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5화
할리우드 슈퍼스타, 팀 크루즈.
비록 작은 키였으나,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아우라는 작은 거인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에서 오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아, 네. 맞습니다.”
“저도 한국을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영화 홍보를 위해 자비를 들여서 간 적도 있죠.”
팀 크루즈가 한국에서도 유독 인기가 많은 건, 그가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영화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부러 방문해서 여행하고 팬들과 만남을 가질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크다.
지금이야 한국이 할리우드에서도 관심을 가질 만큼 문화 시장이 커졌지만, 그 당시 영화 불모지로 불리던 한국을 유일하게 찾아준 사람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절 구해주신 분이 한국분이시라니. 감사합니다”
저 고장 난 장비를 이용하려 했던 것이 팀 크루즈였다.
“팀!”
미첼은 격한 감정이 실린 구두 소리를 내며 팀 크루즈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딴 영화 촬영은 다 그만 두자. 장비 하나 관리 못 하는 곳에서 자기를 가만 놔둘 순 없어!”
“괜찮아요, 미첼.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죠.”
“만약 저 아이······ 아니. 음악 감독님이 장비 이상을 발견 못했으면 자기는 지금 병원으로 실려 가고 있었을 거야. 이건 고소감이라고!”
“정말 괜찮아요, 미첼. 감독님이 재발 방지를 약속했고, 앞으로는 철저히 관리한다고 했으니까요.”
소속사 대표는 극성을 부리고 있었지만, 정작 사고 위험에서 간신히 벗어난 팀 크루즈는 덤덤했다.
원래 스턴트 배우이기도 했고, 워낙 스릴 넘치는 액션신을 좋아해서 그런가 이런 일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다 이번 영화는 느낌이 좋아요. 시나리오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별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네요.”
“하- 자기가 그렇게 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러고는 내게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우리 감독님은 대체 어떻게 안 거야? 전문가들도 몰랐던걸?”
“그냥 소리가 좀 이상해서 말씀을 드렸을 뿐입니다.”
“오~ 그래? 덕분에 우리 팀이 큰 신세를 졌네. 사례는 충분히 할게. 그러니까 필요한 일이 있으면 내가 준 명함으로 전화해.”
여전히 나와 혜나 누나에게 미련을 못 버린 것 같았으나, 옆에 있던 팀 크루즈도 한마디 거들었다.
“꼭 그렇게 해주십시오. 저도 빚을 지고 사는 성격이 아니라서, 어떻게든 보답을 해드리고 싶네요.”
미첼에게 명함을 따로 받은 것에 이어 팀 크루즈에게는 그의 개인 전화번호를 받았다.
“미첼에게 연락을 주셔도 되고, 제게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뭐든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와 드리겠습니다.”
팀 크루즈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미첼과 같이 촬영장을 떠났다.
짧은 시간에 엄청난 인맥을 얻게 된 것 같다.
* * *
“으으-. 피곤해.”
“나도 요즘 잠만 자면 자꾸 악몽을 꾼다.”
“악몽? 설마 그 악몽에 우리 감독님 나오시냐?”
“헉! 어떻게 알았어?”
“왜냐하면 나도 나오고 있거든!”
글렌과 팀원들은 오늘도 밤잠을 설쳐가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장연욱이 자신들의 감독이 된 날부터 잠을 자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먼저 장연욱이 준 피드백대로 음악을 다시 만들어야 하기 때문.
문제는 장연욱은 명쾌하게 피드백을 줄 때도 있지만, 수수께끼처럼 의문을 던질 때도 있었다.
마치 다음 문제는 네가 알아서 풀어 보라는 듯이 말이다.
그 답을 찾고자 혼자 끙끙 대기도 하고 팀원들과 모여 함께 문제를 풀어나갈 때도 있었다.
그러나 팀원들 모두에게 문제 하나씩 주어졌기 때문에 서로 하나 되어 풀기보다는 각자 골똘히 생각하여 직접 풀어야 했다.
당연히 그 과정은 괴롭고, 마치 대학 교수에게 시달림을 당하는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이런 시간이 싫진 않았다.
“뭔가 괴롭기는 한데, 내 실력이 점점 향상되는 느낌이랄까? 나는 아직까지 큰 불만 없어.”
