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106화 (106/200)

걸그룹 멤버의 남동생이 되었다 106화

“형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배영호 작곡가는 양손에 커피를 들고 강용형 작곡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작업실 안에서 10명의 프로듀서가 한창 프로젝트에 매달리고 있었다.

“영호 네가 여긴 왠일이냐.”

“오늘 근처에 미팅이 있어서 겸사겸사 들렀죠.”

그는 다크서클이 축 내려온 프로듀서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저 인간, 아직도 이 짓거리를 하고 있었구나.

저 젊은 프로듀서들은 강용형이라는 이름만 보고 여기 들어왔을 텐데, 현실은 시궁창 같은 노예 생활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하는 건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강용형이 어떤 보복을 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리라.

“잘 왔네. 안 그래도 오늘 신곡 작업 중이었거든. 한번 들어볼래?”

“좋죠.”

마침 프로듀서들이 중간 점검차 내놓은 신곡을 들어보는 날이었다.

“야, 준비한 거 틀어 봐.”

“네.”

프로듀서들은 신곡을 틀면서 조심스레 강용형의 표정을 살폈다.

불같은 성격인 그가 작업실을 뒤집은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던가.

긴장되는 순간.

강용형의 미간이 좁혀졌다.

아, 오늘도구나.

“하- 이 새끼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그러고는 배영호가 가져온 커피를 도로 가져가라며 말했다.

“너희들은 커피 마실 자격도 없다.”

아주 잠깐의 커피 휴식이 날아가 버린 것이었다.

“내 귀가 이상한 거냐, 아니면 너희들 실력이 이상한 거냐?”

“······.”

“아니지. 젊고 팔팔한 너희들이 이상할 리가 있나. 이게 다 내가 늙은 탓이지. 안 그래? 내가 요즘 트렌드를 전혀 못 따라가고 있는 거야. 그치?”

“아, 아닙니다.”

“아니야? 그런데 노래를 그따위로 만들어?”

매번 저런 식이다.

노래에 어떤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피드백을 주면 바로 수정을 할 텐데, 정확히 무엇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시 만들어. 이번에 또 실망시키면 그땐 알지?”

“네! 어, 얼른 다시 만들겠습니다.”

프로듀서들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그 빠른 동작에 이런 상황이 꽤 익숙해 보일 정도였다.

상황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배영호 작곡가가 말했다.

“너무 역정 내지 마세요, 형님. 일단 나가시죠. 제가 맛 좋은 식사라도 한 끼 대접하겠습니다.”

“그럴까? 담배부터 한 대 피자.”

“예.”

밖으로 나갈 줄 알았는데, 실내에 흡연장이 따로 있었다.

그런데 흡연장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여긴 강용형 작곡가 혼자 담배를 필 수 있는 방이었다.

다른 프로듀서들도 담배를 피우긴 할 텐데, 그들은 1층까지 내려가 밖에서 흡연해야만 했다. 이런 것에도 스스로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형님. 여기 불······.”

“아. 난 괜찮아. 요즘 금연 중이라 이거 피고 있다.”

웃긴 건 강용형 이 양반이 담배를 끊고 비타민 전자담배를 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형님. 이번 신곡은 누구한테 주시려고요?”

한창 뜸하던 사람이 요즘 들어 갑자기 작곡 활동에 열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과연 어떤 곡을 만들고 있는지 궁금해서 들른 것이기도 했다.

“둘 있어. 하나는 솔로 가수고, 다른 하나는 아이돌 그룹. 솔로는 박성휘 알지? 그 프로듀싱 프로그램 나와서 1위 하고 확 뜬 놈.”

“아이돌은요?”

“EXE. 우리나라 보이 그룹은 아직 그놈들이 최고잖아. 그래서 이번 신곡 던져 주기로 했지.”

일단 앨범을 내놓으면 순위권은 보장이 되어 있는 놈들로만 추린 듯했다.

원래 보장된 수표들에만 곡을 넘겨주는 양반이라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저도 얘기 들었습니다. 어떤 건방진 놈이 감히 형님을 라이벌로 의식한다면서요?”

“응? 아~ 그 장연욱인가 뭔가 하는 어린놈?”

