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9화
“언니는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여길 오실 수 있어요?”
“호호. 난 원래 음악에 진지한 사람이거든. 가요랑 콜라보해서 앨범을 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기도 하고. 뭐든 철저히 하면 좋잖아?”
“하지만 관광도 하고 다른 것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여행이야 언제든 하면 돼. 왜 그렇게 내 일에 관심이 많으실까?”
제니와 혜나 사이에 알 수 없는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야 언니가 너무 여기에만 시간을 들이는 게 아닌가 해서요. 오늘은 그만 일찍 가 보세요.”
“괜찮아. 오늘은 너 노래하는 거 볼 거야.”
“어제도 보셨잖아요. 이틀 전에도 보셨고요.”
“그래도 부족해. 더 보고 싶은걸?”
“······솔직히 말해 보세요. 제 노래 들으러 온 거 아니죠?”
그 말에 제니는 입을 가리며 웃은 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장연욱이 작업실 안에 들어왔다.
무미건조했던 제니의 눈동자가 번뜩이는 것을 혜나는 볼 수 있었다.
“누나. 준비됐어?”
“응? 아! 응.”
혜나는 몇 번 심호흡을 크게 했다.
뭔가 많이 긴장하는 것처럼 보였다.
방금 전까지 묘한 신경전을 펼치긴 했으나, 혜나의 얼굴을 보니 또 걱정됐다.
“왜 그래 혜나야? 많이 긴장 돼?”
“으-. 곧 녹음이잖아요. 그래서 그래요.”
“몰랐네. 워낙 성격이 당차서 긴장 같은 거 전혀 할 줄 몰랐어.”
“언니가 몰라서 그래요. 저 무대 공포증도 엄청 심했어요. 지금도 조금 남아 있고요.”
“정말? 근데 이건 무대가 아니잖아. 거기다 저렇게 너~무 잘생긴 네 동생이 녹음 책임자이기도 하고. 긴장이 전혀 안 될 것 같아. 아니지. 저 얼굴에 정신이 팔려서 녹음을 이상하게 할 수도 있겠다.”
제니는 완전히 장연욱에 빠져 있었다.
여기 작업실에 하루도 빠짐없이 오는 이유가 뭐겠는가.
음악을 위해서?
아니다. 연욱이를 보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제니를 처음 만난 날부터 혜나는 눈치를 챘다.
그녀가 동생에게 엄청난 관심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밀어내 보려고 했는데, 도통 들어먹지를 않는다.
“언니도 연욱이랑 협업하고 계시잖아요. 평소에는 괜찮지만, 작업에 들어갈 때면 사람이 엄청 달라지는 거 있죠?”
그 말에 제니도 얼굴빛이 살짝 굳어졌다.
저 말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한 것이었다.
음악에 관련된 것을 같이 하게 될 경우, 장연욱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해진다. 또 평소와는 다르게 편히 말을 걸 수 없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온다고 해야 할까.
보통 때에는 순수하기 그지없는 남자인데, 본업에 들어갈 땐 눈빛에서부터 찬바람이 쌩쌩 불어오는 사람으로 돌변한다.
혜나는 그게 좀 무서웠다.
누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양보하고 항상 따뜻하게만 말하던 동생이 음악에 있어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또한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 강도 높은 피드백이 이어진다.
그 피드백이 결코 틀린 건 아니나, 연욱이의 목소리가 매우 차갑고 날카로워 그것이 혜나에게는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음- 확실히 연욱이가 피드백을 줄 땐 나쁜 남자의 매력을 마구 뿜어내긴 하지.”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었는데요.”
“그래? 난 연욱이가 팩트로 사람 몰아칠 때 너무 좋던데. 기분이 막··· 뭐라고 해야지? 카타르시스가 솟구친다고 해야 하나?”
혜나는 제니의 두 손을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언니. 오늘 녹음 끝나고 저랑 병원 가볼래요?”
“호호. 그런 소리 자주 들어. 내가 원래 뭐 하나에 빠지면 다른 게 잘 안 보이거든.”
그 말을 듣고 혜나의 심장이 철렁였다.
저 뜻은 제니가 지금 장연욱 하나에 푹 빠졌다는 뜻 아닌가?
