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11화 (111/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11화

“하-. 이거 괜히 기다려줬다가 남 좋은 일만 시켜 준 거 아니에요?”

EXE 멤버들은 요즘 불만이 많았다.

소속사에서 다른 가수들과 연애를 하지 못하게 막은 것도 억울한데, 이번 앨범도 TOP 10에 오르지 못하는 굴욕을 맛 봐야만 했다.

“그냥 우리가 노래 조금만 빨리 냈으면 가볍게 1위 하는 거잖아요. 거기다 내가 그랬죠? 노래가 좀 별로인 거 같다고.”

“맞아요. 노래가 요즘 트렌드랑 안 맞다고 해야 하나? 저희는 작곡가가 아니더라도 요즘 노래 많이 듣잖아요. 그런데 확실히 이번 곡은 아니었어요.”

“팬들도 저희들 봐서 스밍을 해 주긴 하는데, 그냥 소리 끄고 스밍 중이라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요. 대표님도 팬카페 글 읽어 보셨죠? 다들 노래 별로라고 욕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EXE 소속사 SG 엔터테이먼트도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번 앨범은 EXE의 7번째 정식 앨범.

7번째 앨범을 기념하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도 준비해 놓았고, 아시아에서 인기가 절정인 만큼 월드 투어 계획도 잡혀 있었다. 그런데 국내에서조차 10위권 안팎에 밀려 있는 곡을 어떻게 세계 무대에 당당히 내놓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강용형 그 양반을 너무 믿었다. 그 인간도 감을 잃었어.”

2년 가까이 아무런 곡도 내놓지 않고 있던 그가 갑자기 곡을 내놓는다고 했을 때 경계를 했어야 했다. 거기다 그는 자기 혼자 라이벌 의식에 찌들어져 있어 더 뛰어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결국 EXE의 앨범까지 망쳐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내가 EXE의 팬이긴 하지만, 솔직히 이번 노래는 너무 별로다.

-우리 아가들 보는 재미로 뮤비를 보고 있긴 한데, 보다 보면 현타가 오네. 이런 노래를 부르라고 우리가 열심히 응원하는 게 아닌데 말이지.

-소속사 직원들이랑 대표는 생각이 없나? 딱 들어봐도 이건 아니다 싶었을 텐데.

-이걸 끝까지 밀고 간 당신들이 대단하다.

SG 엔터테이먼트의 대표, 구진석은 시원하게 욕이라도 하고 싶어서 먼저 강용형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하지만 강용형 작곡가는 며칠 전부터 쭉 잠수를 탄 상태였다.

EXE와 더불어 다른 가수들 노래까지 최하위권으로 떨어뜨려 놓고 말이다.

나중에는 아예 전화가 꺼져 있자 결국 그는 강용형 소속사인 CH 엔터테이먼트 대표인 강찬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혹시 나 엿 먹으라고 이런 거 아니죠? SG랑 CH는 서로 상부상조하는 사이 아니었어요? 이걸 이렇게 뒤통수를 치면 어쩌라는 겁니까.”

강찬호 대표도 어지간히 연락 오는 곳이 많았던 모양인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도 지금 그 형님이랑 연락이 안 돼. 잠수 타버렸어. 자기도 쪽팔린 거지. 대한민국 최고 작곡가라고 떠들던 양반이 그 어린놈한테 제대로 발렸으니까. 나도 지금 언론사에서 전화가 쏟아지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받아쳐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고의는 아니다?”

-야!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여? 대형 소속사들끼리 서로 싸워봤자 좋은 그림 안 나오는 거 뻔히 아는데. 그런 쪼잔한 짓 안 한다. 그리고 그 형님이 그따위 곡을 내줬으면 네가 중간에서 커트했어야지. 난 설마 노래를 그따위로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잠깐. 그래서 이게 지금 내 잘못이라는 거요?”

-내가 너처럼 미리 곡을 듣기라도 했냐 뭘 했냐. 내가 미리 들었으면 그거 진작에 엎었을 거다.

작곡가랑 소속사 대표가 사촌지간 아니랄까 봐 서로 안하무인이었다.

“아무튼! 강용형 그 새끼 꼭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요. 이 바닥에서 완전히 매장당하고 싶지 않으면.”

