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1화
“우릴 끝까지 무시하는 건가?”
“하루는 푹 쉬라잖아. 그 하루 동안 무슨 개수작을 벌이려는 건가?”
“근데 다른 수작을 부리기는 어려울 텐데. 우리가 옆에서 감시할 거 아니야?”
하루 동안 누가 가장 많은, 그것도 퀄리티가 좋은 곡을 만들어내는지 대결을 해보자는 장연욱의 제안.
3일 동안 밤낮을 고생한 팀원들을 배려해 장연욱은 자기가 먼저 24시간 동안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옆에서 감시를 해도 된다는 조건까지 붙였다.
실시간으로 자기가 어떻게 곡을 만드는지 봐도 괜찮다는 건데, 팀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감시를 하는 한, 외부의 도움은 절대 받을 수 없다.
누가 봐도 장연욱에게 불리한 조건이지 않은가.
수적으로도 그렇고, 경험으로도 그렇다.
할리우드 음악을 처음 작곡한다는 장연욱이 무슨 수를 쓴다고 해도 자신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한번 구경이나 해 볼까?”
그래도 궁금은 했다.
과연 저 어린놈이 어떤 방식으로 작곡을 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작업실 안으로 슬그머니 들어가 보았는데, 장비들은 다 꺼져 있고 장연욱은 혼자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만 있었다.
“뭐야? 자는 건가?”
“쉿.”
팀원들보다 먼저 작업실에 있었던 글렌이 조용히 하라며 주의를 줬다.
그들 중 하나가 목소리를 낮추며 글렌에게 물었다.
“저 꼬마가 지금 뭘 하는 거야, 글렌?”
“나도 몰라. 3시간 전부터 저러고 있었어.”
“3시간? 자고 있는 거야?”
“아니. 자는 거 같진 않아.”
저 자세로 3시간 동안 가만히 있는 장연욱이나, 그걸 또 옆에서 멍하니 지켜만 보고 있는 글렌이나 참 대단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뭐가 있는 건가 싶어서 10분 정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팀원들은 점점 지루해져 갔다.
“뭐야. 그냥 자는 거네.”
“나도 가서 좀 자야겠다. 3일 동안 잠을 못 잤더니.”
그렇게 그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장연욱이 갑자기 감고 있던 눈을 뜨더니, 벌떡 일어나 종이와 펜을 가지고 무언가를 휘갈기기 시작했다.
“······?”
마치 다른 사람은 눈에 안 들어온다는 듯,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팀원들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완전히 뭔가에 홀린 것처럼 장연욱은 쉴새 없이 펜을 움직였고, 순식간에 수십 장의 악보가 만들어졌다.
“저게 악보야?”
거의 낙서에 가까운 악보.
저것을 쓴 본인은 과연 알아볼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악보 상태가 엉망이었다.
악보를 다 쓴 것인지, 장연욱은 길게 심호흡을 한 다음 컴퓨터 앞으로 가서 악보에 담긴 곡조를 입력시켰다.
헤드셋으로 자신이 쓴 악보를 들어보다 몇 가지 수정하기를 계속 반복하더니, 이내 기지개를 쭉 피면서 일어났다.
“아··· 다들 거기 계셨네요?”
글렌은 6시간. 다른 팀원들은 3시간가량 졸린 것도 잊은 채 작업실에 있었다.
기괴하기 짝이 없는 장연욱의 작업 방식을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그렇게 흘러간 것이었다.
“전 여기까지만 하면 될 거 같네요. 결과물은 와서 들어 보시면 됩니다.”
뭐? 벌써 끝났다고?
잠을 자는 건지, 아니면 명상을 하는 건지 모를 행동을 3시간 동안 하고 나머지 3시간은 악보를 휘갈기며 쓰다 컴퓨터에 옮겨 적은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1곡도 아니고 3곡을 끝내?
“정말 끝이라고요?”
