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5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음-. 아직 결정을 내린 건 아니야.”
“그래? 내가 보기에는 이미 마음먹은 거 같은······ 악!”
순간 집중력을 잃은 누나는 블록을 잘못 빼서 그만 탑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풉-.”
“웃었어?”
“응. 누나 진짜 더럽게 못 한다.”
“야!”
대기실에서 나와 누나는 젠가 게임을 하던 중이었다.
오늘 음악 방송을 나가는 날이라 방송국에 오게 되었는데, 우리 차례가 거의 마지막이라 게임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보통 음악 방송 대기실이라고 하면 여러 가수가 함께 쓰기 마련인데, 1~3위권이 보장되어 있는 가수들은 이렇듯 VIP 대기실을 따로 쓰게 된다.
여기에는 먹을 것부터 마실 것, 그리고 기다리는 데에 지루하지 않게 여러 보드게임도 구비되어 있었다.
“한 판 다시 해.”
이런 게임에 승부욕이 강한 혜나 누나는 눈에서 불을 뿜어내며 빠르게 탑을 쌓아 갔다.
“어차피 또 질 거면서 왜 다시 하는 거야?”
“시끄러. 그리고 넌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하겠다고 대답이나 보내 줘. 그 사람들 기다리겠다. 영화도 한창 찍고 있는 와중이었다며.”
“아직 결정 안 했다니깐?”
“네 얼굴만 보면 다 알거든. 할 거잖아.”
내가 그렇게 얼굴에 티가 나나.
누나는 내 마음을 항상 잘 읽는 것 같았다.
“아니면 시나리오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시나리오고 뭐고 알렌 감독을 만나고 난 뒤부터 마음이 거의 넘어간 상태이긴 했다.
영화 OST 제작.
처음에는 조금 부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생각을 해 보니 썩 나쁘지 않은 경험 같았다.
알렌 감독에게 설득 당한 것이 아니다.
찬찬히 생각을 해 보면, 이번 기회로 나는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이다.
만약 여기서 내가 음반으로 좋은 성적을 낸다면 누나에게도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이 아닐까?
낮은 가능성이긴 했지만, 충분히 베팅해볼 만했다.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거기다 내 음악이 외국에서도 통하는지 알고 싶었다.
아니. 반드시 통할 것이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는 세계 최고의 작곡가 못지않았다.
“아, 안 돼! 아이 씨!”
“쓰읍. 내가 욕하지 말랬지.”
전생에서 몰랐던 또 하나의 사실.
누나는 은근 욕을 잘한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이 있을 때나 다른 방송 관계자들이 있을 땐 하지 않는다.
꼭 나랑 있을 때만 가끔 방언이 터져 욕을 하곤 한다.
혜나 누나는 무너진 탑을 다시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말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내가 얼마나 순수한 아이였는데. 네가 내 입을 더럽혔어. 어릴 때부터 네가 맨날 욕하고 다녀서 내가 이렇게 된 거잖아.”
“이상 탑을 두 번이나 무너뜨리신 장혜나 님의 말씀이셨습니다.”
“아니. 진짜라니깐?”
“진 사람이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으- 이번에는 절대 안 진다.”
이를 갈고 있는 누나를 보고 있자니 절로 입꼬리가 씰룩였다.
그런데 정말 나 때문인가.
전생에서도 그렇고 이번 생에서도 어렸을 때부터 내가 욕을 좀 잘하고 다니긴 했는데······.
원래 욕 하나 할 줄 모르던 누나가 사실 나 때문에 이상한 물이 든 것은 아닐까?
“근데 누나는 내가 그거 했으면 좋겠어?”
“뭐, 대표님 말로는 감독 커리어가 별로라며.”
“응.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은데, 감독이 B급 영화만 만들던 사람이긴 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이번에는 정말 좋은 영화를 만들지. 거기다 내가 가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면 스토리는 참 별로인데, 노래가 좋아서 한 번 더 보는 경우가 있어. 너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애니메이션 스토리는 별로지만 그 애니메이션 영화에 삽입된 노래가 좋아 인기를 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특유의 그림체와 어울리는 잔잔한 멜로디.
