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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24화 (124/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4화

“누구시죠?”

뜬금없이 나타난 중년의 여성은 입을 가리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한 사람은 아니고. 자기들이 너~무 매력적이게 생겨서 말이야. 그냥 관심이 생겼다고나 할까?”

그런 뒤 우리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이런 일 하는 사람이야.”

명함에는 Rubbys 엔터테이먼트의 대표, 미첼 루비스라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난 미국 엔터테이먼트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이게 뭐야? 어떤 회사야?”

“나도 몰라. 처음 들어봐.”

나와 혜나 누나가 어리둥절하는 표정을 보이자 미첼은 조금 자존심이 상한 표정을 보이며 촬영장 쪽을 가리켰다.

“저기서 열심히 연기를 하고 있는 팀 크루즈 보이지?”

“네.”

“저 사람이 우리 소속사야.”

그제야 이 회사가 미국에서 잘 나가는 소속사라는 걸 금방 눈치챘다.

팀 크루즈 정도의 슈퍼스타가 있는 소속사라면 결코 작은 곳이 아닐 테니까.

“그런데 아직 내 질문에 답을 안 해줬는데? 관광객이야? 아니면 부모님 따라서 왔니? 그것도 아니면 혹시 영어를 잘 못하나?”

“아뇨. 관광객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관계자죠.”

“관계자? 어떤?”

“음악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그 말에 미첼은 잠깐 멍한 얼굴로 날 바라보다 이내 손뼉을 쳤다.

“아~ 맞아. 알렌이 데려왔다던 동양인 음악 감독이 바로 너였구나. 이런. 제가 너무 무례하게 말했네요. 자꾸 우리 아들이 생각나서 그만. 반가워요, 감독님. 미첼 루비스에요.”

다시 한번 미첼은 내게 정중하게 인사를 올렸다.

“아닙니다. 말씀 편하게 하셔도 돼요. 장연욱이라고 합니다.”

“그럼 옆에 있는 분은?”

“아! 저는 연욱이 누나, 장혜나라고 해요.”

“어머. 둘이 남매예요? 부모님이 정말 큰일을 해내셨네.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딱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든다니깐? 거기다 둘이 사이도 좋아 보이네. 더 잘 됐다.”

그녀는 은근한 목소리로 우리에게 말했다.

“혹시 미국에서 활동해 볼 생각 없어요? 음악 감독도 하면서 그 완벽한 얼굴로 미국인들의 마음을 흔들어 보는 거지. 어때요? 동양인들에게는 할리우드가 좁은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두 사람한테는 아닐 것 같은데.”

“아뇨. 저는······.”

“에이. 부담 갖지 말고 그냥 편하게 생각해요. 우리 소속사로 오면 내가 레드카펫을 쭉 깔아 드릴 테니까. 두 사람 정도의 비주얼이면 충분히 가능하다니깐?”

거듭되는 그녀의 설득이 슬슬 부담으로 다가올 때쯤이었다.

스태프들이 세트장 세팅을 할 동안 잠깐 휴식 시간을 얻게 된 알렌 감독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미첼. 여기서 뭐하고 있어?”

“뭐하긴. 여기 귀중한 보석들이 있어서 한번 꼬셔보려고.”

“하하. 귀중한 보석은 맞지. 근데 아마 안 통할걸? 그 두 사람 이미 한국에 소속사가 있거든.”

“진짜?”

“응. 한국에서는 엄청 인기 많은 연예인이야.”

하지만 미첼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 여성이었다.

“그게 뭐 어때서? 소속사 옮기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한국이랑 미국이 같아? 미국이 그쪽보다 10배는 더 규모가 크잖아. 이건 두 사람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야.”

그래도 질척거리며 우리 둘에게 달라붙진 않았다.

“혹시라도 마음 바뀌면 언제든 연락해요. 난 정말 두 사람이 아까워서 그런 거니까. 전혀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만약 소속사 옮기는 데에 있어서 법적으로 문제가 된다면 미국 최고의 변호인단을 붙여 줄게요. 알겠죠? 알렌, 가자. 우리 배우님의 컨디션이 어떤지 한번 봐야겠어.”

