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3화
“안녕하세요. 이번에 음악 감독을 맡게 된 장연욱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두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C&C에서는 회사 자체에서 운영 중인 오케스트라를 지원해 주었다.
문화 예술 발전을 위해 오케스트라를 직접 만들었다는데, 내가 볼 땐 그냥 윈스턴 회장이 혼자 즐기고 싶어서 만든 것 같았다.
거기다 대충 만든 게 아니라서, 나름 실력자들을 모은 오케스트라였다.
“감독님. 저는 이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마스터를 맡고 있는 빌 존슨이라고 합니다.”
콘서트마스터는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서, 지휘자 다음으로 막강한 권한이 있는 사람이다. 그는 못 미더운 얼굴로 내게 말했다.
“저희를 이끌어 주시던 지휘자님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분을 빼고 와달라는 요청을 직접 하셨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예.”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새로운 지휘자님이 오시면 팀에 적응하는 데에만 한 달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릴 텐데요?”
“뭐, 그건 지휘자 역량에 달린 일이겠죠. 그리고 제가 지휘자님은 필요 없다고 한 이유는 이번 연주곡에 다른 사람의 해석이 들어가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네?”
“앞으로 두 달 동안 제가 여러분의 새로운 지휘자가 될 겁니다.”
그 말에 콘서트마스터를 포함해 단원들이 조소를 지었다.
“제가 잘못 들은 거 같은데, 감독님이 저희의 지휘자가 되신다고요?”
“예.”
“저희 단원 수가 80명에 이릅니다. 풀사이즈 오케스트라라는 것이죠. 이런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뭐, 한국에서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본 경험은 있습니다.”
대략 70~100명에 이르는 오케스트라를 풀사이즈 오케스트라라고 부른다. 그에 반해 30~50명으로 구성된 작은 사이즈의 오케스트라는 체임버 오케스트라라고 부른다.
내가 한국에서 지휘했던 오케스트라 단위가 딱 체임버 사이즈였다.
“아마도 힘드실 겁니다. 수십 년의 경력이 있지 않은 이상, 이 많은 오케스트라를 운용하기에는 말이죠. 지금이라도 지휘자를 불러서 해보시는 것이······.”
“이상하군요.”
“예?”
“여러분은 C&C 소속의 오케스트라입니다. 그리고 저는 C&C에게 여러분을 다룰 수 있는 모든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 말은 지금 제가 당신들의 보스라는 겁니다.”
“······.”
“제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나가십시오. 여러분이 아니더라도 C&C가 요청을 하면 제게 와 줄 오케스트라는 아주 많습니다.”
내 지시를 따르지 않고 초장부터 반기를 드는 오케스트라는 필요하지 않다.
저들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가 원하는 대로 연주를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콘서트마스터?”
“······죄송합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다행히 그 정도로 막장인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여기 사람들은 내가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런 건지, 실력은 보지도 않고 먼저 사람을 깔보는 버릇이 있다.
처음 작업실에 와서 여기 팀원들과 갈등을 빚은 것도 그렇고, 이번에는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충돌했다.
할리우드에서 일을 하려면 매번 이런 부조리함을 겪어야 하는 건가?
“일단 악보를 나눠 드리죠. 따로 연습할 시간도 있어야 할 테니까요.”
내가 쓰는 작업실에서 80명을 데리고 연습을 할 순 없었기에 C&C에서는 다른 연습장을 제공해 주었다.
말이 연습장이지, 여긴 그냥 공연장이었다.
무대가 있고 그 앞에 수백 명이 앉을 수 있는 청중석이 있었다.
연습을 하는 데에 있어서 불편함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장비만 설치된다면 녹음도 쉽게 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있지 않습니다. 두 달이란 시간 동안 7개의 곡을 녹음해야 하니까요.”
타이트한 스케쥴이었다.
말이 2달이지, 사실은 한 달 반 안에 끝을 내는 게 베스트였다.
방학을 이용해 미국으로 온 것이기도 하고, 학교에 증명서를 내서 출석 처리를 한다고 해도 최대 2달을 끌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총 12개의 곡이 삽입되는 이번 영화 OST에서 7개가 오케스트라 협주곡이다.
