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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20화 (120/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20화

VVIP는 좌석이라고 보기보다 룸에 가까웠다.

공연장 중앙 왼쪽 끝에 마련된 이 룸은 유리막이 되어 있고, 배우들의 마이크 소리가 직접 들어오는 스피커까지 내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또한 영상으로도 배우들의 연기를 볼 수가 있어 왜 이곳이 VVIP 룸인지 느껴졌다.

“원하시는 것이 있으면 여기 호출 버튼을 누르시면 됩니다. 음료부터 먹을 것까지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한국 뮤지컬은 관람석에서 취식이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브로드웨이는 다르다.

관람석에 앉아 팝콘을 먹는 사람들이 꽤 보일 정도로 여긴 취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럼 즐거운 공연 되시길.”

“저기 잠시만요. 어떤 분이 저희한테 VVIP 룸을 준 건지 말씀해 주셔야죠.”

“아-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 일하는 직원이라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를 VVIP 룸까지 안내해줬던 직원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아까 그 창구 직원한테 제대로 물어볼 걸 그랬나.

“대체 누구지? 내 팬인가? 난처한 나를 보고 왕자님처럼 나타나서 VVIP 룸을 마련해 주고 간 건가?”

제니의 망상······ 까지는 아닌가.

브로드웨이에서 VIP 카드까지 받을 정도면 그녀의 인지도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당연히 VVIP 룸에 들어갈 수 있는 누군가가 그녀를 알아보고 이곳을 선뜻 내놓은 것일 수도 있다.

“여긴 단순한 VVIP 룸이 아니긴 하네요.”

“응? 왜?”

“보세요. 각종 음향 장비는 물론, 원한다면 무대에 간섭할 수 있는 장비들까지 준비되어 있어요. 여차하면 여기가 일종의 컨트롤 타워가 될 수 있다는 거죠.”

모든 뮤지컬 공연에는 컨트롤 타워라는 것이 있다.

조명, 마이크, 음향 등등.

모든 것을 관리하는 컨트롤 타워에서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무대가 망가져 버릴 만큼 세밀한 조율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이곳의 풍경은 마치 무대 뒤편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원래 VVIP 룸이라는 게 있었어요?”

“나도 처음 봤어. 다른 유명한 연예인들도 VIP 좌석을 쓰지, VVIP 룸을 이용한다는 건 못 들어봤거든.”

컨트롤 타워처럼 쓸 수 있는 VVIP 룸?

내 추측이 맞다면 여기 VVIP 룸은 원래 외부인에게 공개된 곳이 아니다.

일반인이 저 장비를 잘못 만졌다가는 공연에 큰 민폐를 끼치게 된다.

공연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 바로 VVIP 룸인 것이다.

즉, 뮤지컬 감독이거나 혹은 이 공연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여길 이용할 수 없을 터.

최소 이 공연장을 소유하고 있거나, 아니면 이 뮤지컬의 감독이 우리한테 여길 내주었다는 소리인데······.

“아! 공연 시작한다.”

이 공연장이 누구 소유인지 제니에게 물어보려는 찰나.

공연이 시작되었다.

“진짜 다행이다. 오늘 공연 못 봤으면 평생 쪽팔릴 뻔했네.”

우리에게 이런 행운을 안겨 준 키다리 아저씨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 훌륭한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위키드>

명작 뮤지컬 중 하나로 뽑히는 이 작품은, 엘파바라 불리는 마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초록색 피부로 인해 친구가 없던 그녀에게 글렌다라는 친구가 생기고, 그러면서 마녀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치닫는 엘파바.

우정과 운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엘파바의 심경이 노래로 표현이 되는데, 굉장히 높은 고음이 요구되고 폭발적인 가창력 또한 필수이기에 엘파바 역할을 맡을 수 있는 배우는 한정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엘파바를 맡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난이도가 상당히 높다.

그리고 한국에서 느꼈던 감동보다 몇 배는 더 큰 감동을 이곳에서 느끼고 있었다.

엘파바 역할을 맡은 배우는 천장이 날아갈 것만 같은 가창력을 선보이며 내 가슴을 뛰게 만들었다.

