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16화 (116/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6화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이 어디 있습니까? 이번 건은 저도 절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기획사를 나온 뒤부터 화를 삭히지 못 하고 있는 마이크였다.

아까운 예산을 들여 이 작은 나라에 온 것도 그렇고, 우물 안 개구리마냥 자존심을 부리는 저 어린 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 짜증이 나는 건 자신의 편이 되어 줘야 할 감독이란 놈이 하루 종일 개소리를 지껄인다는 것이다.

“마이크. 잘 생각해 봐. 솔직히 그렇게 나쁜 제안도 아니잖아. 그깟 분배율 좀 더 가져간다고 해서 우리한테 피해가 올 게 있겠어? 누가 영화 ost를 열심히 찾아 듣겠냐고.”

“그러면 잘 됐군요. 누가 열심히 듣는 것도 아닌데, 굳이 저 동양인이랑 작업을 해야 합니까?”

“그, 그게 또 말이 그렇게 되나?”

마이크는 두말할 것 없이 당장 돌아갈 생각부터 하고 있었다.

“더 이상의 협상은 없습니다. 15만 달러를 받으면서 8대2? 꿈 깨라고 하시죠. 전 돌아갈 겁니다.”

“잠깐만 마이크. 그래도 이건 한번 들어봐야지.”

알렌 감독이 가리킨 건 서류 가방에 있는 USB였다.

“이걸 듣는다고 해서 제 마음이 변할 거라고 보십니까? 아무리 좋은 노래를 만들어도 전 협상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번 들어볼 순 있잖아. 안 그래?”

이 길로 당장 호텔에서 짐을 싸고 공항으로 가려 했던 마이크는 알렌 감독의 간곡한 부탁에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듣는 겁니다.”

“그래. 여기 카페 들어가서 잠깐 듣고 나오자고.”

알렌 감독이 저렇게까지 애원을 하는데 무시할 수만은 없어 그는 카페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USB를 꽂아 넣어 음원 파일을 재생시켜 보았다.

‘좋아 봐야 얼마나 좋겠어.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할리우드에 진출할 만한 인재가 나올 리 없지.’

듣기 전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했던 마이크는 딱히 기대하지 않았다.

그에 반해 알렌 감독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였다.

대체 그 어린놈에게서 뭘 보았기에 저렇게 좋아하는 걸까.

참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 1분.

딱 1분만 듣고 USB는 여기 쓰레기통에 버려 주마.

할리우드가 결코 쉬운 무대가 아니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

“······.”

커트라인을 잡았던 1분이 지났다.

하지만 마이크는 재상을 중단시키지 않았다.

그렇게 2분, 3분, 5분이 흘렀다.

어느새 곡 하나가 끝이 났다.

“오~ 이거 곡이 정말 괜찮은데?”

알렌 감독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마이크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노트북 소리가 겹치면서 제대로 듣지 못해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이어폰을 꺼내 다시 음원을 재생시켰다.

졸지에 알렌 감독은 이어폰을 끼고 있는 마이크를 멍하니 바라만 봐야 했다.

“······.”

또다시 5분이 흘렀다.

이어폰을 착용했을 때와 안 했을 때의 차이점이 확실했다.

주변 잡음이 섞이지 않으니 노래가 더욱······ 뛰어났다.

혼란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이게 정말 샘플곡이라고?

마이크가 음악에 대해 잘 아는 건 아니지만, 이 곡이 굉장히 잘 만들어졌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누구라도 그렇게 느낄 것이다.

이 곡에서 우주의 드넓은 광활함이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신비스러운 우주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질 정도였다.

만약 이 곡이 알렌 감독의 영화 장면과 겹쳐 스크린에 나온다면-.

생각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마이크. 어떻게 하고 싶어? 이걸 듣고도 그냥 넘어갈 거야?”

방금 전까지는 어떤 명곡을 만들어 놓아도 결코 마음을 돌리지 않겠노라 결심했다. 그런데 막상 듣고 나니 마음이 흔들렸다.

“아무리 그래도 계약 조건이 너무 불리합니다.”

