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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22화 (122/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2화

“이건······.”

“제가 미스터 장을 얼마나 높이 평가하는지 알 수 있는 마법의 종이라고나 할까요?”

윈스턴 회장이 내게 건넨 건 저번에 서명한 계약서와는 조건이 다른 것이었다.

저번 계약서도 파격적이었는데, 이번 건 그 정도를 지나쳤다.

돈도 수백만 달러로 늘었고, 영화의 흥행 척도에 따라 인센티브도 지급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그 외에도 내가 원하는 것이 있으면 회사 차원에서 협의하에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는 조항까지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면, 윈스턴 회장이 나를 상당히 높이 평가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죄송합니다, 회장님.”

이 계약서에 서명할 순 없었다.

“저는 미국이 쭉 남아 있을 생각이 없습니다. 음악 감독으로서 성공하려고 음악을 시작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계약서에 서명하는 순간, 나는 꼼짝없이 미국에 잡혀 있어야 한다.

“영화 음악 감독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브로드웨이에서 미스터 장이 직접 뮤지컬을 만들어 낼 수도 있어요. 또한 한국보다는 여기 미국 음악 시장이 더 매혹적이지 않나요? 원한다면 빌보드에 진출할 수 있도록 내가 서포트를 해드리죠.”

내 이름으로 만든 뮤지컬.

그리고 빌보드 진출.

다 매혹적인 조건들이다.

그러나 C&C가 요구하는 건 뭐든 들어줘야 하고 내가 원하는 활동 시간과 C&C가 원하는 활동 타임이 다르면 서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결국 계약서에 서명한 나는 C&C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라야 하며 아무리 윈스턴 회장이 날 자유롭게 풀어 준다고 해도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나를 속박해야만 할 것이다.

계약서에 나오는 조건들과 돈을 그냥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는 나만의 성공을 위해 음악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미스터 장의 사정은 잘 알고 있습니다. 친누나를 위해 음악을 시작했고, 또 지금까지 이어온 커리어도 전부 누나의 성공을 위해서 쏟아부었다는 걸 말입니다.”

역시 돈이 많아서 그런가.

남들은 잘 모르는 것을 그는 명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 했으면 충분하지 않나요? 누나는 이제 미스터 장의 도움 없이도 훨훨 날아다닐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굉장히 유명하다죠? 오히려 누나의 성공 가도를 막는 건 미스터 장일 수도 있어요. 저 멀리 날아가려는 누나를 자꾸만 미스터 장이 속박하려 드니까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순간 나도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 내가 누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건가?

“전 새로운 길을 보여 주려는 것뿐입니다. 미스터 장의 재능은 결코 한국에서만 묶여 있으면 안 됩니다. 그거야 말고 엄청난 낭비이니까요. K-POP 시장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지만, 미스터 장의 그릇을 품을 수 있는 곳이 아니에요.”

“과찬이십니다.”

“아니요. 전 절대 과장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투자 회사일수록 신용이 절대적이니까요. 그러니 이 계약서는 일단 보류하겠습니다. 언제든 기회의 장이 열려 있다는 걸 알아주십시오.”

계약서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윈스턴 회장은 더 이상 계약서에 대한 내용을 입에 담지 않았고, 뉴욕 최고급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나눌 때에도 음악 얘기를 주로 하였다.

우리 둘의 취미 생활이 똑같아서 그런지 대화가 참 잘 맞았다.

그리고 윈스턴 회장이 얼마나 음악적 견해가 뛰어난지도 알 수 있었다.

음악에 대해 진심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그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자꾸만 계약서가 눈에 아른거렸다.

어쩌면 내가 C&C와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진 않을까-하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게 윈스턴 회장의 큰 그림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나 혼자 흔들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저녁은 잘 먹고 왔어?”

호텔에 돌아오니 누나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와 난 각자 다른 방을 쓰고 있긴 한데, 틈만 나면 이렇게 내 방으로 찾아와 몇 시간씩 있다 가곤 했다.

