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8화
고조된 긴장감.
그 안에서 흘러넘치는 음악의 향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음악에 집중하고 있던 단원들조차 힐끔 거리고 있었다.
무아지경에 빠져 연주를 하고 있는 제니를 말이다.
“······.”
나 역시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단원들의 집중력이 그녀 덕에 조금 흐트러져 귀에 잡음이 들렸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연주를 멈추고 싶지 않았다.
보통 때라면 가차 없이 연주를 중단시키고 피드백을 줬겠지만, 제니의 연주가 끝까지 듣고 싶었다.
그야 말로 천상의 연주.
나는 끝끝내 연주를 중단시키지 않은 채로 끝까지 곡을 이어갔다.
“후-.”
그렇게 열정적인 연주가 끝이 났다.
연주가 끝난 뒤, 제니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스스로에게 만족한다는 듯한 표정을 보이면서 말이다.
그녀는 내게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면 완벽하지 않냐고 항의하는 것만 같았다.
짝-!
내가 반응을 보이기 전에 먼저 박수 소리가 들렸다.
짝짝짝-!
“브라보!!”
단원들이 발을 쿵쿵 대며 연신 박수를 쳐댔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제니의 연주에 흠뻑 빠져 들었던 것이다.
“너무 멋졌어요.”
“진짜 이게 월드 클래스 실력이구나.”
“내가 연주할 땐 저런 음색이 절대 안 나오던데.”
제니가 쓰는 악기는 아마 수억원의 가치를 자랑하는 바이올린일 것이다.
분명 악기의 차이 때문에 소리가 다른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장인은 악기 탓을 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또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음색의 차이는 악기의 그것으로 따라갈 수 없다는 것도.
“이 정도면 오늘 당장 녹음해도 괜찮겠는데요?”
“그러게. 제니 컨디션도 엄청 좋아보이는데.”
그러나 난 단호하게 단원들의 말을 잘랐다.
“안 됩니다.”
“예?”
“제니의 연주는······ 완벽했습니다. 흠 잡을 곳 없이 말이죠.”
단원들에게 칭찬을 받았을 땐 아주 당연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이던 그녀가 내 말을 듣고 나서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직 여러분은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중간에 몇 번 연주를 중단시키고 싶었어요. 제니의 연주는 완벽했지만, 여러분의 연주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에 단원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려 가기 시작했다.
“서, 설마 제니처럼 연주를 하라는 건 아니죠?”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어떻게 월드 클래스 연주자처럼······.”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었다.
“아니요.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니가 연주하는 것과 여러분이 연주하는 것은 확연히 다릅니다. 서로 다른 파트를 연주하고 있는데, 똑같이 연주를 하라는 건 말이 안 되죠. 다만, 중간중간에 튀어 나오는 실수를 줄이자는 겁니다.”
그제서야 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 이 사람들이 전부 제니처럼 완벽한 연주를 해 준다면야 나로서는 감사하겠지만, 제니 정도의 레벨대로 연주를 하라는 것만큼 잔인한 요구가 또 있겠는가.
난 이들의 잠재력을 끌어 올릴 순 있지만, 절대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뛰어 넘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오늘 연습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주에 여러분의 연주를 듣고 나서 녹음을 언제할지 결정하도록 하죠. 모두 고생하셨어요.”
“고생하셨습니다~”
단원들은 바삐 일어났다.
서울 대학교 학생들이니 그 일과가 얼마나 고되고 힘들겠는가.
여기 연습 나오는 것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제니와 사진을 찍고 사인을 받는 걸 절대 잊지 않았다.
“연욱.”
단원들이 전부 가고 나서 제니와 나는 단둘이 남게 되었다.
그녀는 고혹적인 눈빛으로 나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내 연주, 정말 완벽했어?”
난 솔직하게 답해 주었다.
“네. 완벽했어요. 제 상상을 뛰어넘는 연주였습니다. 일주일 만에 이 정도의 소리를 낼 수 있다는 놀라웠죠. 즐거운 감상을 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흐응-. 그랬단 말이지. 그런데 넌 너무 말투가 딱딱해.”