다른 것이 안 보일 정도로!
“언니. 연욱이가 아직 16살인 건 아시죠?”
“사람들이 4살 차이가 가장 좋다고 하더라. 뭐, 성인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게 그렇게 어렵겠어? 고작 4년인데.”
너무 당당하게 말을 하고 있으니 혜나는 반박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허탈하게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래. 지금이야 저렇겠지만, 다시 자기 나라로 돌아가서 4년 동안 저 얼굴로 남자 하나 안 만날 수 있겠는가.
지금도 미국의 남자란 남자는 전부 다 꼬여 들 텐데 말이다.
이 또한 그냥 지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튼, 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나도 이해했어. 연욱이가 조금, 아주 조금 무서워지긴 하지.”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무서워진다.
예전에는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점점 나이가 들고 음악에 대한 깊이가 남달라지면서 더 높은 단계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결코 나쁜 건 아니야. 결국 연욱이는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키우고자 하는 거거든. 네가 그 애 말을 듣고 잘 따르면 돼. 그럼 네 실력이 엄청나게 상승할 거야. 내 말 믿어.”
다른 사람도 아닌, 한 분야에서 정상을 이뤄낸 제니의 조언이었다.
특히 음악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자존심이 높을 텐데, 유독 그녀는 연욱이 말만큼은 겸손하게 따랐다. 그걸 옆에서 지켜본 혜나이기에 조금 남아 있던 동생에 대한 불만이 싹 사라졌다.
“잘 알겠어요. 결국 다 절 위해서라는 거죠?”
“응. 연욱이도 자기 누나한테 그런 싫은 소리를 하는 스스로가 못마땅할 거야. 그런데도 참고 하는 거지. 자기 누나의 성공을 위해서.”
그래. 연욱이는 항상 자신의 뒤를 든든하게 받쳐 주었다.
그 모든 피드백과 잔소리가 결코 스스로의 성공을 위함이 아니라 누나를 위한다는 걸 혜나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남아 있던 긴장감을 털어 내고 녹음실 안으로 들어갔다.
* * *
“졸업 축하한다, 우리 아들.”
아버지는 날 품에 안고 마구 흔들어댔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도 이에 질세라 날 뒤에서 껴안아 주었다.
졸업식.
드디어 지긋지긋했던······ 아니. 추억이 많았던 중학교와의 결별이었다.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 학교 생활까지 병행해야 하는 바람에 여러모로 피곤하긴 했다만, 소속사에서 방학을 제외하고는 그리 무거운 스케쥴을 부여해 주지 않아 그럭저럭 잘 다닐 수 있었다.
“연욱아. 졸업 축하해. 이제 네가 고등학생밖에 안 됐다는 게 참······.”
졸업식에는 삼촌도 참석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창호 교수도 와 있었다. 그는 삼촌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생긴 건 중고등학생인데, 하는 짓은 영락없이 어른이야.”
또한 제니도 졸업식에 와 주었다.
그녀는 내게 꽃 한 다발을 남기며 말했다.
“연욱. 축하해. 나 남의 졸업식에 오는 건 처음이야.”
“정말요?”
“응. 난 내 졸업식에도 안 갔었거든. 귀찮아서.”
“아무리 귀찮아도 졸업식을 빼는 건······.”
“내가 왜 그랬겠어? 저길 봐.”
제니는 진을 친 채 기다리고 있는 기자들을 가리켰다. 또한 그 뒤로는 우리 JJ의 팬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왜 제니가 졸업식을 기피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휴. 나 인터뷰하는 것도 귀찮아서 싫어하는데, 오늘 엄청 하게 생겼네.”
“제니가요?”
“내가 너랑 앨범 작업한다는 거 소문이 쫙 퍼진 거 같더라. 아마 그거 물어보려고 왔겠지. 아마 한국에서 단독 콘서트를 여는 건 아닐지 궁금해 할 테고.”
제니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미국과 여러 나라에서 그녀가 한국에 갔다는 보도가 나온 모양이다. 그리고 거기 가수 하나와 협업을 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것 때문에 기자들이 더 많이 모여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이 단체로 몰려와 나와 제니를 포위했다.