글렌의 물음에 연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 그만 호텔로 돌아가 있겠습니다. 약속했던 시간에 다시 오도록 하죠. 제 곡을 듣고 싶으면 얼마든지 들어보셔도 돼요. 훌륭한 곡들은 아닙니다만, 샘플링으로는 충분합니다.”
그러고는 정말 쿨하게 작업실을 떠났다.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이 말이다.
연욱이 자리를 뜨자마자 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컴퓨터 앞에 달려갔다.
“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야?”
“분명 발로 쓴 곡들이겠지.”
“말도 안 돼. 고작 몇 시간 만에 곡 3개를 완성시켰다고?”
“그러니깐. 음표 옮겨 적는 것만 해도 하루는 그냥 지나가겠다.”
믿을 수 없는 작업 속도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불신을 가지고 곡을 재생시키는 팀원들이었다.
“······!?”
하지만 곡이 플레이 되는 순간, 이들의 입이 점점 커져만 갔다.
이게 정말 그 짧은 시간에 만든 곡들이란 말인가.
자신들이 3일을 공들여 만든 것들보다 훨씬 퀄리티가 좋아 보였다.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이야?”
속임수는 없다.
미리 만들어 놓은 곡을 다 외워 놓고 있다가 옮겨 적었다고는 보기 어려웠다.
저것이 순수한 장연욱의 실력인 것이다.
지금까지 믿지 못했던 그 재능의 차이를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되니,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이건 게임을 해보기도 전에 끝났는데?”
더 이상의 대결은 무의미했다.
팀원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죽었다 깨어나도 도저히 이 정도 퀄리티의 곡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대체 우린 누구 밑에서 일을 하게 된 거야?”
“C&C에서 그냥 괴물을 데리고 왔네.”
고고했던 자존심도 이미 바닥을 친지 오래.
그러나 자존심이 망가졌다고 해서 후회는 없다.
왠지 그들은 가슴 한쪽이 두근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음악 감독과 함께 프로젝트를 할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리라.
* * *
약속 시간에 맞춰 작업실로 돌아온 나는 이 숙연한 분위기가 영 익숙지 않았다.
글렌은 대표로 앞에 나와 내게 말했다.
“감독님.”
처음으로 글렌 입에서 감독님이란 호칭이 나왔다.
“우리가 졌습니다.”
“네?”
“감독님께서 몇 시간 만에 만든 그 곡들을 들어보니, 다들 싸울 의지를 잃었습니다. 저조차도 그렇고요.”
나는 글렌과 그의 뒤에 있는 팀원들을 스윽 훑어 보았다.
“그래서 곡은 완성시키셨나요? 24시간 안에 만드는 곡이요.”
“아니요. 어차피 이길 수도 없는 싸움인데, 그걸 만들고 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그 말씀은 아까운 24시간을 통으로 날려 먹었다는 거네요?”
내 목소리가 날카로워진 것을 보고 글렌이 흠칫거렸다.
“저는 단순히 내기만 하자고 24시간을 드린 게 아닙니다. 그 시간 동안 여러분이 어떤 곡을 만드는지 보려고 했던 거죠. 원래 승부욕이 불타오를수록 좋은 곡이 나오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그냥 멍하니 앉아 있기만 했다는 겁니까?”
“아니. 저, 저희는 그런 게 아니라······.”
“실망입니다. 우리한테 많은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닌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축내다니······. 이런 식이면 전 여러분과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팀원들이 얼른 글렌 앞으로 뛰어나와 말했다.
“감독님. 미안해요. 지금부터라도 정말 열심히 만들어 볼게요.”
“네. 감독님 커리어에 절대 누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희와 꼭 협업을 해주십시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팀을 바꿀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다.
이들이 저번에 만들어 놓은 샘플들을 듣고 나서부터 이번 프로젝트는 이 팀원들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힌 상태였다.
방금 전은 이들이 느슨해지지 않도록 고삐를 죄어준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48시간을 드리죠. 이틀 동안 최소 곡 2개를 완성하세요. 그리고 기존에 저와 여러분이 만들어 놓은 곡들을 전체적으로 검토해서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따로 체크를 해 두시고요. 이틀 뒤에 제가 와서 확인하고 수정이 타당하다 여겨지면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이틀 뒤에 봅시다.”
