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18화 (118/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8화

[밑바닥에서 구르고 바득바득 기어 올라와야 기회가 생긴다.]

어느 분야에서든 통용되는 말이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가르침.

그러나 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소수의 사람이 있다.

뒤에 든든한 후원자가 있거나, 아니면 위로 빠르게 올라갈 수 있는 동아줄이 있거나.

그 어떤 것이든 밑바닥에서 몸을 뒹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수밖에 없다.

“들었어? 우리 팀을 리드할 사람이 사회 물도 안 먹어본 꼬맹이라는 거?”

할리우드에서 음반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들은 매일 치열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영화사에서 낮은 임금을 받으며 감독의 지시에 따라 음반 제작 보조를 하는 프로듀서들은 언젠가 자신도 음악 감독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가끔 낙하산으로 음악 감독을 맡은 실력도 없는 놈이 날뛸 땐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참고 여기까지 왔다.

음악 감독이 되어 할리우드의 새로운 스타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그것으로부터 오는 중독성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자존심 버리고 이 바닥에서 구른다고 해도 이건 좀 아니지 않아?”

그러나 성인도 아닌, 이제 막 고등학교에 들어간 학생이 음악 감독을 맡는다?

이걸 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나도 소문 들었어. C&C가 최연소 음악 감독 계약을 체결했다고. 근데 설마 그 똥이 우리한테 날아올 줄은 몰랐네. 혹시 C&C 회장의 숨겨진 자식인가?”

“모르지. 확실한 건 그냥 이슈 몰이로 데려온 게 분명하다는 거야. 실력도 없는 놈이겠지.”

“그래도 한국에서는 꽤 유명하다던데?”

“그래 봐야 한국이잖아! 아시아에서 유명해봤자 할리우드에서는 어림도 없다는 거 몰라? 이거 딱 스토리가 그려져. 모든 작업은 우리한테 맡기고 곡이 좋게 뽑히면 전부 다 그 어린놈 공로로 돌아갈걸? 내가 진짜 화가 나서 더는 이 짓 못 해 먹겠다.”

“쥴리. 참아. 우린 어차피 노예들이라서 이거 아니면 달리 갈 곳도 없어.”

쥴리를 말리던 동료들은 전부 표정이 침울해져 있었다.

음악의 ‘음’자도 모르는 어린놈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는 자괴감과 더불어 이 엿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들 표정 관리 좀 해. 우리의 잘난 감독님이 방금 막 도착했다고 하시니까. 첫인상부터 똥 씹은 표정 보여 줄 필요는 없잖아?”

이들의 리더격인 글렌의 말에 그들은 최대한 표정을 풀려고 노력했다.

어쨌거나 그 어린놈이 이번 프로젝트에서 상사 역할을 하는 거니까.

만약 그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C&C에서는 망설이지 않고 팀 전체를 바꿔 버릴 게 뻔했다.

그럼 오랜만에 들어온 일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물론, 소문이 안 좋게 퍼져 앞으로 할리우드에서 일을 받아먹고 사는 건 힘들어지게 된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데, 좀처럼 굳은 얼굴이 풀어지지 않았다.

* * *

“아마 팀원들이 미스터 장을 그리 반기진 않을 겁니다.”

작업실로 들어가기 전 마이크가 내게 주의를 주듯 말했다.

“유명한 음악 감독들은 각자 데리고 있는 팀이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은 용병처럼 프로듀싱 팀을 고용해 음반 제작을 합니다. 할리우드에서는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죠. 이 용병들에게 들이는 돈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그 용병들이 저임금을 받고도 불만 하나 없다는 건가요?”

“어쩌겠습니까. 그들에게는 이 할리우드가 생명줄인 걸. 그들 모두 음악 감독이 되고 싶어 이 길로 들어온 겁니다. 아주 더럽고 치열하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죠.”