그러고는 쿨하게 알렌 감독을 데리고 팀 크루즈가 있는 촬영장 쪽으로 갔다.

그녀의 뒤를 따라가던 알렌은 우리에게 손짓했다.

“미스터 장. 이렇게 된 거, 촬영장 구경이라도 해 봐요.”

나는 누나와 함께 알렌 감독을 따라 세트장으로 들어가 보았다.

카메라만 수십 대였고 배우의 몸을 공중으로 띄우는 와이어부터 여러 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자. 이걸로 말할 거 같으면 배우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읽어서 CG 화면과 완벽히 삽입하는 장비입니다. 최첨단이죠. 이 녀석을 가만히 켜 놓기만 해도 수만 달러가 그냥 날아갈 정도로 무시무시한 놈입니다.”

알렌 감독은 신이 나서 우리 두 사람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고 있었다.

무중력인 우주에 떠 있는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에 배우들은 상시 와이어를 달고 다닌다. 그 장비들 역시 최신식으로 보였다.

“제일 중요한 게 이 와이어라고 할 수 있죠. 배우와 이 와이어를 컨트롤 하는 사람끼리 호흡이 잘 맞아야 하니까요 자칫 실수라도 했다가는 화면도 망치고 배우도 다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전문 경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만져서도 안 되고요.”

나와 혜나 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장소로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두 번째로 봤던 저 와이어 장비.

다른 와이어 장비들은 일정한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는데, 유독 저 장비만 잡음이 섞여 나왔다.

“미스터 장?”

내가 가만히 서서 와이어 장비를 유심히 살펴보자 알렌 감독이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왔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별일은 아니고요. 저 장비만 조금 소리가 이상해서요.”

“예?”

알렌 감독은 귀 기울여 장비 소리를 들어봤다.

그러나 큰 차이점을 찾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 잘 모르겠는데요?”

“정말 별일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제가 원래 소리에 민감해서요. 유독 이 장비만······ 뭐랄까. 불협화음이 들린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이런 걸 들으면 귀에서 스파크가 튀는 소리처럼 들려요.”

신기하게 다른 건 안 그러고 이 장비만 그랬다.

음악을 들을 때도 별로 맞지 않는 음이 들어갔을 때 귀에서 스파크가 튀는 것처럼, 이것 역시 그러했다.

“음-.”

정말 사소한 일인데도 배우의 안전이 걸렸기 때문일까.

알렌 감독은 장비 담당자를 불렀다.

“제이슨. 여기 장비들 전부 이상 없는 거 맞지?”

“아, 예. 안전 검사를 이미 다 마친 상태입니다.”

“그럼 이건?”

“이거요? 이것도 별문제 없습니다. 방금까지 촬영도 잘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 하지만 미스터 장이 소리가 이상하다고 하던데.”

제이슨은 내 쪽을 바라보며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저 동양인 친구가 그런 걸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리고 정말 고장이 났다면 저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딱히 이상이 있어 보이진 않네요. 기계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트집을 잡는 거 아닙니까?”

“말조심해. 동양인이라고 비하하는 거야, 뭐야?”

“그, 그런 게 아니라······.”

“미스터 장은 우리 영화에서 아주 중요한 음악 감독을 맡고 계시다. 제이슨 너는 존중이라는 걸 배우도록 해.”

“네. 죄송합니다.”

알렌 감독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안전 검사 다시 해봐.”

“다시 말입니까?”

“그래. 배우 무게만큼 와이어에 달아서 몇 번 움직여 보라는 거야.”

그러자 제이슨과 몇몇 스태프들이 나를 못마땅하게 노려보았다.

하지만 감독의 명령을 무시할 순 없기에 그들은 서둘러 움직여 배우 무게에 맞는 것을 와이어에 달았다.

“그럼 작동시켜 보겠습니다.”

