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7화
“최고의 영상미와 최고의 연기 실력. 그리고 그 뒤를 묵묵히 받쳐 주는 최고의 음악까지. 삼박자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그야말로 올해 최고의 영화였습니다.”
시사회가 끝난 뒤에도 여전히 그 열기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모두 칭찬 일색으로 영화를 띄우기 바빴고, 평소와 다른 시사회 분위기에 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원래 날이 선 비평을 던지고 최악의 영화라며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분명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붙잡고 인터뷰를 해봐도 다 비슷한 소리만 내놓았다.
“마지막 장면을 꼭 보셔야 합니다. 희망을 품는 주인공과 그때 나오는 OST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그 OST에서 길게 메아리치는 여성분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과연 천상의 목소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분이 누군지 꼭 한번 뵙고 싶은 마음 까지 드네요.”
마지막 장면.
영화는 당연히 기승전결에서 결말 부분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오늘 시사회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전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이 바로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 OST는 지금도 다시 한번 듣고 싶네요. 얼른 개봉해서 OST 음원을 같이 풀어줬으면 좋겠어요.”
“마음 같아서는 영화를 다시 보고 싶습니다. 아니. 마지막 장면만 다시 보여줘도 소원이 없겠네요. 기자님들이 그때 나오는 OST와 영상미를 직접 듣고 보셔야 하는데······.”
“빨리 영화가 개봉했으면 좋겠네요. 10번이고 다시 볼 의향이 있어요.”
좋은 영화를 봐도 일단 비판부터 한다는 몇몇 평론가들 역시 입을 모아 말했다.
“평론가로서 냉정하게 영화를 분석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 영화를 비난하는 건 제 어리석음을 스스로 드러내는 꼴이라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반드시 봐야 할 영화가 있다면 전 이 영화를 뽑겠습니다.”
믿었던 그들도 이번 영화에서만큼은 비난을 아꼈다.
그저 꼭 보라는 말만 할 뿐.
이런 시사회는 처음이라 기자들은 호기심이 극에 달했다.
대체 어떤 영화를 보았기에 저들이 저런 반응들을 보인단 말인가?
* * *
고등학생이 된 이후, 확실히 교실 분위기가 바뀌었다.
공부에 대한 열정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
고등학교 다음은 대학교라는 것을 다들 알기 때문에 모두 본격적으로 대학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학교를 다닐 땐 하도 이리저리 교실로 모여들어서 내 주위를 에워싸는 게 불편했는데, 고등학교로 들어온 순간부터 그런 일이 줄어들었다.
뭐, 여전히 사생팬마냥 따라다니는 학생들은 있어도 사람을 질리게 만들 정도로 달라붙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밤새 공부를 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골골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참 안타깝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고등학생의 현실이었다.
“연욱아. 이번에 엄청 재밌는 영화 나온다며?”
“그 영화 OST를 네가 작곡했다면서. 맞아?”
“뉴스 보니까 미국에서도 호평이 자자하고 한국에서도 시사회 반응이 엄청 좋았다던데.”
뜸했던 관심이 다시 늘어난 건 바로 영화 때문이었다.
영화 ‘다크 스페이스’는 우리나라에서 ‘검은 우주’라는 제목으로 이틀 뒤에 개봉한다. 이미 미국은 일주일 전에 개봉한 상태이고, 현재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 시사회에서부터 호평이 자자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사이트에서 매기는 영화 점수도 상당히 높았다.
그 기세를 몰아 한국에서도 시사회를 열었는데, 그날 영화를 본 사람들 모두 인생 최고의 명작이 나왔다면서 칭찬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리고 이번 영화 OST를 내가 직접 작곡했다는 뉴스가 도배되면서 더욱 관심도가 올라간 것이다.
<할리우드 시장에서 최연소 음악 감독이 되어 성공적으로 영화를 흥행시킨 장연욱!>
이런 식으로 기사를 내면 누가 눌러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람들은 이런 스토리를 대개 좋아하기에 그 흐름은 곧장 영화의 흥행으로 이어지기 쉬웠다.
그리고 대망의 개봉일.
예상대로 영화관은 검은 우주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찼고, 미리 예매해 놓지 않으면 자리를 구하기 힘들 정도였다.