“그렇게 해서 음악 감독이 되는 사람은 있고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할리우드라는 게 인맥을 통하지 않으면 사실상 올라가기가 어려운 구조라서 말이죠. 그건 어느 나라나 똑같을 것 같군요.”

매우 차가운 현실적인 답변이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고 할리우드 역시 개천에서 용이 나오기가 무척 힘들다.

아니. 사회가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다.

위에서는 감히 아래 것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막고, 아래에서는 자기들끼리 서로 올라가지 못하게 발목을 붙잡는다.

그러다 보니 점점 이 분야가 그들만의 리그로 변하는 것이다.

“아무튼, 팀의 견제가 심하고 협조적이지 않는다면 언제든 저한테 말하십시오. 다른 팀으로 바로 바꿔 드리겠습니다.”

“음······. 잘 알겠습니다.”

한국에서도 소속사에 있는 프로듀서들과 같이 손발을 맞춘 경험이 많다.

하지만 할리우드, 그것도 문화가 다른 외국인을 상대로 협업을 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또한 이들은 망상에 가까운 희망을 품으며 발버둥을 치는 프로듀서들이다.

과연 내가 이들과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난 잠깐 생각하다 이내 마음을 먹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 결국 그들을 이끌어야 하는 것은 나다.

그러므로 내 스타일에 따라오지 못한다면 결국 이번 프로젝트에서만큼은 도태되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난 마이크의 뒤를 따라 작업실 안으로 들어갔다.

“반갑습니다. 저는 SD팀의 리더를 맡은 글렌이라고 합니다.”

나는 금발 숏 커트를 한 글렌이란 남자와 악수를 나누며 다른 프로듀서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표정이 살벌하다.

글렌 역시 억지로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긴. 웬 어린놈이 음악 감독을 하겠다고 왔으니, 이 상황이 이상하기도 하고 썩 달갑지 않을 것이다.

마이크의 말을 듣고 각오는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작업실 안 분위기가 냉랭하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그러자 마이크가 헛기침을 뱉으며 내게 물었다.

“미스터 장. 오늘부터 작업하실 겁니까?”

마이크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래는 조금이라도 작업을 하려고 했는데, 분위기를 보니 오늘은 방향을 다른 곳으로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아뇨. 오늘은 그냥 작업실 안을 구경하려고 온 겁니다. 글렌이라고 하셨죠? 여기 작업실에 자주 와보셨나요?”

“아, 예. 여기가 C&C 소유의 건물이라, 그쪽에서 일거리를 받으면 여기로 와서 작업합니다.”

“그럼 돌아다니면서 설명을 좀 해주시겠어요? 여기에 정확히 어떤 장비들이 있는지도 알고 싶네요.”

“네, 따라오시죠.”

나는 뒤에 멀뚱멀뚱 서 있는 마이크에게 말했다.

“안 따라오셔도 됩니다. 본사로 돌아가셔도 돼요.”

“아닙니다. 본사에서 미스터 장에게 불편한 점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라는 업무 명령이 있었습니다. 며칠 동안은 제가 같이 붙어 다니면서 설명을 해드릴 것이 있으면 해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해준다면야 나는 편하고 좋다.

난 글렌의 뒤를 따라 다니며 작업실 안을 둘러 보았다.

확실히 공간이 넓고 음악 감독이 따로 쉴 수 있는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는, 그냥 펜트하우스였다.

원하는 대로 요리와 칵테일을 해먹을 수 있는 부엌부터 내 방만한 샤워실, 침실 등등.

말이 작업실이지, 그냥 파티를 벌여도 이상할 게 없는 공간이었다.

“C&C에서는 음악 감독들의 영감을 중요시합니다.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좋은 음악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계시는 회장님이 직접 디자인에 관여하시어 이런 좋은 작업 환경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대체 C&C 회장이란 사람은 뭘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회장님이 예술을 좋아하시는 모양이네요.”

“C&C를 운영하게 된 계기도 영화와 음악 같은 예술 분야를 매우 좋아하시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산을 쌓을 정도로 많은 부를 축적한 덕후라······.