그것이 사람들에게는 힐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영화의 내용보다 음악으로 승부를 보는 사례랄까.
“네가 음반을 잘 뽑아낸다면 영화고 뭐고 다 씹어 먹지 않을까?”
“뭐, 내가 하면 뭐든 잘 나오긴 하지.”
“······갑자기 응원하기 싫어졌어. 너 그냥 그거 하지 마.”
“응. 할 거야. 그리고 이번 판도 내가 이긴 거 같은데?”
아슬아슬하게 블록 하나로 지탱이 되어 있는 탑.
누나가 뭘 뽑든, 이번 차례에 무너지게 되어 있다.
혜나 누나는 열심히 눈알을 굴리며 이 위기를 극복할 방법을 찾아내려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방법은 없었다.
그때 스태프가 노크를 하고 들어와 말했다.
“JJ! 이제 올라가셔야 해요. 준비해 주세요!”
그러자 누나는 상을 쾅 내려쳐서 탑을 무너뜨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어머. 깜짝 놀라서 실수로 무너뜨렸네. 이번 건 무승부.”
“뭐야. 그런 게 어딨어. 누가 봐도 내가 이긴 건데.”
“지금 빨리 준비해야 한다잖아. 이거 하고 있을 시간 없어. 아쉽다. 조금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내가 이겼을 텐데.”
“······.”
누나는 윙크를 하며 먼저 대기실을 나가 버렸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누나 뒤를 따라 나갔다.
“같이 가!”
* * *
일주일 만에 보는 알렌 감독은 여전히 유쾌한 얼굴이었다.
그에 반해 그 옆에 있는 마이크는 저번보다 홀쭉해졌다.
“어제 음악 방송 잘 봤습니다. 1위를 하셨더라고요. 제가 직접 축하 전화라도 드리고 싶은 걸 마이크가 말리는 바람에 못 했습니다.”
“제 전화번호 모르시잖아요.”
“하하. 안 그래도 오늘 꼭 받아 가려고 합니다.”
괜히 다른 말이 길어질까 봐 마이크는 얼른 대화에 끼어들었다.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예상보다 한국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말입니다.”
“왜 그래? 난 여행하고 좋던데. 은근 한국 음식이 저랑 엄청 잘 맞더군요. 특히 여기서 파는 치킨은 환상적이에요. 거기다 삼겹살이라는 고기가······.”
“감독님 말씀은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전 미스터 장의 대답을 오늘 꼭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저희 회사에도 보고를 할 수 있으니까요.”
일주일이면 시간을 오래 끌긴 했다.
여기서 더 끌게 되면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음-.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어제 음악 방송에서 보셨다시피 음원 순위도 1위를 차지하고 있죠. 그 뜻은 스케쥴이 아주 많이 밀려 있다는 겁니다. 음원 순위는 곧 인기도를 뜻하고 광고와 그 외 활동이 많아진다는 의미니까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음악 감독은 어렵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제가 어렵게 스케쥴을 빼는 만큼 그에 합당한 이익이 없다면 어렵다는 얘기죠.”
그 말에, 옆에 있던 강 대표가 쿡쿡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는 게 보였다.
이놈이 또 시작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어떤 조건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역시 마이크는 회사 직원인지라 곧바로 협상에 들어갔다.
“제가 알기로 영화 OST 제작은 투자사가 모든 지분을 가져가거나, 아니면 50대50으로 나눈다고 들었습니다.”
“예. 보통은 그렇죠.”
영화사가 돈을 투자해서 음원을 만드는 것이니, 그들은 그 앨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가 있다.
계약하기 전에 몇 %의 지분을 가져갈 것인지 조율을 하게 되는데, 내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아예 지분 전체를 투자사가 가져가거나, 아니면 반반으로 나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음악 감독이 누구냐에 따라 지분율이 달라지는데, 만약 유명한 감독이라면 지분율을 더 높여 주기도 한다.
“일단 그쪽 투자사에서 제가 얼마의 제작비를 지원해 주실 것인지 듣고 싶네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이크가 계약서를 꺼냈다.