“뭐······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감독님이 나이는 어리지만 솔직히 실력 하나는 내가 이제까지 만나본 음악 감독 중에 최고니까.”
“으- 그런데 문제 난이도가 너무 어려워. 분명 자기는 답을 알고 있을 거 아니야. 그런데 자꾸 그걸로 우릴 괴롭히는 걸 보면 사실 즐기는 게 아닐까?”
“그, 그럴지도.”
오한이 드는 추측이었지만, 팀원들도 연욱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이번 음반 제작을 기반으로 팀원들의 전체적인 기량을 한껏 상승시키려는 의도인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하면 금방 끝날 일을 일부러 팀원들에게 숙제로 안겨 주어 계속해서 훈련을 시키는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왠지 이번 OST만 잘 끝나면 진짜 다른 건 쉽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글렌은 이번 기회에 실력을 향상시켜 자신의 평생 꿈이었던 음악 감독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우리 감독님은 어디 가셨어? 원래 항상 아침부터 나오지 않았나?”
“아, 오늘 오케스트라 연습 가셨을걸?”
“그게 오늘이구나. 그런데 괜찮을까?”
“너 저번에 영상 안 봤냐? 오케스트라 지휘도 직접 하시던데?”
“아니. 그건 규모가 작은 오케스트라잖아. 거기다 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라며. 이건 다르지. 이번 오케스트라는 진짜 프로들이 모인 곳이니까.”
영상 속 장연욱은 훌륭하게 오케스트라를 지휘했고, 그 음악 또한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번 오케스트라는 과연 어떨까.
프로들일수록 자존심이 강하고 지휘자와 기 싸움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오케스트라를 맹수들의 서식지라고 표현하지 않던가.
그 사람들에게 압박을 당해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오는 것은 아닐지, 팀원들은 내심 걱정이 됐다.
* * *
C&C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활을 잡은 손은 바들바들 떨려왔고, 엉덩이의 감각이 뭉툭하게 뭉친 것만 같았다.
연습에 돌입한 지 벌써 3시간째.
1시간마다 10분 휴식을 하고 있긴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만.”
저 동양인 악마는 또 다시 단원들의 연주를 중단시켰다.
“콘트라베이스가 들어가고 나서 곧바로 바순이 따라와야 한다는 걸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아. 그게······.”
“계속 이런 식으로 바순이 들어가는 박자를 지키지 못한다면 옆에 있는 호른의 음이 무너지고 그 옆에 있는 오보에와 튜바도 균형을 잃고 맙니다. 그 정도는 아시겠죠? 도미노처럼 와르르 오케스트라 전체가 무너진다는 겁니다.”
“죄, 죄송합니다.”
“자리 배치를 각 악기와 순서에 맞게 배치를 한 것도 여러분이 조금 더 타이밍을 잘 잡을 수 있게 도와주려고 배려를 한 겁니다. 그런데도 이런 사소한 걸 아직까지 틀리고 있다니. 조금은 실망스럽군요.”
그 모욕적인 말에 이를 갈았지만, 누구도 정면으로 반박하진 못했다.
장연욱이 C&C에게 권한을 전부 받아 오케스트라를 통째로 컨트롤 할 수 있다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그의 실력이 뛰어났다.
그냥 낙하산으로 뚝 떨어진 놈이라고 생각했는데, 흔들리는 음을 캐치하는 실력이 귀신 같았다.
“그럼 10분간 휴식을 하겠습니다.”
장연욱이 그 말을 하고 먼저 공연장을 나가자 그제야 단원들이 여기저기서 죽는 소리를 했다.
“하- 진짜 더럽게 깐깐하네.”
“아니. 대체 저거 뭐야? 아까 봤지? 1분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우리가 연주하는 걸 쭉 듣더니 누가 어디서 틀렸는지 다 잡아내는 거.”
“C&C도 참 대단해. 어디서 저런 괴물을 데리고 온 거야? 내 평생 저렇게 지휘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으- 집에 가고 싶다. 오늘 연주도 별로 안 한 거 같은데, 손에서 피날 거 같아.”
