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26화 (126/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6화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공연장 안이 꽉 찬 것 같이 공기가 뜨거웠다.

지휘자가 봉을 내려놓고 공연장을 나서자 단원들은 그제야 앓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된 상태.

지휘자 역시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힌 채였다.

“진짜 죽는 줄 알았네.”

“나도 숨 막혀서 죽을 뻔했어.”

무려 6시간 동안의 강행군이었다.

“제니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는데.”

“으-. 안 괜찮아요. 토할 거 같아.”

그들의 메인 연주자가 된 제니 역시 이번만큼은 지쳐 보였다.

“그래도 우리 이번 주면 다 끝나는 거 아시죠? 마지막이니까 열심히 해 봐요.”

마침내 이 길고 긴 강행군에도 끝이 다가왔다.

이틀만 더 연습하고 마지막 곡을 녹음하면 그걸로 지옥의 훈련이 끝나게 된다.

1달 반 동안 음반을 완성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던가.

여러 음반 작업을 해봤지만, 이번 음반은 영화관에서 들으면 왠지 뿌듯할 것 같았다.

* * *

곡 작업과 연습, 그리고 녹음까지.

이 모든 걸 1달 반 안에 끝내기 위해 무리한 스케쥴을 잡았다.

그 덕분인지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몸이 무거웠고 피곤함이 몰려왔으나, 막상 작업에 들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이 또렷해졌고 몸도 가벼워졌다.

그 힘으로 결국 모든 녹음을 마치고 곡을 감독에게 전달했다.

힘들게 내 뒤를 따라와 준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녹음이 끝났다는 얘기를 듣고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렸다.

“모두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부족한 제 지휘 실력에 열심히 따라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인연이 돼서 여러분과 함께 작업하면 좋겠네요.”

내 인사말에 콘서트마스터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그러자 단원들도 하나둘 일어나 내게 뜨거운 박수를 보내 주었다.

고된 작업이었으나, 이들 얼굴에는 모두 성취감이 가득했다.

“제니. 미안해요. 모처럼 제니의 솔로곡을 만들었는데, 그걸 영화 OST로 써서.”

단원들처럼 똑같이 박수를 치고 있던 제니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히려 난 이게 더 좋았어. 그리고 정말 미안하면 다음에는 진짜 내 솔로 앨범을 만들어줘.”

“그렇게 할게요.”

사실 이번 녹음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제니였다.

그녀의 바이올린 연주가 섞이니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더욱 묵직해졌다고 해야 할까.

세계 정상급 연주는 오케스트라의 스타일마저 한번에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야. 드디어 끝났네.”

“으으- 영원히 안 끝날 줄 알았어.”

녹음부터 곡 편집까지 나를 보조해 준 팀원들.

처음에는 그들과의 협업이 부정적으로 다가왔지만, 지금은 이들이 없었다면 내가 과연 한 달 반 안에 일을 완수했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여러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작업이 끝났어요. 다음에도 꼭 함께 작업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네요.”

“아닙니다, 감독님. 저희가 감사하죠.”

“감독님 덕분에 실력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글렌을 불렀다.

“글렌.”

“네. 감독님.”

“제가 C&C에다 따로 말을 해두었습니다. 글렌의 실력은 여느 음악 감독 못지않게 뛰어나니, 다음 영화 음악을 작업할 게 있으면 글렌에게 맡겨 보라고요.”

“네······?”

글렌은 믿기 어렵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제 말 그대로입니다. 글렌도 음악 감독으로서 능력을 발휘할 때가 됐어요. 제가 그동안 글렌한테 어려운 작업을 맡기고 피드백을 준 건 나중에 꼭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제 진심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글렌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저, 정말 제가 음악 감독이 된다는 겁니까?”

“예. C&C에서도 이미 확답을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조만간 거기서 연락이 올 거예요. 여기 있는 팀원들과 같이 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거예요.”

팀원들은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글렌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글렌! 드디어 네가!”

“그래. 네 실력이라면 언젠간 분명히 기회가 올 줄 알았어.”

글렌은 글썽이는 눈동자로 내게 다가와 손을 붙잡았다.

“고맙습니다. 감독님. 감독님의 가르침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 편하게 절 불러도 돼요. 이제 감독도 아니잖아요.”

“아닙니다. 제게 감독님은 앞으로 당신뿐입니다.”

오글거리는 멘트였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나는 그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를 나눈 뒤 USB를 챙기고 누나와 함께 그곳을 나왔다.

“누나도 녹음하느라 고생했어.”

“나야 뭐 그냥 아아~ 거리기만 했는데?”

이번 녹음 작업에는 누나의 지분도 조금 있었다.

2개의 곡에 혜나 누나의 목소리가 섞였다.

가사는 없고 그냥 음정만 내는 목소리를 녹음시킨 것인데, 한층 더 곡의 맛이 사는 것 같았다.

우린 호텔에 들어가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아~ 막상 떠나려니까 너무 아쉽다. 여긴 이제 내 제2의 고향이야.”

“호텔이 좋긴 했지.”

“그것도 그렇고 음식도 다 맛있었어. 너무 기름지긴 했지만, 그래도 난 마음에 들었어. 공연도 실컷 봐서 좋았고.”

최고급 호텔에 한 달이 넘도록 숙박해 있었으니, 당연히 우리에겐 좋은 기억밖에 없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한 나는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준 마이크에게 USB를 건넸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시네요. 조금 더 미국에 계셔도 괜찮은데 말입니다. 시사회라도 보고 가신다면······.”

“아니에요. 너무 오래 있었어요. 저도 학업이라는 게 있어서 말입니다.”

“하하. 종종 까먹곤 합니다. 미스터 장이 아직 학생 신분이라는 걸요.”

