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8화
“이거··· 진짜에요?”
“흐흐. 너도 믿기지 않지? 나도 그래. 처음에 보고 들었을 땐 장난치는 줄 알았어.”
나는 컴퓨터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려 빌보드 차트 55위.
영화 ‘다크 스페이스’ 마지막 장면에 쓰인 ‘The Heaven’이란 곡이 빌보드 55위를 기록했고, ‘The Hope’라는 곡이 75위를 기록했다.
공교롭게도 둘 다 혜나 누나의 목소리가 들어갔다는 것이다.
“빌보드 차트가 일주일마다 갱신이 되거든. 이번에 영화 개봉하고 나서 OST에 대한 평가가 많았잖아. 아무래도 그 영향인 듯싶다.”
강 대표는 얼굴에서부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네가 언젠가는 빌보드에 진출할 놈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나 빨리 올라갈 줄은 상상도 못했다. 거기다 영화 OST라니······. 이거 잘하면 오스카에서 음악 부문으로 상 하나 받는 거 아니야?”
“음. 그건 너무 멀리 나간 거 아닐까요?”
“아냐. 너도 알다시피 지금 ‘다크 스페이스’ 영화가 기똥차게 잘 나가고 있잖아. 사람들은 벌써부터 오스카 얘기로 가득해. 이번에 알렌 감독이 죄다 휩쓸어 가는 거 아니냐고.”
그건 내년 이야기다.
그것 말고도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등등.
다양한 영화 시상식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 가장 영향력이 큰 건 오스카일 것이다.
모든 감독의 꿈이라고나 할까.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잖냐. 아직 쟁쟁한 개봉 예정작들이 남아 있다고는 해도 솔직히 난 이번 영화가 올해 최대 히트작이라고 본다. 분명 우리나라도 1,000만 관객은 훌쩍 넘을걸?”
“설마 1,000만이 되겠어요? 외국 영화가 천만 찍는 일은 거의 없잖아요.”
“두고 봐라. 어떻게 되는지. 언론이 너 띄워주느라 난리고 사람들도 네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너나 할 것 없이 죄다 영화관으로 달려가고 있어. 이 추세면 금방이야.”
처음에는 강 대표의 말을 흘려 들었다.
관객 숫자가 올라가는 게 무서운 속도라고 듣긴 했지만, 설마 천만을 넘겠냐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한지 한 달도 안 돼서 그 일이 벌어졌다.
<‘다크 스페이스’ 천만 관객 돌파!>
<장연욱 효과? ‘다크 스페이스’ 천만 관객 달성!>
<‘다크 스페이스’의 질주는 어디까지인가. 해외에서도 여전히 1위 자리 굳건. 국내 영화는 모두 의기소침 중.>
다크 스페이스가 마침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이로써 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원래대로라면 다크 스페이스는 관객수 100만도 못 채우고 사라져야 할 영화였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영화와 음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영상미를 가졌어도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을 수 없다는 귀중한 가르침을 얻었다.
내가 만일 다크 스페이스의 영화음악을 만들지 않았더라면 이 영화는 본래 운명대로 저 땅바닥에 묻혀 사라졌을 터.
음악의 힘이 이처럼 대단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 미스터 장. 이 모든 게 미스터 장의 음악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영화가 크게 흥행을 하고 한국에서도 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해내자 알렌 감독은 직접 내게 전화를 걸어 감사 인사를 전했다.
- 영화 시상식 때 꼭 와 주십시오. 그리고 차기 영화를 진행하게 되면 1순위로 모시겠습니다.
몇 번이고 감사 인사를 반복하는 알렌 감독을 간신히 떼어내고 나서야 나는 전화를 끊을 수 있었다.
“크으-. 이런 걸 글로벌 스타라고 하는 거냐?”
삼촌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왠지 아빠 미소를 짓는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요즘 핸드폰에서 불날 거 같아요. 여기저기서 축하 전화가 오니까요. 전혀 일면식이 없는 연예인들한테도 연락이 온다니깐요?”
“내가 방금 말했잖아. 글로벌 스타라고. 학교 다니기도 힘들겠다.”