제이슨이 장비를 작동시키는 동안 소란 소리를 듣고 배우들이 하나둘 우리가 있는 쪽으로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에요?”

“저 동양인이······. 아니. 우리 음악 감독님이 장비 소리가 좀 이상한 거 같다고 해서 지금 감독님이 체크 중이에요.”

“장비 소리가 이상하다고?”

“제이슨은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저 음악 감독 때문에 안전 검사를 다시 하는 거라는데요?”

“아. 시간 아깝게 뭐 하는 거야. 일찍 퇴근 좀 하려고 했더니.”

저들이 나누는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동양인이라며 깔보는 사람도 있었고, 순수하게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만약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오면 나 혼자 바보가 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싶다가도 배우의 안전이 걸려 있는 일이니 뭐든 꼼꼼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나 혼자 바보가 된다고 해서 별로 기분이 상할 거 같지는······.

“어? 어어?”

장비를 조작하고 있던 제이슨이 기함을 터트리며 급히 뭔가를 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리고 와이어에 걸려 있는 마네킹은 줄이 풀리면서 급속도로 바닥에 추락했다.

쾅-!

“뭐, 뭐야?”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떨어지는 거야?”

와이어 사고를 대비해 바닥에는 두꺼운 매트리스가 깔려 있다.

그런데 장비가 오작동을 일으키면서 빠른 속도로 오른쪽 왼쪽을 오가며 결국 줄이 전부 풀려 버렸다.

그 결과 마네킹은 매트리스가 없는 쪽으로 날아가 추락했고, 산산조각이 나 버렸다.

만약 저게 마네킹이 아니라 사람이었다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제이슨!!”

알렌 감독은 제이슨의 멱살을 잡고 흔들어댔다.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

하지만 그를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방금 전 광경을 보고도 화가 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니까.

“안전 검사는 똑바로 다 했다며! 근데 저건 대체 뭐야!”

“저,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분명 안전 검사도 똑바로 했고······.”

“입 닥쳐! 네 말만 믿고 배우를 저기다 올렸으면 어떤 참사가 벌어졌을 거 같아! 네가 그러고도 장비 감독이라고 할 수 있어?! 넌 미스터 장한테 평생 감사해야 할 거야. 만약 미스터 장이 얘기 안 했다면 넌 평생 감옥에서 썩어야 했을 테니까!”

알렌 감독은 제이슨을 세게 밀쳐내며 소리쳤다.

“넌 해고야! 배우들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치는 새끼랑은 일할 수 없어! 부당해고라고 여긴다면 소송을 하든 뭘 하든 마음대로 해!”

적잖이 화가 났는지 알렌 감독의 저 하얀 얼굴이 어느새 터질 것처럼 붉게 변했다.

제이슨은 멍하니 아무 말도 못 하고 바닥에 앉아 있었고, 알렌 감독은 심호흡하며 화를 삭였다.

그리고 놀란 마음에 다들 숨을 죽이고 있던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촬영은 여기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새로운 장비들을 구하고 철저한 안전 검사가 끝난 뒤에 다시 모시도록 하죠. 모두 오늘은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별도로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뒤 알렌 감독은 내게 와서 두 손을 잡으며 읍소했다.

“미스터 장. 정말로··· 정말로 고맙습니다. 하마터면 정말 큰일이 날 뻔했어요.”

만약 저 장비가 안전 검사 없이 촬영에 쓰였다면 참사가 벌어지는 것은 물론, 이 영화는 무기한 중단됐을 게 뻔했다.

알렌으로서는 죽다 살아난 것만 같은 기분일 것이다.

“아뇨. 저도 운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제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신 감독님 덕분이죠.”

“아닙니다. 정말 제가 큰 빚을 지었습니다.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몇 번이나 알렌 감독에게서 감사 인사를 받고 있을 때였다.

“감사 인사는 저도 하고 싶네요, 감독님.”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팀 크루즈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덕분에 저도 목숨을 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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