“알아. 그렇다고 이걸 놓치는 것도 난 너무 아까울 거 같은데? 차라리 이러는 게 어때. 지금 본사에 전화를 걸어. 그리고 이 음원 파일을 그쪽에다 보내줘. 그쪽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한번 보자고. 나도 본사 결정에 따를게. 오케이?”

“······.”

이번에는 알렌 감독의 말이 맞았다.

마이크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본사로 연락을 넣었다.

* * *

음-.

연락이 늦는군.

이대로 포기한 건가?

하긴. 계약 조건이 꽤 파격적이긴 했지.

그쪽에서도 자기들을 무시한다고 생각해 나와의 계약은 없던 일로 했을 수도 있다.

뭐, 별로 아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거 아니어도 지금 할 일이 엄청 쌓여 있기 때문이다.

“연욱! 또 딴생각하고 있었지?!”

앙칼진 목소리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앞에는 눈을 부릅뜨며 날 노려보는 제니가 있었다.

“딴생각 안 했어요. 제니가 연주하는 거 듣고 있었는데요?”

“내가 모를 줄 알고? 넌 딴생각을 할 때면 꼭 눈을 멍하게 뜨고 다른 곳을 쳐다보더라.”

관찰력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만큼 내가 얼굴에서 다 드러나는 건지.

“다시 연주해 봐요. 이번에는 제대로 들을 테니까.”

“좋아. 연습은 여기까지 하고, 저번에 네가 준 악보로 연습해 볼게.”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인 제니의 라캄파넬라를 들으면서 다른 생각을 할 정도면 이제 나도 제니의 음악에 완전히 적응이 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제니가 연주하는 것만 봐도 정신을 못 차렸는데 말이다.

“난이도는 좀 괜찮았어요?”

“음-. 저번 것보다는 리듬이 빠르지 않긴 한데, 다른 의미로 어렵다고 해야 하나?”

내가 약 한 달 동안 공들여서 만든 바이올린 연주곡이다.

당연히 휘갈겨 쓴 저번 곡보다 훨씬 더 잘 만든 곡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내가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고.

또한 제니는 이번 곡이 왜 저번 곡보다 어려운지 금방 캐치해냈다.

확실히 저번 곡보다는 음표도 적고 템포도 느리지만, 이 곡에는 제니의 감정이 오롯이 섞여 들어가야 한다.

감정 조절과 더불어 적절한 연주 테크닉으로 악보에 담긴 해석을 청중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것.

무조건 손이 빠르다고 해서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얼마나 듣는 이의 마음을 녹일 수 있느냐가 연주자의 실력을 결정한다.

이번 곡은 그만큼 하이 테크닉을 요구하는 곡이었다.

따라란-!

제니는 특유의 연주 스타일로 스타트를 끊었다.

그녀의 플레이 스타일을 떠올리며 만든 곡이기 때문에 스타트부터 물 만난 고기처럼 어울려 보였다.

곡의 제목은

해석 그대로 천국이다.

그러나 이 곡에서는 천국의 밝은 모습만을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잠깐 스톱.”

연주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제니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바이올린을 내렸다.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제니는 이제 저항하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였다.

“제니. 연주는 정말 좋았는데, 속도가 좀 빨랐어요. 그리고 좀 더 음을 길게 끌고 가서 확실하게 감정선을 잡아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응. 알겠어. 근데 계속 스톱시킬 생각이지?”

“제니가 연주를 잘해 준다면야 스톱 시킬 일이 없지 않겠어요?”

“······괜한 걸 물었네.”

3시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제니는 내게 계속해서 피드백을 받으며 연주를 보완해갔다.

그렇게 오늘 목표한 부분을 끝내면서 나는 연습을 중단시켰다.

“왜? 좀 더 하지.”

“하루 만에 진도를 다 나갈 필요는 없죠.”

“난 진도 하루에 다 빼는 걸 좋아하는데.”

“전 천천히 하는 걸 좋아합니다.”

“오~ 그러시구나. 기억해 두겠어.”

제니와 함께 작업실을 나오다 나도 모르게 기함을 터트렸다.