-이 새끼가 지금 형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형도 노선 잘 타세요. 우리 EXE 7번째 앨범이 그 새끼 때문에 날아갔어요. 이걸 가만두고 볼 거 같습니까? EXE가 우리 최고의 그룹이라는 걸 뻔히 아시잖아요. 형님이고 뭐고 지금 나 눈에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알겠어요? 강용형이든 CH든. 누구 하나는 책임져야 할 겁니다.”

애들 앞이라 시원하게 윽박지르며 전화를 끊긴 했는데, 강용형을 붙잡아 온다고 한들 달라지는 게 있을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세상 밖으로 나간 음악을 다시 회수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젠장. 내가 그 새끼를 믿는 게 아니었는데.”

후회한들 늦었다.

이렇게 된 거 빠르게 다음 앨범을 준비하면서 행사를 뛰는 수밖에 없었다.

멤버들에게는 고된 일이 되겠으나, 어쩌겠는가.

아이돌이란 언제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외줄타기 직업이다.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그 위에 우뚝 선만큼, 이런 위기에 넘어지지 않으려면 그에 맞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 * *

“영화 시나리오도 완성했고, 캐스팅도 끝났어. 촬영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고. 그런데 문제는 OST야.”

할리우드에서 잘 쳐줘야 삼류로 인정 받고 있는 크리스토퍼 알렌 감독은 최근 우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촬영하고 있었다.

보통 삼류라고 하면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는 감독이라 투자금이 영 시원찮았지만, 이번 시나리오는 나름 투자사들에게 인정을 받아 꽤 큰 금액의 돈을 받아냈다.

항상 꼬리표처럼 달고 다닌 B급 전문 영화 감독이란 타이틀을 이번 기회에 싹 뜯어내 버릴 작정이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가지는 않는 법.

순조로웠던 영화 촬영이 OST에서 막히고 말았다.

“도저히 안 된다고 해? 내가 이렇게 싹싹 빌고 있는데도?”

“네, 로저스 음악 감독이 시나리오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희 쪽 오퍼를 거절했습니다. 뭐, 그쪽 말로는 영감이 잘 안 떠오르는 시나리오라고 하네요.”

“안 봐도 뻔해! 그놈은 내 시나리오를 읽어 보지도 않고 차 버린 거야!”

로저스 음악 감독은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감독만 골라 음악 제작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전적으로 하기보다는, 차라리 안정된 길을 택해 음악을 내겠다는 것인데, 솔직히 현명한 판단이긴 했다.

이미 음악적으로 크게 성공한 그가 뭐가 아쉬워서 B급 감독에게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주려고 하겠는가.

“이거 난감하네. 로저스 음악이 우리 영화와 아주 잘 어울릴 거 같아서 픽한 건데, 이렇게 차 버리면······.”

“다른 음악 감독을 염두에 두고 계시진 않았고요? 로저스 감독의 성향이 어떤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렇긴 한데, 아무리 찾아 들어도 내 귀에 딱 달라붙는 음악이 없어.”

촬영도 한창 순조롭게 진행 중에 있는데, 영화에 삽입되어야 할 음악이 정해지지 않아 문제였다.

로저스가 마음에 들지 않긴 하지만, 그의 음악 스타일이 이번 영화에 아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굴욕과 모욕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대체할 음악 감독을 구하기도 쉽지가 않았다.

당장 떠오르는 몇몇 감독들이 있긴 하지만, 이미 다들 스케쥴이 있어 섭외가 불가능했다.

“고민이네. 이거 그냥 내가 만들어 버릴까? 예전에 악기도 좀 만지고 했는데.”

우스갯소리로 말한 건데, 기획 팀장의 안색은 굳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려 투자사에서 보낸 팀장이다.

영화가 잘 촬영되는지 감시하는 목적도 있고, 감독 옆에서 보조를 맞춰 주라는 의미도 있었다.

“감독님. 지금 장난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영화가 중반에 들어서고 있는데 아직도 OST 준비가 안 됐다고 하면 투자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

“제가 그래서 몇 개 샘플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번 들어보시고 결정해 주십시오.”

팀장이 무서운 눈빛으로 노트북을 앞에 놓자 감독은 꼬랑지를 내리며 음악을 하나씩 들어보았다.