“지금까지 제 뒤를 봐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오히려 제가 감사하죠. 미스터 장 덕분에 진귀한 경험을 많이 했습니다.”

“감독님이랑 회장님에게는 따로 인사를 전해 주세요.”

“네. 그리하겠습니다.”

마이크와 악수를 나누고 나서 나는 혜나 누나와 같이 출국장에 올랐다.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했던가.

비록 짧은 시간이었으나, 이곳에서의 추억은 결코 잊지 못할 것 같았다.

* * *

“감독님. 너무 땀을 흘리시는 거 아닙니까?”

“내, 내가?”

“예. 너무 긴장을 하신 거 같은데, 약이라도 드릴까요?”

“내가 무슨 긴장을 한다고! 전혀 아니야.”

알렌 감독은 짐짓 호탕하게 웃으며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느라 애를 썼다.

하지만 아무리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미 그를 본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다.

그가 엄청나게 긴장을 했다고 말이다.

그럴 만도 하다.

오늘이 바로 영화 시사회이지 않던가.

각 엔터테이먼트 종사자들과 연예인들, 그리고 인지도 있는 인플루언서들이 참여하는 평가 시간이다.

보통 시사회에서는 좋은 말이 오고 갈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할리우드 시장의 시사회는 조금이라도 영화가 마음에 안 들면 신랄하게 비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거기다 알렌 감독은 시사회가 처음이었다.

여러 번 영화를 내놓은 전적이 있지만, 처음부터 크게 투자를 받고 시작한 영화들이 아닌 B급 영화라 시사회를 할 수가 없었다.

“젠장. 데뷔할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이 진정한 데뷔작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영화를 몇 편이나 냈는지 알아?”

“알죠. 그러나 이번 영화가 잘 되면 그동안 내놓은 영화들이 창출한 수익보다 수십, 수백 배는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겁니다.”

구구절절 맞는 소리를 하는 마이크를 보며 알렌 감독은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것이 내 진정한 데뷔작이다.

그동안 저질스러운 영화들을 만들어냈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이 영화는 오래 전부터 제가 상상해왔던 내용입니다. 우주에 대한 신비스러움과 그 광활함을 표현하고자······.”

시사회가 시작되고, 손에 땀이 뻘뻘 흐를 정도로 긴장했던 알렌 감독은 의외로 무대 위에서는 침착했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든 목적과 시나리오를 가볍게 풀어내며 관중들의 흥미도를 높여 놓았다.

“최고의 배우들과 스태프들. 그리고 음악 감독이 만든 작품입니다. 부디 여러분에게 좋은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영화가 시작되었다.

알렌 감독은 자기 자리에 앉아 심호흡을 크게 했다.

그리고 웅장한 음악과 함께 영화의 첫 장면이 나왔다.

편집을 하면서 수천 번도 더 본 장면이지만, 오늘따라 오케스트라의 강렬한 음악이 가슴을 때리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지구의 마지막 희망이야.”

죽어 가는 지구를 위해 새로운 자원을 찾아 나서는 우주 여행자들.

인류가 공을 들여 만든 우주선을 타고 그들은 광활하게 펼쳐진 우주 안을 부유했다.

하지만 우주의 거대함은 그들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운석 파편이 우주선에 날아 들어와 충돌하는 경우도 있었고, 잘못된 행성에 불시착해 동료를 잃게 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주인공은 기지를 발휘해 가까스로 남은 동료들을 구해냈다.

알렌 감독은 슬쩍 주변을 살펴보았다.

모두 완전히 영화에 몰입한 얼굴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

액션 영화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보다 더 과한 액션들이 나와 보는 이로 하여금 긴장감과 통쾌함을 높였다. 그리고 더욱 결정적인 건 역시······.

‘음악인가.’

조금 밋밋해 보이는 장면도 몰아치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덕에 연출력이 더욱 올라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중요한 장면에서도 역시 강약으로 사람들의 귀를 가지고 노는 음악 덕분에 몰입도가 올라갔다.

아직 OST가 완성되지 않았을 땐 이 영화는 액션신도 좋고 다 좋았지만 이상하게 심심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OST를 삽입하는 순간, 전혀 다른 영화가 되어 버렸다.

그토록 감독이 살려내고 싶어 했던 우주의 신비스러움이 OST를 통해 뿜어져 나온다고 해야 할까. 그리 중요한 장면이 아닌데도 영화의 OST가 해당 장면의 무게감을 높여 주었다.

음악의 힘이란 과연 이렇게 대단하다.

공을 들여 음악 감독을 뽑은 결실을 여기서 보는 것 같았다.

“인간은 원래 여행자야. 처음에는 지구를 탐험하며 수많은 발견을 했고, 이제는 우주로 뻗어 나가 선조들의 행동을 따라 하고 있지. 만약 우리가 모험을 멈춘다면 그것이 곧 인간의 종말이 아닐까?”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하나 남은 동료와 살아남게 된 주인공은 새로운 땅과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거기서 감정을 자극하는 바이올린 연주가 나왔고,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

그것을 끝으로 영화가 마무리되었다.

곧 스크린은 검은 화면으로 물들었다.

“······.”

숨 막히는 침묵이 시사회장 안에 감돌았다.

뭔가 잘못된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때쯤.

“브라보!!”

청중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외치며 박수를 쳤다.

훌륭한 영화를 봤을 때 나오는 비평가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였다.

그제서야 알렌은 숨통을 조여왔던 긴장감이 풀렸다.

온몸에 들어가 있던 힘이 한꺼번에 빠져나와 자리에서 일어나는 데에 힘이 들 정도였다.

그는 간신히 일어나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청중들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이 정도로 관중들이 자신의 영화에 열광했던 적이 있던가.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늘만큼 자신에게 좋은 날이 또 없음을 말이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