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19화 (119/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9화

“이, 이런 시발······.”

장연욱과 마이크가 나가고 나서 팀원들은 그제야 참았던 욕을 퍼부었다.

“저놈이 뭐라고 지껄인 거야? 뭐? 3일 안에 10곡을 만들어? 거기다 자기 마음에 안 들면 팀을 갈아엎겠다고?”

“진짜 좆 같아서 못해 먹겠네.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여기 남아 있어야 하는 거야?”

“글렌! 뭐라고 말 좀 해봐!”

그러나 이들의 리더인 글렌은 계속 말이 없었다.

그는 손에 쥐고 있는 USB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중얼거리듯 말했다.

“하기 싫으면 나가.”

“뭐?”

“우리의 신분을 잊었어? 우린 밑바닥 노예들이야. 위에서 던져 주는 먹잇감을 받아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그걸 알고 있음에도 이 길에 왔고, 지금까지 참아왔던 거잖아. 생각해 보면 이것보다 더 심한 모욕도 있었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뭐가 다르지? 자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우리 같은 노예들한테 일만 던져 주는 감독이 한두 명이었나? 이번에도 똑같아. 그저 감독의 나이가 어릴 뿐이지. 그것 말고는 똑같아. 상대는 언제든지 우리를 잘라 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우린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굽신거려야 하는 입장이고.”

이곳에서 갑과 을의 관계는 명확했다.

음악 감독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실권을 갖고 있느냐, 그것이 갑과 을의 관계를 정한다.

그리고 저 장연욱이란 놈은 슈퍼갑이다.

“C&C에서 저 아이한테 어떤 대우를 해주려 하는지 난 똑똑히 봤어. 이제까지 다른 감독들한테는 해준 적이 없는 엄청난 특급 대우더군. 그래서 나도 생각을 달리했어. 어쩌면 C&C가 보고 있는 장연욱의 가치를 내가 못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아무튼, 지금이라도 나갈 사람은 나가. 나는 어떻게든 버틸 거니까. 누구보다도 뛰어난 음악 감독이 되는 게 내 꿈이야. 난 그걸 아직 포기할 생각이 없어.”

글렌의 일침에 주위가 조용해졌다.

여기까지 달려왔는데, 그들도 이렇게 포기할 순 없었기 때문이다.

대신, 오기가 생겼다.

“좋아. 그 잘난 실력으로 얼마나 노래를 잘 뽑아냈는지 한번 들어보자고.”

“분명 허세에 찌들어 쓸데없는 테크닉이나 쑤셔 넣었겠지. 안 들어도 뻔해.”

밑바닥 노예이기는 해도 할리우드에서 몇 년을 구르며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다.

아무리 좋은 오케스트라 곡이라고 해도 할리우드에 통하는 곡이 있다.

여기는 오페라나, 클래식을 연주하고자 모인 곳이 아니지 않은가.

오케스트라 협주곡이면서 세련되고 현대에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 영화와 찰떡궁합을 이뤄내야 완벽한 영화 OST라고 할 수 있다.

“진짜 10곡을 만들긴 했네.”

“3일 안에 이걸 다 만들었다고? 어디서 되도 않는 거짓말을.”

팀원들은 컴퓨터 앞에 모여 눈에 불을 켰다.

3일 안에 혼자서 10곡을 만들었다는 건 믿을 수 없는 일이고, 설령 만들었다고 해도 분명 형편없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첫 곡을 재생하는 순간.

“······?”

방금 전까지 새처럼 지저귀던 팀원들은 첫 곡이 끝날 때까지 전부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 음. 이걸 혼자 만들었다고?”

“에이. 설마. 한국에 좋은 프로듀서들이 따라붙어서 만든 거겠지.”

“그, 그렇겠지? 이걸 혼자 만들었다고 하면 그건 정말······.”

여러 달을 거쳐서 만든 것도 아니고 혼자서 3일 동안 이 곡을 만들었다면 참 바라보기도 두려운 끔찍한 재능일 것이다.

그래서 부정했다.

이건 짧은 시간에 혼자서 만들 수 있는 곡이 아니라고 말이다.

특히 우주의 느낌을 이보다 더 잘 살린 곡이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첫 번째 곡에만 힘을 준 걸 수도 있지.”