오죽하면 사람들이 별로 없는 시골까지 내려가 영화를 보는 사람이 있을까.
[내 인생의 역작!]
[장연욱, 그의 음악은 미쳤다.]
[만약 OST가 없었다면 이 정도로 대단한 영화가 나올 수 있었을까?]
[OST가 전부 씹어 먹는 영화.]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평점은 9.9. 이하로 내려가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전부 내 이름과 음악을 언급하며 인터넷에 평가를 남겼다.
-그런데 마지막 영화에 나오는 그 목소리요. 혜나 목소리 맞죠?
-나도 그 생각했음. 근데 혜나는 아닌 듯.
-혜나 맞음. OST 음반 뜬 거 보면 혜나가 피쳐링 했다고 나옴.
-헐. 가요 부를 때랑 목소리가 엄청 다르네. 역시 가수인가?
-진짜 목소리 아름답던데. 그게 혜나 목소리였다니. 대체 이 남매는 뭘까?
영화가 잘 되니 OST가 주목을 받고, OST가 주목을 받으니 마지막 곡에 등장하는 혜나 누나의 목소리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기자들은 여러 반응이 좋자 탄력을 받고 나와 누나에 대한 기사를 마구잡이로 쏟아냈다. 또한 미국 사람들이 남긴 반응을 가지고 와 영상을 만들어 조회수를 한껏 뽑아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제일 좋은 건 역시 러브콜이다.
“인터뷰 요청은 대부분 거절했다. 그래도 다 거절하는 건 이상하니까 그중에서 좋은 자리 몇 개만 받아 놓으려고. 괜찮지?”
강 대표는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일이 없다.
잠깐 입꼬리가 내려온다 싶으면 내가 새로 좋은 일을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내로라하는 투자사들이 전부 너랑 컨택 한번 해보려고 난리야. 이번에 네가 할리우드 영화 하나를 크게 히트쳤다고 해서 자기들이 투자하는 영화에 음악 감독으로 세우려는 거지.”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제가 히트시킨 영화는 아니죠. 거기 배우진이 얼마나 쟁쟁한데.”
“사람들이 호평하는 거 보면 대부분 OST 얘기밖에 없더라. 오히려 팀 크루즈가 소외되는 거 같다니깐?”
“대표님은 영화 보셨어요?”
“당연히 봤지. 그것도 벌써 3번이나 봤다. 그리고 조만간 한 번 더 보러 갈 거야. 언제 봐도 가슴이 웅장해지더라.”
그러면서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할 거야?”
“뭘요?”
“방금 내가 말했잖아. 투자사에서 너한테 러브콜 엄청 보내고 있다고.”
“당분간은 안 된다고 하세요.”
“왜?”
“저 이미 C&C랑 계약했잖아요. 거기 영화도 맡아줘야 하는데 국내 영화까지 하려면 시간 없어요.”
내가 딱 잘라 거절하니, 강 대표도 그럴 줄 알았다면서 딱히 아쉽다는 표정을 보이진 않았다.
그는 옆에서 핸드폰을 하고 있던 누나를 불렀다.
“혜나야.”
“네?”
“연욱이한테는 작곡 요청이 많이 왔고, 너한테 피쳐링을 해 달라는 요청도 많이 왔어.”
“피쳐링이요?”
“응. 연욱이 거 말고는 다른 사람 노래에 참여한 적이 없지? 이번에 영화 OST가 대박나면서 네 목소리도 주목을 받았잖아. 그래서 그런지 피쳐링 요청이 꽤 많이 들어왔더라. 어때?”
나는 누나가 대답하기 전에 먼저 말했다.
“리스트 좀 주세요.”
“으응?”
“리스트를 제가 먼저 좀 봐야겠어요.”
괜히 이상한 놈한테 끌려가서 별 말 같지도 않은 노래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한 걸음을 떼더라도 조심해야 할 때다.
선곡을 잘못해서 커리어를 망치는 일은 가급적이면 피하고 싶었다.
강 대표도 그런 내 마음을 잘 아는지, 군말하지 않고 리스트를 넘겼다.
“그렇지 않아도 내가 미리 준비해뒀지. 혜나랑 같이 봐봐.”
리스트가 빽빽하다.