총 15개의 음원이 있었고, 끝끝내 감독은 그 안에서 곡을 정하지 못했다.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차라리 한 번 더 자존심 굽히고 로저스한테 부탁을 해 볼까?”

“100번을 요청해도 들은 척도 안 할 겁니다.”

“그럼 어떡하지? 여기서 마음에 드는 게 정말 하나도 없는데.”

“제가 또 다른 샘플을 준비해 오겠습니다. 마음에 드는 게 나오실 때까지요.”

그래도 여기서 당장 고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좋아. 혹시 된다면 바이올린이 들어간 음원으로 부탁할게.”

“바이올린이요?”

“응. 이번 음원은 바이올린이 좀 많이 들어갔으면 하거든. 전체적으로 영화랑 잘 어울릴 거 같기도 하고 말이야.”

기획 팀장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다 자리에 다시 앉았다.

“혹시 제니 웨이든이라고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그 사람을 배경으로 영화도 만들 계획이라고 하던데?”

“예. 혹시 최근에 그녀가 연주한 걸 들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 따로 찾아보진 않았어. 노래 구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러셨군요. 그럼 이걸 한번 봐 보시겠습니까?”

그가 보여 준 것은 제니 웨이든이 SNS에 올린 바이올린 연주 영상이었다.

속는 셈 치고 들어보기로 한 알렌 감독의 눈이 점점 커졌다.

* * *

[드라마 문라이트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국내 영화와 드라마계의 큰손으로 불리고 있는 CY 엔터테이먼트가 주최하는 파티.

바로 박태중 감독의 첫 데뷔작인 드라마 문라이트의 성공을 기원하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드라마 촬영이 들어가기 전 배우들과 스태프, 그리고 관련 투자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인사를 나누는 것인데, 보통 여기서 단체로 제사를 올리기도 한다. 하지만 박태중 감독은 종교 이유로 제사상을 차리진 않았다

그리고 오늘 이 파티에 나와 누나도 참석하게 되었다.

나는 투자자라는 명목으로, 누나는 이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연으로 말이다.

“아이고. 요즘 엄청 바쁘시다고 들었는데, 저 때문에 괜히 온 게 아닌가 싶네요.”

“아닙니다, 감독님. 드라마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부디 재밌게 만들어 주십시오.”

“하하! 연욱 씨가 내 드라마 꽂아 준 거나 다름없어요. 연욱 씨를 만나고 나서부터 자신감이 생기니까 대형 투자사한테 투자금 내놓으라고 덤비는 것도 무섭지가 않더라고. 내가 정말 많이 고마워하고 있습니다.”

박태중 감독은 내 손을 잡고 연신 흔들어대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 나이도 많은 감독이지만, 절대 하대를 하거나 아랫사람 대하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지도 않았다.

겸손이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혜나 씨도 앞으로 좋은 연기 부탁드릴게요. 영화는 경험이 있지만, 드라마는 처음이라고 했죠? 뭐, 영화랑 별반 다를 게 없어요. 영화에서 보여줬던 연기력을 절반만 보여줘도 시청자들이 극찬을 할 겁니다.”

이번 박태중 감독 드라마에 투자 계약을 하면서 박 감독에게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그건 바로 혜나 누나를 드라마에 출연시키는 것.

당연히 주인공을 달라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 비중이 있는 조연을 달라고 한 것인데, 박 감독은 아주 흔쾌히 받아들였다.

내가 투자금을 줬기 때문이 아니다.

누나의 마스크가 그의 기대 이상으로 뛰어난 것도 있고, 해당 배역에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으- 내가 잘할 수 있겠지?”

“괜찮아.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돼. 배역도 보니까 누나 성격이랑 잘 어울릴 거 같았어.”

쾌활한 성격에 매사에 긍정적인 캐릭터라서 누나랑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드라마가 크게 성공을 하게 되면 누나는 가수뿐만이 아니라 드라마와 영화 쪽에도 확실하게 발을 넓힐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점점 모든 미디어 분야에서 누나의 얼굴이 나오지 않는 곳이 없게 될 터.

누나 이름이 곧 성공을 보증하는 고급 브랜드가 되고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까지 뻗쳐 나가는 장면이 벌써부터 내 눈에 훤히 보이기 시작했다.

“파티는 재밌게 즐기고 계십니까?”

그때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다가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