“네?”
“방금 단원들 반응 봤잖아. 다들 팔팔 뛰면서 난리 치는 거. 연욱이 너한테는 그런 리액션이 없어. 재미 없게 말이야.”
“미안해요. 제가 원래 성격이 좀 그래서. 그런 리액션은 우리 누나가 제일 잘해요.”
누나 이야기가 나오자 제니의 눈빛이 달라졌다.
“혜나랑은 성격이 정반대인가 보네.”
“뭐, 전 좀 조용한 스타일이고 누나는 유쾌하죠.”
“그래? 누나랑 아주 친해 보이던데. 옛날부터 그랬어?”
“네. 서로 뭐랄까······ 의지를 하죠. 누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제가 채워 주고, 제게 부족한 것이 있으면 누나가 채워 주니까요.”
“음-. 그렇구나. 그래서 내일 가녹음을 한다고?”
내일 누나에게 오늘 녹음한 연주 파일을 들려줘서 노래 연습을 시킬 예정이다.
가녹음을 하면서 정식 녹음 때까지 보컬 트레이닝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죠. 누나가 메인으로 불러야 할 노래니까요. 아마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거예요. 알다시피 노래가 좀 어렵잖아요?”
“그렇긴 하지. 그럼 내일 와서 구경해 봐야겠다.”
“그렇게 하세요.”
어차피 제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작업실에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조건이요?”
“응. 내가 앨범 녹음에 참여하는 대신, 네가 나한테 해 줄 게 있다는 뜻이지.”
이런 조건이 있다는 건 듣지 못했는데.
“아직 우리 정식 계약서를 쓴 것도 아니잖아. 설마 내가 공짜로 녹음을 해 주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그거야 당연히 소속사를 통해서 계약서를 작성한 다음, 서로가 원하는 걸 맞춰 주는 게······.”
“으-. 소속사는 빼. 복잡하고 머리 아파. 그쪽 일은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아.”
“그러면요?”
제니가 갑자기 억대의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말 같지 않았다.
분명 다른 걸 원하는 것이다.
그녀는 내 코앞까지 다가와 말했다.
“난 너만 있으면 돼.”
“······?”
내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자 제니가 깔깔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쳤다.
“뭘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 내가 널 잡아 먹기라도 할까봐?”
“그런 건 아니지만······ 어감이 좀 이상해서요.”
“내 말은, 난 네가 필요하다는 거야.”
“여전히 이상한데요?”
“그러니까 날 위해 곡을 작곡해 달라는 거지. 대체 뭘 생각하는 거니?”
제니를 위한 곡을?
“이번에 네가 만든 그 바이올린 연주곡 있잖아. 그것처럼 날 위해 하나 만들어 달라는 뜻이야. 그걸로 오랜만에 투어를 다니고 싶어.”
제니가 다니는 투어라면 그 클래스가 다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티켓값에, 그마저도 구할 수가 없는 기현상이 발생하는 투어.
그것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가 가질 수 있는 명예였다.
그런 투어에서 내 곡을 연주한다는 건가?
“괜찮겠어요?”
“뭐가?”
“투어에서 제 곡을 연주해도 괜찮겠냐고요. 다른 더 좋은 곡들이 많잖아요.”
“설마 지금 그걸 겸손이라고 떠는 거야?”
“아뇨. 저 엄청 진지한데.”
“거짓말. 네가 지휘하는 것만 봐도 난 알 수 있어. 스스로에 대한 엄청난 자신감과 그 자신감을 증명해 낼 수 있는 실력이 너한테 있잖아. 세계 무대는 너한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지.”
이번에도 뭔가 단단히 오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만든 협주곡, 그리고 바이올린 연주곡까지. 솔직히 난 그 안에서 너의 엄청난 자신감을 볼 수 있었어. 이 세계 그 어느 곡도 내 것보다 좋을 수 없을 거라는 그 자신감. 그 어떤 곡이라도 다 짓밟고 올라설 수 있다는 그 자존심. 연주를 하는 나도 그 자신감에 고양되어서 짜릿해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할까.”