“응. 거기 레스토랑 엄청 맛있더라. 다음에 누나랑 같이 갈까 봐. 누나는?”

“난 제니 언니랑 쇼핑 다니면서 챙겨 먹었지.”

“서로 기 싸움은 엄청하더니, 그래도 놀긴 잘 노네.”

“그 언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해서 그렇지, 사람은 참 괜찮아. 성격도 쿨하고. 완전 미국인이야. 그 언니 보면 자유로운 영혼이 뭔지 알 수 있다니깐?”

나는 침대에 누워 핸드폰을 하고 있는 누나 옆에 앉았다.

윈스턴 회장과 나눴던 얘기가 자꾸 머리를 번잡하게 만들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이것저것 고민하며 각을 재고 있던 중이었다.

“뭐 고민이라도 있어?”

“응? 왜?”

“네 얼굴에 써있잖아. 나 지금 엄청난 고민이 있다! 라고 크게 소리라도 지르는 것처럼 말이야.”

“······진지하게 묻고 싶은 게 있는데, 내가 그렇게 표정 관리를 못 해?”

“아휴. 우리 연욱이가 포커 페이스 하나는 기가 막히지.”

“근데 누나는 어떻게 그리 잘 알아?”

“야. 내가 네 가족인데, 그걸 모를까? 모르면 누나가 아니고 남인 거지.”

그 말을 들으니 좀 안심이 됐다.

“저기 누나.”

“응?”

“만약 누나가 독립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할 거야?”

“독립? 갑자기 무슨 독립? 집 나가라고?”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누나가 그룹에 얽매이지 않고 솔로로 활동하면 어떨까 묻는 거야.”

혜나 누나는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널 놔두고 왜 솔로로 활동을 해?”

“왜? 별로야? 누나도 그런 욕심이 들지 않아?”

“뭐? 너 설마 나 놔두고 솔로로 활동하려고 그러니?”

“아니. 나는 어차피 작곡가잖아. 혼자 무대 위에 올라갈 생각은 없어.”

“그럼 나도 싫어.”

누나의 의지는 단호했다.

“나도 혼자 무대 위에 올라가서 노래 부를 생각은 요만큼도 없어. 너랑 같이 하니까 하는 거지. 만약 혼자 하라고 했으면 절대 안 했지.”

“그래?”

“응. 내가 음악을 하는 것도 다 우리 동생 덕분이지. 네가 안 한다고 하면 나도 안 해. 하지만 혹시라도 네가 솔로로 활동하고 싶다면 언제든 말해. 그건 허락해 줄 수 있으니까.”

“아냐. 나도 누나 없으면 안 해. 애초에 누나 때문에 시작한 음악인데.”

“오~ 그랬어? 이 원래 가수가 꿈이긴 했지만, 어느 날부터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

누나는 어렸을 때부터 꿈이 가수였다.

그래서 내가 성공시켜주겠다는 강박관념에 누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지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지금은 그냥 너랑 쭉 행복하게 음악 활동하면서 지내고 싶어. 우리 가족이랑 못했던 것들도 많이 하고. 엄청난 성공은 바라지도 않아. 이미 충분히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니깐. 나중에 좋은 사람 만나서 예쁜 가정 꾸릴 수 있으면 된 거지. 조카 이름은 니가 정해줄래?”

“내가 작명 센스가 좋긴 하지.”

그 말을 들으니 방금 전까지 내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들이 말끔히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음악을 시작한 계기는 혜나 누나를 위해서였다. 그리고 작곡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도 전부 혜나 누나의 앞길을 밝혀주기 위함이었다.

내 개인적인 욕심도 있지만, 누나와 계속 음악 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이 더 크다.

만약 성공에 대한 욕심이 크다면 그걸 누나와 같이 이루면 된다.

“누나.”

“응?”

“난 아직 우리가 더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단순히 국내에만 묶여 있는 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그런 가수가 되는 거지.”