옆에서 나와 같이 공연을 관람하고 있던 혜나 누나도 주먹을 꽉 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와 같은 감동을 느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런 가창력을 뽐낼 수 있다는 부러움 때문일까.

한국에서도 5번이 넘게 봤던 작품이지만, 미국에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눈물을 글썽이게 만드는 마지막 결말까지 완벽했던 위키드의 공연이 어느덧 끝이 났다.

커튼콜까지 성대하게 끝나고 나서도 여운이 남아 우리 세 사람은 쉽사리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제니는 잠시 화장을 고치고 있었고, 누나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일어나지 못할 것 같아 제니에게 물었다.

“제니.”

“으응?”

“제니는 여기 자주 와봤으니, 맛집이 어딘지 알겠죠?”

“당연하지.”

“너무 좋은 공연을 봤더니, 밥을 대충 먹으면 안 될 거 같아요. 좋은 곳이 있으면 데려가 줄래요?”

“호호. 그럴까? 여기 진짜 유명한 스테이크집이 있거든. 거기로 가자.”

스테이크라는 말에 눈물을 닦고 있던 누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스테이크라고요? 얼른 가요.”

고기라면, 특히 소고기를 유독 좋아하는 혜나 누나는 공연의 감동을 벌써 다 잊은 듯보였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며 우린 VVIP 룸을 나왔다. 그런데 어떤 중년의 남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조심스레 다가왔다.

“실례하겠습니다.”

우리에게 VVIP 룸을 마련해 준 그 사람인가?

제니가 먼저 반갑게 인사했다.

“네. 반가워요. 제니 웨이든입니다. 혹시 저한테 VVIP 룸을 주셨던 분인가요?”

“아······ 미스 웨이든. 아닙니다. 저는 다른 분을 찾아 뵈러 왔습니다.”

“네?”

“미스터 장?”

그 신사는 제니가 아니라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네. 절 기다리신 건가요?”

“맞습니다. 공연은 잘 보셨습니까? 저희 회사의 VVIP 룸이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훌륭한 공연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오늘 같이 대단한 공연을 놓칠 뻔했는데, 감사드립니다.”

“하하. 아닙니다. 감사는 제게 하실 필요 없습니다. VVIP 룸을 마련해 주신 건 제가 아니라 회장님이시니까요.”

그러더니 그는 내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사실 오늘 저희 회장님이 VVIP 룸에서 공연을 보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연찮게 티케팅 창구에 있는 미스터 장을 알아보시고는 VVIP 룸을 제공해 주신 겁니다.”

명함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분은······.”

“저는 회장님의 비서를 맡은 존 반디라고 합니다. 회장님께서 미스터 장에게 품은 기대감이 매우 크십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내에 꼭 뵈었으면 한다는군요. 원하는 시간대가 있으시면 이쪽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을 주십시오. 회장님과 직통으로 연결이 가능한 번호입니다.”

설마 이 회장이 여기 공연장까지 소유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거기다 기막힌 우연이지 않은가.

내가 티켓팅을 하고 있을 때 나를 알아보고 VVIP 룸까지 내어 주다니 말이다.

“오늘 브로드웨이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이 모이는 행사가 있었습니다. 회장님도 당연히 참석하셨죠. 거기다 회장님은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번은 꼭 공연을 챙겨 보시는 분이라 오늘 시간을 내시어 오게 되신 거였습니다.”

“너무 죄송스럽네요. 저 때문에 공연도 못 보시고······.”

“하하. 아닙니다. 이곳 말고도 공연장은 많으니까요. 여기 브로드웨이에 있는 공연장 3개가 C&C 소유입니다.”

C&C가 단순 투자사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문화에 돈을 쓰고 있는 줄은 몰랐다.

그만큼 회장이 예술 덕후라서 가능한 일인 건가?

“지금 당장 연락을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제 막 미국에 오셨으니, 어느 정도 작업 시스템이 갖춰졌을 때 연락 달라 하셨습니다.”

“넘치는 배려에 감사하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예, 미스터 장. 그럼 또 뵙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반디는 우리에게 정중한 인사를 건넨 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조지 윈스턴 회장.

