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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07화 (107/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7화

뭐랄까.

생일 선물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꼬마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그들은 저마다 눈을 반짝이며 다소곳하게, 아니. 뭔가 불안한 듯 안절부절못하며 앉아 있었다.

“저기 마에스트로. 정말 오시는 거 맞지?”

“내가 진짜 내일 제출해야 할 과제도 포기하고 여기 달려오긴 했는데, 진짜 안 오는 거면 저 여기서 울어 버릴 거예요.”

“나도 드러누울 거야.”

다들 기대감과 살기가 반반씩 섞여 있었다.

“제가 이런 걸로 거짓말을 왜 하겠습니까. 준비가 다 되셨다고 하네요. 곧 나오실 겁니다.”

제니는 벌써 한 시간째 메이크업하느라 모습을 보여 주고 있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예쁜데 많은 사람 앞에서 얼굴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나 보다.

이윽고 그녀가 당차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 여러분. 제니 웨이든이라고 해요.”

와아...

“뭐, 뭐야. 진짜잖아!”

“말도 안 돼. 제니 웨이든이 여기 왔다고?”

“나 꿈꾸는 거 아니지? 한 대 때려봐.”

굳이 바이올린을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클래식 음악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제니 웨이든을 모를 수 없을 터.

모두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꼭 모으며 감격 어린 얼굴을 보였다.

“연욱이한테 다 들으셨겠지만, 우리가 이번에 녹음을 같이 하기로 했어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네! 저,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와- 이게 말이 돼? 내가 제니 웨이든이랑 협주를 한다고?”

아직 단원들은 학교도 졸업하지 않았다.

서울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모두가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네임드 있는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학교 이름뿐만이 아니라 치열한 경쟁을 또 한 번 뚫어 내야 한다. 그래야 간신히 오케스트라 막내로 근근이 연주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런 그들이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와 협업을 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아마 로또 1등에 당첨된 기분일 것이다.

이 경험은 남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최고의 스펙이 될 테니까.

“자자. 인사는 여기까지 하고. 제가 저번에 여러분에게 보내드린 악보가 있을 겁니다. 다들 연습은 좀 하셨나요?”

단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눈은 제니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바쁜 와중에도 연습을 게을리하진 않은 듯했다.

“오늘 가볍게 인사도 할 겸, 첫 부분만 연습하고자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다행히 악기도 다 챙겨 오셨네요.”

오리엔테이션인 만큼 연습을 길게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이런 사람들이다, 라는 것을 제니에게 보여 주고 싶을 뿐.

제니도 누구와 협주를 하는 것인지는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음악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 사람이 누군지 정확히 알 필요는 없다.

서로의 음악으로 대화를 나누면 되니까.

* * *

‘역시 평범한 학생들이구나.’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가 되면서 당연히 여러 유명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협주를 한 경험이 있는 제니였다. 그렇기에 연주를 직접 듣지 않아도 이미 이들의 실력을 대충 점칠 수 있었다.

평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오케스트라.

당연하다.

저들은 아직 학생에 불과하니까. 배우는 단계의 사람들이지 않은가.

물론 제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도 있다지만, 음악은 나이로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말이 있다.

음악의 눈을 뜬 사람은 상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실력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이다.

정확히 ‘저 사람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그냥 느낌으로 알 수 있다고 해야 할까.

자신과 협주를 했던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비교해 봤을 때 참 초라하기 그지없는 단원들이긴 했다.

그래도 순수한 사람이고, 장연욱이 애써 데려온 단원들이니 최대한 그 실력에 맞춰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제니였다.

1분 전까진 말이다.

빠라밤-!

첫 도입부와 함께 공기가 확 달라졌다.

단 몇 초 만에,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장연욱이 지휘봉을 든 순간 말이다.

헤벌쭉하게 자신만 바라보고 있던 단원들이 일제히 장연욱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눈빛에 뜨거운 무언가가 가득해졌다.

이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아마추어의 순수함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었다.

감히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에 견줄 순 없겠으나, 그 열의만큼은 대단하다는 것이 온몸에 와 닿았다

그런데 연주를 시작한 지 15초도 안 돼서 장연욱이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모두 긴장한 얼굴로 연주를 멈추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첼로. 혼자 너무 앞서 나가려 하지 마세요. 그리고 콘트라베이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곡 전체의 무게를 잡아 줘야 하는 역할이 바로 콘트라베이스에요. 그걸 꼭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네!”

아까 전만 하더라도 제니는 단원들이 장연욱을 너무 무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의 나이가 어린 것도 있고, 그를 대하는 단원들의 자세가 가벼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치 권위적인 지휘자를 대하듯, 단원들 모두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연욱의 피드백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다시 가겠습니다.”

분명 오늘은 연습을 짧게 할 거라 했던 거 같은데.

15초를 넘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연욱이 노래를 중단시켰다.

35초가 넘어야 자기 분량이 나오는 제니는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그렇다고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움의 열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이곳.

오랜만에 느껴보는 후끈한 공기였다.

왠지 자신도 동화되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마의 35초가 다가왔다.

제니는 신나는 마음에 바이올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만.”

하지만 연주를 시작한 지 5초도 안 돼서 연욱이 또 한 번 중단을 시켰다.

그리고 절대 부르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이름을 불렀다.

“제니.”

“응? 나?”

“예. 박자가 빨라요.”