내 미래 희망처럼 살고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었다.

그런 덕후들이 있기에 지금의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아주 좋네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작업 공간입니다. 여기서 쭉 눌러살고 싶을 정도로요.”

“미스터 장이 원하신다면 회사에 요청을 드려볼 수 있습니다. 호텔 대신 여기서 생활을 하시는 것도······.”

C&C는 나한테 정말 다 퍼 줄 생각인 모양이다.

옆에서 마이크의 말을 듣고 있던 글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뇨. 아무리 그래도 일하는 공간이랑 제가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은 분리가 되어야죠.”

나는 대충 구경을 끝내고 다시 프로듀서들이 모여 있는 녹음실로 돌아갔다.

내가 들어가자마자 시끄러웠던 말소리가 한번에 끊어졌다.

“반갑습니다. 오늘부터 저는 여러분과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될 장연욱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인사로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다.

“저는 실력 있으면서 열정 넘치는 음악가를 좋아합니다. 이 두 개의 조건이 부합되는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가 않죠. 그래도 전 항상 최고와 작업하기를 원합니다. 그렇기에 여러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습니다.”

난 USB를 그들에게 내놓았다.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작업해 놓은 곡들입니다. 총 10개의 곡이 있고, 이 중에서 이번 음반에 쓰일 곡은 1~2개 정도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아직은 샘플링이라서요. 어쩌면 다 쓰지 못하고 버릴 수도 있습니다.”

글렌은 USB를 가져가며 내게 물었다.

“우리가 곡을 선별하길 원하십니까?”

“아니요. 여러분이 직접 곡을 작곡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가 대충 어떤지는 들으셨을 겁니다. 우주 배경 영화죠. 스타트렉 같은 영화를 상상하시면 안 됩니다. 광활하고 신비스러운 우주를 탐험하는 영화이지, 결코 전쟁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그것에 맞춰서 곡을 몇 개 작곡해 주십시오.”

“데드라인이 언제까지입니까?”

“음-. 제가 거기 USB에 있는 곡들을 전부 작곡하는 데에 총 3일이 걸렸습니다. 여러분도 3일 드리겠습니다.”

그 말에 이들은 얼굴이 일그러졌다.

“곡 10개를 3일 안에요? 이건 프로그램을 대충 돌려서 나오는 그런 시시한 가요가 아니지 않습니까?”

“예. 협주곡이죠. 보통 영화 음악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니까요. 하지만 전 지금 당장 오케스트라를 불러 녹음을 하라는 게 아닙니다. 일단 여기 있는 장비들은 전부 최신식이에요. 오케스트라가 진짜 있는 것처럼 꾸밀 수가 있다는 거죠. 일단 USB에 있는 곡들을 들어보시고 그에 맞는 수준의 곡을 만들어와 주세요.”

프로듀서들은 벙찐 얼굴로 나와 마이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이크는 양손을 들며 말했다.

“음악 감독은 미스터 장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감독의 말에 따를 의무가 있고요. 총 결정자도 역시 미스터 장이죠. 우리 C&C는 여러분의 음악 활동에 관여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마이크까지 내게 힘을 실어 주었다.

이제 남은 건 그들의 선택이었다.

물론 이들에게 많은 선택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저기, 만약 3일 뒤에 우리가 만든 곡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시죠?”

“글쎄요. 제가 최소한으로 두는 수준까지도 곡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땐 여러분과 계속 일을 해야 할 이유가 없겠죠? 전 순수하게 실력만 봅니다.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는 알고 싶지 않아요. 우린 음악을 하러 모인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 음악으로만 서로를 평가하도록 합시다.”

음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팀을 바꾸는 것이고, 음악이 괜찮다면 이들을 믿고 일할 수 있다.

원래는 단독으로 작업을 하려 했으나, 팀이 생긴 이상 나도 최소한의 기준을 둬야 하지 않겠는가.

“그럼 3일 뒤에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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