사실 라이벌로 의식한다는 것도 강용형 혼자 뇌피셜로 떠든 얘기였다.

거기다 인터뷰에서 직접적으로 장연욱을 언급한 건 강용형이지 않던가.

장연욱은 단 한 번도 강용형을 언급하지 않았다.

“별거 아니야. 그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운 좋게 1위 한번 한 거 가지고 허세 부리는 거지.”

그는 애써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과연 운이 좋았던 것일까.

물론, 어느 정도 행운이 따른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행운도 결국 노래가 좋아야 가능한 일이 아니겠는가.

“저도 어이가 없긴 하더라고요. 근데 이번에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내놓은 것도 그렇고 바이올린 연주곡을 내놓아서 화제성을 이끈 것도 그렇고······. 확실히 대중의 관심을 끄는 방법을 잘 아는 놈 같았습니다.”

그러자 강용형이 풉 웃음을 터트렸다.

“야. 넌 눈깔도 없냐? 귀도 먹었어?”

“예?”

“그게 어딜 봐서 중학생 작품이야?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거지. 오케스트라 협주곡을 중학생이 만들어? 거기다 최고 난이도의 바이올린 연주곡을 고작 그 어린놈이? 딱 봐도 사이즈 나오지. GN 엔터테이먼트에서 기술자들 싸그리 붙여서 만든 거야. 그리고 적절하게 스토리를 섞은 거지.”

사실 배영호도 그런 의심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 어린놈 하나 스타 만들겠다고 소속사에서 지랄 발광을 떠는 거야. 스토리 좋잖아? 하루 만에 그런 곡을 만들었다고 하면 멍청한 대중이 열심히 똥꼬를 빨아 줄 테니까.”

강용형은 소속사에서 붙여 준 팀이 대리로 곡을 만들어줬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배영호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이 바닥은 매우 좁다.

누군가가 대리로 곡을 써줬다면 그 소문이 금방 파다하게 퍼진다는 것이다.

당장 강용형이 프로듀서들을 노예처럼 부린다는 얘기를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그냥 곡도 아니고 무려 오케스트라 곡을 대리로 써줬다?

물론, 소속사가 아예 개입을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이렇게 대놓고 대리를 쓰면 안 좋은 소문이 분명 퍼졌을 것이다.

그러나 배영호가 수소문을 해 봐도 딱히 그런 정황이 나오지 않았다.

“난 그놈이 무슨 곡을 쓰든 일체 상관 안 해. 어차피 내가 더 잘 쓰니까. 너도 내 실력 알잖아. 지금은 내가 젊은 프로듀서들을 잘 키워서 사람 만들어 주려고 이러는 것뿐이지. 진짜 마음먹고 만들면 뒤집어진다. 응?”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젊은 프로듀서들을 키워?

고혈을 빨아먹으려는 게 아니고?

자기 실력이 떨어지는 걸 남의 재능으로 덮어씌우려는 걸 누가 모를까.

참 뻔뻔하기 그지없었지만, 이 사람이 현재 정상에 있는 작곡가라는 게 불편한 현실이었다.

“그럼요. 형님의 노고를 어떻게 제가 모를 수 있겠습니까. 이번 곡도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비위를 맞춰 주는 건 배영호가 해야 할 일이었다.

‘그 어린놈에게 한번 호되게 당해줬으면 좋겠네. 저 면상 영원히 못 들고 다니게.’

하지만 겉은 웃고 있어도 속으로는 저 인간이 추락하는 날이 오기를 바랐다.

아마 배영호 자신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그걸 바라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그런 날이 오긴 하는 것일까.

노예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저 벽이 너무나도 높아 보였다.

* * *

“음······. 벌써 며칠째지?”

“오늘로 일주일 됐죠?”

“어떻게 하루도 빠짐없이 여길 오는 거지?”

삼촌은 열심히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는 제니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듯 작업실에 출근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연주가 끝나면 눈빛을 초롱초롱 반짝이며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습관처럼 자리 잡았다.

나 어때? 빨리 잘했다고 칭찬해! 라는 무언의 압박을 받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

“좋네요.”