“15만 달러입니다. 단, 지분율은 저희가 80%를 챙겨갑니다.”
1달러가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1억 5천.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금액이다.
전생이었으면 1억 5천이란 금액을 듣고 팔팔 뛰었겠지만, 지금 1억 5천 정도는 마음먹으면 하루 만에도 벌 수 있는 액수라서 별로 와닿지 않았다.
거기다 80%를 챙겨간다라.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 되겠네요.”
이미 그런 대답을 예상했는지 마이크가 바로 물었다.
“15만 달러가 적으십니까? 나름 대우를 크게 해 드리는 겁니다. 할리우드에서 평균적으로 음악 감독에게 주어지는 금액은······.”
“할리우드에서 어떤 감독이 얼마나 받는지는 저와 상관없습니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럼······.”
“15만 달러에 8대2. 하지만 8은 제가 되어야 합니다.”
“예?”
마이크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미스터 장.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80%를 가져가시겠다고요?”
“예. 안 됩니까?”
“저희가 15만 달러를 드리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
마이크는 벙찐 얼굴로 날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고, 알렌 감독은 박장대소를 했다.
“하하-! 마이크. 내가 말했잖아. 그런 조건으로는 절대 안 될 거라고. 아무리 한국이 미국보다 작다고 해도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미스터 장 정도의 인지도면 15만 달러는 우습게 벌 수 있을걸?”
“잘난 척하는 것 같아서 말하려 하지 않았는데, 알렌 감독님 말씀대로입니다. 15만 달러는 솔직히 금방 버는 돈이에요. 물론, 돈 때문에 이 일을 맡겠다는 게 아닙니다. 정말 돈을 생각했다면 이 일을 절대 맡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겁니까?”
“경험이죠. 그리고 80%를 요구한 건 제 음악에 대한 자존심이랄까요? 예술도 결국 얼마의 가치가 매겨지느냐에 따라 본인의 프라이드가 지켜지는 것 아니겠습니까? 80%는 최소한의 대우를 받고자 하는 제 자존심입니다. 이걸 들어 주시지 않겠다고 한다면 저도 이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 마이크. 미스터 장의 말이 백 번 옳아.”
알렌 감독까지 내 편을 들며 압박을 했다.
마이크는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얼굴빛을 보였다.
“제가······ 함부로 결정할 일이 아닙니다. 먼저 회사에 연락을 해봐야겠군요.”
“네. 얼마든지요. 그리고 만약 계약이 체결되면 미국으로 가 볼 생각입니다.”
“오~ 미스터 장. 그게 정말입니까? 한국에 꼼짝없이 잡혀 계실 줄 알았는데.”
“감독님의 촬영장을 한번 둘러보고 어떤 장면이 만들어지는지 감상하면서 영감을 얻는 게 중요하니까요.”
“하하. 미스터 장이 온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 모셔 드리죠. 배우들을 만나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꽤 유명한 배우들을 섭외해 놓았으니, 실망하진 않을 거예요.”
알렌은 확실히 내 편이었다.
그는 내가 돈을 얼마나 요구하든 전혀 상관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회사의 결정이 떨어지면 그때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잠시만요.”
마이크가 조금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는 걸 내가 붙잡았다.
“이건 제가 영화 시나리오를 읽고 샘플로 만든 곡입니다. 이것 때문에 바로 확답을 드리지 못했어요.”
마이크와 알렌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한번 들어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마이크는 USB와 나를 번갈아 쳐다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사무실을 나갔다.
알렌도 얼른 들어보고 싶다는 눈빛으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 두 사람이 나가고 나서 그제야 강 대표가 참았던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 너 이 자식 또 제대로 건수 잡으려고 하는구먼. 최대 몇 프로까지 생각하고 80%를 지른 거야?”
강 대표도 뭔가를 오해하고 있었다.
“전 정말 80% 다 받을 건데요?”
“으응? 그거 그냥 뻥카 아니었어? 일부러 크게 부른 다음 조금씩 낮추려는······.”
“80%에서 0.1%라도 깎으면 저 이거 안 할 거예요.”
이번에는 강 대표가 방금 전 마이크와 똑같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