“말도 마세요. 뭔 기자들이 학교까지 찾아와서 난리를 치는지. 선생님들한테 미안하더라고요.”
“기자들이 학교에 들어와?”
“뭐 경비 아저씨들이 막고 있긴 한데, 기자들이 워낙 끈질기잖아요. 몰래 들어와서 갑자기 대뜸 인터뷰 요청을 할 때도 있어요.”
영화가 잘 되고 내 이름이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주변의 시선이 더욱 집중되고 있었다.
고등학교는 그나마 좀 덜한 느낌이라 좋았는데, 다크 스페이스가 크게 성공하고 내 이름이 인터넷에 계속 거론되면서 중학교 때보다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결정적으로 미국 유명 토크쇼와 해외 뉴스에서 내 이름이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또 그걸 기자들이 가지고 와 국내 언론에 뿌리면서 크게 화제가 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왜 온 거냐?”
“오랜만에 삼촌 얼굴 좀 보려고요.”
“오랜만? 어제도 봤잖아. 이틀 전에도 보고. 3일 전에도 봤지. 그런데 음악 작업은 하지도 않고 그냥 누워만 있던 놈이. 얼른 말해. 뭐야?”
삼촌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뭔가 부탁할 것이 있다는 걸 알아챈 것 같았다.
“그······ 삼촌 혹시 ‘Grand’라는 기획사 아세요?”
“음? 아니. 들어본 적 없어.”
그럴 만도 하다.
그리 큰 회사가 아니기도 하고 이렇다 할 가수를 내놓은 곳도 아니니까.
“거기 회사가 어떤 곳인지 자세히 알고 싶은데. 혹시 삼촌이 알아봐 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남의 회사 뒤를 터는 건 잘 몰라서.”
“뭐? 뒤를 털어?”
삼촌은 내 머리를 살짝 쥐어 박으며 말했다.
“야 이놈아. 네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 그런 걸 하려고 해?”
“안 될까요?”
“뭐 안 될 거야 없지. 회사 하나 조사하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런 걸 전문적으로 하는 친구들도 있고.”
그래.
삼촌 정도라면 왠지 이런 쪽 일을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원래 나 정도 되는 작곡가들은 다른 기획사랑 계약할 때 이것저것 알아볼 게 많거든. 거기다 경쟁 기획사에서 나오는 작곡가가 누구인지도 상시 체크를 해야 하고. 그런데 너는 대체 왜? 그 그랜드인가 뭔가 하는 회사에 계약하려고?”
“아뇨. 이유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고요. 그냥 좀 알고 싶은 게 있어서요.”
“음······.”
삼촌의 침음 소리는 그리 길지 않았다.
“뭐, 네가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것 같진 않고.”
“예. 다 좋자고 하는 일이죠.”
생각해 보면 좋은 의도도 아니긴 했다.
그렇다고 아주 나쁜 의도도 아니다.
누군가의 비루한 운명을 바꿔 주려는 것이다.
“한번 알아볼게. 아마 며칠 걸릴 거다.”
“고마워요, 삼촌. 그리고 비용은 제가······.”
“됐어, 인마. 그걸로 까까나 사 먹어.”
삼촌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며 잠깐 밖으로 나갔다.
흔쾌히 허락을 해 준 삼촌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그리고 부디 내 기억이 맞기를 바랐다. 만약 내가 시간 계산을 잘못한 거라면 다시 처음부터 그 사람들을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 * *
“네가 말한 그 회사, 알아는 봤다.”
삼촌은 무시하게 서류 하나를 내 앞에 던져놓았다.
아까 배달시킨 햄버거를 열심히 먹고 있던 나는 다 제쳐두고 서류를 펼쳐보았다.
그러자 삼촌이 재밌다는 듯 말했다.
“그걸 네가 본다고 알아?”
“재무재표네요?”
“오. 잘 아네. 혹시 볼 줄 아냐?”
“저 이래뵈도 공부 좀 해요.”
어디 보자.
아니. 깊게 볼 것도 없었다.
딱 내 예상과 맞아떨어진 회사였으니까.
“빚이 많네요.”
“응. 끌어다 쓴 게 많아.”