나는 ‘베리굿’이라고 감탄을 해 주며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어주는 리액션도 잊지 않았다.

솔직히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연주였다.

무려 세계 정상급의 바이올린 연주를 라이브로 듣는 것이다.

어떻게 그 음악이 질릴 수 있을까.

더군다나 매번 새로운 음악을 들려줘서 나도 모르게 정신이 팔려 제니가 연주하는 걸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그건 삼촌도 마찬가지.

“제니. 저번에 제가 말했던 건 생각해 봤어요?”

연주 하나를 끝내고 쪼르르 내 옆에 달려와 앉은 제니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앨범 녹음 말하는 거지?”

“네.”

일주일 동안 있으면서 나와 말하는 게 편해진 제니에게 앨범 녹음을 부탁했었다.

그녀는 생각을 해 보겠다고 해서 기다려 주었는데, 이제 그 답을 들을 때인 것 같았다.

“음~ 좋아. 오케스트라가 같이 모여서 녹음을 한다고 했었나?”

“그렇죠. 제니의 바이올린도 거기에 들어가는 겁니다. 물론, 오리지널 오케스트라 협주곡은 아니에요. 알다시피 이건······.”

“응응. 알아. 가요라는 거. 그래서 조금 고민해봤지. 아니. 사실 깊게 고민할 것도 아니었어. 너한테 부탁받았을 때 이미 결정했거든. 녹음에 참여하기로.”

“그런데 그땐 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어요?”

“호호. 뭔가 애태우고 싶어서? 네가 간절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게 좋았거든.”

“······.”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본 적은 없는데.

아무튼, 중요한 건 그녀가 녹음에 참여하겠다고 한 것이었다.

“그럼 오늘 당장 오케스트라 단원들부터 만나보는 게 어때요? 당장 곡 연습을 하는 건 아니지만, ”

“바로 부를 수 있어?”

“부를 방법이 다 있죠.”

나는 나와 협업을 했던 오케스트라 단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영식이 형. 저예요. 연욱이.”

- 어? 마에스트로!!

김영식 단장은 큰 목소리로 나를 반겼다.

말이 단장이지, 그때 임시로 단장으로 세웠던 사람이다.

사람이 유쾌하기도 했고 가장 연장자여서 단장으로 내세우기 편했다.

“다름이 아니라 오늘 단원들 함께 모일 수 있어요? 앨범 녹음 때문에요.”

- 응? 오늘? 갑자기? 다들 바쁠 텐데. 과제도 해야 하고 그 외에 할 것들이 참 많을······.

“제니 웨이든이 저희 작업실에 와 있거든요.”

- ······누구?

“제니 웨이든이요. 우리 앨범 녹음에 참여해 주시기로 했어요. 그래서 다 같이 오늘 인사라도 하고 연습날 잡는 게 어떤가 싶어서요.”

- 제, 제니 웨이든? 그 바이올린 천재?!

“네.”

참고로 영식이 형은 바이올린 연주자다.

제니 웨이든의 이름을 모를 수가 없다.

- 지, 진짜야? 진짜 제니 웨이든이 왔어? 거짓말하는 거지?

“제가 그런 거짓말을 왜 하겠어요. 진짜인지 아닌지는 직접 와서 보세요.”

- 자, 잠깐만. 내, 내가 30분 후에 다시 전화 줄게!

“네~”

30분 후에 다시 연락을 주겠다던 사람이 15분도 안 돼서 전화가 왔다.

“마에스트로~!!”

한껏 들뜬 목소리로 말이다.

“단원들한테 연락 다 돌렸어. 제니 웨이든 이름 듣더니, 다들 어디로 가면 되냐고 난리야. 근데 진짜 맞는 거지? 제니가 한국에 왔다는 걸 내가 듣지 못해서. 이거 뻥이면 나만 죽어.”

“흐흐. 그렇게 궁금하시면 제가 주소 보내 준 곳으로 오세요.”

“얼른 보내줘! 바로 달려갈게.”

나는 전화를 끊고 주소를 보내줬다.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연주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들 들떠서 달려올 걸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온다.

참 순수하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과 제니가 함께 만들어낼 새로운 곡이 어떻게 탄생할지 기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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