육체적으로 고된 것보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처음에 와서 다짜고짜 1분 동안 연주를 시키더니, 한 사람씩 가리키며 어디서 무엇이 틀렸는지 지적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10초도 못 가서 계속 음악을 중단시키고 피드백을 주는 것이 반복됐다.
처음에는 장연욱의 그런 지휘 방법이 신선하기도 했는데, 그게 계속 이어지다 보니 정신적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했다.
이들은 일반 대학생이 아닌, 사회에서 큰 오케스트라를 하는 음악가들이다.
당연히 장연욱보다 음악 교육을 받은 게 훨씬 오래되었고 경험도 풍부했다.
하지만 저 동양인 지휘자 앞에서는 한없이 모든 게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동안 몰랐던 본인의 음악 실력이 낱낱이 까발려진 기분이랄까.
“저기 레이첼. 아까 지휘자님이 지적했던 부분, 우리끼리 다시 한번만 맞춰봐요.”
모두 힘들어하는 건 맞지만, 묘하게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동안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 정말 오랜만에 모든 걸 쏟아부어 연주하고 있었다.
“좋아요. 저도 거기가 계속 찝찝해서 한번 맞춰보고 싶었어요.”
“어머. 나도 같이해요.”
“저도요!”
그래서일까.
휴식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고 방금 전 피드백을 되뇌며 연습에 열중했다.
콘서트마스터, 빌 존슨은 사뭇 다른 단원들의 분위기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원래 지휘자가 있을 땐 휴식 시간만 되면 우르르 밖으로 빠져 나가기 바쁘던 단원들이 아니던가.
연습이 끝난 뒤에도 악기를 제대로 만져보지도 않고 연습도 조금 게을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와 정반대였다.
모두 자발적으로 연습에 참여하고 서로 토론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이게 지휘자의 역량이라는 건가?’
고작 하루다.
겨우 하루 만에 단원들의 분위기가 이렇게 바뀔 수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마냥 무시만 했던 동양인 지휘자가 점점 두렵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제니. 오늘은 안 와도 된다고 했잖아요.”
“내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연습은 원래 첫날부터 참여해야 하는 거야.”
그런 생각도 잠시.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슬쩍 돌려보았다.
장연욱과 그 뒤에는 매력적인 실루엣이 보였다.
“여러분. 모두 인사하세요. 제니 웨이든 씨가 지금부터 연습에 같이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누, 누구요?”
“제니 웨이든?!”
얼핏 들은 적이 있다.
장연욱이 제니 웨이든과 인연이 있다고 말이다.
심지어 미국도 같이 왔다고 했던가.
그래서 그냥 루머라고 여겼는데, 정말 제니가 연습장에 나타났다.
“이번 OST에 제니의 연주곡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연습도 같이 참여를 해서 녹음을 하고 싶다는군요. 그래서 여러분의 동의를 먼저 구하고자 합니다. 솔로 바이올린 연주자가 하나 포함되는 건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혹시라도 늦을세라 모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발을 두드리면서 이 흥분감을 전달했다.
“여러분 반가워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제니가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자 남자 단원들은 얼굴이 멍해졌다.
“아직 휴식시간이 5분 정도 남았으니, 5분 후에 연습하도록 하겠습니다.”
5분의 휴식 시간 동안 단원들은 제니의 곁으로 몰려 들었다.
“미스 웨이든. 정말 우리랑 같이 연주를 하시는 건가요?”
“네. 맞아요.”
“대체 왜죠? 이번 협주곡은 미스 웨이든이 솔로로 나설 수 있는 부분이 없을 텐데요?”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리 장연욱 감독님 때문이죠.”
그 말에 더욱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대체 장연욱과 제니가 무슨 사이이기에?
“여러분도 아까 연습으로 느끼셨죠? 우리 지휘자님이 진짜 보통이 아니라는 거.”
모두 이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 꾹 참고하시다 보면 실력이 엄청 늘어 있을걸요? 저도 제 음악 실력을 더 높이고 싶어서 오늘 연습에 참가하는 거예요.”
“그만큼 저 감독님이 대단하신 분이라는 겁니까?”
“네, 제가 이제까지 만난 지휘자 중에 연욱이처럼 뛰어난 사람은 없었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인정한 지휘자라니!
단원들의 눈빛이 방금 전보다 한껏 더 진지하게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