얼만데. 여기 나랑 직원들이 널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이다.”
“저 말고도 잘 나가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래 봐야 속은 비어 있는 게 대부분이야. 네가 벌어오는 돈에 비하면 새 발의 피지.”
강 대표는 명단을 체크하며 말했다.
“총 32팀이네. 네 말대로 차라리 팀 단위로 보는 게 낫다. 한 명씩 다 보려고 했으면 진짜 하루 종일 걸렸을 거야.”
“이게 1차 예선 통과한 사람들인 거죠?”
“응. 1차 예선 통과한 사람들 플러스 Grand 엔터에서 연습생으로 있던 인원들까지 합한 거야.”
32팀.
약 150명의 연습생이 오디션을 보러 온다.
오디션치고 별로 안 모인 것 같아 보이지만, 이미 1차 예선에서 1,200명이 지원을 했고, 그중 10% 정도 되는 사람들이 걸러졌다.
“1차 예선도 상당히 빡빡했어. 이은지 디렉터가 프로듀서들 엄청 굴리면서 뽑아 놓은 거니까 믿어도 돼.”
나와 혜나 누나의 첫 앨범을 맡아줬던 이은지 디렉터 정도의 실력이라면 믿을 만하다.
“그럼 팀을 나눠서 해보죠. 제가 10팀 정도를 맡아서 오디션을 볼게요.”
“응? 단체로 안 보고?”
“네. 한 팀씩 제 작업실에 불러서 이것저것 다 시켜보려고요.”
“그럼 나머지 팀은?”
“뭐 다른 심사위원분들이 봐주시면 되죠. 영상 녹화만 해주세요. 그거 보고 추가로 오디션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팀만 따로 부르면 되니까요.”
“허허. 처음 보는 오디션 방식이네.”
tv에 나오는 프로그램마냥 심사위원들끼리 주르륵 자리에 앉아 한 팀씩 오디션을 보는 건 내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즉석에서 나오는 그들의 재능을 보고 싶었다.
준비된 것을 하기보다는, 내가 당일에 주는 곡을 얼마나 잘 소화하는지, 또 가수로서 어떤 매력 포인트를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단체로 모여서 짧게 오디션을 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분 보는 걸로 어떻게 그 팀의 재능을 엿볼 수 있을까.
“좋아. 리스트 중에서 보고 네가 마음에 드는 팀이 있으면 10팀 골라가. 네 작업실로 다 올려보낼 테니까.”
“네.”
나는 이은지 디렉터가 꼼꼼하게 남긴 평가본을 살펴봤다.
녹화 파일도 있어서 평가가 꽤 괜찮은 팀이 있으면 영상을 돌려 보기도 했다.
그렇게 추려진 10팀.
그중에는 트윙클 멤버들도 있었다.
가장 기대가 되는 팀이랄까.
그런데 사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됐다.
만약 그녀들의 실력이 내 기준에 훨씬 못 미치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미안한 일이지만······.”
나도 무작정 감정에 따라 그녀들을 걸그룹으로 데뷔시킬 생각은 없다.
그건 그녀들에게도 못 할 짓이고, 회사에도 큰 해를 끼치는 것이다.
그래서 냉정하게 평가를 할 생각이다.
만약 기준에 못 미치는 실력을 보여준다면 그땐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그들을 탈락시킬 작정이다.
그게 모두에게 좋은 일이니까.
* * *
“안녕하십니까! 블랙잭이라고 합니다!”
첫 팀은 대한민국 최고의 보이그룹을 꿈꾸고 있는 학생들이었다.
이번 오디션 평균 나이가 18살이라고 했다.
정말 나이가 많아 봐야 23살을 넘기지 않는다.
보통 아이돌 평균 나이가 17~18살임을 고려하면 딱 적당한 나이대였다.
“준비한 것부터 한번 들어볼까요?”
나는 녹음실에 그들을 몰아넣고 한 가지씩 주문을 넣었다.
“음역대가 얼마나 올라가는지 궁금하네요. 한 분씩 제가 피아노로 음을 치면 그걸 듣고 똑같이 목소리를 내주시면 됩니다.”
모두에게 같은 능력을 바라지 않는다.
팀 단위인 만큼 각자 가진 능력이 다 다르다.
가창력이 뛰어난 사람. 춤을 잘 추는 사람. 랩을 잘하는 사람. 그냥 딱 10대 아이들이 좋아하게 생긴 사람 등등.
한 가지 기준으로 뽑기보다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에 맞는 능력에 따라 평가를 하는 것이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한 팀이 적게는 20분. 많게는 1시간 동안 내가 하라는 대로 모든 걸 쏟아냈다.
“영광이었습니다!”
“꼭 뽑아 주세요! 제 롤모델이십니다. 밑에서 열심히 배워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6팀을 보고 나니 벌써 시간이 5시간이나 흘렀다.
이제 7번째 팀을 맞이할 차례.
나는 명단을 보고 길게 심호흡을 한 뒤 대기 중인 직원에게 말했다.
“다음 분들 들어오라고 하세요.”
이윽고 7번째 팀이 안으로 들어와 내게 인사를 올렸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번 오디션에 메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팀이다.
저번에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트윙클 멤버들과 재회할 수 있었다.
“······PD님?”
내가 너무 빤히 바라보고 있었나.
“아, 네. 미안해요. 모두 녹음실 안으로 들어가세요.”
“네~!”
먼저 그녀들이 준비한 곡부터 들어보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작업실 문이 벌컥 열리면서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연욱아! 나 왔어.”
다름 아닌 혜나 누나였다.
오늘 오디션이 있다는 걸 알고 구경을 하러 오겠다고 했었다.
“어. 왔어?”
“응. 좀 늦었지? 다른 할 일이 있······.”
누나는 하던 말을 멈추고 녹음실 안에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나?”
그러고는 갑자기 누나의 두 뺨에 눈물이 주륵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