“그, 그래. 두 번째부터는 개판일 거야.”

하지만 두 번째, 세 번째 곡까지 연주되고 나서야 그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동양인 꼬마가 샘플이라고 했던 이 곡들은 매우 잘 만들어진 OST들이라는 것.

“대체 뭐가 샘플이라는 거지?”

“지금 우리더러 이 정도 수준의 곡을 3일 만에 만들어 오라고 한 거야?”

“그냥 우리가 싫으면 싫다고 할 것이지,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시킨다고? 이걸 어떻게 3일 만에 만들어. 최소 3달은 걸렸겠네.”

“거기다 혼자 만들었다는 것도 확실히 거짓말이야. 이건 절대 혼자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이제 이들은 다른 선택지에 직면했다.

3일 동안 이곳에 남아 이 샘플곡들의 수준에 버금가는 곡을 만들 것이냐, 아니면 이대로 프로젝트를 포기할 것이냐.

“난······ 할래.”

먼저 입을 연 것은 글렌이었다.

“그 꼬마가 정말 3일 안에 이걸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나도 잘 몰라. 하지만 확실한 건 C&C가 그 아이에게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거야. C&C가 보통이야? 검증이 안 된 곳에는 절대 돈을 쏟아붓지 않아. 난 그쪽에다 걸어 보겠어.”

“넌 그 말을 믿는다고?”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 너도 욕심이 나지 않아? 3일 안에 이 정도 수준의 곡을 뽑아낸다는 거. 물론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충분히 도전해 볼만 한 일이야.”

글렌의 말에 팀원들은 하나둘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래.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잠깐 꺼져갔던 불길이 그들의 눈동자에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 * *

시차 적응이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 여행을 포기할 순 없었다.

“내가 자주 가는 곳은 브로드웨이야. 너도 알지? 여기 뮤지컬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거. 그래서 뉴욕에 올 때면 항상 브로드웨이부터 가.”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천국이라 불리는 곳이다.

평소 뮤지컬을 좋아하는 나와 누나로서는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코스였다.

“일단 미국은 처음이라고 했으니까, 타임스퀘어 광장이랑 나이아가라 폭포부터 쭉 둘러 보고 올까?”

제니는 자진해서 우리 두 사람의 투어 가이드를 맡아 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추천하는 여행지는 더 이상 눈에 차지 않았다.

“아뇨. 브로드웨이로 가죠.”

“응? 정말?”

“어차피 누나랑 저는 둘 다 영어 쓰는 데에 딱히 문제가 없어서 미국 뮤지컬도 잘 볼 거예요.”

꿈에 그리던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다.

한국 뮤지컬도 분명 수준이 높은 건 맞지만, 브로드웨이는 그 스케일부터가 남다르다. 또한 배우들의 폭발적인 가창력과 소울은 영상으로만 봐도 주변을 압도했다.

그것을 현장에서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매번 안타까웠는데, 이렇게 기회가 왔다.

한국에서는 뮤지컬을 보려면 몇 달 전부터 예매하고 좋은 자리를 선점해 놓아야 하는 것이 국룰.

그러나 여기서는 어떤 방식으로 티켓팅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브로드웨이에 가고 싶다고?”

“예. 제니는 자주 가봤다니까, 티켓팅을 어떻게 하는지 잘 알겠네요?”

“음~ 뭐 그렇지. 근데 지금 티켓이 남아 있으려나 모르겠네.”

당일에 바로 좌석을 구해 뮤지컬을 보는 건 우리나라도 가능하다. 하지만 좋은 자리에서 볼 수 없다.

구석진 자리에 앉아 배우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왕 온 건데, 제대로 된 자리에 앉아서 보고 싶었다.

“그나마 좋은 좌석은 금방 나가 버려서 지금 가면 영 좋지 않은 곳에 앉아서 봐야 할걸?”

그래도 어쩔 수 없나.

여기까지 왔는데 공연을 안 보고 넘어갈 순 없지.

“하지만 너희들에게 이게 있다면?”

그때 제니가 품에서 뭔가를 꺼냈다.

브로드웨이 VIP 카드.

“······이게 뭔데요?”