“그만큼 회사 내부가 많이 흔들린다는 거겠죠?”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게 없는 놈들이지. 그런데 이런 꼴로 아이돌 그룹을 데뷔시키려 한다? 이건 그냥 같이 죽자는 거야. 그놈들의 사탕발림에 속아서 연습생으로 들어간 놈들만 똥 밟은 거지. 이건 아이돌로 데뷔를 해도 홍보가 전혀 안 될걸? 그 비용을 누가 다 지급할 건데?”
“······.”
삼촌의 말대로다.
이 회사는 무작정 아이돌 그룹과 몇몇 솔로 가수들을 데뷔시킨다. 하지만 무리한 운영과 재정적 문제로 인해 홍보가 전혀 되지 않았고, 가수들만 피를 보게 된다. 거기다 정산도 거의 안 돼서 법적 문제에 휘말린다.
내가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냐고?
이 회사가 바로 혜나 누나의 걸그룹, 트윙클의 소속사이기 때문이다.
저번 생에서는 이 병신 같은 기획사 때문에 누나와 트윙클 멤버들의 재능이 그냥 썩어 버렸다.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거기 대표도 순 양아치 새끼더만. 예전에 깡패짓도 한 거 같더라. 계약서도 이상하고.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놈들이야. 근데 이놈들을 갑자기 왜 털라고 한 거야?”
“삼촌. 혹시 연습생들 명단은 있어요?”
“응? 아. 네가 저번에 부탁해서 가지고 오긴 했어. 근데 이건 또 왜?”
나는 명단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총 4명의 이름이 필요하다.
‘백수진, 이다영, 하채린, 정은영.’
새로운 삶을 시작했을 때부터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는 이름들이다.
언젠가는 그들을 찾아내리라고 막연히 생각만 했다. 그런데 그 일을 드디어 하게 됐다.
“찾았다······.”
다행히 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
4명 모두 연습생 리스트에 올라와 있었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아까부터 궁금증 가득한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삼촌에게 물었다.
“삼촌.”
“으응?”
“혹시 이 회사, 확 망하게 할 수 없을까요?”
* * *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Grand 엔터테이먼트의 대표, 박진범은 오늘도 술 냄새를 잔뜩 풍기며 회사에 나왔다.
아주 당연하게도 이미 해가 중천에 뜬 오후였다.
“야. 애들 연습은 잘 시켰어?”
“아, 네. 철저히 관리하는 중입니다.”
“그래. 가급적이면 아무것도 먹이지 마. 살부터 쫙 빼라 그래. 물만 마시라고 해. 물만.”
“네, 사장님.”
이미 뼈밖에 남지 않은 연습생들이지만, 박진범 대표는 식비를 아끼기 위해 다이어트라는 명목으로 먹을 걸 자주 주지 않았다.
“이게 다 너희들을 위한 거야. 연예인은 결국 배고픔과의 싸움이지. 그러니까 굶는다고 나 원망할 필요 없어. 너희들 성공하고 싶어서 나한테 온 거잖아? 맞지?”
춤을 출 힘도 남아 있지 않은 연습생들이 잠깐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으면 절대 가만두는 법이 없었다.
“야 이 새끼야! 그렇게 멍 때리고 있으면 돈이라도 나오냐? 쉬지 않고 연습을 해야 할 거 아니야. 당장 쓰러질 거 같더라도 연습을 멈추지 마! 하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때려치고 나가!”
마음 같아서는 그들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소속사와 계약을 한 상태라 쉽게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만일 회사의 규칙을 어기고 무단이탈을 할 시에는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정작 회사에서는 돈을 주거나, 제대로 된 뭔가를 해준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저 연예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 계약서를 제대로 읽어 보지 못한 그들의 실수였다.
“박진범 씨 되십니까?”
“뭐, 뭐야. 당신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과연 데뷔는 할 수 있을까.
아니. 뭐든 좋으니 밥이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있던 날이었다.
갑자기 경찰들이 기획사 건물 안으로 들이닥치더니, 박 대표에게 영장을 내밀었다.
“당신을 공갈 협박 및 사기죄로 체포하겠습니다.”
“뭐, 뭐야?!”
그러고는 몸부림치는 박 대표를 경찰차에 태우고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