할리우드에서 크게 성공한 사업가가 어린 동양인에게 이 정도로 관심을 보일 줄이야.

그때 나는 넋이 조금 나가 있는 제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제니. 괜찮아요?”

“응? 다, 당연히 괜찮지. 안 괜찮을 게 뭐가 있다고. 호호.”

“아-. 뭔가 실망한 눈치이기에······.”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어, 얼른 밥이나 먹으러 가자.”

허둥지둥 먼저 앞서가는 제니를 보며 나와 누나는 몰래 웃음을 터트렸다.

완벽한 공연을 봤으니, 완벽한 식사까지 하면 정말 최고의 하루가 될 것 같았다.

* * *

약속했던 3일이 지나고 나서 나는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동안 내가 미국에서 한 일은 별로 없다.

제니의 가이드를 앞세워 이리저리 쏘다니며 맛있는 것만 잔뜩 먹었다.

그에 반해 이 사람들은 3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세련되고 잘생긴 얼굴들이 전부 초췌하게 변했다.

더군다나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당장이라도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았다.

그러나 연민을 보이는 건 지금이 아니다.

“곡은 다 준비하셨습니까?”

“예.”

“제가 줬던 샘플과 비슷한 스타일의 곡이겠죠?”

“최대한 스타일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우주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도 했고요.”

“좋습니다. 그럼 한번 들어보죠.”

나는 자리에 앉아 그들이 준비한 곡을 틀어 보았다.

이들이 3일 동안 준비한 곡은 총 다섯 곡.

난 혼자서 10곡을 만들었는데, 고작 다섯 곡이냐고 핀잔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전에 나는 먼저 음악을 들어봤다.

“음-.”

첫 곡은 역시 힘을 많이 준 티가 났다.

어떻게든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줘서 내 콧대를 뭉개 버리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일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곡도 마음에 들었다.

정확히 내가 원하는 우주적 배경의 느낌을 잘 살렸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세 번째부터 힘이 쭉 빠졌다.

첫 번째와 두 번째에서 힘을 다한 것인지, 세 번째부터는 세밀해 보였던 음정 구조가 불안정해 보였다.

세 번째가 이런 식이니,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더 심각했다.

내 귀에 잡음이 심하게 들릴 정도로 곡이 개판이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곡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헤드셋을 벗어 버렸다.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그들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한 채 귀를 쫑긋 세웠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곡은 아주 훌륭합니다. 우주의 느낌이 물씬 풍기도록 잘 만들었어요. 기승전결이 잘 만들어진 느낌이 들더군요.”

그 말에 그들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세 번째부터는 솔직히······ 실망입니다.”

웃던 그들의 얼굴에 파직 금이 가기 시작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곡은 아예 들어주지도 못할 수준이더군요. 3일 동안 만들 수 있는 수준의 곡이 아니었던 거죠. 모험심은 인정하나, 결국 그 과감한 모험이라는 것도 성공을 해야 인정을 받는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내 신랄한 비판이 거슬렸던 것일까.

프로듀서들 중 하나가 앞으로 나와 날이 선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잘나셨으면 그쪽이 한번 만들어 보지 그래?”

“사라! 뭐하는 짓이야?”

“글렌, 넌 빠져. 오늘 이 꼬마랑 끝장을 봐야겠으니까.”

사라라 불리는 이 빨간 머리의 여성은 어지간히 불만이 많아 보였다.

“3일 안에 10곡을 작곡해? 어디서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우리 팀원들이 전부 다 모여서 3일 동안 만들어도 5곡이 한계야. 그마저도 마지막에는 시간을 맞추느라 완성도가 모자랐던 거고.”

“그런 걸 두고 실력이라고 하는 겁니다.”

“뭐, 뭐야?”

“제가 저번에도 말하지 않았나요? 전 실력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고. 그건 저 스스로의 실력에 부끄러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높은 레벨의 사람들과 작업하는 걸 좋아했던 거고요. 그리고 3일 안에 10곡의 샘플을 저 혼자 만든 건 거짓말이 아닙니다. 정 원한다면 한번 보여 드릴까요?”

나는 그들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누가 더 많은 노래를, 좋은 노래를 만드는지 내기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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