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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14화 (114/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4화

“난 미스터 장이 꼭 우리 영화의 음악 감독을 해줬으면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당신이 아니면 우리 영화의 음악 감독을 할 사람이 없어요.”

다짜고짜 음악 감독을 맡아 달라며 사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감독을 맡지 않으면 한국을 절대 떠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세를 보였다.

“할리우드에도 실력 있는 음악 감독들이 많을 텐데요? 저는 한번도 영화 음악 감독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할리우드에 있는 음악 감독? 그 가짜들을 말하는 겁니까? 당신의 고고하고 신성한 음악에 발끝도 미치지 못할 놈들입니다!”

알렌 감독은 역정을 내며 소리쳤다.

“그놈들은 음악에 대한 열정보다 돈에 대한 열정이 더 큽니다. 예술을 오직 돈으로만 보는 썩은 종자들! 만약 그들이 내 시나리오를 한번이라도 제대로 읽었더라면······.”

사실 난 그런 음악 감독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어차피 예술이란 것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 않은가. 특히 영화 OST 제작은 본인의 예술적 영감을 충족시키기 위함이라기보다는 돈 때문에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당장 나도 가수라는 직업으로 돈을 벌고 있다.

내가 무슨 투철한 예술 정신으로 가수 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첫째는 누나에게 탄탄대로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고, 둘째는 나와 내 가족이 풍족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아주 없진 않지만 결국 이 일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돈이다.

알렌 감독은 버럭 소리를 지르다 이내 혼자 화를 삭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저에 대해서 조금은 조사를 하셨겠죠. 맞습니다. 전 할리우드에서 B급 영화나 찍는 감독으로 낙인이 찍혀 있어요. 당연히 잘 나가는 음악 감독들은 제 작품에 참여해 오점을 만들고 싶지 않겠죠.”

한창 잘 나가는 음악 감독들은 본인의 커리어에 흠집을 남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삼류밖에 되지 않는 감독의 영화를 곱게 볼 리 없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릅니다. 10년을 넘게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수많은 영상 기법을 이 머릿속으로 생각해 두었습니다.”

그래. 나도 안다.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다.

특히 아름다운 영상미가 강렬하게 내 뇌리에 박혀 있다.

하지만 배경이 우주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OST가 개떡처럼 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이 영화는 크게 흥행을 하진 못한다.

다만, 매니아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 정도?

“그러나 미스터 장만큼은 제 영화 시나리오를 진지하게 읽어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깔끔하게 포기해 주십시오. 저도 깨끗이 포기하겠습니다.”

영화 OST라.

드라마 OST와는 다르다.

드라마 OST는 1~3곡 정도 만든다고 치지만, 영화 OST는 최소 10개는 만들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물론 한 개의 멜로디를 따서 그것을 중심으로 대다수 OST를 만든다고 하지만 개수부터가 다르니 부담감도 클 수밖에 없다.

거기다 나는 이것 말고도 다른 일들이 쌓여 있다.

당장 제니 웨이든의 바이올린 연주곡은 물론이요, 드라마 문라이트 OST도 내가 맡기로 한 상황이다. 또한 새 앨범이 나온 이후 본격적으로 JJ 그룹 활동도 해야 한다.

하지만······.

“감독님.”

“예. 미스터 장.”

“제 음악에서 어떤 걸 보시고 한국까지 오기로 결심을 하신 겁니까? 감독님의 시나리오는 찬찬히 읽어 보겠습니다. 하지만 그전에 감독님이 제 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는지 알고 싶군요.”

“그건······.”

알렌 감독은 말을 끌며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역시, 이 사람은 내 음악을 진지하게 들은 게 아니구나.

그래서 나도 이 제안을 거절하려는 찰나.

“이걸 봐 주십시오.”

알렌 감독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작은 수첩 하나를 내게 꺼내 보였다.

그 안에는 낙서처럼 뭔가가 휘갈겨 쓰여 있었는데, 뚜렷이 보이는 건 내가 작곡한 곡 이름들이었다.

“미스터 장이 작곡한 노래는 전부 다 들어 보았습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부분들의 타임라인을 적어 놓은 것이고요. 또한 이런 스타일은 현재 제가 제작 중인 영화 어떤 부분에 딱 어울리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따로 표시해 두었죠.”

나는 수첩을 세세하게 살펴보았다.

못 알아볼 정도로 휘갈겨 쓴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충 무슨 단어가 쓰여 있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내 노래의 특징과 타임라인들.

여러 음악 용어들을 함께 적어 놓고 분석을 한 것을 보아 알렌 감독은 음악에 대한 지식이 해박해 보였다.

“감독님. 혹시 음악 전공을 하셨습니까?”

“바로 알아봐 주시는군요. 맞습니다. 감독을 하기 전에 음악에 꿈을 품었던 적이 있죠. 하지만 재능의 벽이라는 게 생각보다 커서 결국 그 위를 넘지 못했습니다.”

음악을 포기하고 영화로 전향을 했다는 뜻이다.

“정리를 생각보다 잘해 놓으셨네요. 제 음악을 진지하게 평가해 주시고.”

“그럼요. 제 영화의 음악 감독을 모시고 오는 일인데, 설렁설렁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랬다면 한국에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 수첩에서, 그리고 저 얼굴에서 알렌의 열정이 느껴졌다.

또한 내 음악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 역시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처음에는 부정적이었던 내 마음이 차츰 바뀌어갔다.