내가 작업실을 나오자마자 안에서 부산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린 아주 좋은 팀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이틀 동안 시간이 남게 되었다.
누나랑 제니를 데리고 놀러 다녀야 하나?
그렇게 다시 호텔로 돌아가려고 했다.
“미스터 장.”
나를 호텔로 데려다 주던 마이크가 말했다.
“지금 시간이 괜찮으시다면 C&C 본사로 가도 될까요?”
“아, 네. 혹시······.”
“회장님께서 초대하셨습니다.”
이 양반은 내가 시간이 빈다는 걸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힌 타이밍에 회사로 초청을 했다. 나도 성공한 덕후를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기에 거절하지 않고 곧바로 C&C로 들어갔다.
“회사가 참 크네요.”
까마득히 높은 빌딩 전체가 C&C 회사였다.
“뉴욕이지 않습니까. 건물 높이가 곧 자존심이 되는 곳이죠. 이쪽입니다. 우리 회사에 귀중한 손님들만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에요. 사실, 저도 처음 타보는 겁니다.”
마이크가 나를 안내한 곳은 VIP 전용 승강기였다.
지하주차장부터 이어져 있는 이 엘리베이터는 미리 승인을 받지 않으면 탈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엘리베이터가 멈춘 곳은 이 빌딩의 꼭대기 층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로비가 나오지 않고 부드러운 양모 카펫이 깔린 넓은 사무실이 나왔다.
“하하. 어서 오십시오.”
거기서 날 반겨주는 사람을 보고 여기가 회장실이라는 걸 눈치챘다.
“반갑습니다. C&C 회장, 조지 윈스턴이라고 합니다.”
“장연욱입니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사답게 생긴 노년의 남성이 해맑게 웃으며 나와 악수를 나누었다.
이 사람이 조지 윈스턴.
사진으로 봤을 때랑은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자. 여기 앉으시죠.”
뉴욕의 전경이 훤히 보이는 곳이었다.
소파에 앉아서 위스키 한잔 기울이면 딱일 것만 같은 풍경이랄까.
진짜 내가 성공했구나-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마법 같은 자리였다.
“얘기는 들었습니다. 팀원들의 군기를 확실하게 잡으셨다고요?”
“군기라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하. 역시 리더십이라는 것에는 나이가 없어요. 타고난 재능은 나이와 상관없이 어디서나 빛나는 법이니까요. 제가 미스터 장을 우리 회사로 데려온 것도 바로 그와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윈스턴 회장은 직접 커피를 내려 내 앞에 놓았다.
“나는 수십 년 동안 문화생활을 즐겼습니다. 성공하기 전 노숙 생활을 했을 때도 절대 그것만큼은 포기하지 않았죠. 그래서 듣는 귀가 남들보다는 조금 뛰어나요. 그러던 어느 날 우연찮게 미스터 장의 곡을 듣게 되었고, 완전히 매료되었어요. 우리 회사로 모셔오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애가 타더군요.”
“저보다 더 뛰어난 작곡가들도 많을 텐데요?”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느낌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거기서 끝이겠지만, 미스터 장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이 강했습니다.”
윈스턴 회장은 내가 아직도 발전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말이 맞다.
나조차도 내 잠재력의 끝이 어디인지,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저번에 뮤지컬은 회장님 덕택에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 인사를 이제야 하게 되네요.”
“아닙니다. 공연장에는 제가 따로 말을 해 두었어요. 미스터 장에게는 VVIP 룸을 상시 오픈해 줄 겁니다. 이건 제 작은 선물이라 생각하고 거절하지 마세요.”
부담스러운 호의였다. 그리고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고 했던가.
윈스턴 회장은 두툼한 서류 하나를 내 앞에 내밀었다.
“잠깐 이걸 봐 줄 수 있겠습니까?”
어지러운 영어 문장들이 가득 쓰여 있는 새로운 계약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