“······.”
“아무튼, 이번에도 그런 곡을 하나 만들어줘. 오직 날 위해서 말이야. 절대 누구에게도 네가 만든 악보를 보여줘서는 안 돼. 그 곡은 절대 녹음도 하지 않을 거야. 오직 나만 연주할 수 있게.”
조건이 특이했다.
아니. 살벌하다고 해야 하나.
“절대 악보를 공개해서는 안 돼. 녹음이야 우리끼리 연습하려고 할 순 있겠지만, 그 녹음 파일을 외부에 유출해서도 안 되고.”
“투어를 다니면 어쩔 수 없이 곡이 외부로 유출될 텐데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절대 외부에 나가지 않게 내가 잘 막을 수 있어. 이래 봬도 내 소속사 힘이 좀 세거든. 그 정도는 핸들할 수 있을 걸?”
이런 조건은 처음이라 신선했다.
오직 자신 혼자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
왠지 재밌어 보이는 거 같은 건 기분 탓이려나.
“좋아요.”
“정말?”
“네. 제니를 위해서 곡을 쓴다는 건 제게도 영광이죠. 그리고······ 조건이 좀 재밌어 보이네요. 하지만 뭐든 확실하게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물론이지. 모레쯤에 소속사를 통해서 계약서가 날아 갈 거야. 그때 직접 사인해 줘. 그럼 네가 하라는 건 다 해 줄게.”
싱긋 웃고 있는 제니와 나 사이에서 묘한 기류가 흘렀다.
괜히 어색해지기 전에 나는 얼른 짐을 챙겼다.
“늦었네요. 얼른 나가죠.”
“그럴까?”
뭔가 아쉬워 하는 듯한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제니를 위한 곡이라.
오늘의 연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어울리는 곡을 내가 만들 수 있을까.
거기다 오직 그녀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라면 더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다.
* * *
“음-.”
프로듀서들이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강용형 작곡가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진행해.”
“네!”
이 짧은 순간이 이들에게는 마치 몇 년처럼 느껴졌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강용형 마음에 드는 곡을 뽑아냈다.
이제야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수가 있게 되었다.
“가수들 불러서 녹음 시키고, 다듬을 게 있으면 다듬어. 다 끝나면 다시 나 부르고. 오케이? 조금이라도 덜 완성되어 있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야.”
“넵!”
그는 끝까지 고생했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밖을 나갔다.
그러고는 혼자 실실 웃음을 터트렸다.
이 쓸모없어 보였던 놈들이 그래도 노래를 제대로 건진 것 같았다.
방금 전 들었던 3곡의 노래들 모두 귀에 쏙쏙 들어와 착 달라 붙기까지 했다.
그만큼 잘 만들어진 곡이라는 것이다.
벌써부터 강용형은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작곡가 강용형이라고 새겨진 곡들이 차트 순위를 죄다 씹어 먹고 있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밑에는 아등바등 간신히 차트 순위에 들어간 장연욱의 곡이 있다.
“작곡가님.”
“음?”
그렇게 혼자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지나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회사 직원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저번에 장연욱이랑 GN 엔터테이먼트가 무슨 작업을 하고 있는지 알아 보라고 하셨잖아요.”
“응. 그랬지. 어떻게 됐어? 그놈들 뭘 하긴 해?”
“네. 한창 음악 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마 두 달 안에는 새로운 앨범이 나온다네요.”
“그래. 두 달이란 말이지······.”
지금 템포라면 두 달 안에 강용형도 곡 3개를 정식으로 내놓을 수 있게 된다.
마침 시기도 딱 잘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게 있습니다.”
“이상해? 뭐가?”
“혹시 제니 웨이든이라고 아십니까?”
“당연히 알지. 세계 최고 바이올린 연주자인데.”
“네. 근데 그 제니 웨이든이 장연욱 앨범 녹음에 참여를 한다고 합니다.”
“뭐, 뭐라고?!”
순간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 맞은 듯이 얼얼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