자리에 앉은 채로 무섭게 나를 노려보고 있는 혜나 누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둘이 참 사이좋네. 바이올린 소리는 거의 안 들리고 둘이 시시덕거리는 소리만 들리고 말이야.”

“언제 왔어? 왔으면 말을 하지.”

“내가 톡 보낸 거 안 봤냐? 몇 번을 보냈는데.”

“아-. 그래? 미안. 연습하느라 몰랐나 보다.”

이글거리는 누나의 눈동자가 내 옆에 같이 나오던 제니에게 향했다.

“제니 언니는 언제 집으로 돌아가세요?”

“집? 내 집은 이제 여기인데?”

“언니도 미국에 집이 있을 거 아니에요. 가족도 거기 있을 테고.”

“맞아. 그리고 이미 다녀왔어. 이틀 전에 다시 한국으로 온 거고. 너희들한테는 말 안 했었지? 공연 스케쥴이 있어서 그거 뛰고 왔거든.”

일주일 동안 연락도 없고 작업실을 찾아오지도 않기에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그새 집에 다녀오고 스케쥴도 뛰고 온 모양이다.

“거기다 너희 앨범 활동하는 거 나도 틈틈이 도와주기로 했잖아. 잊었어? 같이 공연도 하려면 한국에 쭉 붙어 있어야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정말 한국에 자리라도 잡고 살 생각인 건가?

“안 그래도 집을 하나 구해야 할 거 같아서 알아보는 중이야. 이왕이면 연욱이 네가 사는 곳이랑 가까운 곳이 나을 거 같은데.”

“안 돼요!”

누나가 버럭 소리를 질러도 제니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내 돈으로 집 구하겠다는데 뭐가 안 돼?”

“미국에서는 더 큰 집에서 살 수 있을 텐데 굳이 왜 여기로 오려는 거예요?”

“호호. 글쎄. 왜일까?”

두 여자가 서로 으르렁거릴 동안 나는 제니에게 줬던 악보를 살펴보았다.

총 3악장으로 나뉜 곡이고, 1악장은 천국으로 향하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 그리고 환상이 있고, 2악장은 그 길로 가는 고된 길과 고난. 마지막 3악장은 마침내 그곳에 도착해 찬란한 영광을 누리는 것을 나타낸다.

제니의 플레이 스타일과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만들고자 했고, 이번 연습으로 내 계획 의도와 잘 맞아떨어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원래 이 곡은 다른 곳에 쓰이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이제 그건 그냥 포기하는 게 맞다고 봐야겠지?

* * *

알렌 감독은 안절부절못하며 자꾸만 방을 서성였다.

참다못해 마이크가 한마디 했다.

“감독님. 그냥 앉아 계시죠.”

“으-. 대체 왜 연락이 없는 거지? 거기서 그냥 포기하기로 마음 먹은 건가?”

장연욱이 준 음원 파일을 본사에다 보내 놓고 줄곧 연락을 기다렸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말이 없다. 마이크가 다시 전화를 걸었을 땐 결정된 사안이 없으니 대기하라는 말만 받았다.

그래서 마이크도 거의 포기한 상태였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다는 건 회사에서 투자 의지가 없다는 뜻 아니겠는가.

한국에서 축내는 돈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차라리 빨리 연락을 줘서 얼른 본토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줬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

“음?”

그러나 기다림에도 끝이 있었다.

드디어 본사에서 마이크에게 연락을 준 것이었다.

조심스레 전화를 받은 마이크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듣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예? 뭐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아뇨. 회사의 뜻은 잘 이해했습니다. 다만 너무 예상 밖이라······.”

뭔가 크게 충격을 먹은 듯한 마이크의 표정을 보고 알렌 감독은 더욱 애가 탔다.

그는 가만히 마이크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예. 그럼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이크가 전화를 끊자 숨을 꾹 참고 있던 알렌이 소리쳤다.

“본사에서 뭐래? 왜 그렇게 놀란 거야? 거기서 뭐라고 했길래 그러는 건데?”

알렌 감독이 질문을 퍼부어도 마이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만 지으며 말했다.

“감독님.”

“응?”

“제가 아무래도 그 어린 작곡가를 우습게 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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