“물론 영화 OST의 성질상, 비슷한 멜로디로 이루어진 곡들입니다. 그래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다들 아실 겁니다. 그래도 여러분의 경험과 실력을 전 믿고 있습니다.”
이들은 전문적으로 영화 OST를 녹음하는 오케스트라다.
새로운 곡을 익히는 데에 있어서 거부감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 이틀의 시간을 드릴 테니 이번 첫 번째 곡 연습을 각자 해 와 주십시오. 여기 공연장에서 자유롭게 연습을 하셔도 되고, 아니면 집에서 하셔도 됩니다. 그에 대한 조율은 콘서트마스터에게 맡기겠습니다.”
나는 각 파트별로 악보를 나눠 주었고, 연습이 많이 필요한 곳을 미리 체크해 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일을 콘서트마스터에게 맡기고 먼저 공연장을 빠져나왔다.
이틀간은 자율 연습이니, 그 기간 동안은 지휘자가 따로 필요 없었다.
이걸로 기싸움은 끝났으려나?
* * *
“근데 정말 같이 가도 되는 거야?”
“응. 아무나 다 데리고 와도 괜찮다고 했거든.”
오늘은 알렌 감독의 촬영 현장을 방문하는 날이었다.
촬영장 분위기와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읽어 보고 음악적 영감을 얻겠다는 건데······.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음악적 영감을 얻는 것도 있긴 하지만, 할리우드 촬영장을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긴 했다. 더군다나 스크린에서만 봤던 슈퍼스타들이 촬영장에 모여 있을 걸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렸다.
혜나 누나는 나를 따라 촬영장을 가도 괜찮은 건지 걱정을 했지만, 그에 반해 제니는 항상 그랬듯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였다.
“팀 크루즈가 이번 영화 주인공이라면서?”
“인연이 있나 봐요?”
“예전에 파티에서 만난 적이 있지. 아마 오늘 촬영장에 있는 배우들 대다수가 나랑 안면이 있을걸?”
하긴. 제니 정도라면 연예인들과 교류하는 일이 잦았을 것이다.
그녀를 후원하는 연예인들도 많다고 들은 적이 있다.
“와~”
촬영장에 도착하고 나서 누나는 입부터 쩍 벌렸다.
충분히 그럴 만한 사이즈였다.
야구장을 연상케 하는 돔 형식 건물이 전부 영화 촬영을 위한 곳이었다.
제니도 이런 촬영장은 처음 와보는 것인지, 이리저리 눈알을 빠르게 굴렸다.
“오~ 미스터 장. 여기입니다.”
수백 명의 스태프가 모여 있는 곳에서 어떻게 우릴 발견했는지, 알렌 감독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하하. 다들 내가 저번에 말했지? 천재 음악 감독이 우리 영화를 맡았다고 말이야. 모두 인사해.”
알렌 감독의 말에 스태프들은 어색하게 인사를 했다.
가뜩이나 첫 만남이라 불편한데, 알렌 감독 덕분에 더 불편해졌다.
꼭 그 느낌이다.
회사에 들어가면 아이스 브레이킹을 한다면서 생판 모르는 사람과 게임을 시키지 않던가. 딱 그런 미칠 듯한 어색함이었다.
적어도 난 그렇게 느꼈다.
“근데 감독님. 이분은 음악 감독이 아니라 배우를 하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옆에 계시는 숙녀분도 너무 아름다우시잖아.”
그런데 이들의 어색함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갑자기 하나둘 나와 혜나 누나에게 관심을 드러내더니, 아예 우리 주변을 에워싸며 이것저것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혹시 여자친구?”
“아, 아니요. 남매인데요?”
“와~ 남매라고? 어떻게 남매 둘 다 이럴 수가 있지?”
그러다 뒤늦게 제니를 발견했다.
“혹시 제니 웨이든?”
“어머. 맞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맞죠?”
이제야 자기를 발견한 게 조금 자존심이 상해 보이긴 했지만, 제니는 잘 포장된 미소를 보여 주었다.