“말 그대로 VIP 카드야. 이 카드 하나면 어느 극장이든 VIP 자리에 앉을 수 있어. 최대 3명까지. 원래 각 공연장마다 VIP 좌석이 있거든. 근데 엄청 비싸기도 해서 사람들이 잘 쓰질 않아. 그래서 홍보 목적으로 유명인들에게 뮤지컬 회사에서 VIP 카드를 뿌린 거지.”

제니 웨이든도 세계에서 알아주는 음악가이고, 뮤지컬 덕후이기도 해서 특별히 신경을 써 준 모양이다.

“이 카드만 보여주면 지정 VIP 좌석에 앉을 수 있어. 어때?”

갑자기 저 카드를 들고 있는 제니의 뒤로 후광이 번쩍이는 것만 같았다.

땅에 강림한 천사를 보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이걸로 같이 보면 될 거 같다. 오늘 브로드웨이 스케쥴 보니까 내가 평소 좋아하는 배우들이 대거 나오더라. 제대로 날 잡았다는 거지.”

하지만 모든 일에 공짜는 없는 법.

“단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이걸 주는 대신, 연욱이 넌 나랑 하루 동안 같이 노는 거야. 단둘이서만.”

그러자 옆에 있던 누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게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긴. 여기 있지. 싫으면 말고.”

제니는 카드를 들고 실랑이를 벌였다.

누나는 나와 카드를 번갈아 쳐다보며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유치하게 뭐 하는 짓이에요.”

나는 제니가 들고 있던 카드를 획 빼앗았다.

“하루 정도야 같이 놀 수 있죠. 어차피 몇 주 동안은 여기 미국에 있을 텐데.”

그리고 그 카드를 누나한테 쥐여주었다.

“그래도 되지?”

“뭐 그러든지? 대신 제니. 우리 연욱이 좋은 곳에만 데려다줘야 해요?”

“히히. 당연한 소릴.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이 될 예정이라고!”

제니는 원하는 걸 다 얻었다는 듯 소리쳤다.

“좋아! 다 결정 났으니, 이제 나가자!”

혜나 누나도 언제 그랬냐는 듯 잔뜩 흥분한 얼굴로 제니의 뒤를 따라 나갔다.

하지만 신난 발걸음으로 브로드웨이에 도착한 것도 잠시.

“예? 안 된다니요. 왜 안 돼요?”

“죄송합니다. 지금 VIP 좌석이 전부 차 있어서요.”

“그럴 리가요. 제가 여길 이용하면서 한 번도 VIP 좌석이 찬 걸 본 적이 없어요.”

“오늘 브로드웨이에서 큰 행사가 있었거든요. 그때 많은 연예인이 참여하면서 VIP 좌석들도 전부 다 나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보려 했던 뮤지컬들이 하나 같이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우리 모두 망연자실했다. 제니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시뻘겋게 올라올 정도였다.

“미안······. 오늘 꼭 뮤지컬을 보여주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언니 잘못이에요. 괜찮아요.”

혜나 누나는 제니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말했다.

“그런데 오늘 그 카드 못 썼으니까 연욱이랑은 하루 못 놀지 않을까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어디 있긴요. 여기 있지.”

“으음. 그러게요. 제니랑 뭘 하고 놀지 고민했었는데, 괜한 고민이었네요.”

누나와 같이 제니를 놀리긴 했지만,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오늘 재밌게 뮤지컬을 보나 했는데, 참 아쉽게 됐다.

그래도 날이 오늘만 있는 것도 아니라서 다음을 기약한다면······.

“저기요! 잠시만요!”

티켓 창구에서 우리에게 줄 티켓은 없다고 딱 잘라 말하던 창구원이 갑자기 헐레벌떡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시죠?”

“다름 아니라 방금 자리가 하나 떴습니다. 세 분을 위한 자리가요.”

“정말요?”

제니는 금방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혹시 너무 이상한 자리는 아니겠죠. 그러면 차라리 안 보느니만 못한······.”

“아니요. VIP보다 더 좋은 자리입니다.”

VIP보다 더 좋은 자리?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방금 연락이 와서요. 세 분을 VVIP 좌석으로 안내하라고 합니다.”

“아니. 대체 누가요?”

VIP도 아니고 VVIP?

이 정도 되면 더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난처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게······ 아주 높으신 분이라고밖에는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아마 들어가 보면 알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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