“고민이 된다는 거 이해합니다. 영화가 흥행하지 못하면 미스터 장의 노래도 자연스레 묻히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제가 꼭 성공시켜 미스터 장의 커리어에 절대 흠집이 되지 않도록······.”

나는 그의 말을 끊었다.

“감독님. 영화의 흥행은 딱히 상관없습니다. 감독님이 할리우드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도 사실 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습니다.”

“네······?”

“전 제 음악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 이 영화가 망해도 제 음악은 흥할 거라는 확신이요. 그래서 영화 성적이 어떻든, 감독님의 명성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는 겁니다.”

“······!”

알렌 감독은 조금 충격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너무 직설적이었나.

잠시 그는 멍하니 날 바라보다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하-!”

웃음 소리가 과할 정도로 컸다.

내 미간이 절로 찌푸려질 만큼 말이다.

“아. 미안합니다.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분은 참 오랜만에 봐서 말입니다.”

“제가 너무 오만하게 굴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요. 오히려 멋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미스터 장의 곡들을 들으면서 그 생각을 했습니다. 이 남자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가 엄청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과감한 노래를 만들 리 없을 테니까요.”

그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런 자신감이 부럽습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교만함이라고 보겠지만, 당신의 그 자신감은 실력이 뒷받침된다는 것을 알기에 결코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당연한 것을 말했을 뿐.”

그러면서 날 설득하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거 제가 제대로 된 상대를 만나러 온 것 같아 기쁩니다. 더더욱 당신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직 이렇다 할 대답을 드릴 순 없습니다. 저도 한국에서 할 일이 많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제가 음악 감독을 맡는다고 하면 미국으로 날아가야 합니까?”

“가급적이면 미국으로 와 주시는 게 좋겠죠. 아마 투자사에서 그에 따른 돈이 나올 겁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직원이 화들짝 놀라 뭔가를 감독에게 속사였다. 그러나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알렌 감독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미스터 장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미국으로 와 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곳에서 할 일이 있으시니 한국에서 작업해도 괜찮습니다. 어차피 작업물이야 인터넷으로 받으면 되니까요.”

그러자 저 흑인 직원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 눈빛을 의식한 것인지, 감독이 그 직원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아차. 소개가 늦었군요. 여기는 C&C 금융에서 기획 팀장을 맡고 있는 마이크라고 합니다.”

C&C라면 할리우드에서 알아주는 큰손이다.

“한국으로 와서 미스터 장을 섭외하자고 했을 때 얼마나 반대를 하던지. 제가 그 반대를 물리치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너무 무모하셨네요. 제가 거절이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 핑계로 한국 여행이라도 하는 수밖에. 항상 한국이란 나라가 궁금했습니다. 언제 미사일이 떨어져 전쟁 한복판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스릴감이 짜릿하더군요.”

“······.”

“아무쪼록 좋은 연락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여기 마이크가 명함을 드릴 겁니다. 승낙인지, 아니면 거절인지 이곳에 연락을 주십시오. 오늘 반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알렌 감독은 마이크라는 직원의 명함과 영화 시나리오를 남겨 두고 사무실을 떠났다.

집요하게 달려드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딱 선을 긋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 * *

“만약 미스터 장이 거절을 하면 난 단식투쟁을 해서라도 그를 꼭 우리 영화의 음악 감독으로 만들 생각이야.”

“······그건 범죄 아닙니까?”

“어째서? 내가 납치를 했나, 공갈 협박을 했나. 나는 그저 내 의지를 보이려는 것뿐이지.”

“미국에서 그러면 총 맞는 거 아시죠? 아님 감방에 썩으면서 총 맞거나.”

“왜 항상 총으로 끝이 나는 거지? 여긴 한국이야. 총기 소지가 불법인 나라라고.”

장연욱을 만나고 온 알렌은 명작 영화를 보고 나온 것마냥 감동에 젖어 있었다.

“이번에는 느낌이 좋아. 정말 착착 일이 풀리는 느낌이야. 마이크 자네도 미스터 장을 직접 봤잖아. 역시 예술에는 나이가 상관없다고 하더니 정말이었어.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도 굉장하고.”

사실 마이크도 장연욱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냥 작은 나라에 있는 별 볼 일 없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실히 뭔가가 다르긴 달랐다.

아우라라고 해야 할까.

능숙한 영어도 그렇고, 음악에 대한 스스로의 자부심도 그렇고.

생김새부터 말투까지 전부 기품이 넘쳤다.

정말 고등학생 나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한번 일을 맡기면 안심이 되고, 뭐든지 해내 줄 거라는 신뢰를 주는 사람.

장연욱이 딱 그런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여기서 잘못 삐끗하면 사기꾼에게 당하는 꼴이 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알렌 감독 입장에서는 큰 선물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정말 미스터 장을 미국에 못 데려가는 거야?”

“그런 예산은 없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감독님을 여기까지 데려오는 것도 제가 회사에 사정을 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아무리 큰 회사에게 투자를 받았다고 해도 삼류 감독이라는 타이틀은 여전하다. 그렇기에 회사의 지원이 영 시원치 않기도 했다.

그러나 알렌은 이번 작품 이후로 그런 치욕을 전부 갚아 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무튼, 난 미스터 장이 허락해 줄 때까지 절대 이 나라를 벗어나지 않겠어.”

그러다 회사한테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꾹 삼켰다.

알렌의 높아진 텐션을 구태여 깨뜨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편 알렌 감독이 놔두고 간 시나리오를 읽고 있던 연욱은 왠지 모르게 오한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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