“그래? 제대로 들어간 거 같았는데······.”

“단원들과는 다르게 연습 시간이 부족했다는 거 압니다. 그래서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들어가야 하는지 알려 드리죠.”

장연욱은 제니가 들어가야 할 부분을 단원들을 통해 들려주면서 말했다.

“여기. 소리가 들리셨나요? 악보로는 정확하게 캐치하기가 힘들 수 있습니다. 제니 정도의 실력자라면 두세 번 반복해서 듣는 걸로 충분히 알아낼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설득당했다.

그리고 진지하게 그 박자를 잡기 위해 속으로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준비됐어.”

“네. 그럼 다시 갈까요?”

제니는 비장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한 번에 통과해서, 절대 지적할 수 없는 완벽한 연주를 보여 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이다.

연습실이 한층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 * *

“고생 많으셨어요,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가볍게 연습을 한다는 것이 2시간 동안 이어졌다.

처음에는 제니에게 사인을 받고 사진도 같이 찍으려 했던 단원들은 슬금슬금 그녀의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넋이 나간 듯한 저 얼굴.

얼마나 호되게 두들겨 맞았으면······.

그 마음 충분히 헤아리고도 남는다는 듯 단원들은 위로의 눈동자를 보냈다.

아마 사진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저러다 때려치우는 건 아니겠지?”

“으- 불안해. 그냥 좋게좋게 가지.”

“나 완전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잖아.”

단원들은 방금 전 있었던 일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아무리 천하의 장연욱이라고 해도 제니 웨이든 앞에서는 한 수 접어 두고 갈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치 모두가 평등하다는 듯, 거침없이 제니 웨이든의 연주를 지적했고 기관총 같이 쏘아 대는 공격에 급기야 제니는 넋이 나가 버렸다.

“그렇다고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잖아. 난 우리 마에스트로가 너무 멋있었는데?”

“넌 장연욱빠잖아. 뭘 해도 다 좋아할 거면서.”

“넌 아니야? 그 얼굴로 나한테 막말하면 기분 얼마나 째지는지 알아?”

“······그거 병원 가봐야 하는 거 같은데.”

좀 심한 감이 있지 않았나 싶으면서도 장연욱의 행동이 문제 될 만한 건 없었다.

“확실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지.”

“응, 그렇긴 해. 제니는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 같지만.”

“아니. 이러다 진짜 다음 주부터는 제니 없이 하는 거 아니야? 나 아직 사진도 못 찍고 사인도 못 받았다고!”

“제발 안 그러길 바라야지.”

단원들은 그렇게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연습실을 떠났다.

그리고 잠시 멍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던 제니에게 연욱이 다가갔다.

“제니. 매니저분이 밖에 와 계세요.”

“······.”

제니는 말없이 연욱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악기를 챙기고 연습실을 나갔다.

그렇게 떠나가는 건가 싶었는데, 다시 발소리를 쿵쾅 내며 안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던가?

“장연욱!”

“예?”

“두고 봐! 네가 입도 벙긋할 수 없게 완벽한 연주를 보여 줄 테니까! 알겠어? 나 제니 웨이든이야!”

버럭 역정을 내는 제니와 다르게 연욱은 차분했다.

“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분명 더 화를 내야 하는 상황이 맞는데, 저 차분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화나는 마음도 사르르 녹는 것만 같았다.

더 빠져들기 전에 제니는 얼른 연습실을 나와 매니저 차량에 올라탔다.

매니저는 그런 제니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제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저런 제니의 얼굴은 참 오랜만에 본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 때 보이는 특유의 표정이다.

물론, 그다음부터는 피나는 노력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기어코 뛰어넘고 만다.

그런데 대체 어디서 본인의 한계를 느낀 것일까.

오늘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만난다는 것만 들었는데?

제니에게는 아이 장난 수준의 연주였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저런 표정을 짓는다는 건 매우 이상했다.

혼자 초조하게 제니의 눈치를 보고 있는 매니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제니는 창문을 바라보며 이를 뿌득 갈고 있었다.

이런 수모는 오랜만······ 아니.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여러 협주를 하면서 유명한 지휘자들과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그들은 단 한 번도 제니의 연주를 지적하거나, 언급하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녀의 연주에 맞춰 오케스트라의 스타일을 바꿀 정도였다.

하지만 연욱은 달랐다.

제니의 연주에 맞춰 주는 것이 아닌, 철저히 자신의 곡에 제니의 연주를 맞추도록 요구했다. 거기다 연주자는 본인만의 습관과 플레이 스타일이 존재하는데, 그것을 단번에 캐치한 연욱이 조목조목 미세한 수술 도구로 그 안을 파고들 듯이 지적했다.

기분이 팍 상할 만도 한데, 저 넋 나갈 것만 같은 얼굴로 저러니 무작정 화를 낼 수도 없었다. 특히 제니도 모르던 본인의 습관이 있다는 걸 장연욱 덕분에 알게 되었을 땐 내심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런 세밀한 부분까지 알아낼 수 있는 것일까.

오케스트라와 협주를 하기 전까지 제니가 혼자 솔로로 연주를 하며 여러 곡을 들려줬을 땐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사람이 지휘봉을 드니까 무서운 교관이 따로 없었다.

‘그래도 왠지 오랜만에······.’

점점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고 루즈함에 빠져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고 있던 제니에게 작은 불씨가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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