“제니 웨이든 맞으시죠?! JJ와 협업을 한다는 루머가 있던데, 사실입니까?”
“평소 장연욱 씨와 친분이 깊으셨나요?”
“두 분은 어떻게 만나신 겁니까?!”
오늘 제니를 처음 만나는 부모님에게 소개할 시간도 없이 기자들의 질문이 연달아 날아왔다. 제니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침착하게 대응했다.
“뭐 다들 아시다시피 연욱이가 만든 바이올린 곡을 직접 연주하고 영상으로 올리면서 친분이 생겼어요. 이번에 새로운 앨범 준비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흥미가 생겨서 참여하기로 한 거고요.”
“오~.”
“그럼 앨범 녹음은 전부 끝난 거라고 봐야 하나요? 정확히 언제쯤 나올까요?”
“그건 저한테 말고 여기 계신 분한테 물어보세요.”
제니는 나를 기자들 앞으로 내세웠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다들 앨범의 공개 시기를 궁금해했다.
“녹음은 다 끝났습니다. 앨범 공개는 다음 달 초로 잡아 두었고요. 그전에 뮤직비디오 트레일러를 따로 공개할 예정입니다.”
“그럼 이번 신곡에 제니 웨이든의 연주가 들어간 겁니까?”
“네. 제가 저번에 같이 협업한 오케스트라와 제니 웨이든의 연주가 포함된 신곡입니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스타일의 노래일 수도 있겠지만,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질문이 오고 갔다.
하지만 이런 졸업식에 기자들이 몰려오는 것도 남들 눈에 좋아 보일 리 없고, 가족들도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오래 끌 순 없었다.
“죄송해요. 더욱 자세한 건 다음 인터뷰 때 알려 드릴게요.”
그러자 기자들이 원망 어린 목소리를 터트렸다.
“연욱 씨는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예능 프로그램에도 거의 안 나오고!”
“······.”
난 못 들은 척하고 기자들을 뒤로 한 채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근데 혜나는? 어디에 있어?”
제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쉽게도 누나는 오늘 졸업식에 오지 못했다.
지금 한창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중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졸업식 날짜가 달랐다.
“아~ 학교 때문이었구나. 나는 또 둘이 엄청 싸운 줄 알았잖아.”
“우리 두 사람이요? 절대 안 싸워요.”
“그래? 남매끼리 원래 피 터지게 싸우지 않아? 난 오빠랑 만날 때마다 멱살 잡는데.”
제니에게 오빠가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뭐, 거의 제가 져주는 입장이라서요.”
“흐응. 저번 작업실에서 보니까 꼭 그런 거 같진 않던데. 그때 아마 혜나가 눈물 찔끔거리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지?”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제니 말대로 이번 앨범 녹음 때 몇 번 누나와 마찰이 있었다.
뭐,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두들겨 때린 거나 다름 없었다.
이게 나도 일부러 그러려는 것이 아니라 음악 작업을 할 때면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날카로워진다. 물론, 상대방을 헐뜯거나 하진 않지만 본인의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고 연습이 부족했는지를 콕콕 끄집어내듯 말한다는 게 문제였다.
조곤조곤 피드백을 주는 거지만, 생각해 보라.
10초에 한 번씩 녹음을 중단시키고 피드백을 준다면 어떻겠는가.
아무리 부드럽고 좋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해도 사람 정신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로 인해 누나가 몇 번 울기도 했고, 화를 내면서 녹음실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나도 잘 조절해 보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음악만은 조절이 되지가 않았다.
“저번 마지막 녹음 때도 혜나가 버럭 소리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갔잖아. 물론 끝에는 잘 해결됐지만, 원래 여자들이 그런 걸 한번 당하고 나면 평생 잊지를 못해요.”
“······.”
설마 진짜 그런 건가.
오늘 누나가 아침에 나한테 뭐라고 했었지?
평소랑 다를 바가 없었던 거 같기도 하고, 또 깊이 생각해 보면 뭔가 달랐던 거 같기도 하고.
혼자 고민에 빠져 있는 날 보고 제니가 풉 웃으며 입을 가렸다.
그럴수록 나 혼자만 마음이 급해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