계약서에 대한 고민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 새로운 목표만 남았을 뿐.

“야. 꿈이 너무 큰 거 아니야?”

“뭐 어때. 이왕 시작한 거, 끝장을 보는 게 낫지 않겠어?”

“그래. 네가 원한다면 어디 한번 끝장을 보자. 나 빌보드 1위 안 만들어 주면 알아서 해.”

“그, 그건 좀······.”

“호호. 난 우리 동생 믿어.”

목표가 너무 커진 것 같지만, 까짓것 해보면 되지 않을까?

* * *

이틀 뒤 나는 작업실로 돌아갔다.

저번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였다.

그들 모두 더 이상 날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았다.

“말씀하신 대로 곡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리고 저번에 주신 샘플곡들도 전부 확인해서 몇 가지 수정 사항을 리스트로 작성해 놓았습니다.”

하라는 건 딱딱 잘 하는 사람들이었다.

마이크에게 들어보니, 이 바닥에서는 나름 베테랑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저번이 이들이 만든 샘플곡도 꽤 준수한 편이었다.

조금만 더 자극하며 작업을 한다면 이들의 실력이 지금보다 한층 더 성장할 듯 보였다. 그 증거가 바로 이것이다.

“이게 48시간 동안 만든 곡들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의 역량을 최대한 끄집어내서 만든 곡들입니다.”

이들이 만든 곡은 총 3곡.

“어, 어떠신가요? 노래가 마음에 드십니까?”

난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3곡 모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이 중에 한 개는 정식으로 앨범에 넣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시간을 너무 많이 끌었어요. 오늘부터 속력을 낼 겁니다. 다소 고된 작업이 되겠지만, 함께 힘을 합친다면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 맡겨만 주십시오.”

“좋습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이 만든 수정 사항을 확인하는 동안, 이번에 주신 샘플곡들을 먼저 봐볼까요?”

나는 한번 곡을 뜯어내기 시작하면 정말 세세하게 분해한다.

같이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머리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언뜻 보면 악보 전체를 갈아엎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이건 단순한 가요 음악이 아니지 않은가?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를 해 줘야 하는 협주곡이다.

곡 하나당 서로 다른 악보들이 수십 장으로 불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하나씩 뜯어서 해체쇼를 하고 있으니, 팀원들이 도망가는 건 아닌지 문득 걱정이 들 정도였다.

“어······ 이걸 전부 수정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근데 감독님. 곡을 한 번 들으시지 않았나요?”

“곡을 몇 번이나 듣는 건 상관없어요. 전 한 번 들은 건 거의 잊지 않거든요. 특히 음악은.”

“아-.”

“이대로 수정을 하고 다시 가져와 주세요. 한 번 더 들어보고 괜찮다 싶으면 통과하고, 아니면 다시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글렌도 여기서 수정을 할 게 뭔지 찾아서 피드백을 주면 확인해 보겠습니다.”

“네!”

글렌이 밖으로 나가려는 걸 내가 다시 붙잡았다.

“아참. 그리고 C&C에서 오케스트라 팀을 따로 지원을 해 준다죠?”

“지휘자가 따로 있나요?”

“예.”

“음. 그럼 C&C에 전해 주세요.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내일부터 보내 달라고. 하지만 지휘자는 필요 없다고 말입니다.”

“······예?”

글렌은 살짝 당황한 듯해 보였다.

지휘자가 없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끌 순 없기 때문이다.

그건 작업실에 있는 팀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인터넷에서 제가 공연을 하는 걸 본 적이 있으신가요?”

글렌은 열심히 눈알을 굴리다 대답했다.

“못 봤습니다. 하지만 오늘부터 전부 찾아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딱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아닙니다. 제가 진작 감독님의 노래를 다 찾아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글렌의 말에 각자 악보를 보고 있던 팀원들은 갑자기 핸드폰으로 내 이름을 검색해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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