“호호. 맞아요. 반가워요.”
“설마 미스 웨이든이 우리 영화 OST를 연주하시는 건가요?”
“진짜? 에이 설마.”
사실 이에 대한 내용은 아직 제니와 상의 전이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어 보였다.
“네. 이번에 우리 연욱이가 만드는 곡을 제가 직접 연주해 보기로 했어요. 많이 기대해 주세요. 진짜 엄청난 곡을 만들어 올 거니까요.”
“와아~”
“저희야 영광이죠!”
이대로 가다가는 하루 종일 스태프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것만 같았는지, 알렌 감독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자. 이제 다들 촬영 준비해야지?”
“넵!”
그들은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촬영 준비에 돌입했다.
“잠깐 쉬는 시간이었습니다. 원래 이런 영화는 CG로 떡칠을 해야 하는데, 전 그러고 싶지가 않아서요.”
주변에 온통 초록색 벽들이 가득했다.
CG를 삽입하고자 그렇게 만든 것인데, 부품들이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전부 CG로 입히는 건 뭐랄까. 영화의 맛이 안 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제가 좀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최대한 CG를 제하고 클래식한 방법으로 찍어 보자고 말이죠.”
“그럼 비용이 더 들지 않나요?”
“하하. 꼭 그렇지도 않아요. 오히려 회사에서는 비용 절감을 한다고 좋아하더군요. CG를 입히기 보다는 차라리 저렇게 세트 장비를 만들어 찍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거죠. 거기다 배우들을 더 맛깔나게 쓸 수 있기도 하고요.”
CG를 입히다 보면 필연적으로 배우들의 모습을 모델링해서 그들의 전체 모습을 CG로 대신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 들어가는 비용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이런 고지식하고 클래식한 방법이 그 비용을 절감해 주는 듯했다.
“이따 배우들도 한번 만나 보세요.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다들 촬영 준비를 해야 해서 메이크업도 받고 복장도 새로 입고 있어서 말이죠. 더군다나 리허설도 하는 중이라서요.”
“괜찮습니다. 근데 저희는 어디서 구경을 해야 할까요?”
“아! 마땅한 자리가 있긴 합니다. 그쪽으로 따로 안내해드리죠. 그런데 OST 제작은 잘 되고 있습니까?”
“아주 순조롭습니다.”
“다행이군요. 기대가 됩니다.”
우린 알렌 감독이 마련해 준 자리에 가서 앉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촬영을 하는지 지켜보았다.
확실히 저 사람도 감독은 감독이다.
촬영이 시작되자마자 순해 보였던 인상이 돌연 바뀌었다.
또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NG를 외치고 나서 몇 번이고 반복 촬영을 거듭했다.
배우의 얼굴에서 짜증이 조금 섞여 나오기도 했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가 그쪽 부분은 그렇게 연기를 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거기다가 자신의 뜻이 제대로 관철되지 않으면 호통을 쳐서라도 배우를 꾸짖었다.
아무리 슈퍼스타 반열에 올라와 있는 배우라고 해도 촬영장 안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했던가.
배우들 역시 얼굴이 좀 굳긴 했어도 함부로 감독에게 대항하는 일이 없었다.
모두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촬영장 분위기를 망치지 않고자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다들 프로 의식이 대단하네.”
“그러게. 저 감독님도 꽤 극성으로 보이는데, 다들 잘 따라와 주네.”
한국에서 보던 촬영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고 해야 할까.
규모 면에서 이곳이 너무 거대해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연욱. 난 잠깐 어디 좀 다녀올게. 저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서.”
“아, 네. 그렇게 하세요.”
나와 누나는 모든 게 신기했지만, 제니는 조금 지루했는지 먼저 자리를 떴다.
그녀는 어디까지나 음악가지, 우리처럼 배우 활동을 해본 적이 없어 별로 감흥이 없어 보였다. 그렇게 나와 누나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촬영장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어깨를 살짝 두들겼다.
뒤를 돌아보니 위에서 아래까지 명품으로 치장한 중년의 여성이었다.
“혹시 오늘 촬영장 구경 온 관광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