50명이 넘는 아티스트들이 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 아티스트들도 섞여 있었다.
“딱 눈에 띄는 사람은 없네요.”
쟁쟁한 아티스트들이 여럿 있었으나, 누나를 그쪽에다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진 않았다. 그래도 내 의견만 고집하기보다는 누나의 생각도 들어봐야 했다.
“음~ 경험 삼아 딱 한 명만 뽑아서 해 볼까? 그리고 괜찮다 싶으면 여기 미국 아티스트랑도 한번 해보고 싶은데.”
미국에 다녀오고 나서 누나는 슬슬 국내 시장보다 해외 시장 쪽을 바라보고 있는 듯했다.
좋은 변화였다.
누나가 스스로 활동 영역을 넓히려 한다는 것이니까.
“그럼 리스트 보고 나서 누구랑 작업할 건지 정해서 말해 줘. 그리고······ 연욱아.”
강 대표는 평소와 맞지 않게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내 부탁인데······.”
“어떤 건데 그러세요? 전혀 이미지랑 안 어울리게 목소리도 작게 내시고.”
“하하. 좀 어려운 부탁을 하려고 해서.”
어려운 부탁?
설마 돈을 빌려달라는 건 아닐 테고.
“연욱아. 너 혹시 걸그룹 만들어 볼 생각 없냐?”
“예?”
뜬금 없이 걸그룹?
내가 놀란 표정을 보이자 강 대표는 얼른 손을 저었다.
“그러니까 걸그룹 프로듀싱에 참여해 볼 생각 없냐는 뜻이야. 무작정 걸그룹을 너 혼자 만들라는 뜻이 아니고.”
“갑자기 걸그룹을요?”
“너도 알다시피 우리 회사가 보이 그룹이랑 걸그룹을 만들어 본 역사가 있어. 딱 2번 있었지.”
“예. 그리고 시원하게 말아드셨죠.”
“넌 말을 해도 꼭-! 근데 맞아. 다 시원하게 조져 버렸지.”
연예인 엔터테이먼트면서 걸그룹, 혹은 보이 그룹 하나 제대로 내놓지 못했다며 혹평을 듣고 있는 강 대표다.
“솔직히 남이 욕하는 건 신경 안 써. 그런데 나 스스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거기다 마침 우리 회사에는 대한민국 최고의······ 아니. 세계 최고의 작곡가가 계시잖아. 네가 곡만 좀 만들어 주면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어때?”
그때 문득 나는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난 옆에 있던 혜나 누나에게 시선을 옮겼다.
“응? 왜 날 그렇게 쳐다봐?”
“누나는 나랑 그룹 아니었으면 걸그룹으로 데뷔해도 좋았겠다.”
“호호. 당연한 소리. 내 꿈이 원래 가수였잖아. 너 아니었으면 걸그룹을 해볼 생각이었지. 근데 갑자기 왜? 설마 지금 날 걸그룹으로 세우겠다는······.”
“아니. 누나는 이미 나랑 그룹이잖아. 다른 그룹으로 도망가고 싶어도 이제 안 돼. 늦었어.”
걸그룹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누나를 걸그룹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이미 누나는 누나만의 커리어를 이어 나가고 있으니까.
“혹시 멤버 구성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아직 오디션도 안 열었어, 인마.”
“그럼 저도 제대로 프로듀싱에 참여해 봐도 될까요?”
“응? 저, 정말?”
“네. 대신 멤버를 선별하는 권한도 주셨으면 해요.”
“어휴. 물론이지. 혹시 마음에 드는 사람이라도 있어? 얼마든지 데려와.”
있다.
혜나 누나 다음으로 떠오르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들에게도 이제 새로운 앞날이 펼쳐졌으면 하는 마음이 항상 있었다.
“어. 잠깐만. 전화가 왔네.”
휴대폰 벨소리에 대화가 끊겼다.
그런데 강 대표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뭐? 진짜? 장난 아니고 진짜?”
큰일이라도 생긴 걸까.
몇 번이나 진짜냐고 반복해서 확인하고 있을 정도면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데.
이윽고 강 대표가 전화를 끊은 뒤 멍한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대표님. 무슨 일······.”
“연욱아!”
그러고는 갑자기 냅다 달려와 나를 껴안아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